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 5화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해상풍력이 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 ⑤추자도 편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해양생태계의 현재를 시민들과 함께 직접 몸으로 추적하고 기록하며 바다의 회복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단체다. 대상이 되는 풍경으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여러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자, 살아 움직이며 기후를 조절하고, 경계 없이 연결되어 흐르는, 다시 말해 작동하는 ‘생(生)’으로서의 바다에 다가가기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있다. 여러 시도 중 하나로 제주 바다의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현황 조사와 보호구역 확대와 관리 정책을 촉구하기 위해 ‘제주 해양보호구역 파란 탐사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제주와 전라의 사이, 추자
6월의 파란탐사대는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직선 거리로는 약 50km 떨어진 제주의 가장 북쪽 끝, 추자도로 향했다. 추자도의 신양항에서 마주한 첫 모습은 제주와는 사뭇 달랐다. 산의 모습도, 암석의 색도, 사람들의 말투도, 바다의 풍경도.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라도와 더 가깝다. 지질연구소 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 이야기-추자도 편⸥에 따르면, 추자도는 대략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가까운 시기에 전라남도 남해안의 섬들과 같이 만들어졌다. 제주도와 그 주변의 섬들이 백만 년 이후 신생대 제4기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추자도는 제주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항구에서 본 추자도 암석의 색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검은색의 현무암이 아니라 회백색의 응회암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자도 주위의 작은 섬들이 눈에 띈다. 추자도는 상추자와 하추자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에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추자군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가래나무 씨앗을 바다에 흩뿌려놓은 듯한 모습이 추자(楸 가래나무 추, 子 아들 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추자도는 우수한 해안절경과 멸종위기 생물종, 천연기념물 등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인정받아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1] 추자로 들어가는 길목의 관문같은 수덕도는 사자가 웅크린 모습 같아 사자섬이라고 불린다 ⓒ 파란탐사대 윤상훈
“막말로 예전에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제주도는 말만 사는 곳, 사람은 육지로 보내야 돼. 이거를 내가 지금도 안 잊어버려. 지금은 거꾸로 됐지.”
추자에서 만난 60대 주민의 말이다. 추자에서 만난 주민의 말투는 전라도 방언과 닮았다. 이토록 제주와는 다른 추자였지만, 탐사 2일 차에 오른 봉골레 산 정상에서 제주와 닮았음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추자의 바람은 추자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추자도 본섬에서 10~30㎞ 떨어진 해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풍력 발전 사업이 추진 중이다. 그 규모가 동쪽과 서쪽 1.5GW씩 총 3GW급이다. 그 규모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원전의 1기 규모가 1.2GW인 점을 감안하면 원전 2기가 넘는 규모라고 볼 수 있다. 또는 63빌딩(246m) 보다도 높은 260m의 해상풍력기 365개가 바다에 꽂혀있는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평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여겼던 주민들은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파란탐사대는 추자해상풍력추진위원회의 주민들과 해상풍력을 반대하는 주민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째 이유가 지금 추자도는 전국적으로, 최고로 고령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최고 젊은 사람이 65세입니다. (중략) 20년도에 참조기가요. 4만 천 톤 잡았습니다. 그런데 23년도에 만 5천 톤 잡혔어요. 어획량이 그만큼 감소했으니, 어민들의 실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민들이 엄청 어렵습니다. (중략) 우리가 후에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거(어업)를 못 하겠지만 레저 활동을 하시는 분들 그분들은 거기(해상풍력단지에 설치되는 인공어초)에 가서 배를 띄워놓고 낚시를 해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런 목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 어민으로 일했던 추자해상풍력추진위원회 주민 A의 말이다.
