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상괭이편] 3월 상괭이조사 항해일지(1 / 2) : 없는 걸까? 보지 못한 걸까?
대방어
2025-04-15
조회수 380
상괭이의 존재를 증명하고 보호하고픈 사람들이 모여 <상괭이편>이 되었습니다. 매달 추자도 바다를 항해합니다. 돌핀맨의 베롱호를 타고 상괭이를 기록합니다. 유난히 날씨가 변덕스러웠던 3월, 바다가 얌전해지길 기다리고 기다려 드디어 3월 31일과 4월 1일 추자도에 다녀왔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바다에 아직 상괭이가 머물고 있을까요? 3월 조사 1일 차! 홍상희 대원의 항해일지입니다.
없는 걸까? 보지 못한 걸까?
3월의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러워서, 조사 일정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괭이 관찰에 적합한 날씨는 하룻밤 사이에 뒤집히기 일쑤였고, 우리는 다시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상예보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환절기 바다 상황에 마음을 졸이던 정준은, 며칠간의 고심 끝에 조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출항을 일주일 앞두고 마침내 일정을 확정했다.
해가 뜰 무렵, 제주시 도두항을 출발한 베롱호는 추자 해역으로 향했다. 조사 첫날에는 추자도 서쪽과 북동쪽 해역을 중심으로 관찰을 진행하고, 밤에는 추자도에서 머무른다. 다음 날은 상추자항에서 다시 출항해 하추자 동쪽 28km 해역과 사수도 주변까지 조사 범위를 넓힌다. 날씨에 따라 조사 구역의 순서는 달라질 수 있지만, 항로와 속도, 훈련받은 조사팀 구성은 변하지 않는다. 관찰이 어려운 만큼, 반복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과학적 근거를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기에, 우리는 매 조사를 최대한 꼼꼼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3월 마지막 날, 이렇게 조사에 나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늘도 안전한 조사가 되길 바라며, 상괭이 편, 파이팅.”
오전 8시 36분. 정준과 함께 구호를 외친 조사자들은 배 앞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를 상괭이를 기다리는, 긴 관찰을 시작했다. 이날 바람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불어왔다. 베롱호가 바람을 맞으며 나아갈 때는 물결이 거세게 출렁였고, 바람을 등지고 갈 때는 바다가 한결 잔잔해졌다. 조사가 한창이던 오전. 바닷물이 뱃전에 부딪히는 철썩이는 소리만이 베롱호 주변을 둘러쌌고, 바다에는 어선도, 바닷새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상괭이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떠나버린 바다를 우리만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정오가 지나, 베롱호는 하추자도 묵리 포구에 잠시 정박했다. 출항한 지 여섯 시간째. 배를 묶고 물을 끓이는 사이, 챙겨온 오이를 먹으며 마른 갈증을 달랬다. 현장에선 늘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이날도 조사팀은 데운 밥 위에 간편식 카레를 부어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바다로 나섰다. 상괭이를 만날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모두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물결과 물결 사이, 어쩌면 상괭이의 등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
오전에 얼굴에 스치던 산들바람(풍력 계급 3의 바람)은 오후가 되면서 점차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예보와 달리 멀리 파도의 마루가 부서지며 흰 물거품이 생겼고, 구름이 해를 가리면서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정준은 조사자들에게 물이 튀지 않도록 선박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배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조정했지만 결국 망루에 앉은 보은을 제외한 조사자들은 배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서 조사를 이어가야 했다.
“이런 날에도 상괭이를 볼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필드에서 13년을 보낸 해양동물행동생태학자 수진은 담담하게 답했다.
“운이 좋다면요?”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바람과 파도 앞에서는 운에 기대어야 하는 일. 고래를 찾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끝없는 기다림, 그리고 종종 헛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이 조사는 상괭이에 관한 문헌 자료조차 없는 추자도 해역에서 시작하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직접 써 내려가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출렁이는 물결에 상괭이가 몸을 숨기기 좋은 날,
바다에서 12시간을 보내는 동안, 베롱호의 누구도 상괭이를 보지 못했다.
‘정말 없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만 놓친 걸까?’
쉬이 대답 수 없는 질문을 안은 채, 조사팀은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상괭이를 못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눈이 시리도록 수면을 바라보며 상괭이를 찾던 이들의 마음도, 아마 정준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오늘 같은 날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수진의 말을 들으며 문득, '상괭이 편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던 지원사업 심사 면접관의 질문이 떠올랐다.
"상괭이를 못 보면 성과가 없는 거 아닌가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 하지만 추자도 해상 목시 조사를 준비하며, 정준은 말했다. '있음'과 '없음'이 성과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현장에서 수진 역시 당부했다. ‘상괭이를 보지 못한 날'에도 반드시 관찰기록지를 작성하라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고래를 연구하고, 추적하며 기록해 온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어떤 날, 어떤 조건에서 '보이지 않음' 역시 과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자연에서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이 바다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현재의 조사 방식에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상괭이 편에 서려면 무엇을 더 봐야 할까….
