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를 열흘쯤 앞두고 있다. 해가 길어졌다. 정준은 긴 하루를 가득 쓰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도두항에서 모이자고 했다. 해가 지면 바닷길이 위험해져 해가 지기 전에 조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캄캄한 새벽 4시, 서귀포 사무실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햇반 약밥을 데우고, 2일간 배에서 먹을 음식들을 보냉백에 나누어 넣고 제주시로 넘어간다.
항에 도착하니 정준은 바삐 배를 정비하며 출항 준비 중이다. 조사를 위해서는 운진항의 배롱호를 제주시의 출발지(주로 도두항 또는 도두사수항)까지 트레일러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곤 물 때를 기다려 배를 바다로 내리고 정박해 둔 채로 대원들을 맞이한다. 이른 아침 출발하기 위해 정준과 상희는 매번 전날 늦은 밤과 새벽 시간 그 일들을 했다. 2일간의 조사를 위해서 앞뒤로 2일은 배를 준비하고 정비하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준비와 조사, 마무리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괭이편 조사다.
작년 연말부터 4월까지 조사했던 결과를 반영하여 조사 라인을 다시 세팅하고 6월부터 본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MARC의 장수진 박사(수진)가 새로운 좌표를 AIS(선박자동식별장치)에 입력하고 추자도를 향해 6시 5분 항해를 시작했다. 도두항과 제주도 연안에 안개가 가득했다. 정준은 섬에서 조금 벗어나면 안개가 걷힐 거라며 항해를 계속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상훈이 선수에 서서 조명을 들고 주변 선박들에 배롱호의 위치를 알렸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정준의 말대로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점차 개기 시작했다. 첫 지점으로 가면서도 하늘이 푸르렀다가, 구름이 꼈다가, 파도가 거칠었다가, 잠잠했다가 시시각각 변했다. 날씨가 좋은 날을 고르고 골라서 왔지만, 변화무쌍한 여름의 기상이었다.

안개를 뚫고 출발 ⓒ상괭이편
8:46 첫 지점에 도착해서 지그재그 라인을 그리며 조사를 시작했다. 나, 상훈, 수진이 망루, 선수, 선미(휴식)에 자리를 잡고 45분마다 자리를 바꿨다. 90분 조사, 45분 휴식! 내가 몇 번 참여하지 않는 사이에 수진이 정한 규칙이었다. 목시조사에서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조사자의 체력과 집중도, 조사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준다고 했다. 아! 해보니 알겠다. 역시 경험자의 조언은 소중하다. 쉬지 않고 종일 조사를 할 때보다, 정말 훨씬x100배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조사가 끝나면 녹초가 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전에 쉬지 않고 종일 했던 조사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 따라, 초심자의 각성상태와 열정 에너지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정준은 겨울에 물이 차가워지고, 물색이 바뀌면 추자도에 상괭이가 많이 보였다는 어민들의 말로 추측해 보면, 상괭이는 주로 수온이 낮은 겨울에 추자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했다. 지난 4월 조사에서도 상괭이를 만나지 못했었던 터라, 상괭이들이 전라도권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혹여나 이동하지 않고 추자도 해역에서 1년 내내 상주하는 개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바다를 쳐다보았다. 사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바다는 이틀 내내 정말 고요했다. 지난 조사에서는 종종 보이던 쇠오리도 왠지 잘 보지 못했다. 가끔 보이는 갈매기와 수면위에서 낮게 활공하는 슴새만 보일 뿐이었다.
수면 위 너울이 상괭이로 보였다가, 에잇… 아니구나…. 하고 수백 번쯤 실망해야 하는 것을 빼고는, 이틀 내내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아주 가끔, 바람도 파도도 모두 사라지면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가 되는데, 그때의 바다는 이전 항해일지에서 썼듯 우주에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잔잔한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추자군도의 작은 섬들과 그 고요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가는 상괭이가 주인인 어떤 행성에 도착한 느낌이다.
이번 항해에서는 추자군도의 섬을 익혀보고 싶었다. 육지에서 길을 잘 찾는 것과 바다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모양이 시시각각 다르게 보여, 알았던 섬도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눈으로 보이는 섬을 비교하며 위치 감각을 느끼고 사진으로도 열심히 기록했는데, 돌아와 보니 또 잘 모르겠다. 다음 달에 가서 재도전해야지.
정준은 새로운 루트와 이전까지 조사했던 루트의 전체 길이는 거의 같은데, 조사 시간은 훨씬 덜 걸렸고, 기름도 훨씬 덜 썼다고 했다. 수진은 ‘다른 연구자들이 조사 루트가 잘 그려지면 그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고들 하는데, 이번에 그렇게 된 거 같다!’ 라며 서로 신기해했다. 자! 이제 최적의 루트도 셋팅이 되었고! 상괭이와의 다음 만남이 언제나 되려나 기대중!!
10일 6:05 도두항 출발 A-1 8:46 A-2 9:13 (종료지점 10분 휴식) A-3 10:51 A-4 12:25 (점심식사) A-7 14:15 A-8 16:05 A-9 16:31
| 11일 8:03 추자항 출발 B-7 08:59 B-6 10:14 B-5 10:30 B-4 11:19 B-3 13:02 B-2 14:07 B-1 15:46 18:00 도두항 도착 |
글.사진 신주희
번외편. 추자군도의 섬들


