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10월 상괭이 조사 항해일지

둘기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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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편의 조사일정은 급변하는 바다의 상황상 늘 급하게 정해지는데, 이번 10월은 바다의 상황이 계속 좋지 않아 좀처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10월 11일, 상괭이편의 단톡방에 알림을 울렸다. “10월 상괭이편은 12,13,14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당장 내일이었다. 서울에 있던 나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1일차

다음날 아침 9시 제주에 도착했다. 상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상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애월항으로 향했다. 이번 항해는 베롱호가 아닌 포포이스호와 함께한다. 작년 11월 처음 포포이스호를 타고 처음 추자도를 갔었다. 베롱호와 달리 포포이스호는 내부 선실이 없는 고무보트의 형태로, 그 날의 파도나 바람 등을 온전히 몸으로 마주해야 했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오늘은 구름이 10% 이하로 날씨가 맑았다. 파고도 0.6m 정도로 높지 않았지만, 속도를 내자 아래 위로 많이 통통 튀며 나의 발과 엉덩이로 바다의 파도를 온몸으로 느껴졌다. 출발한지 10분쯤 되었는데 상희에게 카드를 받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상괭이편으로 활동하는 데 드는 비용은 활동비 카드로 사용하는데 깜박했다. 포포이스호를 다시 돌려 출발했던 애월항으로 돌아갔다. 카드를 받고 11시 9분 배는 다시 추자도로 출항했다. 


c4cec11f67fb0.jpg애월항에 정박중인 포포이스호 ⓒ상괭이편

아침까지 서울에 있었는데 지금은 제주의 바다 한 가운데에 떠있다니 무언가 현실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서울의 날씨는 며칠째 계속 비가 오고 흐리고 추웠는데, 지금 이 곳은 햇빛이 뜨거웠고 더웠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순간 꿈을 꾸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출발한지 20분쯤 지나자 정준이 물었다. “관탈 보여?” “어? 벌써?” 라는 생각으로 뱃머리 쪽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 보여요!” 둥근 형태의 대관탈도가 보인다. 그 왼쪽에 있는 흰색 배도 보이고, 그 왼편으로는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소관탈도도 보인다. 작년 11월 처음 이 배에 탔을 때는 다들 대관탈도가 보인다는데,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와 흐릿한 섬의 형태를 구분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내 눈에도 대관탈도가 보인다. 괜시리 바다에서의 내가 조금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으쓱해하며,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 뒷편으로는 옅은 구름과 햇빛에 아사모사하게 한라산과 그 옆 오름들이 겹쳐 수묵화처럼 보였다.

배 옆으로는 팔뚝만한 큰 날치가 날아올랐다. 생각보다 긴 거리를 배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날으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다. 배가 관탈도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서늘해지고, 바다의 색도 짙어졌다. 추자는 여러모로 제주와 다르다는 것이 몸으로 체감되었다. 대관탈도에서 5분정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추자도를 향했다. 


30f26fc5247ff.jpg탐사대를 마중 나온 수덕도 ⓒ상괭이편

12시 30분쯤 되자, 수덕도가 보인다. 사자섬이라고도 불리는데 추자도로 향할 때 제일 먼저 보이는 섬으로 꼭 마중을 나와있는 털이 긴 큰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추자의 신양항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20분쯤 첫 조사지점으로 향했다. 바다는 고기비늘같이 잔잔했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수평선도 선명하게 보였다. 천천히 배를 몰고 나는 그 평화로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바다는 무척 조용하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큰 배 하나가 멀찍이 지나갈 뿐 조용했다. 

4시 45분 쯤 되자 잔잔했던 바다가 굵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푸렝이섬 위의 일몰이 아름다웠다. 일몰이 가까워지니 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 날 조사도 저물어갔다.


2일차

다음날이 되었다. 둘쨋날의 항해를 위해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정준과 나는 기름을 사러 주유소로 향했다. 추자도의 주유소는 해안가에 위치한 한 곳 뿐인데, 얼핏 보면 영업하지 않는 것처럼 허름한 외관이다. 주유기도 녹슬고 바래었다. 한 20년은 되어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주유기를 교체한지 6년이 채 안되었다고 한다. 육지의 주유기보다 반 정도의 기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습도와 염분이 엄청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배에 기름을 싣고 8시 21분 2일차의 항해를 시작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구름이 하늘의 80퍼센트 이상을 덮었다. 


0f02f42946a69.jpg포포이스호, 주유중 ⓒ상괭이편

파고는 오늘도 잔잔하다. 추자대교를 지나 먼 바다로 나간다. 왼편으로 보이는 수덕도를 은은히 비추는 해를 보며 아침마다 바다로 나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오늘의 첫 조사지점은 어제에 이어 추자도의 동쪽 구간인 B구간의 중간지점부터 시작한다. 조사지점에 도착하자 너울이 높아졌다. 이 지점은 물이 돈다는 말하는 구간으로 배로 물이 많이 튀어 우의를 덧입었다. 이 구간을 지나니 다시 바다는 잠잠해졌다. 등대섬(방서)에 가까워지자 너울이 다시 높아졌고, 어선이 한 척 있었다. 