추자해상풍력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추자의 고령화와 어획량의 감소로 추자의 미래를 어업이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단지가 몰고 올 관광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진2] 추자항 앞에 위치한 해상풍력추진위원단의 사무실 외부전경 ⓒ 파란탐사대
추자의 바다 환경의 변화를 우려하는 반대 측 입장의 주민 B도 만나보았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게 저주파라든지, 그리고 그다음에 풍력발전 블레이드 같은 경우에도 내구연한이 25년인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내구연한을 충족해서 철거된 사례가 없습니다. RE100을 충족하기 위해서 풍력개발사업을 해야 된다면 환경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중략) 그 지역 사람들이 그 전기를 갖다 한 푼이나 씁니까? 안 쓰지 않습니까? (추자도의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는 전라도로 수송된다) 자기가 가졌던 어떤 삶의 터전 자체를 갖다가 송두리째 그 평화로운 마을에 살던 어떤 부분을 70% 이상 뺏겼다고 보세요.”
방향은 서로 달랐지만, 주민들은 추자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민들 사이에 추자의 바람으로 인한 골이 생기고 있다. 추자도에 해상풍력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에퀴노르사우스코리아후풍은 2020년 후풍해상풍력추진위원단과 상생협약서를 체결했다. 풍향계측기 설치로 인한 보상금의 명목으로 추자면 수협에 소속된 어민들에게 배 1척당 1,000만 원을, 해녀에게는 1인당 300만 원을 지급했다. 1,600명의 추자 주민 중 일부 어민에게만 보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사업추진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런 과정 또한 생략됨으로 주민들의 불안과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추자의 바다에는 슴새와 상괭이도 산다
해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돌핀맨의 이정준 감독은 왜 제주도 해변에서 상괭이의 사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될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자신의 작은 탐사선 포포이스 호를 타고 추자도를 찾았다. 거친 파도를 마주하며 작은 섬들 사이로 배를 몰며 그가 말했다.
“상괭이가 좋아하게 생겼어”
추자도를 찾은 돌핀맨의 영상에는 바다 위 많은 새가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상괭이 여럿이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다.
[사진3] 슴새 무리와 상괭이 (출처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
슴새는 섬에 사는 새라는 뜻의 ‘섬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낮에는 바다 위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밤이 되면 인적이 닿지 않는 섬에 땅굴을 파고 둥지를 만든다. 슴새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머리를 가졌고, 길고 뾰족한 갈고리 형태의 부리 위에 긴 원통 모양의 코를 가졌다. 잘 발달된 물갈퀴와 원통모양의 코는 바닷새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적색목록 관심대상’이자 2016년 우리나라의 해양보호생물로도 지정되었다. 추자도 동쪽의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는 슴새의 최대 집단 번식지이자, 추자도 해상 전역은 슴새의 활동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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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슴새(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사진5] 해양성 조류의 행동권 지도 (출처 에너지전환포럼 국제세미나,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연구위원) |
새가 날고 있는 그 아래, 바다에 사는 상괭이는 마치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가진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이다. 상괭이는 보통 우리가 돌고래라고 하면 떠올리는 뾰족한 등지느러미가 없고 민둥한 모습을 가졌다. 돌고래 중 크기가 가장 작다고 한다. 조선시대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상광어(尙光漁)’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과거 우리 조상들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괭이는 급격하게 개체수가 줄어 2016년 해양수산부는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고, 2020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가 시급한 생물종으로 ‘상괭이 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안강망에 의한 혼획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상괭이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6] 바다에서 유영하는 상괭이 (출처 돌핀맨 유튜브 영상 캡쳐)
해상풍력에서 슴새와 상괭이는 안전할 수 있을까
2023년 미국 뉴욕과 뉴저지 해역에는 고래들의 사체가 밀려왔다. 죽은 채로 발견된 혹등고래와 밍크고래는 최소 14마리로, 작년 한 해 동안 발견된 9마리보다 늘었다. 그 이유로 900피트(약 274미터)의 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해저 조사에 사용되는 음파가 고래의 죽음이 급증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음파로 인해 청각에 해를 입은 고래의 항해 능력이 위험에 처하게 되어 선박과 충돌하거나 어구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바다를 터전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해양성조류와 해양포유류는 해상풍력으로 인해 서식지를 위협받는다. 또한 해상풍력개발로 인한 해양의 수질오염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는 슴새와 상괭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생태계 전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진7] 미국 동부해안에 계획중인 해상풍력발전단지와 고래들의 죽음 (출처 NOAA, American Clean Power)