수령섬과 악생이 ⓒ상괭이편
수령섬 ⓒ상괭이편

악생이 ⓒ상괭이편
추포도와 멀리 횡간도 ⓒ상괭이편
추포도와 멀리 흑검도 ⓒ상괭이편

흑검도 ⓒ상괭이편
직구도 ⓒ상괭이편
영섬과 예도 ⓒ상괭이편
영섬 ⓒ상괭이편

예도 ⓒ상괭이편
횡간도 ⓒ상괭이편
횡간도 ⓒ상괭이편
납덕이와 두렁여 ⓒ상괭이편
미역섬 ⓒ상괭이편
시루여 ⓒ상괭이편
시루여 멀리 한라산 실루엣 ⓒ상괭이편
작은덜섬 덜섬 구멍섬 상섬 ⓒ상괭이편
상섬 구멍섬 덜섬 작은덜섬 ⓒ상괭이편
구멍섬과 상섬 사이의 멀리 수덕도 ⓒ상괭이편
보론섬 ⓒ상괭이편

시루여 ⓒ상괭이편

모여 ⓒ상괭이편

수덕도와 한라산 ⓒ상괭이편
청도(푸랭이) ⓒ상괭이편
절명여 ⓒ상괭이편
보길도(전라도) ⓒ상괭이편
하지를 열흘쯤 앞두고 있다. 해가 길어졌다. 정준은 긴 하루를 가득 쓰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도두항에서 모이자고 했다. 해가 지면 바닷길이 위험해져 해가 지기 전에 조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캄캄한 새벽 4시, 서귀포 사무실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햇반 약밥을 데우고, 2일간 배에서 먹을 음식들을 보냉백에 나누어 넣고 제주시로 넘어간다.
항에 도착하니 정준은 바삐 배를 정비하며 출항 준비 중이다. 조사를 위해서는 운진항의 배롱호를 제주시의 출발지(주로 도두항 또는 도두사수항)까지 트레일러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곤 물 때를 기다려 배를 바다로 내리고 정박해 둔 채로 대원들을 맞이한다. 이른 아침 출발하기 위해 정준과 상희는 매번 전날 늦은 밤과 새벽 시간 그 일들을 했다. 2일간의 조사를 위해서 앞뒤로 2일은 배를 준비하고 정비하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준비와 조사, 마무리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괭이편 조사다.
작년 연말부터 4월까지 조사했던 결과를 반영하여 조사 라인을 다시 세팅하고 6월부터 본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MARC의 장수진 박사(수진)가 새로운 좌표를 AIS(선박자동식별장치)에 입력하고 추자도를 향해 6시 5분 항해를 시작했다. 도두항과 제주도 연안에 안개가 가득했다. 정준은 섬에서 조금 벗어나면 안개가 걷힐 거라며 항해를 계속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상훈이 선수에 서서 조명을 들고 주변 선박들에 배롱호의 위치를 알렸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정준의 말대로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점차 개기 시작했다. 첫 지점으로 가면서도 하늘이 푸르렀다가, 구름이 꼈다가, 파도가 거칠었다가, 잠잠했다가 시시각각 변했다. 날씨가 좋은 날을 고르고 골라서 왔지만, 변화무쌍한 여름의 기상이었다.
안개를 뚫고 출발 ⓒ상괭이편
8:46 첫 지점에 도착해서 지그재그 라인을 그리며 조사를 시작했다. 나, 상훈, 수진이 망루, 선수, 선미(휴식)에 자리를 잡고 45분마다 자리를 바꿨다. 90분 조사, 45분 휴식! 내가 몇 번 참여하지 않는 사이에 수진이 정한 규칙이었다. 목시조사에서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조사자의 체력과 집중도, 조사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준다고 했다. 아! 해보니 알겠다. 역시 경험자의 조언은 소중하다. 