16번 채널에서 무전이 왔다. 16번 채널은 위급 상황에 구조 무전을 보낼 수 있는 채널이다. 해당 지역에 어선이 밀집해있으니 안전거리에 유의하라는 무전이 들렸다. 오늘 오전에 바다는 윤슬이 유난히 예뻤다. 어제 일몰에 보았던 윤슬을 떠올려보며, 매일 보는 바다도 매일 다르게 보임에 감동한다. 무선의 전언처럼 어선이 많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배들을 세어보았는데 18척이나 되었다. 배 뒤에는 그물이 아닌 낚시줄이 매여있는 것을 보니 대부분 낚시 어선들로 보였다. 포포이스호는 조사지점을 한 점, 한 점 선을 이어 그리듯 천천히 나아갔다. 두렁여와 납덕이를 지나 횡간도와 흑검도 사이를 지났다. 정준이 처음 추자의 상괭이를 처음 본 횡간도 주변을 지났지만, 오늘은 상괭이가 보이지 않았다.


791c894737a5c.jpg보길도 앞, 스-윽하고 올라온 상괭이 두 마리 ⓒ상괭이편 

오후가 되어 점심을 먹고 B구간을 모두 항해하고, 보길도 앞의 출운초에 상괭이가 있을지 보러가기로 했다. 보길도에 가까워지자 물색이 탁해졌고, 수온은 23도였다(추자도의 수온은 25도에서 27도 정도였다). 

1시 35분 출운초를 바라보고 1시 방향에 상괭이 둘이 스윽 올라왔다. 출운초를 지나 보길도 쪽으로 더 가까이 가보았다. 보길도 앞은 슴새가 많았고, 수면 위를 가깝게 비행하고 있었다. 

2시 6분 12시 방향에 상괭이 하나가 올라왔다. 등의 융기가 또렷하게 보였다. 300미터 이상 더 먼곳에서도 상괭이 하나가 더 보였다. 


cce7819a272a2.jpg보길도 앞 줄지어 늘어선 양식장  ⓒ상괭이편 

보길도의 포구를 잠시 들러 화장실을 찾았으나, 개방되어 있는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다시 배를 타고 진도 방향으로 향했다. 진도 앞에서 양식장이 하늘의 구름떼처럼 바다 위에 펼쳐져 있었다. 양식장 부이 사이 사이로 배를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2시 26분, 닭섬(저도)와 소닭섬(소저도) 앞에서 상괭이들이 불쑥 불쑥 올라왔따. 세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왔고,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그 뒤로 좀 더 크기가 작아보이는 두 마리가 보였다. 섬으로 둘러싸인 상괭이를 만난 이 광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배를 잠시 세우고, 커피 타임을 가졌다. 배 주변으로 올라오는 상괭이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시고 복사초로 향했다. 복사초는 작년 12월에 상괭이를 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배가 나아가지를 않았다. 결국 복사초를 들르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추자도의 서쪽구역인 A구간을 돌아보기로 했다. 

3시 54분 A구간의 첫 구역에 도착했다. 그 사이 파도가 높아졌고, 배가 아래 위로 많이 튀었다. 쿵쿵 떨어질 때마다 그 충격이 온 몸으로 왔다. 그럴 때는 보드를 타듯, 몸이 떨어질 때 같이 숙여 충격을 줄여보는 나름의 시도를 하며 배 위에서의 시간을 재밌게 보낸다.

 5시 20분 2일차의 조사도 종료되었다. 조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사장님이 요즘 농어를 잡는 시기인데 전혀 안잡힌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횡간도 근처에서 돌고래가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문득, 오늘 그 근처를 지날 때 돌고래 아닌가 했던 찰나의 순간이 떠올랐다.


3일차

간밤에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을 했었는데, 아침이 되자 비는 그치고 개었다. 오늘 아침도 주유소에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주유소에 가면서 바라본 바다에는 백파가 많이 보였다. 예고보다 바다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8시 43분 A7 지점에 도착했다. 오늘은 구름이 80프로 이상으로 많았고, 파고는 0.7m로 넘실댔다. 그리고 북서풍이 불고 있다. 이 A7구간은 물이 도는 지역이라고 한다. 바다가 뾰족뾰족하게 물살이 일었다. 배 앞편에서 튀는 물을 맞으며 어젯밤 민박집의 작은 사장님이 “아직 상괭이 없죠? 아직 추자 물이 맑아요”라고 이야기한 것을 떠올렸다. 배의 뒷쪽에서는 정준과 수진이 상괭이의 조사의 현실과 한계, 그리고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도와 계속 맞서며 조사를 이어가다 배가 방향을 바꾸자 파도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배의 속도가 안나는 것처럼 느껴져 정준에게 물었다. 정준은 파도를 타지 않으려고 일부러 물살을 피해가는 중이라 했다. 파도를 타게 되면 배의 속도가 너무 빨라진다고 한다. 그 새 해가 구름 밖으로 나왔다. 뾰족뾰족하게 솟아오른 물결이 반짝인다. 은빛으로 넘실대는 모습이 액체화된 금속같았다. 


11시 22분, 신양항에 들러 점심을 먹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바다는 더 거칠어졌고, 물이 많이 튀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온다. 비를 맞고 바람도 세니 춥고, 배에서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으니 허리도 아파왔다. 배 뒷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2시 8분, 우리는 3일의 조사를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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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