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록은 거친 바다 위에서 남긴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2025년의 마지막 항해일지다.
2025.12.18.(첫째 날)
08:54
도두항을 막 벗어난 포포이스호는 추자도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파고는 0.7미터. 보트는 출렁이며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수면으로 떨어질 때마다 육중한 충격이 몸으로 전해졌다. 맞바람에 물보라가 튀지 않도록 정준은 쉴 새 없이 핸들을 조정했다.

희미해진 한라산의 윤곽 ⓒ상괭이편
“12월 조사는 조사 시작 지점까지 가는 게 가장 큰 숙제야. 북풍을 뚫고 가야 해서 바다가 거칠고 꽤 힘들거야.”
출항 전부터 이어진 정준의 걱정 탓에 몸의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바람에 맞서 속도를 낼 수 없는 보트 위에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숨을 골랐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한라산의 윤곽은 희미해졌고, 어느새 관탈도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11:37
정준은 대관탈도에 잠시 보트를 세웠다. 제주에서 북쪽으로 27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이 작은 섬은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덕분에 바람을 피하기에 적당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를 내려 마셨다. 다시 바람에 맞서기 위해서는, 뜨거운 온기가 필요했다. 조사 시작 지점까지는 결국 4시간이 걸렸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날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었다.
“바람 방향이 안 좋네.”
정오 무렵, 역풍을 만난 보트가 속도를 늦추자, 우리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수면에 집중했다. 조금 전 머물렀던 관탈도는 손톱만 한 크기로 멀어져 있었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며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 바다에서 바람은 조사 일정과 양상을 결정한다. 파도가 거칠어질수록 하얀 포말이 늘어나고, 상괭이의 등이 물보라와 겹쳐, 보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파도인지, 상괭이인지. 우리가 기다리는 고래는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지.
파도가 거친 구간을 지날 때는 모두 자리를 뒤편으로 옮겨 안전하게 통과한 뒤, 다시 전열을 다듬고 조사를 이어갔다.
탐사대가 마주한 거친 바다 ⓒ상괭이편
15:33
지난 조사에서 상괭이가 발견되었던 주요 관찰 지점인 A-3 구역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기대감을 갖고 수면을 샅샅이 살폈지만, 야속하게도 바람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점점 더 거세질 뿐이었다.
“조사 종료합니다.”
일몰을 두 시간여 앞두고, 첫날의 조사는 그렇게 바람 앞에서 멈춰 섰다.
2025.12.19.(둘째 날)
08:35
영흥리 포구에서 출항한 포포이스호는 추자본섬 서남쪽 해역으로 향했다. 사자섬 주변 해역에 다다르자, 구름 낀 하늘 사이로 빛줄기가 바다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졌던 빛이 틈을 찾아 내려앉으며, 섬의 윤곽 너머로 거대한 빛의 장막을 드리웠다. 우리는 그 광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자섬 주변 빛내림 ⓒ상괭이편
하지만 감동도 잠시, 조사 지점으로 향할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파도의 높이는 1.5미터에 이르기도 했다. 포포이스호는 수면과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파도의 충격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된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가장 나은 대응이었지만, 이런 날은 결국 온몸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09:23
밖미역섬 주변으로 하얀 백파가 일기 시작했다. 섬으로 향하던 어선조차 방향을 틀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밀려드는 파도를 살피느라 조사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쉴세 없이 밀려드는 파도 ⓒ상괭이편
“모두 뒤로 이동 합시다. 섬 가까이 붙으면 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까, 이 구간을 빠르게 통과합시다.”
보트 앞에서 관찰하던 미연과 보은이 정준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준은 파도의 결을 타며 조심스럽게 뱡향과 속도를 조정했다. 우리는 몸을 움츠린 채 흔들림을 견뎠다. 멀리 추자도가 보였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현장 메모) 11:00 현재 : 만조. 7물. 조류 강함. 파고 0.7 속도는 6~7노트 유지
예보와 달리 바람이 거세지자 정준은 영흥리 포구에 보트를 정박했다. 흔들리지 않는 선착장 위에서 간편식으로 짧은 점심을 해결했다.
13:17
오후 조사를 앞두고, 보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유통을 선착장에 내려두었다. 기상 상황과 안전을 고려해 정준, 미연만 조사길에 올랐고, 보은과 나는 약 두 시간 후 항구에서 다시 포포이스호와 만났다.

