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 2월 상괭이 조사 항해일지

둘기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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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2일(목)

첫째 날


07:23 운진항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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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항에 모인 2월 상괭이편 조사대와 배웅 나온 동료들 ⓒ상괭이편 


“저기 저 바위 보여? 여기서 얼마나 될 것 같아?”

“글쎄… 150미터쯤?”

“땡! 184미터! 오 그래도 얼추 비슷한데?”


운진항에서 출항해 추자로 가는 길. 잠이 덜 깨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데 주희가 대뜸 멀리 갯바위를 가리키며 거리를 물었다. 지켜보던 보은이 상괭이 조사를 하려면 거리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거들었다. 

대정 앞바다를 지나는 동안 보은, 주희와 함께 거리 맞추기 시합을 했다. 대상을 정하고 저마다 예상 거리를 말하면 거리측정기로 실제 거리를 확인했다. 셋이 감각한 거리가 항상 달랐는데 조사에 여러 번 참여한 보은과 주희가 외친 숫자는 실제 거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상괭이편의 정기조사는 추자도 주변해역 내 상괭이 서식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상괭이가 출현한 정확한 위치를 기록하는 것. 선박 GPS 좌표를 중심으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떨어진 지점에 나타났는지를 기록해 최종 출현 지점을 데이터로 정리한다. 다시 말해 조사자가 얼마나 정확히 거리와 방향을 기록할 수 있는지가 상괭이 서식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바다에서의 거리감각은 굉장히 낯설었다. 발 딛고 있는 배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눈을 두고 있는 물체는 계속해서 출렁였다. 몇 차례 연습하다보니 ‘100미터감’이 생겼다. 어느 지점에서 어디를 보아도 이쯤이면 100미터 쯤 되겠다는 느낌이다. 100미터를 기준으로 10미터 간격으로 거리를 나눠 계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선박 조사는 거리감 말고도 다양한 감각이 필요했다. 배에 실린 움직이는 물체 중 가장 무거운 물질인 나는 항상 배의 균형을 살피며 이동해야 했다. 자칫 자리를 잘못 잡으면 배가 기울어 운항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움직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선수로 나갈때마다 균형을 잃고 바다에 빠질까 무서웠다. 

거리감도 배 위에서의 움직임도 낯선 내가 과연 3일 간의 조사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11:00 한림해상풍력단지033a31c5ab040.jpg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 ⓒ상괭이편 

비앙도를 지나 추자로 가는 길. 한림 앞바다에서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가로질렀다. 2025년 12월 준공된 한림해상풍력단지에는 5.56MW 용량의 발전기 18기가 설치되어 있다. 국내 해상풍력발전단지 중 가장 큰 규모다. 발전기 높이는 약 180미터로 아파트 60층 정도다. 육지에서 보았을 때도 커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압도적인 크기와 생각보다 큰 프로펠러 회전음에 놀랐다. 한때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찾는 바다였던 한림에는 더 이상 돌고래가 보이지 않는다. 해상풍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때문이라 추정된다. 

추자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사업은 약 2.7GW 규모로 세계 최대 크기라고 한다. 한림보다 발전규모가 480배나 크다. 249미터 높이의 발전기(63빌딩보다 높음) 200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2025년 4월 강풍 특보가 발효된 어느 날, 제주도는 약 4시간 동안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 충당을 달성했다. 

제주에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발전 시설이 필요한 것일까. 아름다운 바다 경관과 상괭이와 돌고래의 서식지를 훼손하는 일을 어떻게 이리도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꼭 필요한 만큼만 생태적, 경관적 영향이 적은 먼 바다에 설치할 수는 없는 걸까.


11:20 관탈도

“관탈이 보인다!”


정준의 외침에 2시 방향을 바라봤다. 모두가 손을 들어 관탈을 가리켰는데 내 눈엔 회색 지평선만 보였다.  


