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 9월 상괭이 조사 항해일지

대방어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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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괭이편 출항은 항상 긴급하게 정해진다. 정준이 날씨 앱(2주간 미래를 예측하는!)을 열심히 지켜보다가 바다가 잔잔해지는 날이 생기면 상괭이편 단체 채팅방에 날짜를 긴급 공지하고, 항해에 나설 대원들이 정해진다. 상희가 조사계획표를 올리면, 대원들은 착착 준비하여 출항지에서 만난다. 


 나의 출항 전 준비 사항은 주로 ‘장보기’이다. 조사 기간동안 배 위에서 먹어야 하는 식사 재료를 챙긴다.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서 식사라니…’ 얼핏 들으면 낭만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9월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흔들리는 보트 안이라는 현실을 떠올리면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다. 그저 생존이다. 워낙 덥다 보니 열을 사용해야 하는 조리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흔들리는 배 안에서 속이 더 더부룩해져 소화도 잘 되는 음식을 찾아야 한다. 매 끼니 같은 음식을 먹으면 질리니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장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8월 조사 때 인기가 좋았던 묵국수와 한살림의 해조류 면과 콩국을 챙겼다. 간식으로 먹을 빵과 차갑게 먹어도 되는 떡도 사고, 꽁꽁 언 식혜, 포도…. 국수에 넣을 오이는 미리 집에서 채를 썰고 끼니별로 봉지에 나누어 챙겨두었다. 아침으로 먹을 주먹밥은 집에서 미리 전자레인지로 돌려 따뜻하게 해서 출발한다. 이제 항구 앞 마트에서 얼린 생수를 30개 정도 사면 된다. 최대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지만, 얼린 생수는 배 위에서 열을 식혀주는 생존 도구이기에 없어서는 안 된다.  


 배롱호가 있는 도두항에 도착했다. 수진이 익숙하게 프로타에 좌표를 세팅하고 상희는 출항 신고를 챙긴다. 개인 짐과 촬영 장비들도 배 안에 차곡차곡 쌓고 정리한 후 8시 6분 추자도로 출항한다. 1시간 40분 바닷길을 달려 조사 시작점에 도착했다. 추자군도를 기준으로 서쪽(A구간)부터 조사할지, 동쪽(B구간)부터 조사할지는 정준이 출발 전 바다 날씨를 열심히 살핀 후에 더 잔잔한 바다로 결정한다. 오늘은 추자군도의 동쪽 B 구간이다. B1부터 시작하여 B7까지 넓게 지그재그를 그리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바다는 고요하다. 고요한 바다에 오직 베롱호만 파장을 일으키며 나아간다. 그 고요한 바다에 상괭이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그럼 단번에 상괭이를 찾을 수 있을 텐데……그러나 내가 단숨에 찾아내는 건 자꾸 어디선가 흘러오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폐어구로 보이는 목재들뿐이다. 


b7d91146f7c9b.jpeg플라스틱 쓰레기 ⓒ상괭이편


그러다가 아주 작은 생명의 흔적이라도 보이면 왠지 모를 반가움이 솟구친다. 거대한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배 옆으로 지나갔다. 여름철 수온이 오를 때, 과도하게 번식하여 사람들을 애먹이는 해파리여서 이를 반가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 본다. 그러다 오후가 지나 이번엔 잭팟이 터졌다. 수면이 심상치 않게 튀어 오르더니 커다란 물살이들도 등지느러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롱호 앞 뒤로 여기저기서 무리가 튀어 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없이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바다인 것 같다가도, 이렇게 솟구치는 생명들과 마주하면 바다의 어떤 에너지들이 나를 통과해 가며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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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입깃해파리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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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튀는 수면 ⓒ상괭이편


 아무리 수면으로 올라온다고 해도, 등지느러미 정도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물살이를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돌아가 확인해 보려고 최대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물살이떼 가까이에서 어선이 작업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물에 올라가는 물살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실력이 없는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일부로 잡지 않은 것 같다. 돌아와 알아보니 물살이들의 정체는 점다랑어였다. 그런데 이 점다랑어가 잡자마자 죽는 데다가 너무 빠르게 부패하여 맛없기로 소문난 물살이여서 우리나라에선 아주 인기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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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다랑어 ⓒ상괭이편