우리가 하고 싶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논의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상괭이의 존재를 증명하고 보호하고픈 사람들이 모여 <상괭이편>이 되었습니다. 매달 추자도 바다를 항해합니다. 돌핀맨의 베롱호를 타고 상괭이를 기록합니다. 유난히 날씨가 변덕스러웠던 3월, 바다가 얌전해지길 기다리고 기다려 드디어 3월 31일과 4월 1일 추자도에 다녀왔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바다에 아직 상괭이가 머물고 있을까요? 3월 조사 1일 차! 홍상희 대원의 항해일지입니다.
없는 걸까? 보지 못한 걸까?
3월의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러워서, 조사 일정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괭이 관찰에 적합한 날씨는 하룻밤 사이에 뒤집히기 일쑤였고, 우리는 다시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상예보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환절기 바다 상황에 마음을 졸이던 정준은, 며칠간의 고심 끝에 조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출항을 일주일 앞두고 마침내 일정을 확정했다.
해가 뜰 무렵, 제주시 도두항을 출발한 베롱호는 추자 해역으로 향했다. 조사 첫날에는 추자도 서쪽과 북동쪽 해역을 중심으로 관찰을 진행하고, 밤에는 추자도에서 머무른다. 다음 날은 상추자항에서 다시 출항해 하추자 동쪽 28km 해역과 사수도 주변까지 조사 범위를 넓힌다. 날씨에 따라 조사 구역의 순서는 달라질 수 있지만, 항로와 속도, 훈련받은 조사팀 구성은 변하지 않는다. 관찰이 어려운 만큼, 반복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과학적 근거를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기에, 우리는 매 조사를 최대한 꼼꼼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3월 마지막 날, 이렇게 조사에 나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늘도 안전한 조사가 되길 바라며, 상괭이 편, 파이팅.”
오전 8시 36분. 정준과 함께 구호를 외친 조사자들은 배 앞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를 상괭이를 기다리는, 긴 관찰을 시작했다. 이날 바람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불어왔다. 베롱호가 바람을 맞으며 나아갈 때는 물결이 거세게 출렁였고, 바람을 등지고 갈 때는 바다가 한결 잔잔해졌다. 조사가 한창이던 오전. 바닷물이 뱃전에 부딪히는 철썩이는 소리만이 베롱호 주변을 둘러쌌고, 바다에는 어선도, 바닷새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상괭이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떠나버린 바다를 우리만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정오가 지나, 베롱호는 하추자도 묵리 포구에 잠시 정박했다. 출항한 지 여섯 시간째. 배를 묶고 물을 끓이는 사이, 챙겨온 오이를 먹으며 마른 갈증을 달랬다. 현장에선 늘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이날도 조사팀은 데운 밥 위에 간편식 카레를 부어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바다로 나섰다. 상괭이를 만날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모두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물결과 물결 사이, 어쩌면 상괭이의 등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
오전에 얼굴에 스치던 산들바람(풍력 계급 3의 바람)은 오후가 되면서 점차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예보와 달리 멀리 파도의 마루가 부서지며 흰 물거품이 생겼고, 구름이 해를 가리면서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정준은 조사자들에게 물이 튀지 않도록 선박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배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조정했지만 결국 망루에 앉은 보은을 제외한 조사자들은 배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서 조사를 이어가야 했다.
“이런 날에도 상괭이를 볼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필드에서 13년을 보낸 해양동물행동생태학자 수진은 담담하게 답했다.
“운이 좋다면요?”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바람과 파도 앞에서는 운에 기대어야 하는 일. 고래를 찾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끝없는 기다림, 그리고 종종 헛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이 조사는 상괭이에 관한 문헌 자료조차 없는 추자도 해역에서 시작하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직접 써 내려가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출렁이는 물결에 상괭이가 몸을 숨기기 좋은 날,
바다에서 12시간을 보내는 동안, 베롱호의 누구도 상괭이를 보지 못했다.
‘정말 없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만 놓친 걸까?’
쉬이 대답 수 없는 질문을 안은 채, 조사팀은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상괭이를 못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눈이 시리도록 수면을 바라보며 상괭이를 찾던 이들의 마음도, 아마 정준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오늘 같은 날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수진의 말을 들으며 문득, '상괭이 편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던 지원사업 심사 면접관의 질문이 떠올랐다.
"상괭이를 못 보면 성과가 없는 거 아닌가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 하지만 추자도 해상 목시 조사를 준비하며, 정준은 말했다. '있음'과 '없음'이 성과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현장에서 수진 역시 당부했다. ‘상괭이를 보지 못한 날'에도 반드시 관찰기록지를 작성하라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고래를 연구하고, 추적하며 기록해 온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어떤 날, 어떤 조건에서 '보이지 않음' 역시 과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자연에서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이 바다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현재의 조사 방식에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상괭이 편에 서려면 무엇을 더 봐야 할까….
우리가 하고 싶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논의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렇게 오늘 우리는 상괭이의 부재를 경험 했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기록해두었다.
글쓴이. 홍상희
상괭이편의 항해일지와 사진을 담은 인스타그램 계정이 생겼어요!
더 많은 사진과 영상도 종종 올라갈 예정이니 팔로우를 부탁해요~!
https://www.instagram.com/sanggwaeng_
지난 항해일지를 읽고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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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상괭이편 항해일지 살펴보기
3월 2일차 조사 항해일지 예고편!
상괭이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