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 [상괭이편] 4월 상괭이조사 항해일지(2 / 2)

대방어
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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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봄, 처음으로 상괭이 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대감과 설렘이 앞섰다. 준비물을 묻자 주희가 전화로 말했다.

 “옷 많이 따뜻하게 입어요.” (그 말의 깊이를 나는 곧 뼛속 깊이 실감하게 된다.)

 처음으로 진행된 3일간의 조사는, 추자도 서쪽 해역을 꼼꼼히 살펴본 첫날을 시작으로, 둘째 날에는 섬 사이사이와 북동쪽 해역을, 마지막 날에는 동쪽 해역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조사가 2일 일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일정은 처음이자 특별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경험 많은 조사팀 덕분에 나의 첫 조사는 안정적이고 든든했다.

 다만, 둘째 날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추자항으로 돌아오던 길은 쉽지 않았다. 거센 파도에 배는 크게 흔들렸고, 멀미가 다시 찾아왔다. 상괭이를 찾는 눈은 자꾸 감겼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노을은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저… 노을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상희가 말했다. 

 “노을이 지정을 봤을 거야.”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바다와 노을, 그리고 내가 서로 눈을 맞추고 인사를 주고받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오전 조사만 마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더 아쉽게 다가왔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잔잔한 바다 덕분에, 이번 여정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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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저녁, 슴새와 노을 ⓒ상괭이편


3일 째 아침. 항해를 시작하며

 보은은 오늘 망원경 렌즈로 멋진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보은의 주황색 모자와 소은의 파란색 모자가 쨍하니 햇살 가득한 날씨와 참 잘 어울렸다.

 오전 8시 44분.  베롱호가 출항했다. 우리 조사팀은 거리 측정 연습을 반복했다. 상희가 거리측정기로 거리를 재면, 우리는 육안으로 거리를 추정해 본다. 전날보다 오차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배 위에서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우린 분명히 조금씩 정확해지고 있었다.  

 항해일지를 작성하는 날이어서 선두 우측(A)자리에서 조사를 시작했는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향하는 곳에서는 지난 3월, 상괭이를 30여 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곳엔 새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새가 1마리~3마리씩 보일 때마다, 혹시 상괭이도 함께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가슴이 뛴다. 

 우리는 조사가 시작할 C4 지점을 향해 항해했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20척이 넘는 배가 12시 방향에 몰려 있었다. 참조기는 2월까지만 잡을 수 있고 4월 22일부터 금어기를 갖는다. 그러면 우리가 본 배들은 강섬돔이나 볼락, 노래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일까. 



조사 시작

 오전 9시 5분. C4에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사수도가 보인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 333호로 지정된 곳이며, 전날 본 슴새들의 주요 번식지 중 하나다. 저 곳에 다시 가면 슴새들이 그대로 있을까 생각했었으나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슴새는 낮에는 먼바다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다가 번식지인 사수도에는 해가 진 후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 해질녘 사수도에 슴새가 많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바다에는 윤슬이 가득했다. 살짝 비늘 같은 결이 물 위로 드러났다. 반짝반짝, 그리고 솔솔 바람, 마치 바다와 하늘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반기는 듯했다. 비록 3일밖에 있어보지 못했지만, 추자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이 곳에 살고 싶어지는데 상괭이 너희도 이 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 참 좋겠다. 

 저 멀리 빠르게 날개짓을 하며 어디론가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보였다. 슴새는 멋지게 활공도 하고 저공비행도 하는 반면에 저 녀석은 그냥 무작정 쭉 날아간다. 널 따라가면 상괭이가 있을까? 상괭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자꾸 이런 상상들을 하는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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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도와 사수도 ⓒ상괭이편


 정준이 잠시 선미 앞으로 와 카메라를 들었다. 한 명씩 조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담아주는 중이었다. 보통 누군가 나를 찍는다고 하면 표정이 굳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상괭이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몰입해 있어서였을까. 평온한 바다 덕분이었을까. 몸도, 마음도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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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자 촬영자이자 안전책임자이자 상괭이편의 모든 역할을 하는 돌핀맨, 정준!  ⓒ상괭이편


 오전 9시 49분. 물결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울너울 팔랑팔랑한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물결이 부서지는 듯한 흔적이 보인다. 백파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끈하던 표면이 사각사각해졌달까. 사각사각한 표면 덕분인지 윤슬은 더 반짝였다. 더 또렷하고 화려하게.