누구나 안전한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파리협정 채택 이후 최초로 실시된 전지구적이행점검을 통해 지구온도상승 억제 1.5℃ 목표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충 등의 내용을 담은 총의를 채택했다.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가 발표한 ‘세계 전기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9%(전체 발전량 대비)로,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30.3%에 훨씬 뒤처져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에 있지 않다. 추자도에서 해상풍력의 진행 상황에 대해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는데 낯선 기업들의 이름들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사업은 90% 이상이 민간사업자가 소유하고 있거나 건설 허가를 받았다. 민간사업자들은 햇빛이나 바람과 같은 무상의 자연을 사유화하고 이윤을 얻기 위해 시설 투자비가 가장 낮은 곳, 즉 토지 비용이 적은 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연구원은 해상풍력발전 선도국인 덴마크나 독일 등의 경우 비교적 생태계의 영향이 적고, 발전효율이 좋은 영해(12해리)보다 먼 지역이나 EEZ(배타적경제수역)에 설치함으로써, 자국 내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고 말한다. 또한 장기간의 중요 생물들의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입지타당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는 시민과학자들과의 협업도 진행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사업자가 부담하는 송전케이블 등의 설비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해상풍력단지를 근해에 계획함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 어떠한 생물종이 사는지, 이로 인해 어떤 영향이 발생할지에 대한 모니터링 조사와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해상풍력의 강국인 독일도 예전에는 현재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사업자가 입지를 선정하여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었지만, 2017년 해상풍력법 제정 이후 중앙정부 주도형으로 바뀌었다. 중앙정부 주도형의 입지선정 제도가 기존 해상풍력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 입지 선정 전 민간에서 부담되던 사업 비용이나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 어업 구역 제한에 따른 어민 피해 등의 사회적 갈등 요소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추자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수의 해상풍력단지가 계획 중에 있다. 전체 재생에너지시설 중 27%가 중요 보호지역 내 설치되어 있고, 16%가 설치될 예정이다.
한때 SNS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오늘 이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현재 뒤처져있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사업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빠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까. 한번 망가진 생물다양성과 그에 따른 생태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해상풍력으로 인한 생태계 영향에 대한 충분한 모니터링과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보다 환경영향이 적으면서 효율은 좋은 입지를 선정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의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 안전한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제주매일, 제주도보다 먼저 생긴 제주도와 다른 섬, 강순석, 2016.02.14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오늘의 시선], 윤상훈(해양과학시민센터 파란 전문위원)
해양수산부, 땅굴 파고 사는 바닷새, ‘슴새’를 아시나요?, 김혜선(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태보전실) https://blog.naver.com/koreamof/222698887808
2003년 중점관리 천연기념물 조류서식지, 제4장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슴새) 번식지, 김완병
돌핀맨 유튜브 채널, 제주도 북쪽 섬, 추자도에 상괭이 삽니다. 2021.05.14
한겨레, [애니멀피플] ‘세젤귀’ 상괭이 좌초 미스터리 밝혀 멸종 막아야죠, 세계자연기금 이영란 해양보전팀장 인터뷰, 김지숙 기자, 2020.12.11
뉴욕포스트, Why are the whales dying? Sea mammal deaths hit record in New York and New Jersey, Joshua Rhett Miller, 2023.06.13
환경부 공동보도자료,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막, 2023.12.13 배포
한겨레,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전 세계 30% 넘을 때 한국 9%, 신소윤 기자, 2024.05.08
한겨레 사설, 바람·햇빛은 공공재…‘재생에너지 민영화’ 방치해선 안돼 [왜냐면],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2024.05.22
환경부▪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재생에너지 계획적 입지를 위한 환경성 평가 방법 연구, 김유미, 2020.11
오마이뉴스,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해상풍력 확대에 성공한 독일, 안승혁, 2024.01.25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제주투데이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글쓴이: 김보은
내가 하는 디자인이 혹여나 사회나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을까 걱정 많은 디자이너이다.
