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바다소식][야생과 동물과 나] :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 프로젝트

파래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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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과 동물과 나] :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 프로젝트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지난 9월 25일 파타고니아 이본 쉬나드 홀에서 개최된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 × 생명다양성재단 2025년 프로젝트’ [야생과 동물과 나] ‘한국의 야생 연대’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동시/생명다양성재단, 마인드풀가드너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그리고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등 총 네 단체는 이 자리에서 각자의 리와일딩 철학과 활동을 공유하였고, 한국의 리와일딩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파란은 지난 7~8월, 제주 대정읍 노을해안로 일대를 집중 탐사하였고, 그 결과를 ‘대정읍 노을해안로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 프로젝트’로 발표하였습니다.




리와일딩(rewilding)이란 무엇인가

‘야생의 귀환과 생태적 복원’을 의미하는 리와일딩은 국내에선 아직 다소 생소한 개념입니다. 리와일딩은 자연이 제대로 회복되어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하는 것으로,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고 운영되도록 하는 생태 복원 접근법으로 1990년대 초 '3개의 C' - 핵심 서식지(Core), 생태 통로(Corridor), 포식자(Carnivore) -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특정 종을 도입 또는 재도입함으로써 생태계의 기능성을 회복’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됩니다. 기존 환경 보전과 달리 인간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개입 후 점차 자연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리와일딩 관점에서는 과거 종들의 정확한 구성 비율의 재현, 즉 ‘재자연화’ 보다는 생태계가 왕성하게 돌아가는 기능을 더 중시합니다. 일반적인 복원 작업은 인간의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리와일딩은 점차적으로 사람이 생태계 보전과 복원의 역할에서 빠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자연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정읍 노을해안로에서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을 어떻게 상상하고 제안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남방큰돌고래가 육상 가까이 관찰되는 대정읍 노을해안로는 상상을 뛰어넘는 기이한 생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대정읍 노을해안로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 프로젝트’를 발표하였습니다.


대정읍 노을해안로에 남방큰돌고래가 산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공간은 제주도 남서쪽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입니다. 행정구역상 일과리, 영락리, 무릉리, 신도리까지 4개 리가 인접해 있는 직선거리로 10km 정도의 공간입니다. ‘우영우 변호사’가 사랑한 장소이며, 제주도 서쪽하늘 노을이 아름다운 ‘노을해안로’입니다. 이곳은 제주 연안 전체에 서식하는 돌고래들이 가장 오래, 자주 머무는 핵심 서식지입니다. 파란 활동가들은 지난 7~8월 동안 노을해안로 연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10km 해안도로를 하나하나 걸어다니며 육상 조사를 진행하고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 팀은 10여차례 직접 바다에 들어가 수중 생태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조사를 통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는 남방큰돌고래가 살만한 바다, 안전하게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지금의 제주 바다가 그렇지 못해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변화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누구와 만들어가야 할까였습니다.


노을해안로는 제주도 남서쪽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입니다






노을해안로에서 촬영한 남방큰돌고래



남방큰돌고래에게 가혹한 제주 바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고 기록한 많은 사람들은 제주 바다가 돌고래에게 매우 위협적인 공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일례로 1년생 새끼 남방큰돌고래의 사망률은 2015년 17%에서 18년에는 47%까지 올라갑니다. 다른 지역 서식지와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올해에도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은 현지 낚싯꾼이 사용하는 낚시 채비에 온 몸이 칭칭 감긴 채 죽었습니다. 부디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름 지은 ‘행운’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폐어구를 꼬리지느러미에 달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구좌읍 하도해수욕장에서 발견된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는 등지느러미와 한쪽 가슴지느러미에 낚시줄이 걸려 있었으며, 몸뒤로 늘어진 낚시줄에는 ‘카고낚시’에 사용되는 미끼통과 온갓 어업 도구가 걸려 있습니다. 육지 가까운 바다에서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이처럼 인간이 바다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는 태어나 어미로부터 독립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0살까지는 어미와 함께 지내며 먹이를 구하는 방법과 장소를 배우고 동료와 대화하고 협업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칩니다. 지금의 제주바다는 어린 남방큰돌고래가 그 시간을 충분히 갖기 전에 너무 쉽게 죽거나 다치는 가혹한 바다 입니다. 

