[포럼]원양어선을 타고, 물질을 하며. -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 후기

파래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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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 ‘바다를 사랑한 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기록의 힘!’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생물을 표현하고 있다.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 단체사진 


지지고 볶고, 열렬히 싸우고 부딪히면서도 살을 부대끼는 것은 애정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9월 24일, 그런 바다를 곁에 두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낭만의 문을 열고, 문드러진 바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품을 항해하는 시민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은 ‘바다를 사랑한 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기록의 힘!’을 주제로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진행됐다. 녹색연합,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 그리고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지난해 1회에 이어 해양시민과학을 주제로한 두 번째 포럼이다.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기록하기’를 선택한 시민과학자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해양보호의 대안적 주체로서 '시민과학자'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민과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 연구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을 말한다. 간단한 훈련을 받거나 어떤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전문가와 협력해 연구를 설계하기도 한다. 단순히 많은 양의 정보 확보를 떠나 나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주체화 과정이기도 하다.



‘왜’ 바다를 사랑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바다를 사랑하는 가.


1부에서는 바다를 사랑하는 그리고 기록하기를 선택한 여러 시민의 활동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홍선욱 대표, 생태지평 강은주 연구실장, 전직 원양어선 항해사 김민수 시민기록자, 산호탐사대가 낳은 다이버 고명효 해녀, 인천섬바다기자단 파랑 경어진 기획단장이 5가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홍선욱 대표


홍선욱 대표는 시민과학을 통한 해양쓰레기 모니터링 사례를 공유했다. 올해로 창립 15주년이 된 오션은 시민과학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고 해양수산부에 제안해 국가 해양쓰레기 모니터링 제도를 만들어냈고, 16년간 기록된 자료는 해양쓰레기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오션에서 2021년부터 진행 중인 ‘바다기사단’ 활동은 홍 대표가 강조한 해양쓰레기 수도꼭지를 찾아내는 시민과학 활동이다. 도시에 방치된 쓰레기를 기록하는 어반(urban), 해변쓰레기를 기록하는 테라(terra), 드론으로 접근이 어려운 해변의 쓰레기를 기록하는 스카이(sky), 바닷속 쓰레기를 기록하는 아쿠아(aqua)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사단이 수집한 정보는 ‘오션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정리, 활용된다. 시민의 기록이 데이터가 되어 어떤 수도꼭지를 어떻게 막아야할지를 찾아내는 것이. 오션의 활동이라고 한다.


생태지평 강은주 연구실장


두 번째로 생태지평 강은주 연구실장이 아름다운 물새 영상과 함께 발표를 이어나갔다. 150여 명의 시민이 고창 갯벌의 물새를 기록하는 고창 빅버드레이스 사례를 공유했다. 이 축제에서는 2박 3일간 고창 갯벌 곳곳을 다니며 조류를 기록하는데 특히 올해에는 뿔제비갈매기, 저어새, 큰뒷부리도요 등 멸종 위기 물새와 고창에서 처음 발견되는 조류가 시민에 의해 기록되기도 했다. 새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멸종 위기 새가 돌아오고 발견되는 그 순간들이 참으로 설레는 발표였다. 강은주 연구실장은 물새를 관찰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 이 축제의 큰 힘이라고 말했다.  

전직 원양어선 항해사 김민수 시민기록자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많은 분들에게도 큰 인상을 주었던 김민수 발표자는 자신을 전직 원양어선 항해사라고 소개했다.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기록 활동이어서 였을까, 위험과 딜레마의 한 가운데서 처절하게 남겨낸 기록의 흔적이기 때문일까. 발표를 듣는 내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선명히 그려졌다. 김민수 발표자는 혼획으로 인한 고래 폐사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 방송사에 제보한 시민기록자로 배를 탄 5년간 동료들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천 여개의 영상기록을 남겼다.

매년 해양생물의 40%가 혼획으로 사망하고 최소 30만 마리의 돌고래가 버려진 어구에 얽혀 죽는다고 한다. 63빌딩 서른 채가 들어갈 정도의 대형 어망을 바다에 버리는 장면, 그물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다 폐사한 돌고래 등등. 떨리는 목소리로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던, 자신이 조작한 기계로 죽어가는 생명을 보며 느꼈던 죄책감이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인간은 바다를 죽이며 이익을 얻지만 바다에 돌려주는 것은 쓰레기뿐”이라며 앞으로 자신의 기록과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과 현실을 바꾸는데 쓰이도록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산호가 낳은 다이버 고명효 해녀


네 번째 사례 발표자는 제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고명효 해녀다. 자신을 산호탐사대가 낳은 다이버라 소개하며 우연히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산호탐사대 활동을 접하고 연산호 서식지 기록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평소 하던 물질과는 다른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고, 2023년부터 매월 2회씩 서귀포 문섬과 범섬 연산호 서식지를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산호탐사대 개근생이 됐다. 긴장한 듯 시작했지만 산호 이야기를 하며 반짝거리는 눈과 힘있는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 아름다운 산호를 보고 사진 찍는 게 좋았지만 낚시 쓰레기에 엉켜 잘린 산호, 관광 잠수함에 뭉개진 산호 서식지를 보며 심각함을 인식하고 변화를 기록 활동에 더 힘쓰게 됐다고 한다. 최근 급격한 수온 상승으로 연산호 서식지가 위험에 처했다며 바다를 관찰, 기록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주 102개의 어촌계가 산호와 바다의 기록에 함께한다면 엄청난 힘을 가진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 말했다.


