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 8월 상괭이조사 항해일지

대방어
2025-11-18
조회수 159

933f40ccdb4d6.png





우리는 제주도와 전라남도 해역 사이, 그 바다 한가운데서 항해 중이었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추자의 오래된 섬들이 보였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오랜 섬과 해역.
그 풍경은 고요했고 아름다웠다.



50023b84b1d49.jpgⓒ상괭이편




 추자도 해역 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되었다. 매월 2~3일 정기적으로 집결. 일출과 함께  출항하여 상괭이 탐색에 하루 종일 집중했고, 일몰 시간에 입항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항해가 시작되면 정준은 하루 10시간 이상 베롱호를 운항했으며, 우리는 조사 항로를 따라 상괭이 출현을 기다리며 미지의 해역에서 얻는 관찰정보와 날씨, 느낌을 기록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세 계절을 지나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해양 환경에 대한 우리만의 관찰 기록이 쌓여갔다.


“봤어요? 큰 해파리가 지나갔어요.”


 시야 확보에 유리한 망루. 수진이 본 걸 주희 역시 확인했다. 다른 항로를 따라 이동할 때, 둘은 제법 큰 어종(물살이)을 보았다고 했다.

“지느러미가 파랗고 꼬리는 약간 노란색이었어요.” 

“체형이 길었는데…”

“방어랑 비슷한 체형이었어요?” 

“더 길었는데…”


 상괭이를 기다리던 우리는 수면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서로에게 “봤어?” 라고 신나서 묻곤 했다. 마치 길을 가다 좋아하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바다의 생명들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활짝 열렸고, 그 이름을 몰라도 괜찮았다. 그중 추자 해역에서 처음 보게 된 슴새가 있었다.
물에 닿을 듯 말 듯 낮게 나는 새. 슴새는 갈매기보다 작고, 하얀 가슴과 검은 갈색 등과 날개, 그리고 끝이 굽은 부리를 가졌다. 부리가 주는 인상은 다부지고 강인해 보였다. 베롱호 주변을 스치듯 날아다녔지만, 우리에게는 무관심해 보이는 그 태도가 오히려 신비로웠다. 6월에서 7월, 추자도 동쪽 23.3km 거리 사수도를 찾아와 산란했을 저 새들은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모으느라 바쁜 걸까? 베롱호 주위를 날던 슴새가 멀어지면, 나는 그 날개짓을 눈으로 오래 따라갔다.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도.
 

0f97e5aa6f6a2.jpg

슴새 ⓒ상괭이편


4c07361e45fb3.jpg슴새 ⓒ상괭이편


 정오가 지나자,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적막한 바다에서 들리는 건  물결을 가르는 소리와 베롱호의 모터 소리뿐. 주희는 휴대용 선풍기를 목에 걸고 수시로 옷을 적셨고, 수진은 늘 그랬듯 묵묵히 더위를 참아냈다. 땀을 흘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는 동료들 곁에서 나는 얼린 생수를 목, 머리, 겨드랑이, 다리 사이에 옮겨가며 열기를 식혔다. 연신 물을 마시며 뜨거운 현장을 버텼지만 결국 이상 신호가 왔다. 갑자기 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정준은 나에게 더위를 먹은 것 같다며 조사를 멈추고 쉬라고 권했다.
 

“현장에서는 본인의 체력을 파악하고, 쉬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무엇보다 너무 힘들면 다른 동료한테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기 전에 다른 동료가 알아차려 주는 것이 더 좋아요.
정준 감독님은 그런 부분에서 뛰어나요.
사실 배를 운전하면서 우리 상태까지 살피려면 집중해야 할 일이 늘어나
더 피로할 수 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해요.”


 바다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왜 ‘쉼’을 이야기하는 걸까. 언젠가 수진에게 “고래를 찾는 특별한 비법”을 물었을 때, 가장 중요한 지혜가 바로 '쉼'에 있다고 답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서로를 살피는 법을 배워왔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을 강인하게 단련시켰으리라. 쉬어야 할 때를 모르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쪽은 늘 나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침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동료들. 그들은 서툰 조사자였던 나에게 큰 버팀목이었다. 평소 없던 두통이 찾아온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대시간에 맞춰 망루에서 막 내려오던 수진에게 양해를 구하며 말을 건넸다. "두통이 와서 저는 뒤에서 조사를 할게요." 교대 순서대로라면 내가 배 앞으로 나가야 했지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선실에 누웠다. 대신 수진과 주희는 폭염 속에서 더 오래 서 있어야 했다. 내가 누워 있던 선실 곁에는 한여름 조사를 위해 미리 구비해 둔 폭염응급키트가 놓여 있었다. 다행히 두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사 이튿날, 추자도 동쪽 해역 B7 지점에서 목시 조사를 시작했다. 보길도를 지척에 둔 해상에는 낚시 어선 네 척이 떠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 탓에 오전은 어제보다 더 뜨거웠다. 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어선 한 척 가까이 지나게 되었는데, 선실 없는 갑판 위에서 한 노인이 그물을 손보고 있었다.
   

