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 1월 상괭이조사 항해일지_ 1 / 2

대방어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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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해양보호구역 파란탐사대는 뭍으로, 물속으로, 뱃길로 향하는 긴 여정을 통해 제주도의 14개 모든 해양보호구역을 탐사했습니다. 그 여정에는 대형 해상풍력 개발이 진행 중인 추자도 해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추자도 해상풍력은 추자도 본섬에서 10~30㎞ 떨어진 동쪽과 서쪽 해역에 각 1.5GW씩 총 3GW급으로 63빌딩(246m)보다도 높은 260m의 해상풍력기 365개가 바다에 꽂힙니다. 원전 2기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해양보호구역 탐사대는 바다를 삶의 터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 찬성측/반대측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자도 바다를 삶의 터로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바로 인간과 같은 포유류이자 해양보호생물인 상괭이입니다.


겨울이면 추자도 연안에 상괭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추자도 주민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추자도에 상괭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마치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습니다. 상괭이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파란탐사대원이 다시 뭉쳐 <상괭이편> 을 새롭게 결성하였습니다! 이제 <상괭이편>이 매달, 추자도 바다로 나섭니다. 돌핀맨의 베롱호를 타고 2025년 같은 루트를 12번 그리며 마주치는 상괭이를 기록할 계획입니다. 시민과학자가 만든 '과학적' 자료로 상괭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사람들과 생생하게 나누고 싶어 항해일지를 작성했습니다. 상괭이편 각자의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틀간 쉼 없이 달린 2025년의 첫 항해 중 첫 번째 날, 홍상희 대원의 기록입니다.




A2-A3 12:45

 “상괭이!” “묵리포구 앞에” 상괭이를 알리는 베롱호의 선장 정준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갑판 위의 조사자들은 반가운 외침을 듣자마자 일제히 하추자도 연안으로 시선을 돌렸고, 선박 인근에 있는 섬생이섬 주변까지 두루 살피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는 건가? 내 앞에도 나타나겠지? 기대에 찬 마음으로 수면을 찬찬히 훑었다. 잔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물 위로 상괭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상괭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목시조사를 위해 운진항에서 출항한 지 6시간 만에 나타난 작은 고래는 정준의 두 눈에만 잠시 스쳤다 사라져 버렸다.


  수면이 고른 날을 기다렸다 나선 항해였다. 겨울 호황을 맞아 추자 군도 남서방 해역에 있는 밖미역섬에는 낚시어선 50여 척이 즐비했고, 북서방 해역에는 근해안강망 어선 서너 척이 물속으로 그물을 내리고 있었다. (A2-A3 방위각 87 11:37 )  안강망 조업 구역에는 부이(buoy)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 있었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어선 주위를 새들이 낮게 날면서 맴돌았다. 1월의 추자 바다에서 민수는 망루에 앉아서, 주희는 뱃머리 난간에 기대서서, 보은과 나는 선박 왼쪽과 오른쪽 구역을 나눠 상괭이를 찾고 있었다. 사늘한 바람이 부는 겨울 추자도에서 상괭이를 기다리며 눈앞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항해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추자 군도 남서쪽 해역에 낚시어선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상괭이편


(좌) 안강망 어선과 부이,  (우) 안강망 어선 주위의 갈매기 ⓒ상괭이편

 

상괭이를 처음 발견한 지점에서 조사 항로를 따라 북으로 이동하는 동안 민수는 얼핏 상괭이 호흡 소리를 들었다 했고(하지만 아무도 매끈한 등을 보지는 못했다), 주희는 수면으로 올라온 상괭이를 놓칠세라 발견자의 외침이 들릴 때마다 카메라를 돌렸다. 하지만 두 눈으로 상괭이를 직접 보고 기록하는 건 아무리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에 찰랑이는 물결을 한참 보다 보면 눈앞에 없는 상괭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헛것을 본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수면에서 쉬이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행여 상괭이와 엇갈려 못볼까봐 고개를 휙휙 돌리지도 못하는 일이 목시조사였다. 상괭이를 찾고 기록하는 일에 빈틈을 만들고 싶지 않아 베롱호의 조사자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끈기와 시야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푸-푸-’ 가벼운 바람을 타고 퍼지는 호흡 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솟았다 이내 물속으로 사라지는 상괭이를. 그들의 매끈한 등을. 간절히 바라던 순간은 해가 중천을 넘어선 지 얼마쯤 지난 오후에 찾아왔다.  


