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바다소식][북토크 후기] 우리는, 우리의 좋은 바다를 살고 있나요?

파래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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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좋은 바다를 살고 있나요?


봄바람 불어오던 지난 3월 7일, 제주시 탑동 파타고니아 3층에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과 정은혜 작가가 함께한 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가 열렸습니다. 홍상희 이사의 사회로 함께한 이번 북토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이자 생태예술가인 정은혜 작가의 신간 『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바다, 자연, 지구와 연결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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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좋은 날을 나누는, 정은혜 작가

먼저 정은혜 작가의 소개로 북토크의 문을 열었습니다. 캐나다와 시카고, 서울 그리고 제주까지. 학창 시절 병 속에 만들었던 에코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된 연결이 그림과 미술치료, 생태예술로 이어지는 소개만으로도 손을 떼지 못할 책 한 권을 읽는 듯 흥미진진했습니다. 좌충우돌하며 삶의 문턱을 넘어온,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우주적인’ 경험과 깨달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작가님의 좋은 날이 궁금해졌습니다.

정은혜 작가는 꼬불꼬불 자유롭게 산호를 뜨며 각자가 뜬 산호를 모아 군락을 만들어내는 <산호뜨개>와 해변의 미세 플라스틱을 주워 함께 애도와 축복의 만다라를 만들어내고 해체하는 <플라스틱 만다라>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담긴 그림들도 책의 모든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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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 ©파란


이 바다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마이크를 잡고 캐나다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성장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혼란의 과도기, 이야기의 첫 번째로 1. 리미널 스페이스를 설명합니다.


살면서 막막하고 답답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어떤 곳에 들어가 헤매는 듯했는데, 그 어떤 곳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리미널 스페이스 liminal space이다. 리미널 스페이스는 원래 인류학 용어로 부족 사회에서 아이가 성인이 되기 위해 들어가는 야생의 공간을 지칭 한다. 심리학 용어로 리미널 스페이스는 성장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혼란의 과도기를 지칭한다. 리미널은 ‘문턱’ 혹은 ‘경계’의 의미를 지니는 라틴어 리멘 limen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우리는 길이 안 보이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익숙한 관계들이나 익숙한 것들이 무너지면서 종종 이곳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당황스럽고 괴로워서 빨리 빠져나오려고 애쓰지만,이곳이야말로 어디로든 어느 문이든 열 수 있는 문턱의 공간이다.

청중들을 바라보니 이야기 중간중간 자신의 문턱이 어디쯤에, 어떻게 자리했는지 기억의 방을 더듬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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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 중 정은혜 작가 소개 ©파란


작가는 힘나는 일과 기쁘게 하는 일이 만날 수 있음을 2. 삶의 두 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술치료를 감각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로 시작한 피아노가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공기의 기운을 바꾸는 그 순간으로부터 알지 못했던 예술치료를 경험했습니다.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던, 하지만 만나는 지점이 존재할 거라는 ‘감’이 생긴 거지요.

우울함의 바닥을 달릴 때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3. 내면의 이야기 - 동굴의 경험과 그 안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만난 경험을 들려줍니다. 대화는 동굴을 지나 4. 둥지로 이어집니다. 동굴을 벗어나 나를 품어줄 둥지, 종종 찾아가게 될 나의 둥지. 그곳에 있을 아이(나)에게 따뜻한 포옹을 약속합니다.


“아이야, 잘 있어. 다시 올게. 그리고 내가 따뜻하게 안아 줄게.”


홍상희 사회자의 부드럽지만 선명한 질문들이 걷고 싶은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은혜 작가를 따라 공간 모든 사람의 발길이 한 곳을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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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 중 정은혜 작가와 홍상희 이사 ©파란


내가 너를 보았고 너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가라.

지구에는 나라는 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내 안에는 무수한 ‘내’가 있습니다. 5. 내 안의 여러 존재 중에는 떼쟁이는 어떤 것이 하고 싶으면 그걸 지금 당장 꼭 해야 한다고 난리 난리를 치고, 하기 싫으면 꼭 해야 하는 일임에도 꼼짝도 안 합니다. 이 존재를 무시할 수도, 원하는 대로 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럴 때, 작가는 상상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너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너의 존재를 환영해."