“상괭이 보여요? 상쾡이*?”     *서남해, 제주에선 상괭이를 상쾡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바다에 잘 안 다녀서 모르겠소.” 

“원래 보길도에도 많이 보이죠?” 

“그것은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아요.”

 서해 최북단부터 남해까지 상괭이를 취재해 온 정준에게, 어민의 반응은 이미 익숙한 응답이었다. 상괭이에게 별 신경 쓰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는데, 고래인지 몰랐고 고래라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식이었다. “감사합니다.” 정준은 짧은 인사를 건네고, 목표한 항로를 향해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032e7c7cddb38.jpg

낚시중인 어민 ⓒ상괭이편


 그렇게 추자 본섬과 사수도 사이 해역에서 항해를 이어가던 중, 시선은 베롱호 주변 수면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푸른우산관해파리 무리가 수시로 떠다니고 있었다. 500원 동전 크기에 푸른 촉수를 지닌 이 작은 해파리는 주로 남해안과 난류성 해역에 분포하다, 4년 전 제주에서 처음 발견됐다. 해수온과 조류에 따라 표류하는 이 해파리는 바다의 급격한 알리는 징후였다. 이날 추자 해역의 수온은  27도를 훌쩍 넘겼고, 일부 구역은 30.9도까지 치솟았다. 올해 한반도 인근 해수온이 관측 이후 4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보도를 그대로 증명하는 수치다. 국내 연안 37개 해역 가운데 27개 해역에 고수온 특보가 발령될 정도로, 바다는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올해 바다가 정말 이상해요. 
수온이 지속적으로 오르거나 또 내려가긴 했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큰 폭으로 오르내리진 않았어요.
올해는 멸치도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원래는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멸치 철인데, 

지금쯤 나와야 할 멸치들이 보이지 않아요.” 


3be30b2636e1b.jpgced59908b3cb3.jpg
푸른관우산해파리 ⓒ상괭이편


 조사를 마치고 포구에서 짐을 옮기던 우리에게 한 주민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요즘 추자 바다가 이상하다며, 매달 추자 바다를 조사하는 우리라면 혹시 아는 것이 있을까 궁금해했다. 놀랍게도, 한여름 추자 바다가 예년과 다른 이상 징후를 보인다는 이야기는 추자도 해녀에게서도 이어졌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사전에 약속된 해녀를 만났다.
그녀에게서 바닷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변화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염섬(상추자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1.5km 정도 위치한 무인도)  근처에서 물질하는데, 거기는 원래 풀이 잘 사는 곳이거든요.
땅이 안 보일 정도로 길고 무성했는데, 올해 염섬 어떤 자리에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풀이 다 녹아버리고 바위가 하얗게 변했더라고요. 그런 현상은 처음 봐요.”


 해녀는 육상 오염원이 거의 없는 추자 바다에서 이런 현상이 생긴 건 뜨거워진 수온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생처음 보는 충격적인 변화였기 때문일까.  해녀의 표정이 심란해 보였다. 오랜 세월 누구보다 선명하게 바다의 속사정을 지켜보아 온 그에게 우리는 상괭이에 관해 물었다. 


“물질을 하다 ‘저기 상괭이 뛴다’하면서 자주 봤어요.
어렸을 때부터 물질하면 봐요. ‘고래등’이라는 곳이 있어요. 요즘은 잘 안 가지만,
날씨가 안 좋아지기 전에는 상괭이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어요.
상괭이들이 보이면 다음 날은 꼭 날씨가 안 좋아요.” 


한때 바다의 날씨를 점치던 상괭이는 해녀가 물질하는 그 바다를 자주 찾아오곤 했다. 


“우리 옆으로는 절대 안 와요. 멀리서 보면 한 마리가 뛰면 다른 한 마리가 들어가고, 또 한 마리가 올라 오더라고요.
 한 마리가 뛰어가면 그 뒤로 다른 상괭이들이 줄지어 따라가는 모습이었어요.”


숱한 세월을 바다와 함께 한 해녀 덕분에 우리는 상괭이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바다의 온도와 빛이 변하고 조류의 흐름이 달라지면 탁한 물살을 타고 나타난다는 추자의 고래. 그들의 물길은 왜 더는 이곳을 넘어서지 않는 것일까. 해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괭이만이 아는 물길을 잠시 그려 보았다.


"상괭이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묻지 않고 기록하지 않았던, 추자도의 오랜 이야기. 오늘의 이 기록들은 결국 바다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끝내 볼 수 없는 그 너머의 바다.

오직 상상만이 우리에게 그 바다를 이해할 실마리를 안겨 주지 않을까.


글 홍상희


4f903d7858065.jpg



추신. 추자의 해녀가 들려준 상괭이 이야기는 상괭이편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sanggwaeng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