A4-A5 14:50
  “9시 상괭이” 추자도 북서 해역에 있는 직구도를 옆에 두고 바다를 살피던 길이었다. 민수의 외침에 베롱호가 멈춰 섰지만 이내 상괭이가 보이지 않자, 정준이 선속을 천천히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10시 둘” 민수의 외침과 동시에 보은도 상괭이의 출현 소식을 알렸다. “1시 둘” 보은과 나는 선박과  직구도 사이 다른 위치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상괭이 개체 수를 곧바로 확인한다. 베롱호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망루에서 민수가 또 외친다. “저기 멀리 있다. 12시 한 마리”  상괭이가 모여 있던 구역으로 베롱호가 운 좋게 들어선 걸까. “전방 12시 둘” “6시 보은 뒤에 하나” 베롱호 주위 여기저기서 상괭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행운의 잭팟이 터진 것만 같았다. 곧바로 정준은 드론을 띄워 상괭이 개체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고, 조사자들은 신나게 상괭이를 외치며 각자 맡은 기록을 이어갔다. “6시 셋. 배 방향으로 오고 있어요” 선박 가까이 세 고래가 나란히 수면 위로 숨을 쉬러 올라온 순간, 물기에 젖은 검회색빛 매끈한 등이 햇살에 반짝였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상괭이의  등에는 얇고 가늘게 선 융기가 선명했다. 상괭이가 보여준 볼록한 등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연을 향한 새로운 감각이 열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상괭이의 얇고 가늘게 선 융기 ⓒ상괭이편


B3~B4 16:50
 횡간도와 추포도 사이에서 또다시 상괭이를 기록한 후 베롱호는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북동향 해역 물살이 센 구간을 통과했다. 봉골레산 아래 회백색 기암절벽이 잠긴 상추자도 연안에는 가두리 시설로 추정되는 검은 부이 수십 개가 떠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갈매기와 가마우지 여럿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다. 바닷새가 모여 있는 바다에는 상괭이가 있을 확률이 높다. 아니나다를까 갑판에서 상괭이가 올라온 위치를 알리자  정준도 동시에 상괭이를 발견했다고 응답한다. 전직 항해사 민수를 제외하면 주희와 보은, 나는 목시 조사가 처음이지만 놓치는 것 없이 꼼꼼히 기록하겠다는 기세로 바다에 집중했다. 수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상괭이를 제대로 세지 못할까봐 허둥거리던 마음은 오후가 되면서 다소 차분해졌다.


가마우지 무리와 가까운 곳에 상괭이의 등이 올라왔다.  ⓒ상괭이편


망루에 민수가 있고 좌측에 내가 서있다. 선수에 주희가 사진을 찍고, 뒤편에 보은이 기록을 하고 있다  ⓒ상괭이편



  분주했던 기록을 마치고 물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베롱호에 앉아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 새와 상괭이를 바라봤다. 저들이 사는 바다에서 관찰자가 되는 일은 내가 속한 세계를 잠시 잊게 할 정도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상괭이는 낯선 방문객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수평선 위로 기울어지는 해를 등지고  먼바다로 고개를 돌리자 서넛의 상괭이 무리가 보길도를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는 볼 수 없고, 다시 만난다 해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끝내 상상으로만 그려봐야 하는 고래. 그들의 바다에서 보낸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17시 14분 조사 종료합니다” 정준이 베롱호의 조사자들에게 추자항 입항을 알렸다. 




글쓴이. 홍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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