쉬지 않고 종일 조사를 할 때보다, 정말 훨씬x100배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조사가 끝나면 녹초가 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전에 쉬지 않고 종일 했던 조사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말 따라, 초심자의 각성상태와 열정 에너지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정준은 겨울에 물이 차가워지고, 물색이 바뀌면 추자도에 상괭이가 많이 보였다는 어민들의 말로 추측해 보면, 상괭이는 주로 수온이 낮은 겨울에 추자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했다. 지난 4월 조사에서도 상괭이를 만나지 못했었던 터라, 상괭이들이 전라도권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혹여나 이동하지 않고 추자도 해역에서 1년 내내 상주하는 개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바다를 쳐다보았다. 사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바다는 이틀 내내 정말 고요했다. 지난 조사에서는 종종 보이던 쇠오리도 왠지 잘 보지 못했다. 가끔 보이는 갈매기와 수면위에서 낮게 활공하는 슴새만 보일 뿐이었다.
수면 위 너울이 상괭이로 보였다가, 에잇… 아니구나…. 하고 수백 번쯤 실망해야 하는 것을 빼고는, 이틀 내내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아주 가끔, 바람도 파도도 모두 사라지면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가 되는데, 그때의 바다는 이전 항해일지에서 썼듯 우주에 있는듯한 착각이 든다. 잔잔한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추자군도의 작은 섬들과 그 고요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가는 상괭이가 주인인 어떤 행성에 도착한 느낌이다.
이번 항해에서는 추자군도의 섬을 익혀보고 싶었다. 육지에서 길을 잘 찾는 것과 바다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모양이 시시각각 다르게 보여, 알았던 섬도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눈으로 보이는 섬을 비교하며 위치 감각을 느끼고 사진으로도 열심히 기록했는데, 돌아와 보니 또 잘 모르겠다. 다음 달에 가서 재도전해야지.
정준은 새로운 루트와 이전까지 조사했던 루트의 전체 길이는 거의 같은데, 조사 시간은 훨씬 덜 걸렸고, 기름도 훨씬 덜 썼다고 했다. 수진은 ‘다른 연구자들이 조사 루트가 잘 그려지면 그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고들 하는데, 이번에 그렇게 된 거 같다!’ 라며 서로 신기해했다. 자! 이제 최적의 루트도 셋팅이 되었고! 상괭이와의 다음 만남이 언제나 되려나 기대중!!
10일
6:05 도두항 출발
A-1 8:46
A-2 9:13 (종료지점 10분 휴식)
A-3 10:51
A-4 12:25 (점심식사)
A-7 14:15
A-8 16:05
A-9 16:31
11일
8:03 추자항 출발
B-7 08:59
B-6 10:14
B-5 10:30
B-4 11:19
B-3 13:02
B-2 14:07
B-1 15:46
18:00 도두항 도착
글.사진 신주희
번외편. 추자군도의 섬들
수령섬과 악생이 ⓒ상괭이편
악생이 ⓒ상괭이편
흑검도 ⓒ상괭이편
예도 ⓒ상괭이편
시루여 ⓒ상괭이편
모여 ⓒ상괭이편
수덕도와 한라산 ⓒ상괭이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