“성준 눈엔 7초 후에야 보일꺼야. 처음 탄 사람이 어떻게 보겠어? 허허”


바다에는 정준의 눈에는 보이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는 500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상괭이도 볼 수 있었고 갈매기의 움직임을 보고 가까운 바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바다 색을 구별해 수온의 변화를 감각하기도 했다.

이전 직장에서 산으로 야생동물 서식지 조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조사 방법을 가르쳐주었던 선배 활동가는 바닥을 자세히 보면 동물들이 이용하는 '동물길'이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선배를 따라 숲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동물길을 비롯해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루가 뿔을 비비고 간 나무 기둥, 멧돼지가 모래 목욕을 하고 간 흔적, 오소리가 파 놓은 굴, 숲은 온통 동물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내가 보는 바다와 오랜 시간 바다를 관찰하며 기록해온 이들이 보는 바다는 달랐다. 해양 문해력을 가진 선배와 동료들은 강인하면서 동시에 유연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27 A1 지점 도착

b23421f02cf43.jpg조사 시작. 망루에 오른 미연과 사진기를 맨 보은  ⓒ상괭이편

드디어 첫 조사 지점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정해진 구간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운항하며 선박 주변에 출현하는 상괭이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2월 상괭이편 조사대원은 총 5명, 배를 운항 하는 정준을 뺀 나머지 4명은 40분 간격으로 역할을 바꿔가며 조사를 진행한다. 1번 기록 담당은 9시부터 12시까지 방향을 주시하며 상괭이가 나타날 경우 기록지를 작성한다. 2번 사진 담당은 12시부터 3시 방향을 살피며 사진 기록을 한다. 3번 망루 담당은 10시부터 2시까지 넓은 범위를 주시하며 상괭이 관찰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4번 플로터 담당은 선박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며 플로터를 기록하거나 정준을 돕는 역할이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어 뱃머리에 올랐다. 눈에 힘을 주고 열심히 바다를 살폈다. 상괭이를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훨씬 아름답고 경이롭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꼭 보고 싶었다. 또 데뷔하자 마자 상괭이를 발견한 훌륭한 조사원이라고 동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싶었다. 2월 조사 첫 발견의 영광을 차지하고 싶었다. 머리 속에서는 백 번도 더 "상괭이!"를 외쳤다. 

한 시간 쯤 지나자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금방 멍해지면서 시야가 좁아진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을 두고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담당 구역을 가로 셋, 세로 셋, 아홉 개 칸으로 나눠 한 칸 씩 리듬을 타며 시선을 옮겼다. ‘좌삼삼, 우삼삼’을 중얼거리며 보다 보니 리듬에 맞춰 고개만 움직이고 시각 집중력은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춥고 졸립고 멍한 상태를 견디며 조사를 이어갔다. 

한 시간 반 쯤 지났을까.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상괭이 존재에 대한 의심이다. 사실 상괭이라는 동물은 존재하지 않거나 수상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한 동물로 이 모든 조사는 동료들의 지독한 장난인 것이다. 두 번째는 나의 관찰 능력에 대한 의심이다. 사실 주변에 상괭이가 출현하고 있음에도 나의 관찰 능력이 부족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능성 모두 애써 부정하며 옷매무새를 여몄다.


15:16 A3 > A4 구간 상괭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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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타난 상괭이 ⓒ상괭이편

“어어! 상괭이! 12시 100미터 두 마리!”


정상적인 사고가 흐릿해지며 첫 번째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때 쯤, 망루에 오른 보은이 “상괭이!”를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12시로 향했다. 주희는 부지런히 기록장을 쓰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12시를 바라보았지만 검은 물결만 일렁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1시에 밖미역섬, 12시에 청도, 3시에 사자섬을 둔 지점이었다. 

첫 발견 이후 약 1분의 간격을 두고 총 8번 상괭이가 출현했다. 동료들이 상괭이를 외칠 때마다 열심히 몸을 돌렸지만 사진은커녕 눈에도 담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안 보인다는 푸념에 주희가 한번 보고 나면 계속 보일거라며 위로를 건냈다. 

