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 촉구 시민행동 후기

대방어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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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사무국 3인은 지난 29일 월요일, 잠시 제주 바다를 떠나 산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2023년 11월 착공식 이후, 올해 당장 공사가 시작될지 모르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며 대청봉을 오르는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 촉구 시민행동 '설악산 정상에서 만나자'에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 30여 년 설악산과 산양을 지키기 위해 케이블카를 반대해 온 박그림 선생님과 녹색연합 정규석 사무처장이 설악산 오색코스의 정상까지(남설악탐방지원센터 입구-대청봉) 오체투지로 오르고, 70여명의 시민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 숭고한 여정을 바라보았던 마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 촉구 시민행동 '설악산 정상에서 만나자']


파란이 바다를 떠나 산으로 간 이유는?
- 바다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같으니까. 




 월요일 설악산 정상행동의 여정은 하루 먼저 일요일에 시작되었다. 일요일 오후 5시 집결지인 오색케이블카 하부정류장에서 만나기 위해 파란 식구들은 오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서울로 향했다. 그리곤 서울역에서 녹색연합 동료들을 만나 설악산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집에서 나선 시간부터 따지면 꼬박 9시간 걸려 집결지에 도착했다.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피곤함보다는 케이블카 사업 취소에 대한 간절함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날 기대감, (나는 물에서는 자신 있지만 산에서는 매우 약한 사람이기에. ㅠㅠ;) 대청봉을 잘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같은 감정들이 앞섰다.

 하나둘 집결지에 참여자들이 모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활동가들과 양양 주민들이 반가운 인사를 하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정인철 사무국장의 안내로 정상행동 일정을 준비했다.

 오체투지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함께 나설 새벽 3시 출발팀과 정상에서 곧바로 만날 7시 팀으로 참여자를 먼저 나누었다. 그다음 한 조에 4명씩 조를 정해 정상에서 펼칠 현수막과 간식, 오체투지 장비를 나누어 가졌다. 감사하게도 ‘설악산케이블카반대 주민대책위’에서 간단히 먹을 저녁과 다음날 산행하며 먹을 식사와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나와 부시리(신수연 센터장), 도다리(윤상훈 전문위원)는 모두 새벽 3시 산행을 선택했다. 부시리와 도다리는 오체투지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다면,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산행에 자신이 없어서, 3시부터 출발하면 7시 출발팀보다 아주 아주 천천히 가니 정상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전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숙소에서 짧은 잠을 자고 새벽에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모였다. 나는 녹색연합 동료인 박성준, 김원호 활동가와 함께 오체투지를 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정규석 사무처장(이하 규석)과 한 조가 되었다. 우리의 임무는 규석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보필하는 일! 규석의 간식과 물을 팀원들과 나누어 가졌다. 규석은 무릎보호대를 채우고 장갑을 꼈다. 참여자 모두 간단한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체투지를 하는 규석이 행렬의 선두, 선미는 역시 오체투지로 산을 오르는 박그림 선생님의 조였다. 행렬의 중간중간 녹색법률센터의 최재홍, 신지형 변호사님도 오체투지로 산을 올랐다.

 설악산 깊은 숲의 새벽 3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규석의 앞뒤에 서서 랜턴으로 규석의 길을 안내했다. 평평한 길도 아니고 울퉁불퉁 돌계단의 가파른 길, 그 길을 한 번의 절과 다섯 걸음으로 나아가는 고행이었다. 날씨도 좋지 않았다. 거세게 바람이 불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규석은 금세 땀과 비,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다.