다시 노을해안로로 돌아와서, 지난 4월 해양수산부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서식지 보호를 목적으로 신도리 앞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합니다. 해양보호구역이 지정되면 1년 동안 이 공간을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우는데요. 남방큰돌고래를 위한  첫 보호구역이라는 점에서 신도리 보호구역의 관리계획은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 앞으로 돌고래 보호와 관련된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에 파란은 신도리 보호구역과 그 인근 바다가 어떤 상황인지, 남방큰돌고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공간이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현장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폐어구에 걸린 채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좌), 갈고리에 긁힌 듯한 자국이 보인다(우)



레저낚시, 육상양식장, 관광선박, 육상 오염원, 해상풍력

조사 결과, 노을해안로의 남방큰돌고래 서식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5개의 위협요인을 발견했습니다. 레저낚시, 육상양식장, 관광선박, 육상 오염원, 해상풍력 등 5개의 인간활동이 남방큰돌고래 서식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 중에서도 육상양식장은 가장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노을해안로 바다가 육상양식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정말 기이한 생태계라는 것입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보면 기초 생태계가 무너진 황폐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뿐입니다. 오랜시간 양식장에서 흘러나온 오염물질이 쌓여 다른 생명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고, 바닷속 바닥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해조류가 사라진 바다였습니다. 반대로, 육상양식장 배출관 주변에는 사료 찌꺼기를 먹으러 전갱이와 고등어 떼가 모여듭니다. 돌고래를 포함한 대형어류가 이를 먹기 위해 모이고 육상엔 대물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 돌고래를 보기 위한 관광 선박이 모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남방큰돌고래의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2013년 서울대공원 쇼돌고래였던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제돌이와 2명의 남방큰돌고래는 4년 간의 수족관 생활을 마치고 제주 바다로 돌아가기 전 3개월간 재활훈련을 거쳤습니다. 사육사가 주는 죽은 먹이만 먹다가 직접 바다에서 사냥할 수 있는 체력과 수영 기술 그리고 동료들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과정이었죠. 제돌이는 훈련과정에서 처음 살아있는 광어를 만나자 놀라서 도망갔다고 합니다다. 가시가 많은 정어리를 먹을 때면 입안 가득 상처가 나기도 했죠. 체력도 떨어진 상태라 먹이를 따라가기 위해 30초를 수영하다 쉬기를 반복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3개월의 훈련을 거쳐 적응했고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그때 제돌이의 방생 가능성을 평가했던 생태학자들은 해조류 숲 주변부에서 먹이 활동을 하며 머무는 제주 바다를 상상했을 겁니다. 해조류에서 안정적으로 자란 먹이가 주변에 많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을해안로에 머무는 남방큰돌고래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배워야하는 기술은 낚시줄에 걸린 미끼를 빼먹는 연습이거나 폐어구를 피해 유영하는 방법, 낚시줄에 걸리지 않고 배출관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다가오는 관광선박에 충돌하지 않는 방법, 시끄러운 뱃소리와 공사 소리에 묻히지 않게 목소리를 크게 내는 방법 같은 것입니다.