연속 출현 이후 10분 뒤, 드디어 내 눈에도 상괭이가 보였다. 주희의 “11시, 150미터!”라는 외침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검은 너울 사이로 상괭이의 회색 등이 보였다. 미끄러지듯 물살을 타고 넘을 때 보이는 반짝이는 등선이 분명 상괭이였다. 첫 만남에 호들갑 떨지 않고 의연하게 반응하리라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며 “봤어!”를 다섯 번이나 소리쳤다. 

상괭이 무리는 6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조사 방향과는 반대였다. 조사는 계속해서 일정한 속도로 정해진 구간을 지나야 하기에 멈추거나 따라가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첫 만남을 뒤로 하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갔다. 설렘과 흥분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17:45 A6 도착. 조사 종료

첫 만남 이후로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알게 되니 집중력이 생기고 지루함도 덜 했다. A6에 도착하니 해가 뉘엇뉘엇지고 있었다. 조사 종료를 알리는 정준의 목소리를 듣고 선미로 돌아왔다. 


2026년 2월 13일(금)

둘째 날


08:33 출항

보은이 전날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 위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온 바다에 상괭이가 가득했다고 한다. 정준은 오늘 바다가 장판 같이 끝내준다고, 꿈처럼 상괭이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9977d8d666688.jpg카메라를 안고 있는 사진 담당 성준 ⓒ상괭이편 

어제는 거리감각을 연습했다면 오늘은 미연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배웠다. 조사에 사용하는 카메라는 공연장이나 탐조 모임에서나 보던 대포 카메라다. 무겁고 비싼 카메라를 파도가 들이치는 배 위에서 안전하게 간수하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나라면 나에게 이 비싼 장비를 맡기지 않을텐데… 실수하지 않기 위해 미연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항상 목에 걸고 아이를 안듯 품 안에 넣어 보관해야 했다. 

상괭이 촬영은 시선을 자유자제로 다뤄야 하는 작업이었다. 한쪽 눈을 감고 뷰파인더를 보는 것이 아닌 두 눈을 모두 뜨고 한쪽 눈으로는 상괭이의 위치를, 다른 눈으로는 뷰파인더에 상괭이가 들어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의식적으로 양쪽 눈을 번갈아가며 시선을 옮겨야 했다. 몇 번 연습한 후 뱃머리에 올랐다. 


09:18 A6 > A7 구간. 상괭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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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가득 나타난 상괭이 ⓒ상괭이편

보은의 꿈 덕분이었을까. 둘째 날 조사에서 우리는 50여 마리의 상괭이를 만났다. 조사 시작 30분 뒤 직구도 인근에 다다르자 상괭이 출현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장판 같은 바다에 상괭이가 가득했다. 동료들은 A구간에서 이렇게 많은 상괭이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바다 상황이 좋아서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사방에서 상괭이 등이 올라오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크게 “상괭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12:06 B7 도착. B구간 조사 시작

A구간 조사를 끝내고 B구간으로 넘어왔다. 갈매기의 바다에서 슴새의 바다가 됐다. 추자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B구간은 완도군 보길도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전라남도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B구간은 A구간보다 더 많은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통영 거제에서부터 서해까지 오가는 상괭이의 주요 이동경로이자 서식지이기도 하다. 


13:19 B6 도착.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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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준비중 ⓒ상괭이편

점심시간. 움직이는 배 위에서 밥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깜빡하고 냄비를 육지에 두고 온 우리는 작은 코펠 하나로 5명이 먹을 밥과 국을 만들어야 했다. 식량 준비를 담당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지금 가진건 이 정도야. 자, 이걸로 한번 방법을 찾아봐”


정준의 말에 주희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이리저리 시도한 끝에 결국 모두가 배불리 먹을 만큼 따뜻한 국을 끓여냈고 죽까지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배 위에서는 항상 한정된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부족한 것에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시간은 사치다. 어차피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용도가 다른 물건을 새롭게 이용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해 능동적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문득 이런 선상 환경에서의 활동이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보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모든 자원에 접근 가능한 육지가 더 풍요롭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되지만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16:22 B3 도착. 조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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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항에 복귀하는 배롱호 ⓒ상괭이편 

조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동료들과 조사 중 멍해질 때마다 무슨 생각이 드는지 공유했다. ‘나 왜 여기 있지?’, ‘나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이러고 있나’부터 ‘근데 나는 이런 활동이 재미있는 걸?’까지 저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추자 다리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조사를 마무리 했다.


