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강연 후기] 제주 바다의 리와일딩, 해양생태계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부시리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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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화) 오후4시, 뜨거운 볕이 소나기처럼 세차게 내리 꽂히던 오후에 파란은 김산하 박사(야생 영장류학자,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강연자로 '제주 바다의 회복, 리와일딩을 모색하다'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을 열었습니다. ‘리와일딩(Rewilding)’은 무엇인지, 제주 바다의 리와일딩에 어떤 방법들이 있을지 사뭇 궁금했던 차에, 강연을 신청하신 분들도 많아 현장과 온라인에서 동시 진행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리와일딩 개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한 김산하 박사는 리와일딩의 개념과 배경, 생물다양성과 핵심종의 중요성, 리와일딩의 여러 사례와 제주 바다의 리와일딩에 대한 제안을 들려주었는데,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넘어서려 한) 소소한 에피소드는 여러번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인류의 영향으로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자연이 제 스스로 갈 길을 찾도록 주도권을 넘기는 '대책 없는 대책', 리와일딩의 이야기를 요약해 들려드릴게요!

 

특별 강연 <제주 바다의 회복, 리와일딩을 모색하다> 현장 모습 ⓒ파란

리와일딩의 개념과 배경

김산하 박사는 리와일딩은 "자연이 제대로 회복되어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라며,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고 운영되도록 하는 생태 복원 접근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1990년대 초 '3개의 C' - 핵심 서식지(Core), 생태 통로(Corridor), 포식자(Carnivore) -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특정 종을 도입 또는 재도입함으로써 생태계의 기능성을 회복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확대되었습니다. 기존 환경 보전과 달리 인간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개입 후 점차 자연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자연의 자율성과 자기 조직 능력을 인정하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6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가생물다양성 포럼'에서 대중화된 '생물다양성'이라는 개념은 리와일딩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진다는 것이 생태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추론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각각의 동식물들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생태계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정립되었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생태학자들은 다양한 종이 함께 자라는 생태계가 단일 종으로 구성된 생태계보다 가뭄에 더 잘 견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바 있습니다. 이들은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식물 군락을 조성하고 가뭄 상황을 모의한 결과, 종다양성이 높은 군락일수록 토양 수분 유지 능력이 뛰어나고 생물량 감소가 적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종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원을 활용하고 생태적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전체 생태계의 회복력과 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주며, 기후변화 시대에 생물다양성 보존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임을 시사합니다. 

한편 핵심종(Keystone Species) 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으로, 그 존재 여부에 따라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이 크게 달라지는 종을 의미합니다. 핵심종이 사라지거나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 생태계 전체가 불안정해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 종은 보통 먹이망의 상위에 위치하며, 다른 종들에게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거나 그들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달이 성게를 잡아먹어 바다숲을 유지하는 사례처럼, 핵심종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김산하 박사(좌) 핵심종은 존재하는 빈도에 비해 생태적 영향력이 유난히 큰 종(우) 



리와일딩과 '생태계 복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리와일딩과 기존의 생태계 복원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리와일딩은 근접한 종이 없을 경우 외래종까지 고려하는 접근법으로, 전통적인 복원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전통적인 생태계 복원 방식은 종 구성주의를 중심으로 특정 종으로 구성되어 있던 (과거의) 생태계를 다시 만들려고 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참나무 군락 등 주로 특정 식물 군락을 재현하는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어요. 반면에 리와일딩은 식물보다는 동물 중심적인 경향을 보이며, 종 구성주의보다는 생태계 기능주의를 더 중시합니다. 리와일딩 관점에서는 과거 종들의 정확한 구성 비율의 재현보다는 생태계가 왕성하게 돌아가는 기능을 더 중시합니다. 일반적인 복원 작업은 인간의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리와일딩은 점차적으로 사람이 역할에서 빠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육상 리와일딩 사례: 옐로스톤 늑대 복원, 늑대 재도입의 생태적 효과

1995년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늑대를 재도입한 결과는 리와일딩의 대표적 사례로 여겨집니다. 늑대 멸종 후 엘크사슴이 5천 마리에서 2만 마리로 급증했으나, 늑대 복원 후 800마리에서 2천여 마리로 안정화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의 지형(Landscape of Fear)'이 형성되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포식자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회피하려는 생존 전략이 식생 분포, 생물 다양성, 생태계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늑대 재도입 이후 사슴들이 수변 지역을 피하게 되면서 버드나무와 사시나무 군락이 재생되었습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의 복원은 전체 생태계에 폭포 효과(연쇄적으로 어떤 일이 또 다른 일에 영향을 주는 상황)를 일으켰습니다. 코요테의 개체수가 조절되면서 소형 조류와 포유류가 증가했고, 수변 식생이 회복되면서 비버 서식지가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늑대가 연중 균등하게 사체를 제공함으로써 청소 동물들의 생존 조건도 개선되었습니다.

바다의 리와일딩 

현재 리와일딩 움직임은 육상에서 바다로 확산되고 있으며, 육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해양에도 여러 사례가 존재합니다. 전 세계 바다 중 보호된 면적은 약 8%에 불과하고, 야생이라 부를 수 있는 비율은 14%(추정치)에 불과한 상황으로 실제로는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해양보호구역(MPA)' 내에서도 야생 생태계는 단 4%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어, MPA의 실효성, 즉 관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어업을 포함한 모든 자원 채취 행위를 금지하는 노테이크존 (No-take zone)의 도입으로 뉴질랜드의 해양보호구역에서는 스내퍼 피쉬(퉁돔)의 평균 크기가 보호구역 바깥의 개체보다 6cm 이상 커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반경 40km 내에서 채집한 퉁돔 새끼들의 대부분이 노테이크존 내 개체들의 자손임이 DNA 분석으로 확인되었고요. 