디자인의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해 고민하며 이를 디자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어라우드랩을 운영하고 있다.
지구를 존중하는 디자이너와 창작자를 위한 종이, 인쇄가이드 “종이 한 장 차이”와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종이제작물의 디자인 체크리스트” 등의 연구 및 작업을 진행했다.
연재 ।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 5화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해상풍력이 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 ⑤추자도 편
제주와 전라의 사이, 추자
6월의 파란탐사대는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직선 거리로는 약 50km 떨어진 제주의 가장 북쪽 끝, 추자도로 향했다. 추자도의 신양항에서 마주한 첫 모습은 제주와는 사뭇 달랐다. 산의 모습도, 암석의 색도, 사람들의 말투도, 바다의 풍경도.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라도와 더 가깝다. 지질연구소 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 이야기-추자도 편⸥에 따르면, 추자도는 대략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가까운 시기에 전라남도 남해안의 섬들과 같이 만들어졌다. 제주도와 그 주변의 섬들이 백만 년 이후 신생대 제4기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추자도는 제주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항구에서 본 추자도 암석의 색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검은색의 현무암이 아니라 회백색의 응회암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자도 주위의 작은 섬들이 눈에 띈다. 추자도는 상추자와 하추자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에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추자군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가래나무 씨앗을 바다에 흩뿌려놓은 듯한 모습이 추자(楸 가래나무 추, 子 아들 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추자도는 우수한 해안절경과 멸종위기 생물종, 천연기념물 등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인정받아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1] 추자로 들어가는 길목의 관문같은 수덕도는 사자가 웅크린 모습 같아 사자섬이라고 불린다 ⓒ 파란탐사대 윤상훈
“막말로 예전에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제주도는 말만 사는 곳, 사람은 육지로 보내야 돼. 이거를 내가 지금도 안 잊어버려. 지금은 거꾸로 됐지.”
추자에서 만난 60대 주민의 말이다. 추자에서 만난 주민의 말투는 전라도 방언과 닮았다. 이토록 제주와는 다른 추자였지만, 탐사 2일 차에 오른 봉골레 산 정상에서 제주와 닮았음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추자의 바람은 추자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추자도 본섬에서 10~30㎞ 떨어진 해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풍력 발전 사업이 추진 중이다. 그 규모가 동쪽과 서쪽 1.5GW씩 총 3GW급이다. 그 규모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원전의 1기 규모가 1.2GW인 점을 감안하면 원전 2기가 넘는 규모라고 볼 수 있다. 또는 63빌딩(246m) 보다도 높은 260m의 해상풍력기 365개가 바다에 꽂혀있는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평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여겼던 주민들은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파란탐사대는 추자해상풍력추진위원회의 주민들과 해상풍력을 반대하는 주민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째 이유가 지금 추자도는 전국적으로, 최고로 고령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최고 젊은 사람이 65세입니다. (중략) 20년도에 참조기가요. 4만 천 톤 잡았습니다. 그런데 23년도에 만 5천 톤 잡혔어요. 어획량이 그만큼 감소했으니, 어민들의 실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민들이 엄청 어렵습니다. (중략) 우리가 후에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거(어업)를 못 하겠지만 레저 활동을 하시는 분들 그분들은 거기(해상풍력단지에 설치되는 인공어초)에 가서 배를 띄워놓고 낚시를 해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런 목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 어민으로 일했던 추자해상풍력추진위원회 주민 A의 말이다.
추자해상풍력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추자의 고령화와 어획량의 감소로 추자의 미래를 어업이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단지가 몰고 올 관광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진2] 추자항 앞에 위치한 해상풍력추진위원단의 사무실 외부전경 ⓒ 파란탐사대
추자의 바다 환경의 변화를 우려하는 반대 측 입장의 주민 B도 만나보았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게 저주파라든지, 그리고 그다음에 풍력발전 블레이드 같은 경우에도 내구연한이 25년인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내구연한을 충족해서 철거된 사례가 없습니다. RE100을 충족하기 위해서 풍력개발사업을 해야 된다면 환경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중략) 그 지역 사람들이 그 전기를 갖다 한 푼이나 씁니까? 안 쓰지 않습니까? (추자도의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는 전라도로 수송된다) 자기가 가졌던 어떤 삶의 터전 자체를 갖다가 송두리째 그 평화로운 마을에 살던 어떤 부분을 70% 이상 뺏겼다고 보세요.”
