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제주바다 해상풍력 사업과 생태수용성에 관한 토크 콘서트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 후기

대방어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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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목요일 이야기 손님 '최명애(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박그림(설악산 작은뿔, 녹색연합 공동대표) 이정준(해양다큐멘터리 제작팀 돌핀맨)'을 모시고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라는 주제로 제주 바다 해상풍력 사업과 생태수용성에 관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였습니다. 개발사업, 특히 기후위기의 해결사로 부상하고 있는 해상풍력의 개발과정에서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비인간 존재의 가치를 어떠한 관점으로 밝혀갈 수 있을지, 오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와 산양의 존재, 해상풍력이 들어설 추자도와 상괭이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가량 세 분의 강연 후에는 파란의 프로젝트팀 '상괭이편' 김보은 님의 진행으로 이야기 손님 세 분과 질의응답 토크를 이어갔습니다. 전체 내용은 영상으로, 강의를 간추린 내용과 현장 풍경은 게시글에서 볼 수 있어요!




--- 여는 말


 2024년 파란의 해양보호구역 탐사대는 제주 전역 14곳의 해양보호구역을 조사하였습니다. 그중 추자도는 제주도가 지정한 해양도립공원이자 추자주변해역은 잘피가 서식하는 곳으로 해수부가 지정한 해양보호구역입니다. 추자도에 방문하니 주민들의 주요 이슈는 단연 해상풍력이었습니다. 찬성 측 주민과 반대 측 주민을 모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찬성 측 주민들은 "추자 주민들은 고립된 삶을 살고 있고, 노령화가 굉장히 심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어업 전진기지로 여겨졌던 명성들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추자 주민들의 삶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해상풍력발전이 될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반대 측 주민은 "해상풍력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 시대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연인 바람을 자본화시키고, ‘주민’과 ‘어민’ 사이에 굉장히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는 다르게 파란탐사대는 추자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관탈도, 절명여, 사자섬을 거쳐서 추자 본섬에 들어서면 상추자와 하추자를 만났습니다. 해양도립공원이자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마땅한 해양생태의 보고가 거기에 있었고, 추자 본섬을 둘러싼 42개의 유인도 무인도가 정말 보석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섬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상괭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탐사대는 추자도를 다녀온 이후에 파란탐사대원 중에서 상괭이가 마음에 들어온 분들 중심으로 ‘상괭이편’이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상괭이가 살고 있는 추자 바다에 관한 이야기들을 상괭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상괭이를 포함한 비인간 존재, 인간 너머의 어떤 경이로운 존재들이 있을 텐데, 이 존재에 대한 증명, 존재에 대한 가치를 누가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상괭이 편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이라도 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최명애 교수님의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산양의 존재를 통해서 설악산을 대변해 왔던 박그림 선생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그 누구보다 상괭이를 열심히 상괭이의 존재를 밝혀온 이정준 감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최명애 <인간 넘어의 기후 정의>