현지 낚시인이 쓰는 낚시 채비에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 걸렸다



공동체의 바다에서 개인이 점유하는 바다로

제주에는 354개의 육상양식장이 있고 그 중 189개가 대정읍에 위치합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중 가장 많이 수출되는 품목은 광어였습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육상 양식장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때맞춰 일본 시장에서 대량 수입이 이루어지면서 감귤과 돼지고기를 제치고 광어가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육상양식장과 양식 광어는 제주 경제에 가장 중요한 수출원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주 바다는 ‘공동체의 바다에서 개인이 점유하는 바다로’, ‘상호연결되고 돌보는 관계에서 통제하고 오염시키는 관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연안 환경은 1990년대 중반부터 큰 변화가 발생합니다. 해조류가 급감한 것인데요. 1970~90년대 초반까지 연 평균 1만 2천톤 가량 생산되던 해조류는 급격히 줄어 지난 해에는 120톤을 기록했습니다. 90%가 감소한 것입니다. 조사를 하면서 만났던 주민분들은 “이 바당 다 베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을 공동체의 주요 수입원이자, 밭에 주던 천연 거름이고 식량이던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다 베려버린 바다’가 된 것입니다. 몇 해 전, 서귀포 사계해변에서 촬영한 사진은 제주 바다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왼쪽처럼 검은 해조류가 가득했던 연안은 오른쪽처럼 하얗게 갯녹음이 껴 기초 생태계가 망가진 황폐한 바다로 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해수온도 상승과 더불어 연안 수질 오염을 해조류 바다숲이 사라진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제주 해조류 생산량 변화(1970~2024) 출처 : 한국해양학회 추계학술대회(2024) (좌), 2022년 서귀포 사계해안의 갯녹음 심화 현장(우)



리와일딩 세계관을 제안합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살아갈만한 바다, 노을해안로의 리와일딩을 상상하고 시도하는 일은 서로 다른 경관과 세계관이 충돌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리와일딩 활동으로 만들어갈 경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음과 같은 구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주의적 세계관>은 통제 가능한 바다,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 바다, 기술 발전을 통해 힘들게 잡는 어업이 아니라 편하게 기르는 어업으로, 인간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합니다. <자연보전의 세계관>은 해양생물의 개체수 유지와 인간 활동의 균형, 기존 인간 활동을 유지하는 선에서 해양생태계 보호, 인간(과학자, 중앙정부) 주도, 인간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생태계 유지의 목표를 둡니다. 반면, <리와일딩 세계관>은 해양생태계의 연결성과 치유력 회복, 특정 종과 더불어 종의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한 생태계 복원, 인간(지역주민, 공동체)과 비인간 주도의 생태계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바다에 관한 

자연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자원을 생산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근대화의 세계관과 환경과 인간활동을 적절히 통제해 생물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자연보전의 세계관에서 생태계의 연결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비인간과 인간 모두의 풍요와 좋은 삶을 만드는 세계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을해안로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은 가능합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조사 내용을 정리해 10월 중순쯤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책 토론회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대정읍 노을해안로 남방큰돌고래 보호와 서식지 복원을 위한 신도리 해양보호구역의 위협 요인과 관리 정책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이용하는 시간과 시기에 맞춰 휴식제를 도입해 낚시와 관광선박 운행을 중단하고, 양식장 배출수와 농업 폐기물 관리를 강화해 수질 오염을 줄입니다. 또한 소음 공해를 차단할 수있는 규정을 추가해 해상풍력 건설을 견제하는 정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런 단기적인 목표와 더불어 리와일딩의 관점에서 좀더 장기적인 변화도 상상해 봅니다. 대정읍 노을해안로를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남방큰큰돌고래 관찰은 선박 관광에서 육상 탐사로 전환하고, 육상양식장에서 벗어나 바다숲을 가꾸는 사업과 방문객에게 생태해설을 하는 경제 활동을 시도하면 어떨까요? 또한 생태계 민감지역에 건설되는 해상풍력은 그곳을 충분히 이격해,연안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리와일딩 프로젝트를 함께 상상해보면서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습니다. ‘남방큰돌고래 리와일딩’ 제안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노을해안로 조사 중,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 위를 올려다보니 도로에 차를 멈추고 서서 저멀리 돌고래가 나타난 모습을 감탄하고 환호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약간만 고개를 돌리면 냄새나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쓰레기가 쌓인 연안과 돌고래를 향해 낚시줄을 던지고 있는 낚시꾼들이 보이는데 돌고래에 꽂힌 시선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더라구요. 


리와일딩은 돌고래를 만나는 우리의 감각이 확장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동물이 주는 카리스마와 매력에 압도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이 사는 곳을 살피고 그들의 안녕과 번성이 우리의 풍요와 안정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많아진다면 해조류가 풍요로운 건강한 노을해안로는 그리 먼, 비현실적인 경관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상훈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