거친 바다에 지친 탐사대 ⓒ상괭이편
16:56
결국 상괭이는 보지 못했다. 조사를 종료한 채 항구로 돌아가는 길, 멀리 보이는 추자도의 실루엣은 차분한 회색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구름에 가린 해의 주황빛 파장이 하늘을 물들였다. 정준이 지는 해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는 곳으로 보트의 방향을 틀자, 우리는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일부러 이리로 온 거야”
“우와!” “너무 예쁘잖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 사이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종일 파도에 지친 하루를 위로받기에, 그 노을이면 충분했다. 말로 다 옮기기 어렵지만, 하루의 마지막 해를 보려고 멈추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추자대교 사이로 저무는 해 ⓒ상괭이편
2025.12.20.(셋째 날)
08:12
하늘을 뒤덮은 구름 아래, 바다로 향하는 길은 스산하고도 무거웠다.
09:34
갑자기 보트 내부의 물을 빼내는 빌지 펌프가 멈춰 섰다. 비상이 걸린 우리는 보트 엔진 상자를 열고 바닥에 고인 물을 번갈아 가며 직접 퍼내야 했다.
“조사 구간을 두 구간 남겨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
조사를 중단하고 복귀해야 하나,
아니면 끝내고 가야 하나.
1시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예보가 있었고,
제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지 그려지니까
빌지 펌프는 고장났지, 기상은 나빠지지…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던지….”
정준은 그때의 복잡했던 마음을 나중에야 털어놓았다. 무사히 제주 해협을 건너기 위해, 혼자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있었을까. 잠시 뒤, 정준이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미연이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고, 우리는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심호흡을 하듯 숨을 고른 뒤,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정오를 지나, 포포이스호는 항해를 재개했다. 관탈도 인근의 낚시어선들을 통과해 한 시간 쯤 달렸을 때, 정준이 외쳤다.
“바람 터졌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남서풍은 강한 서풍으로 돌변해 몰아쳤다. 서쪽에서 밀려든 너울은 하얀 포말이 되어 들이쳤고, 우리는 연신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항해를 이어갔다. 멀리 도두봉이 보였지만,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포포이스호는 더디게, 파도를 하나씩 넘고 있었다.
제주에 가까워질수록, 제주 해협에서 조업 중인 안강망 어선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구름에 가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섬 가장자리 오름들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그제야 ‘이제 다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제주 해협에서 조업중인 안강망 어선 ⓒ상괭이편
13:57
마지막까지 파도를 견디며, 우리는 무사히 도두항으로 돌아왔다.
글 홍상희
이 기록은 거친 바다 위에서 남긴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2025년의 마지막 항해일지다.
2025.12.18.(첫째 날)
08:54
도두항을 막 벗어난 포포이스호는 추자도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파고는 0.7미터. 보트는 출렁이며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수면으로 떨어질 때마다 육중한 충격이 몸으로 전해졌다. 맞바람에 물보라가 튀지 않도록 정준은 쉴 새 없이 핸들을 조정했다.
희미해진 한라산의 윤곽 ⓒ상괭이편
“12월 조사는 조사 시작 지점까지 가는 게 가장 큰 숙제야. 북풍을 뚫고 가야 해서 바다가 거칠고 꽤 힘들거야.”
출항 전부터 이어진 정준의 걱정 탓에 몸의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바람에 맞서 속도를 낼 수 없는 보트 위에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숨을 골랐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한라산의 윤곽은 희미해졌고, 어느새 관탈도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11:37
정준은 대관탈도에 잠시 보트를 세웠다. 제주에서 북쪽으로 27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이 작은 섬은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덕분에 바람을 피하기에 적당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를 내려 마셨다. 다시 바람에 맞서기 위해서는, 뜨거운 온기가 필요했다. 조사 시작 지점까지는 결국 4시간이 걸렸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날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었다.
“바람 방향이 안 좋네.”
정오 무렵, 역풍을 만난 보트가 속도를 늦추자, 우리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수면에 집중했다. 조금 전 머물렀던 관탈도는 손톱만 한 크기로 멀어져 있었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며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 바다에서 바람은 조사 일정과 양상을 결정한다. 파도가 거칠어질수록 하얀 포말이 늘어나고, 상괭이의 등이 물보라와 겹쳐, 보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파도인지, 상괭이인지. 우리가 기다리는 고래는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지.
파도가 거친 구간을 지날 때는 모두 자리를 뒤편으로 옮겨 안전하게 통과한 뒤, 다시 전열을 다듬고 조사를 이어갔다.
15:33
지난 조사에서 상괭이가 발견되었던 주요 관찰 지점인 A-3 구역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기대감을 갖고 수면을 샅샅이 살폈지만, 야속하게도 바람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점점 더 거세질 뿐이었다.