바다의 리와일딩 사례로는 영국 남부 해안인 솔렌트(Solent) 지역에서 진행 중인 굴 복원 프로젝트(solent Oyster Restoration Project)가 있습니다. 굴은 자연 정수기 역할을 하며 수백 종의 해양 생물을 끌어들이는 핵심종 역할을 합니다. 솔렌트에 저인망 트롤링으로 인해 굴이 부착할 수 있는 돌덩어리가 부족해지자, 굴 서식지 복원을 위해 부착할 수 있는 기질(인공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럽 납작굴 같은 경우 무려 466종의 생물과 생태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물을 걸러내어 침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정화 효과가 있어 미국 동부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의 굴은 만 전체의 물을 일주일 만에 정화할 정도의 생태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고요. 굴의 생태적 특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연구하고, 서식지 복원을 시도해볼 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리와일딩은 서식지를 복원하여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을 다시 데려오는 과정입니다.
굴에서 비롯된 패각 군락(shellfish reefs)은 산호초와 마찬가지로 'reef'라고 표현하며, 생물 다양성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다 리와일딩의 핵심 요소: 서식지 복원, 생태계 회복, 그리고 사회적 참여

바다 리와일딩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서식지 복원, 두 번째는 생태계 회복, 세 번째 핵심 요소는 사회적 참여입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인식을 처음부터 함께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합니다. 사람이 시작하지만 자연이 주도하도록 하는 것! 함께 하되 인간의 지속적인 개입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해양 생태의 메커니즘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주 바다 리와일딩 방향성 

김산하 박사는 제주 연안에 해양생물 서식지가 비교적 온전한 '핵심 구역'을 우선 확보하고, 생태계 연구와 담론 조성 및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를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대정 앞바다의 환경, 사실은 양식장 배출수와 그 부산물에 야생동물이 의존하는 기이한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해조류와 해초 등 여러 해양 생물 각 종의 생태적 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고, 기존 자연 복원 사업의 방향이 '야생성 회복'을 중심에 두도록 전환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내 최초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야생 생물을 인격체로 논의하는 것은 좋은 의도이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격체로 접근하면 야생 생물에 대한 고려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비슷한 생물로 여겨지는 부분이 더 커진다는 이유때문입니다. 야생 생물은 야생 생물답게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바다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요.

리와일딩은 21세기 인류가 자연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패러다임으로, 코로나19 시기 인간 활동 감소로 야생동물이 도시로 복귀한 현상은 자연의 회복 잠재력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제주 바다에서도 핵심 서식지 복원, 교란 요인 제거, 사회적 합의 형성을 통해 야생이 스스로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주 바다의 리와일딩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오늘 참석자들과 또 파란과 함께 고민해 보자며, 강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파란은 바다를 위한 정책, 제도로서 '해양보호구역'과 관리 강화 활동에 주목해왔는데 '리와일딩'에 대한 개념은 해양생태계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종의 유입, 해양 생물 서식지를 위협하는 연안오염과 폐어구 쓰레기, 바다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서 구체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차에 적용해 볼만한 유익한 개념이었습니다. 다음은 강연을 마친 후, 청중들과 강연자가 나눈 질의 응답 (Q&A)입니다.

Q1: 기후변화로 인해 남방계 어종의 북상 현상을 리와일딩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1: 기존의 외래종 제거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계 변화 자체를 막기보다 건강한 생태계 복원을 통한 자연스러운 대응이 필요합니다. 동물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고, 완충지대 설정을 통한 적응적 관리로 접근했으면 합니다.


Q2: 저는 채식을 하고 있는데,  채식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리와일딩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A2: 채식 운동과 야생 서식지 조성이 연결된다면, 최적의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질 거에요. 채식을 통해 어떤 농장이나 어장이 연결되고, 그 공간이 실제로 야생한테 할애될 수 있게끔 짜여진다면 최고의 최고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3: 유럽의 리와일딩 사례로 언급하신 것처럼, 한국의 굴 양식장도 리와일딩과 연결지어 볼 수 있나요?

A3: 현재 한국의 굴 양식장은 여러가지 교란이 심한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리와일딩 효과를 위해서는 교란 요인 제거와 화학물질 사용 중단 등 환경 개선 선행이 필요합니다.


Q4: 제주에 도입되는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A4: 남방큰돌고래 개체보다 돌고래가 만드는 생태적 네트워크 전체가 법인화되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개체 중심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법적 보호 체계를 전환할 필요가 있겠지요. 


Q5: 바다 식목일 등 특정일에 함께 하는 '식목' 행위도 리와일딩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요?

A5: 단순한 식목 행위는 리와일딩과 거리가 멉니다. 생태계적 맥락과 야생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심기 행위는 오히려 기존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사회적 맥락을 살펴봐야 합니다. 


Q6: 기후변화, 해수온 상승으로 인해 열대지역 산호가 북상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A6: 산호 북상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비어있는 진공 상태를 싫어하는 자연의 특성상 비어있는 공간에 어떤 종이든 유입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아군(토착종)과 적군(침입종)의 구분도 불분명해지고 있고요. 오히려 원래의 건강한 생태계가 회복되고 자리잡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새로운 종의 유입 문제는 부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리: 신수연


+) 파타고니아 코리아에서 지역 환경 단체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파타고니아 제주직영점 3층) 을 제공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