방향은 서로 달랐지만, 주민들은 추자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민들 사이에 추자의 바람으로 인한 골이 생기고 있다. 추자도에 해상풍력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에퀴노르사우스코리아후풍은 2020년 후풍해상풍력추진위원단과 상생협약서를 체결했다. 풍향계측기 설치로 인한 보상금의 명목으로 추자면 수협에 소속된 어민들에게 배 1척당 1,000만 원을, 해녀에게는 1인당 300만 원을 지급했다. 1,600명의 추자 주민 중 일부 어민에게만 보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사업추진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런 과정 또한 생략됨으로 주민들의 불안과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추자의 바다에는 슴새와 상괭이도 산다
해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돌핀맨의 이정준 감독은 왜 제주도 해변에서 상괭이의 사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될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자신의 작은 탐사선 포포이스 호를 타고 추자도를 찾았다. 거친 파도를 마주하며 작은 섬들 사이로 배를 몰며 그가 말했다.
“상괭이가 좋아하게 생겼어”
추자도를 찾은 돌핀맨의 영상에는 바다 위 많은 새가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상괭이 여럿이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다.
[사진3] 슴새 무리와 상괭이 (출처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
슴새는 섬에 사는 새라는 뜻의 ‘섬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낮에는 바다 위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밤이 되면 인적이 닿지 않는 섬에 땅굴을 파고 둥지를 만든다. 슴새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머리를 가졌고, 길고 뾰족한 갈고리 형태의 부리 위에 긴 원통 모양의 코를 가졌다. 잘 발달된 물갈퀴와 원통모양의 코는 바닷새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적색목록 관심대상’이자 2016년 우리나라의 해양보호생물로도 지정되었다. 추자도 동쪽의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는 슴새의 최대 집단 번식지이자, 추자도 해상 전역은 슴새의 활동 영역이다.
(출처 에너지전환포럼 국제세미나,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연구위원)
새가 날고 있는 그 아래, 바다에 사는 상괭이는 마치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가진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이다. 상괭이는 보통 우리가 돌고래라고 하면 떠올리는 뾰족한 등지느러미가 없고 민둥한 모습을 가졌다. 돌고래 중 크기가 가장 작다고 한다. 조선시대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상광어(尙光漁)’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과거 우리 조상들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괭이는 급격하게 개체수가 줄어 2016년 해양수산부는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고, 2020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가 시급한 생물종으로 ‘상괭이 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안강망에 의한 혼획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상괭이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6] 바다에서 유영하는 상괭이 (출처 돌핀맨 유튜브 영상 캡쳐)
해상풍력에서 슴새와 상괭이는 안전할 수 있을까
2023년 미국 뉴욕과 뉴저지 해역에는 고래들의 사체가 밀려왔다. 죽은 채로 발견된 혹등고래와 밍크고래는 최소 14마리로, 작년 한 해 동안 발견된 9마리보다 늘었다. 그 이유로 900피트(약 274미터)의 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해저 조사에 사용되는 음파가 고래의 죽음이 급증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음파로 인해 청각에 해를 입은 고래의 항해 능력이 위험에 처하게 되어 선박과 충돌하거나 어구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바다를 터전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해양성조류와 해양포유류는 해상풍력으로 인해 서식지를 위협받는다. 또한 해상풍력개발로 인한 해양의 수질오염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는 슴새와 상괭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생태계 전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진7] 미국 동부해안에 계획중인 해상풍력발전단지와 고래들의 죽음 (출처 NOAA, American Clean Power)