“조사 종료합니다.”
일몰을 두 시간여 앞두고, 첫날의 조사는 그렇게 바람 앞에서 멈춰 섰다.
2025.12.19.(둘째 날)
08:35
영흥리 포구에서 출항한 포포이스호는 추자본섬 서남쪽 해역으로 향했다. 사자섬 주변 해역에 다다르자, 구름 낀 하늘 사이로 빛줄기가 바다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졌던 빛이 틈을 찾아 내려앉으며, 섬의 윤곽 너머로 거대한 빛의 장막을 드리웠다. 우리는 그 광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조사 지점으로 향할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파도의 높이는 1.5미터에 이르기도 했다. 포포이스호는 수면과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파도의 충격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된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가장 나은 대응이었지만, 이런 날은 결국 온몸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09:23
밖미역섬 주변으로 하얀 백파가 일기 시작했다. 섬으로 향하던 어선조차 방향을 틀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밀려드는 파도를 살피느라 조사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모두 뒤로 이동 합시다. 섬 가까이 붙으면 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까, 이 구간을 빠르게 통과합시다.”
보트 앞에서 관찰하던 미연과 보은이 정준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준은 파도의 결을 타며 조심스럽게 뱡향과 속도를 조정했다. 우리는 몸을 움츠린 채 흔들림을 견뎠다. 멀리 추자도가 보였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현장 메모) 11:00 현재 : 만조. 7물. 조류 강함. 파고 0.7 속도는 6~7노트 유지
예보와 달리 바람이 거세지자 정준은 영흥리 포구에 보트를 정박했다. 흔들리지 않는 선착장 위에서 간편식으로 짧은 점심을 해결했다.
13:17
오후 조사를 앞두고, 보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유통을 선착장에 내려두었다. 기상 상황과 안전을 고려해 정준, 미연만 조사길에 올랐고, 보은과 나는 약 두 시간 후 항구에서 다시 포포이스호와 만났다.
거친 바다에 지친 탐사대 ⓒ상괭이편
16:56
결국 상괭이는 보지 못했다. 조사를 종료한 채 항구로 돌아가는 길, 멀리 보이는 추자도의 실루엣은 차분한 회색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구름에 가린 해의 주황빛 파장이 하늘을 물들였다. 정준이 지는 해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는 곳으로 보트의 방향을 틀자, 우리는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일부러 이리로 온 거야”
“우와!” “너무 예쁘잖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 사이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종일 파도에 지친 하루를 위로받기에, 그 노을이면 충분했다. 말로 다 옮기기 어렵지만, 하루의 마지막 해를 보려고 멈추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추자대교 사이로 저무는 해 ⓒ상괭이편
2025.12.20.(셋째 날)
08:12
하늘을 뒤덮은 구름 아래, 바다로 향하는 길은 스산하고도 무거웠다.
09:34
갑자기 보트 내부의 물을 빼내는 빌지 펌프가 멈춰 섰다. 비상이 걸린 우리는 보트 엔진 상자를 열고 바닥에 고인 물을 번갈아 가며 직접 퍼내야 했다.
“조사 구간을 두 구간 남겨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
조사를 중단하고 복귀해야 하나,
아니면 끝내고 가야 하나.
1시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예보가 있었고,
제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지 그려지니까
빌지 펌프는 고장났지, 기상은 나빠지지…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던지….”
정준은 그때의 복잡했던 마음을 나중에야 털어놓았다. 무사히 제주 해협을 건너기 위해, 혼자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있었을까. 잠시 뒤, 정준이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미연이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고, 우리는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심호흡을 하듯 숨을 고른 뒤,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정오를 지나, 포포이스호는 항해를 재개했다. 관탈도 인근의 낚시어선들을 통과해 한 시간 쯤 달렸을 때, 정준이 외쳤다.
“바람 터졌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남서풍은 강한 서풍으로 돌변해 몰아쳤다. 서쪽에서 밀려든 너울은 하얀 포말이 되어 들이쳤고, 우리는 연신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항해를 이어갔다. 멀리 도두봉이 보였지만,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포포이스호는 더디게, 파도를 하나씩 넘고 있었다.
제주에 가까워질수록, 제주 해협에서 조업 중인 안강망 어선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구름에 가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섬 가장자리 오름들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그제야 ‘이제 다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13:57
마지막까지 파도를 견디며, 우리는 무사히 도두항으로 돌아왔다.
글 홍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