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 [상괭이편] 2월 상괭이조사 항해일지 1 / 2

대방어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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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 2월 상괭이 탐사를 위해 도두사수항에 도착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물이 많이 빠져있는 상태였고 항구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모두 제 역할을 다해 준비를 했고 나는 출항신고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출항신고서를 작성했다. 혹시 실수할까 긴장도 했지만, 다행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 보은이 좌표를 수정하고 모두 모여 2월 탐사 계획을 논의한 후, 드디어 바다로 나섰다. 각자 역할을 분담하며 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괭이편’이 점차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탐사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 괜히 자긍심이 들었다.

오전 8시, 해가 빠르게 떠오르면서 시야가 점차 밝아졌다. 배가 방파제를 지나 열린 해역으로 나아가자, 수면이 점차 거칠어졌다. 다행히 출항 당시 0.8m였던 파고는 0.7m로 낮아졌고, 점심 무렵에는 더 잔잔해질 것이라고 정준이 알려주었다.

오전 9시 55분, A-1 구간에 도착했다. 나는 이번이 첫 탐사였기에, 모두 찾기 어렵다는 상괭이를 과연 제 역할을 다해 발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직 구분하는 눈이 없어서 햇빛이 반짝이는 수면 위를 보며 상괭이 머리인지, 단순한 물결인지 확신이 없었다. 먼저 탐사를 진행했던 팀원들이 A-1 구간에서 A-2로 이동할 때는 주로 오른쪽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줘서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두고 주의 깊게 수면을 살폈다. 아쉽게도 A-1 구간에서는 상괭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배는 7~8노트 사이로 천천히 이동했고, 약간의 멀미와 졸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후에 상희가 “상괭이를 찾는 일은 기다림과 관찰의 연속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장시간 눈을 사용하기 때문에 피로가 몰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정말 그렇다. 상괭이를 찾는 일은 결국 나와의 싸움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A-2 구간 탐사가 시작되었다.

오후 12시 25분, 2월 탐사의 첫 상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2시(방향)에 상괭이!”
주희의 외침이 배 위에 울렸다. 동시에 1시 방향에서도 상희가 상괭이를 목격했다. 나는 배 측면에 있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새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상괭이 둘이 함께 모습도 발견해 최대 3명까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정준이 이야기해 주었다. 조용하던 바다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 바다에 상괭이가 살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타 다시 수면 위를 열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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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36분, 조용하던 수면 위에 작게 파문이 일었다. 바로 눈앞으로 배 진행 방향 반대 쪽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간 듯해서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내가 본 것이 상괭이라는 확신이 없어 다시 모습을 보여주길 기다렸다. 잠시 후에 해수면이 솟구치며 베롱호 쪽으로 점프하며 빠르게 다가오는 고래가 나타났다. 너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 처음에는 남방큰돌고래인가 싶었다. 일반적으로 상괭이는 조심성이 많고, 점프하기보다 수면 위로 조용히 숨을 내쉬고 다시 사라진다고 알고 있어서 처음부터 예상을 깨고 정면으로 돌진하는 상괭이와 마주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빛 등이 수면 위로 점프했다가 부드럽게 사라졌다. 햇빛을 받아서 순간 회색 등이 살굿빛처럼 보였다. 이 상괭이는 배의 뒤편에서 맴돌면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9e80e964661bc.jpeg상괭이 솟구치다! 처음 마주한 상괭이 ⓒ상괭이 편


A-2 구간에 들어서자, 물이 조금씩 탁해지기 시작했다. 탁류가 보이면 상괭이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어민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물이 탁해지는 시기에 상괭이가 출몰한다는 증언도 있다고 한다. 탁류가 섞이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해류를 따라 서해안에서 내려온 물과 남해안의 물이 만나면서 탁류의 띠가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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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56분, 주변 물살이 미묘하게 일렁이더니, 7시 방향에서 매끈한 융기가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5시 방향에서도 두 명의 상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상괭이를 목격한 후, 상괭이가 물 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상괭이는 다른 고래들과 달리 등지느러미가 없고, 매끈한 등을 가졌다. 상괭이의 등에서 척추뼈처럼 굴곡져 보이는 부분을 ‘융기’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상괭이 사체를 거래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매끈한 융기를 가진 개체 외에 몸집이 더 크고 넓은 상괭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종 구분은 하지 않고 모두 같은 상괭이로 분류된다고 한다.  오후 1시 1분, 멀리서 상괭이를 발견한 것을 마지막으로 상괭이들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독 고요한 바다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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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과 우측 끝 동시에 2마리의 상괭이 ⓒ상괭이 편


주희가 이전 탐사에서 ‘다른 행성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팀원들과 나눴다고 했는데,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수면은 한없이 잔잔하고 다른 배들의 흔적도, 새도, 바람 소리도 없는 적막한 바다 위에서 느리게 항해하는 베롱호와 솟아있는 섬들의 풍경만이 있었다. 눈으로 수면을 쫓으면서 속으로는 내가 지금 보지 못하는 이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상상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생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닷속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 바다를 읽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찾는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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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를 닮은 해양쓰레기 ⓒ상괭이 편


오후 3시 24분, A-4 구간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모자반과 해양 쓰레기를 상괭이로 착각해서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혹여 내가 놓친 상괭이가 있을까 조바심이 들었지만, 바다는 여전히 고요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정준이 찍었던 상괭이를 떠올려 본다. 둥글고 매끈한 몸으로 바다를 유영하는 영상 속 상괭이는 마치 전래동화나 신화 속에 나오는 요정처럼 신비하고 감동적인 존재였다. 누구든 이런 상괭이를 본다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상괭이가 이 바다에서 살아요! 이 바다는 상괭이의 바다에요!”라고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매 순간 변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찰나의 순간뿐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을 것이다. 상괭이들은 물결의 흐름을 타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2월 1일 차 탐사가 종료되었다. 내일은 더 많은 상괭이를 만날 수 있기를!




글쓴이. 이루리


[상괭이편 항해일지 더 보기]

2월 2/2편_신주희

2월 1/2편_이루리

1월 2/2편_김보은

1월 1/2편_홍상희

12월 예비조사_신주희



상괭이편 인스타그램이 만들어졌어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sanggwaeng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