 저는 우리 사회에서 오가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육동물을 중심으로 동물이 살고 있는 처지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동물복지)와 동물이 사람과 똑같은 존재로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이 있다는 동물권 논의로 많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물권, 동물복지로 수렴되지 않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착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착안한 것이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입니다.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 행진에서 동물단체 혹은 동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동물도 살고 싶다. 동물 정의가 기후정의다.’라는 깃발을 들고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기후정의 포럼에서 기후정의 선언문에 비인간이라는 표현으로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기후위기를 논의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기후위기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자각과 문제의식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호주의 산불을 계기로, 호주의 연구자들은 ‘인간 너머의 기후 부정의. 다종적 기후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정의는 환경정의에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환경정의는 환경 피해/환경 위험이 계층, 인종 젠더에 대해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고, 대체로 소수자 그룹에 불평등과 위험이 가중되며 이를 바로잡자는 개념입니다. 기후정의는 이를 확장하여 글로벌 레벨에서 보았을 때, 기후위기에 기여한 바가 가장 작은 섬나라, 저개발 국가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기후정의 논의는 논의의 대상이 사람의 관점에 국한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노스가 이야기하는 분배적인 정의, 위험/불평등을 평등하게 나누고 그것을 경제적인 보상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주가 됩니다.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에 대한 글을 쓰며 인간중심, 분배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기후정의에 비인간 존재를 포함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려는 정의가 특정 동물, 비인간 존재에게 가는 위험을 줄이려는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정의에 대한 다른 형태의 의미기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주 연구자들은 산불에 그을린 코알라들을 통해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을 받는 존재들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렸습니다. 그다음 관심을 기울이고, 그 관심을 기울였을 때 발견한 사실에 대해 응답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를 말하며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기후위기 속에서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의 삶이 함께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기후정의에서는 인간 집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다종적 기후정의는 구분보다는 연결망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의 기후위기, 상괭이의 기후위기, 산양의 기후위기가 아닌 나와 상괭이, 상괭이와 바다를 연결하며 우리의 삶이 모두 그물망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종적으로 정의로운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상풍력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해상풍력 예정지는 대부분 연안 어업 지역입니다. 그러나 어업 지역이라는 것은 해양생물들의 서식지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해상풍력 예정지는 해양성 조류, 해양포유류, 어류, 저서생물의 서식지입니다. 해상풍력은 이 생명들에 대한 삶터를 없애는 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가 매우 적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바다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지에 이런 대규모 해상풍력이 들어온다면 생명들의 피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받는 생명들의 사체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상풍력 발전 과정에서 환경영향 평가 절차는 계속 간소화되면서 비인간 존재의 비가시화 현상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인간 너머의 기후정의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해상풍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굉장히 불의합니다. 해상풍력 예정지는 수산자원보호구역과 해양보호구역이 겹쳐있습니다. 해상풍력, 어민의 삶, 해양생물의 서식지,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곳이나, 해상풍력에 대한 이야기만 확대되어 있습니다.

 어민의 반대 운동으로 인해 어민들의 삶, 취약함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말할 수 없는 존재인 해양생물들의 이야기는 사라집니다. 결국 기존의 인간 중심적인 입장을 다시 생산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다종적 입장에서 봤을 때 불의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연안은 어민과 해양생물의 삶터로 둘은 사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민과 해양생물의 취약함을 함께 드러낼 수 없을까요? 다종적 기후정의를 지향하는 탄소중립과 해상풍력 발전은 불가능할 것일까요? 제가 답을 내린다기보다는 다음 이야기로 그 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박그림 <설악산과 산양>


설악산 어머니, 생명의 흔적으로 가득했던 그 땅,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봄, 갓 태어난 어린 산양의 칭얼거림이 들리는 생명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한여름, 무성한 숲속에서 산양이 점점커가는, 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숲을 봅니다.

가을, 어느 정도 다리에 힘이 올랐을 산양이 낙엽을 뒤져서 도토리를 찾아 먹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뭇 생명이 잠드는 겨울, 그러나 설악산 어머니는 가장 깊이 생명을 품고 봄이 되면 다시 내보내는 계절입니다.


산에 드는 무수한 생명들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발자국 하나로 통해 나와 더불어 어떤 생명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 생명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동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달의 어미와 새끼가 함께 걸어간 발자국을 통해, 어미와 새끼의 끈끈한 정을 느끼고, 그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봄으로써 수달이 내 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느껴보게 됩니다.


담비 서너 마리가 서로 뒹굴며 놀았던 자리,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담비, 어쩌면 우리보다 더 이해타산이 빠르지 않은 그런 모습을 담비의 발자국을 통해, 또 똥의 흔적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산양이 지나간 발자국을 확인한 순간 설렘이 시작됩니다. 그 발자국을 따라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이틀 삼일씩 추적해서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기는 하지만, 산양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얼마나 귀찮을 존재일까. 산양은 그런 생각을 할지 생각도 해봅니다.


한겨울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서성거리고 서로 모여 몸을 비비는 산양, 몸이 무거운 어미 산양의 힘든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발자국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곧 멸종이 다가오게 되겠죠.  산양임을 드러내는 한 올의 꼬리털 하나를 통해 그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도 됩니다. 눈밭에 떨어진 똥을 보며 산양의 체온을 느껴지기도 합니다. 산양이 쉬었다 간 자리, 낙엽이 오목 피파인 자리에 나도 누우면, 나도 산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산양의 똥을 만나면 코를 가까이 들이밀고 온 힘을 다해 빨아들이는 냄새, 가끔 그리워지는 냄새이기도 합니다.