누구나 안전한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파리협정 채택 이후 최초로 실시된 전지구적이행점검을 통해 지구온도상승 억제 1.5℃ 목표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충 등의 내용을 담은 총의를 채택했다.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가 발표한 ‘세계 전기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9%(전체 발전량 대비)로,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30.3%에 훨씬 뒤처져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에 있지 않다. 추자도에서 해상풍력의 진행 상황에 대해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는데 낯선 기업들의 이름들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사업은 90% 이상이 민간사업자가 소유하고 있거나 건설 허가를 받았다. 민간사업자들은 햇빛이나 바람과 같은 무상의 자연을 사유화하고 이윤을 얻기 위해 시설 투자비가 가장 낮은 곳, 즉 토지 비용이 적은 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연구원은 해상풍력발전 선도국인 덴마크나 독일 등의 경우 비교적 생태계의 영향이 적고, 발전효율이 좋은 영해(12해리)보다 먼 지역이나 EEZ(배타적경제수역)에 설치함으로써, 자국 내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고 말한다. 또한 장기간의 중요 생물들의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입지타당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는 시민과학자들과의 협업도 진행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사업자가 부담하는 송전케이블 등의 설비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해상풍력단지를 근해에 계획함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 어떠한 생물종이 사는지, 이로 인해 어떤 영향이 발생할지에 대한 모니터링 조사와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해상풍력의 강국인 독일도 예전에는 현재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사업자가 입지를 선정하여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었지만, 2017년 해상풍력법 제정 이후 중앙정부 주도형으로 바뀌었다. 중앙정부 주도형의 입지선정 제도가 기존 해상풍력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 입지 선정 전 민간에서 부담되던 사업 비용이나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 어업 구역 제한에 따른 어민 피해 등의 사회적 갈등 요소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추자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수의 해상풍력단지가 계획 중에 있다. 전체 재생에너지시설 중 27%가 중요 보호지역 내 설치되어 있고, 16%가 설치될 예정이다.
한때 SNS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오늘 이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현재 뒤처져있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사업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빠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까. 한번 망가진 생물다양성과 그에 따른 생태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해상풍력으로 인한 생태계 영향에 대한 충분한 모니터링과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보다 환경영향이 적으면서 효율은 좋은 입지를 선정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의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 안전한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제주매일, 제주도보다 먼저 생긴 제주도와 다른 섬, 강순석, 2016.02.14
제주mbc, 라디오제주시대 [오늘의 시선], 윤상훈(해양과학시민센터 파란 전문위원)
해양수산부, 땅굴 파고 사는 바닷새, ‘슴새’를 아시나요?, 김혜선(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태보전실) https://blog.naver.com/koreamof/222698887808
2003년 중점관리 천연기념물 조류서식지, 제4장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슴새) 번식지, 김완병
돌핀맨 유튜브 채널, 제주도 북쪽 섬, 추자도에 상괭이 삽니다. 2021.05.14
한겨레, [애니멀피플] ‘세젤귀’ 상괭이 좌초 미스터리 밝혀 멸종 막아야죠, 세계자연기금 이영란 해양보전팀장 인터뷰, 김지숙 기자, 2020.12.11
뉴욕포스트, Why are the whales dying? Sea mammal deaths hit record in New York and New Jersey, Joshua Rhett Miller, 2023.06.13
환경부 공동보도자료,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막, 2023.12.13 배포
한겨레,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전 세계 30% 넘을 때 한국 9%, 신소윤 기자, 2024.05.08
한겨레 사설, 바람·햇빛은 공공재…‘재생에너지 민영화’ 방치해선 안돼 [왜냐면],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2024.05.22
환경부▪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재생에너지 계획적 입지를 위한 환경성 평가 방법 연구, 김유미, 2020.11
오마이뉴스,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해상풍력 확대에 성공한 독일, 안승혁, 2024.01.25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제주투데이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글쓴이: 김보은
내가 하는 디자인이 혹여나 사회나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을까 걱정 많은 디자이너이다.
디자인의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해 고민하며 이를 디자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어라우드랩을 운영하고 있다.
지구를 존중하는 디자이너와 창작자를 위한 종이, 인쇄가이드 “종이 한 장 차이”와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종이제작물의 디자인 체크리스트” 등의 연구 및 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