좌: 오체투지로 산을 오르는 규석 /  우: 규석의 뒤를 따르는 참여자들, 신지형 변호사의 오체투지 모습


 규석의 속도에 맞추어 우리도 다섯 걸음을 걷고 멈추고를 계속했다. 워낙 가파른 길로 유명한 오색코스였지만 오체투지 속도에 맞추니 생각만큼 산행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점점 숨 가빠하는 규석을 보는 일은 고통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규석이 너무 힘들어하면 휴식을 권하거나 물을 주는 일, 간식을 챙겨주는 일밖에 없었다. 뒤따라 오체투지를 하는 신지형 변호사님도 온몸이 젖은 채로 거센 바람을 맞느라 입술이 파래졌지만, 덤덤하게 오체투지를 계속해 나갔다. 걸어서 올라오기도 힘든 그 길을 오체투지로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시작 전에 ‘힘듦’을 따지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 숭고한 고행의 길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영광이라 생각이 되었다. 출발 전 나누어 가진 규석의 짐을 지고 오를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박그림 선생님은 맨 마지막에서 잘 올라오고 있으실지,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출발 전 정인철 사무국장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끝까지 할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워도, 무리다 싶으면 꼭 뜯어말려서 건강하게 산에 오를 수 있게 하라는 당부를 강조했다. 특히 박그림 선생님 조를 바라보면서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있었다. 다행히 쉬는 시간마다 (그저 걷고 있는 나보다도) 지친 기색 없는 박그림 선생님을 만나, 안심하고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좌: 오체투지로 산을 오르는 박그림 선생님 /  우: 대청봉에 정상에 도착하는 규석, 박그림 선생님 그리고 참여자들


 무엇이 우리를 이 산에 오르게 했을까. 강원도는 1982년부터 (이미 권금성 케이블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에 두 번째 케이블카를 설치하길 원했다. 케이블카 사업으로 관광과 경제 개발을 꿈꾸던 양양군은 1990년대 중반 설악산 케이블카 추진을 시작했다. 이후 30여 년간 설악산을 지키기 위한 기나긴 투쟁으로 지켜내었던 설악산이었다. 그러나 양양군은 끊임없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갖은 수를 모두 써댔다. 지난해, 불법과 거짓투성이의 환경영향평가서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국립생태원 등 국책 전문기관 5곳이 부정적 의견을 냈지만, 환경부는 이를 배제한 채 2023년 2월 27일 조건부 동의로 결국 양양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자 5개의 중첩보호지역인 설악산을 개발하겠다는 환경영향평가서 검토를 단 10일 만에 완료하고 조건부동의 판정을 내렸다.

 대부분 적자로 운영 중인 케이블카처럼, 오색케이블카도 적자 372억 원이 예상되는데도 사업 경제성을 과장해 거짓 보고했다. 양양 주민들마저 양양군 전체 예산의 20%를 쓰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며 지난 6월 ‘주민 감사청구’를 실시했고, 이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주민소송제기를 준비 중이다.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담비가 사는 곳, 이곳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탐방객이 급격히 늘어나 설악산 식생과 야생동물 서식지가 훼손됨은 물론 덕유산에서 경험했듯 대청봉 일대의 훼손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결정이 단순 설악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존가치가 이렇게나 높은 설악산도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한데, 다른 곳은 못 할쏘냐. 이미 북한산, 치악산, 소백산, 속리산, 계롱산, 지리산, 무등산, 월출산…… 설악산을 포함한 전국의 국립공원 9곳에서 케이블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주도에 두 번째 공항이 왜 필요하며, 설악산에는 두 번째 케이블카가 왜 필요할까. 겹겹이 보호구역이었던 강정 앞바다를 파헤쳐 만든 강정민군복합항과 겹겹이 보호구역인 설악산을 파헤쳐 만들 케이블카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지키는 마음과 산을 지키는 마음이 다를 수가 있나. 케이블카 공사 시작을 앞두고 긴급히 설악산 정상행동의 연대를 요청했을 때, 파란은 망설임 없이 설악산행을 택했다. 하루쯤 바다를 떠나 잠시 산에 다녀와도, 바다는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박그림 선생님은 항상 이야기하신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인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도,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그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설악산을 오체투지로 오른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체투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결국은 대청봉에 닿은 규석과 박그림 선생님, 그리고 그들을 따라 결국 대청봉에 올라선 나 자신과 우리 모두를 환호하며, 불가능할 것 같은 것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힘이 생겼다.

 박그림 선생님의 믿음이 실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박그림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인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글 대방어(신주희)


추신; 대청봉의 여파로 저는 뒤뚱뒤뚱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습니다. 서귀포 언저리에서 이상한 걸음걸이로 서성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대방어입니다^-^!!!



대청봉 정상에서 설악산 정상행동 참여자들, 거센 강풍에 대형 현수막을 펼치지는 못했다.


좌 : 규석과 함께 동행한 박성준, 김원호 활동가와 정상에서. / 우 : 파란과 박그림 선생님, 거센 강풍에 망해버린 단체 사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