 오전 10시 55분. 사수도를 등지고, C4에서 C3 방향으로 향한다. 상괭이는 수온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상괭이를 본 3월 조사에서는 물이 더 탁하고 수온이 더 낮았다고 한다. 


조사 종료

 오후 12시 33분. C5 지점에 도착. 오늘 조사는 종료되었다. ‘조사 종료’라는 말이 참 쓸쓸하게 들렸다.



관탈도를 향해

제주 본섬과 추자도 사이, 작지만 인상적인 바위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관탈도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의 바다는 거울처럼 맑고 평온하다.  물결이 약하게 울렁거리는데 다이빙 할 때 물 속에서 수면을 올려다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참 이상하다. 눈앞에 펼쳐진 이 바다는 현실인데, 어쩐지 정말로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후 13시 5분. 관탈도까지 절반정도 남았는데 정준이 소리친다. 

“저기 날아간다! 펄럭펄럭!” 

첫날 추자도로 향하는 길에서도 만났던 뿔쇠오리와 또 만날 수 있었다. 

혹시 상괭이를 보게 되면 뭐라고 외치게 될까.

'슝? 포왕? 꿀렁?'

상괭이가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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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쇠오리 ⓒ상괭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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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쇠오리, 펄럭펄럭! ⓒ상괭이편



관탈도에서

 오늘 관탈도 수온은 17도. 육상 최고 기온은 15도였다. 이 곳은 2024년 9월, 제주 대정읍 신도리 해역과 함께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000㎢ 규모의 대규모 보호구역 지정은, 생물다양성협약(CBD)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서 합의된 ‘2030년까지 바다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라는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관탈도는 옛 문헌에는 물살이 거칠어서 ‘급하게 벗어나야 할 섬’이라 했고, 또 어떤 기록엔 ‘유배지로 향하는 관문, 갓을 벗어야 하는 섬’이라 쓰였다. 다만 이날 관탈도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섬에서, 톳비빔밥을 점심시간에 먹으니 행복했다. 베롱호 아래에서 모자반이 물 속에 둥실 둥실 춤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 뱃속도 마음도 풍족했다.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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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탈도의 새(솔새류) ⓒ상괭이편


도두항으로

 오후 14시 10분. 조사 기간 내내 커피를 내려준 상희에게 감사해하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도두항으로 향했다. 행복한 점심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느낀점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참여한 상괭이 목시조사.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낯설고도 진지한 배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배에서 먼 곳에서 상괭이가 등장할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30m 이내, 바로 베롱호 근처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또 어떤 날은 300m 이상 먼 거리에서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기에, 시선을 천천히, 그리고 넓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괭이를 기다리는 일은 운에 맡기는 일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세심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생각보다 사탕을 자주 집어 들게 된다. 정신이 흐려질 때, 체력이 떨어질 때.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몽롱해질까?’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계속 바람을 맞으며 시선을 고정한 채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이 그런 순간마다 꽤 큰 위로가 되었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각자의 시선은 조사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멀미와 추위는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밖에 있을 때는 괜찮다가도, 실내로 들어와 옷이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파도가 거세지면 멀미가 심해졌다. 정준이 알려준 대로 눈을 감고, 움직임을 멈추니 한결 나아졌다. 눈을 감고, 발을 떼고, 귀까지 막으면 확실히 더 좋아진다. 그리고 파도가 높아지면 바닷물이 배 위로 튀는 일도 있다. 옷이 젖으면 점점 무게가 실리고, 그만큼 더 추워진다. 방수와 방풍이 되는 옷이 얼마나 중요한지, 뼛속까지 느꼈다. 바다 한가운데,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오래 있다보면 체온은 금세 떨어진다. 얼굴까지 가리는 모자를 쓰고, 핫팩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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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다 위 제비갈매기 ⓒ상괭이편


마무리하며

 이번 조사에서 상괭이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남은 건 부재의 허탈함보다는,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다웠던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 그리고 새롭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관탈도의 멋진 모습이다.  물론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며 눈을 뜨고 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고요한 고됨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이 자연을 느끼게 된다. 

 상괭아, 곧 다시 만나자.



글쓴이. 박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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