인천섬바다기자단 파랑 경어진 기획단장


어릴 때부터 ‘녹색연합 키즈’로 불렸다는 경어진 기획단장이 사례 발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가 속한 ‘인첨섬바다기자단 파랑’은 청년들을 모집해 인천의 섬과 바다를 취재하며 기록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민 기자단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인천녹색연합 시민 활동에 참여하며 공간이 갖는 이야기의 힘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파랑’의 활동으로 인천일보에 글이 실리고 공무원과 간담회를 하며 학생의 목소리도 우리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경험이 지금까지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보다 많은 친구들이 인천의 바다와 섬의 가치를, 그 안의 이야기를 알게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청년들과 함께 하천과 바다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담아내는 활동을 할 것이라며, 시민과학은 “우리가 자연과 관계 맺으며 사는 삶에서 이야기를 찾아내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라 말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함께라면


시민과학의 가능성과 과제를 주제로 2부 토크콘서트가 진행됐다. 해양과학기술원 박요섭 책임기술원, 재단법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이윤경 대외협력 매니저,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박정운 단장, 해양수산개발원 정지호 실장 그리고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신수연 센터장이 진행을 맡았다.


기록이, 문제에 대한 일시적인 고발이 아니라 정보를 테이터화하고 수치화하는 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박요섭 책임기술원은 유의미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과 시민과학자들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시민과학과의 접점을 넓히는 방법론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이를 위해 누구든지 자신의 데이터를 나누고 의견을 덧붙이고 공유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윤경 EAAFP 대외협력 매니저는 해외의 시민과학 사례를 공유했다. 호주 브리즈번 ‘퀸즐랜드주 도요새 연구단 (The Queensland Wader Study Group)’ 에서는 30년 동안 주민들의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도요새 연구단의 모니터링 데이터가 정책을 만들고 자연과학 연구의 기초 데이터로 활용될 정도로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오랜 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며 지역의 난개발을 막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식지를 보호하는 이 사례를 통해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한 탄탄한 분석 방법론이 시민과학 활동이 어떻게 학계와 정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며, 신뢰도가 높은 방법론을 초기부터 도입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단장은 이름만 들어도 귀여운 ‘점박이물범’ 모니터링 활동 사례를 공유했다. 어민, 관광객, 군대, 물범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공간인 백령도에서 특히 지역주민은 오랜 시간 물범과 바다를 공유하기도, 홍합, 미역, 다시마 등의 해산물들을 경쟁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이 상황에서 주민을 설득해 물범 보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함에 있었다고 말한다. 2003년 첫 조사 이후, 지속적으로 물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초대했고 이어 주민들의 기록 활동 결과가 백령도를 국가 생태관광지로 지정하는 등의 결과로 보여지면서 자부심의 느끼는 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함께한 조사의 결과가 ‘내가 사는 곳’이 이 지역사회가 더 나은 공간으로 연결되는 성과로 연결되며 주민들을 물범 보호 활동의 주체로 이끄는 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해양 시민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는 해양수산개발원 정지호 실장은 바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바다에 대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미래세대와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 넓은 바다를 정부와 일부 전문가의 역량만으로 모니터링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사각지대를 감시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시민이 늘어나는 효과를 주는 시민과학 활동의 필요에 대해 이야기했다.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 같은 존재, 기록


왼쪽부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인천녹색연합,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전시부스 / 전시부스를 관람하는 참가자

전시 한편에 작게 자리한 단체들의 기록 뒤에, 넓고 깊은 바다를 채울 정도로 거대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며 연결됨을 느꼈다. 오늘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것은 내일의 나와 우리를 위한 일이 아닐지.  흐르는 시간에 변화를 넘어서 존재 자체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 바다가 어떤 곳이었는지 그리고 나아가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이번 포럼의 다양한 기록 흔적이 그 방향을 알게 해줄 나침반이 될 거라 생각된다. 신수연 센터장은 스마트 워치를 차고 달리기, 수면의 질, 운동 등 개인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시선을 밖으로 돌려 누구와 같이 무엇을 기록할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문장으로 포럼을 마무리했다. 변화된 바다의 기록 그 이전의 온전했던 바다로 다시 기록될 수 있길 감히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