 작고 가녀리게 생긴 새무리들도 바다에 앉아 쉬고 있었다. 슴새는 많아 봐야 1~2마리 같이 활동하고, 특히 쉬는 모습보다는 위용 있는 양 날개를 착~ 펼치고서 육중한 근육질이 있을 것 같은 몸체를 수면 가까이에 대고 활공하는 모습, 날으는 마동석 같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오늘 만난 새들은 가녀리디 가냘픈, 얇고 긴 목과 부리를 가졌다. 역시 돌아와 확인하니, 지느러미발도요라는 새였다. 어쩐지! 정이 간다더니, 내가 좋아하는 도욧과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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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도요새 무리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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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발도요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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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발도요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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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발도요 ⓒ상괭이편


두 번째 날 A구간 조사는 아침 일찍 전국에서 가장 비싼 ‘인양주유소’에서 기름을 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상반기 조사까지만 해도, 돌핀맨은 조사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제주도에서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돌아올 기름 200L를 기름통 10개에 담아왔었다. 그러나 날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그 무게 때문에 배 운항이 너무 불안정해져,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하반기부터는 추자도에 도착해서 돌아가는 기름을 채우기로 했다. 기름값이야 비싸긴 하지만, 송유관이 있을 리 만무한 추자도에 주유소가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한 일이었다. 기름을 채우고, 짐을 배에 옮겨 싣고 오전 8시, A구간 조사가 시작되었다. 


 아, 덥다. 정말 덥다. 상괭이편 조사는 겨울엔 참을 수 없는 추위를 경험하게 하더니, 여름엔 참을 수 없는 더위를 경험하게 한다. 이 더위를 식히는 방법은 꽁꽁 얼린 500ml 생수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있는 것이다. 목으로도 옮겼다가, 물이 조금 녹으면 쿨토시 위에 뿌려주고, 머리에 쪼르르 붓는다. 언제든지 머리를 적셨다가 말릴 수 있는 숏컷임에 감사하고, 쿨토시 발명자에게 감사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순탄한 조사였다. 어제만큼 장판 같은 바다는 아니었지만 얌전했던 바다였다. 그러다 두 세시 즈음 조사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 파고가 1m로 꽤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보에는 없는 파도였다. 조사를 마무리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제주도로 돌아가는 길이 문제였다. 제주도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거칠어졌다. 예보 상으론 파고가 1.5m라고 했지만, 배 안에서 느낌은 2~3m, 뱃머리가 바다를 향했다. 하늘을 향하기를 반복했다. 한번은 배가 쿵~ 떨어지며 선실 유리창으로 바닷물이 들이쳤다. 창 아래 카메라 가방들이 놓여있었는데, 당장 집어 들어 가방을 뒤집어 물을 빼고, 모두가 달려들어 카메라에 바닷물을 닦아냈다. 카메라와 같은 전자제품들은 전기가 흐르는 소금물이 스며들어 가면 바로 고장이다!! 다행히 재빠르게 물기를 닦아 천만다행이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계속해서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며 높은 파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출렁거리고 있는 배 때문에, 본디 긴장도가 높은 상희의 눈빛은 불안이 역력했다. 그때 배롱호의 키를 잡은 정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위험한 파도는 아니야 견디기가 고통스러울 뿐”

 그 말은 상희도, 나도 안심시켰다. 수진과 정준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담담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고, 나는 사실 꽤 긴장되었는데 아닌 척! 하고 있었다. (상희의) 불안과 (나의) 불안이 만나 증폭되지 않아야 하니까. 4시에 조사를 마치고 도두항에 들어오니 8시, 1시간 40분 걸린 거리를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긴 항해였다. 온몸에 힘을 주며 균형을 맞추느라 조사 후에 하루이틀은 여기저기 근육이 쑤셨다. 

 ‘이제 조사와 항해 준비도 착착! 조사도, 기록도 착착! 잘하는군!!’ 하며 자신감 넘치게 출발한 항해였다. 바다와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역시나 겸손하고 또 겸손해지라는 파도를 맞으며 끝나버렸지만^^! 안전히 돌아왔음에 감사했던 9월 항해기 끝!


글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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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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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슴새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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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슴새 ⓒ상괭이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