2026년 2월 14일(토)

셋째 날


08:30 추자항 출항

드디어 마지막 날. 하늘은 흐리고 바다는 거칠었다.


 “오늘은 보기 어렵겠는데”


출항 준비를 마친 정준의 표정도 어두웠다. 바다에서 상괭이를 만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하면 숨을 쉬기 위해 잠깐 물 밖으로 나온 상괭이와 움직이는 배 위에 있는 관찰자의 시선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마주쳐야 한다. 둘 사이에 너울이 있어 가려지거나 배가 지나가는 타이밍과 숨 쉬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곁에 있음에도 관찰하지 못할 수 있다. 돌고래처럼 지느러미가 있는게 아닌 상괭이의 등은 바다가 조금만 거칠어도 너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인간들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바다에서 상괭이를 마주친다는건 전생에 엄청난 인연이 아니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상괭이편이 기록한 순간들은 정말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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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반 상괭이. 멀리서 보면 상괭이처럼 보인다  ⓒ상괭이편 

바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짜’ 상괭이가 있다. 물결 상괭이, 모자반 상괭이, 부표 상괭이, 가마우지 상괭이가 대표적이다. 한번 상괭이를 보고 나면 물결 상괭이는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형태는 매우 비슷하지만 색과 반짝임, 질감이 다르다. 모자반과 부표 상괭이는 거리가 200m 이상 떨어지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물결과는 다른 질감을 가진 물체인데 한번 관찰된 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보인다면 모자반이나 부표일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가마우지 상괭이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구분하기 꽤나 어렵다. 반짝이는 깃을 가진데다 잠수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순간 물속으로 사라졌다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상괭이라 착각하게 된다. 셋째 날에는 가짜 상괭이들만이 우리를 반겼다.


10:31 B2 도착. 조사 종료04afa4e5f605e.jpg

거친 파도에 지친 조사대원들 ⓒ상괭이편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너울이 심해 선미로 이동해 조사를 했다. 흐린 날 검은 바다에 치는 너울은 상괭이와 더 닮았다.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에 결국 한 구간을 남기고 철수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옆으로 맞으며 나아가는 경로라 위험하다고 판단한 정준은 제주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상괭이편의 조사 기록은 올해 하반기 쯤 갈무리하여 논문으로 출판 될 예정이다. 문득 한 구간을 남기고 철수하는게 연구에 지장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 미연에게 물었다. 


“그 시간에 그 지점에서 우리가 그 바다를 보았다는 사실이 설령 상괭이를 못 봤다 하더라도 연구에 큰 차이를 남기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바다가 허락해야지.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미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상괭이의 존재를 증명하는 연구가 나의 집중력과 감각 그리고 그 순간 그 곳에 내가 존재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과 뿌듯함을 주었다. 문득 그럼에도 아무런 훈련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의 관측과 기록을 과학자들이 무슨 근거로 믿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관찰한 내용을 객관적인 형태의 정보로 가공하고 논리와 구조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이 미연과 MARC가 지고 있는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이 과정에 함께 한다는 사실이 고맙고 든든했다. 


13:41 운진항 도착.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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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복귀한 2월 상괭이편 조사대 ⓒ상괭이편

오랜만에 발 딛는 육지와 마중 나온 동료들의 얼굴이 반가웠다. 지난 1년 간 바람을 가르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면서 상괭이를 찾아 다닌 상괭이편 동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 기록이 잘 쓰이도록 올해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 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