무인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빠져들기도 합니다. 산양의 입장에서 보면 몰카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야생의 모습으로 찍힌 산양의 모습.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케이블카의 지주가 설 자리. 무인카메라를 통해 어미와 새끼 산양이 찍혀있습니다. 대를 이어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환경영향평가에 단 한 줄의 대책이 있습니다. 공사 중에 산양은 회피했다가 공사가 끝나면 돌아올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몸보신을 위해서 산양을 잡기도 합니다. 올무에 걸려 죽은 모습을 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살 수 없다면 왜 살 수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난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팬스때문에 너무 많은 산양이 죽었습니다. 정작 돼지 열병을 막을 수 없는 팬스. 이 팬스를 치기 전에 산양과 이곳에 살고 있는 야생생물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확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설치한 패스 때문에 지난겨울에 죽음을 맞이한 산양이 1,000마리가 넘습니다.


산양은 눈이 많이 오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학습하고 대를 이어온 생존 방법입니다. 그러나 도로로 내려온 산양이 바라보는 인간의 문명, 산양은 어떤 마음으로 차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1982년 시작된 케이블카 사업, 현 정권에서는 무조건 추진이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색 케이블카 착공식, 생명을 집단 학살하겠다는 집단학살 선포식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운 조상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늘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케이블카는 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한 조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정준 <추자도와 상괭이>


 상괭이는 우리 바다에서 가장 많이 살고, 가장 많이 죽는 고래입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는 2016년에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상괭이는 동아시아 국가 해안 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대한민국 수역 서해 남해 동해 남부에 살고 있습니다.

 상괭이는 연안 가까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민들은 먼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상괭이가 내는 쉑쉑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고, 상괭이를 쉬욱지, 또는 쉑쉑이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에 인터뷰를 할 때에는, 상괭이가 고래라는 것을 모르고 생선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상괭이에게 인간은 주로 재앙이었습니다. 2007년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유출 사고, 2011년 새만금 방조제로 인한 떼죽음 등 상괭이의 개체수는 매우 줄어가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혼획입니다. 안강망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큽니다. 대부분 불법조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제한된 그물보다 훨씬 더 많은 그물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배에 20개의 제한된 안강망 개수가 있지만 60개~100개의 불법 그물을 씁니다. 하나로도 어획 강도가 매우 높은 안강망을 수십 수백 개씩 불법으로 더 많이 사용하며 피해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2019년~2020년까지 태안에서 모인 상괭이의 사체를 분석한 결과 97.8% 미성숙 개체의 상괭이였습니다. 어린 개체의 죽음이 계속된다면 상괭이는 결국 멸종할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상괭이의 서식지와 해상풍력이 들어설 위치가 아주 정확하게 겹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84개의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곳, 여의도 면적의 2,200배. 모두 상괭이의 서식처입니다.

 해상풍력이 해양포유류에 미치는 영향으로 소리와 전자파에 의한 피해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입지를 선정할 때 먼바다를 우선 고려하고, 이동성 조류와의 충분한 이격거리 확보, 환경영향 예측 및 저감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의 순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 돈이 되는 곳에 입지를 선정하고 이후에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방식입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환경영향평가의 결과를 보면 제가 직접 확인한 상괭이 서식지임에도 불구 대부분 발견되지 않았거나, 불충분한 조사 결과에 대해 조건부 합의로 넘어가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고래들은 소리로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해상풍력이 건설되면 블레이드가 돌아가며 만들어 내는 소음이 수중으로 전달됩니다. 소음으로 소통이 어려운 고래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탐라해상풍력이 들어선 신창 지역의 경우, 이전에는 남방큰돌고래들이 머물고 놀고 생활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추진 중인 한동평대 해상풍력, 해양보호생물 영향평가에서 남방큰돌고래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남방큰돌고래의 주 서식지로 확인된 곳입니다. 엉터리 조사인 것입니다.

 추자도에는 63빌딩 높이의 해상풍력 200기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이곳에서 엉터리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라 예상됩니다. 과거에는 아무도 추자도에 상괭이가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2021년도에 저희(돌핀맨)가 직접 추자도에서 상괭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추자도에 해상풍력을 짓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해상풍력도, 상괭이의 서식지도 공존할 수 있도록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괭이의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해상풍력을 진행하며 아무도 상괭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파란과, 상괭이편 멤버들과 함께 상괭이를 조사하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정리. 신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