이렇게 우리 안에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존재가 있기도 합니다. ‘나는 안돼. 나 같은 게 뭐를 할 있겠어’라며 발목을 잡아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야’라며 타인에게 손을 뻗지 못하게 하는 등, 자신을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 존재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 존재에게 명령을 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오늘의 문장’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내가 너를 보았고 너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6. 이제 가라.”  내 안의 내가 과거에 허덕일 때 그를 찾아가 만나고, 귀를 기울이며(내 안의 내 이야기에) 해결하거나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애도와 위로가 된다고 합니다. 파란 사무국에서도 함께 읊어봤습니다. 그리고 북토크 종료 후 인사를 하며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라!”  


본격적으로 바다와 지구를 이야기하기 전, 7. 외상 후 성장을 나눴습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새로 나는 피부가 더 두껍게 자리하는 것처럼 우리의 스트레스를 통과하며 바닥을 치고 올라올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 회복에는 자연이 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구를, 어떻게 살고 있나요?

사람이 나무의 뿌리를 파고들어 누워 있습니다. 편안한 얼굴, 사진만 봐도 상쾌하고 짙은 숲내음이 진동을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처음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흙과 뿌리 사이사이 벌레가 없는지에 대한 두려움부터 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뿌리가 되었을 때. 이내 두려움이 가시고 ‘편안하다’ ‘죽음이 조금은 덜 무섭다’ 경험을 맞이했다고 하지요. 8. 자연에서의 치유입니다. 매번 불안함과 우울함과 불만을 토로하는 내담자가 숲에 들어가서 이내 말이 잦아들고 안정을 얻은 것처럼요. 

우리의 좋은 날을 살아가기 위한 호흡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아홉 번째 이야기로 9. 숲과 바다의 생태예술을 들려주었습니다. 정은혜 작가의 생태예술 프로젝트인 사죄와 축복의 <플라스틱 만다라>는 제주 함덕 바다의 모래사장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줍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두 무릎을 꿇고 해변을 기어다니며 겉으로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 작은 미세플라스틱 더미를 헤집습니다. 수련을 하듯, 기도를 드리듯 우리가 뿌린 고통을 조금이라도 거두기 위한 작업이지만 이 연결된 모든 감각이 마치 나를 쓰다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만난 <플라스틱 만다라> 다큐멘터리는 당장이라도 저를 해변으로 데려가 놓고 싶었습니다.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만다라 ©에코오롯


모은 플라스틱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함께 만다라로 이어집니다. 10. 연대하는 생태예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함께하며 그 힘이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있을 호주와 인도의 전시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연대할 예정입니다. 

연대는 해변을 넘어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깊은 곳에 자리한 제주도 연산호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지 않고서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그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하고 싶어서, 11. 바다를 사랑하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연산호 뜨개를 소개합니다. 꼬불꼬불 자유롭게 손이 가는대로 만들어내는 연산호. 각각이 만든 연산호 뜨개는 한데 모여 군체를 이룹니다. 보이지 않고 볼수 없는 것에, 상상이 필요한데, 산호뜨개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산호를 뜨면서 바다 이야기를 하고, 이런 산호가 있을까 궁금해 하고, 산호를 찾아보게 하고, 바다를 알아가게 하는 역할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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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끌어안은 정은혜 작가 ©에코오롯


이어 큰 나무를 끌어안은 사진이 화면에 올라옵니다. 끌어안은 주체는 나인데, 치유받는 것 또한 나입니다. 12. 우리는 자연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자연과 다시 연결되어야 할까요? 그래야 우리가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생명을 지켜주는 자연을 지켜야 우리가 살기도 하고, 자연과 관계 맺음으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나의 경계 밖에 있는 자연에 나가고, 네가 너의 경계 밖에 있는 자연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기쁘게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모든 불행과 행복의 단 하나의 원천은 관계라고 생각한다는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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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 중 ©파란


이 이야기는 13.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기후위기 시대 작가의  희망은 어떤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희망은 우리가 협력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 합니다. 작가는 예술이 협력하는 희망을 경험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래전부터 예술은 사람들이 함께 해왔다고 얘기합니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것, 그렇게 예술이 희망을 만드는 역할을 하려면, 연대하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좋은 날을 향한 항해가 마무리됐습니다. 우리가 왜 바다와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내가 내 안의 여러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고 타인들과 공존할 수 있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으며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가 협력할 때, 어쩌면 우리가 손을 잡고 기후위기와 자연의 파괴를 막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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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너의 좋은 바다를 살아봐> 중 ©파란


우리의 좋은 바다를, 좋은 날을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 같은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정리: 파래


+) 파타고니아 코리아에서 지역 환경 단체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파타고니아 제주직영점 3층) 을 제공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