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개봉한 영화 ‘물꽃의 전설’은 87년 경력의 최고령 상군 해녀 현순직과 막내 해녀 채지애가 제주 바닷속 비밀의 화원에 핀 ‘물꽃’을 다시 보기 위해 ‘들물여’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이다. 현순직 해녀가 본인만 찾아갈 수 있다고 하는 들물여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물꽃은 밤송이를 닮은 모습의 연산호, ‘밤수지맨드라미’이다.
밤수지맨드라미는 해양보호생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으로 주로 수심 5~20m에서 군락을 이룬다. 제주 남부 연안을 대표하던 밤수지맨드라미가 지금은 수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서식지가 북쪽으로 상승하며 전체적으로 군락의 크기가 줄어들고 개체군이 급감하고 있다.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연산호는 어떤 생물일까?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제주연안 연산호 군락, 왼쪽 위가 밤수지맨드라미이다 ⓒ 파란
전 세계에는 7,500종의 산호가 확인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70여 종이 서식한다. 그중 제주 바다에 120여 종 이상이 산다.(2020년 10월 기준) 단단한 곳에 붙어사는 산호는 암반이 발달하고, 물의 흐름이 원활하여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잘 공급되는 환경을 좋아한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평평하거나 굴곡진 암반 지형이 발달하였고, 연중 따듯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 산호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 산호는 제주 바다 곳곳에서 살지만, 주로 남쪽 바다에 큰 군락을 이룬다. 섶섬, 문섬, 범섬 등 서귀포 앞바다와 송악산, 형제섬 인근 바다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연산호 군락이 잘 발달하여 바닷속 생물 군락지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연기념물 제442호(제주연안연산호군락)’로 지정되었다. 부드러운 표면에 줄기 구조로 꽃을 닮은 산호를 연산호(해계두목, Alcyonacea), 소나무처럼 생긴 모습의 산호를 해송류(각산호목, Antipatharia)라고 하는데, 연산호와 해송류가 많은 것이 제주 바다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아열대 바다에 많이 서식하는 돌산호(돌산호목, Scleractinia)는 크고 딱딱한 탄산칼슘 골격의 몸체를 만들어 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몸체 표면의 폴립을 관찰할 수 있다. 제주 바다에도 빛단풍돌산호, 그물코돌산호 등 돌산호류의 서식 면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산호는 알록달록한 색깔에 직벽이나 암반에 고착되어 있어 식물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자포세포를 이용해 먹이활동을 하는 ‘자포동물’이다. 폴립에 달린 촉수의 개수가 6개 혹은 6의 배수이면 육방산호, 촉수가 8개면 팔방산호이다. 부드러운 몸체가 특징인 연산호는 팔방산호이며 돌산호와 해송류, 말미잘은 육방산호에 속한다.
산호 군락은 다른 해양생물이 알을 낳는 산란처이자, 보육장, 은신처로 안성맞춤이다. 산호를 먹는 해양 생물들에게는 먹이원이 되기도 한다. 바닷속에선 자리돔, 주걱치, 줄도화돔이 연산호 군락을 제집 삼아 머물고, 각종 나비고기와 군데군데 호박돔, 벵에돔 무리가 보인다. 이들과 함께 멸치와 전갱이 무리가 떼 지어 급하게 이동한다. 어린 물고기를 취하기 위해 대형 줄삼치, 가다랑어, 방어 떼들의 날렵한 사냥도 시작된다. 갯지렁이와 갯민숭달팽이, 바다거미와 새우, 게 등 각종 갑각류가 산호 군락에 의지하여 풍부한 해양생태계를 이룬다. 바닷속 산호를 관찰하다 보면 바다 생명의 아름다운 공생과 조화로운 삶, 그 자체를 확인할 수 있다.
급격한 변화
작년 8월 10일, 제주의 최고기온이 37.5℃로 기상 관측 99년 중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8월 표층 수온은 마라도와 서귀포에서 30.0℃까지 올랐다. 지난 50년간 제주 바다의 표층 수온은 1.23℃ 올랐는데, 이는 전 세계 바다 평균 상승 온도 0.48℃의 2배 이상이다.2 바닷속 산호 생태계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수온이 오른다고 산호 서식 면적이 급격히 늘어나거나, 혹은 확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수온에 적응하는 유전인자를 확보한 산호는 급격한 수온 상승에도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산호는 더 깊은 수심의 바다로, 혹은 북쪽으로 서식지를 이동한다. 밤수지맨드라미처럼 수온상승에 취약한 종은 개체군이 급감하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패턴 중에서도 특히 빛단풍돌산호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이 두드러진다. 돌산호류는 제주 바다의 대표적 해조류인 미역과 감태와 같은 해조류가 사라진 곳에 자리잡고, 또 연산호와는 서식지 경쟁을 벌이면서 전체 서식 면적을 늘이고 있다. 즉 제주 바다가 온대의 연산호 서식지에서 아열대와 열대 경산호 서식지로 빠르게 바뀌는 상황이다. 제주수산연구소의 2018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아열대 지표종인 그물코돌산호는 연간 4cm 이상 자라며, 빠른 속도로 제주 바다에 정착하고 있다.
빛단풍돌산호와 연산호가 서식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 ⓒ 파란
언젠가 서귀포항 인근에서 “제주 바다의 산호초를 지킵시다!”라는 캠페인 벽보를 보았다. 제주 바다에는 ‘산호초’는 없으니 지금은 틀린 슬로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맞는 말이 될 수 있겠다. 산호는 ‘생물’이고, 산호초는 산호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돌산호는 죽으면 연한 살 부분은 없어지고 딱딱한 탄산칼슘 구조물은 그대로 남는다. 산호초는 열대와 아열대 지역 얕은 바다의 돌산호 뼈대와 현재 살아있는 산호가 쌓여 형성된 커다란 암초 지대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산호초는 호주 대륙 동쪽에 있는 대보초(Great Barrier Reef)로 약 2,300km에 걸쳐 2,900개의 산호초와 9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산호초를 이룰 만큼 거대한 돌산호 군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변화, 수온 상승으로 인해 태풍의 빈도와 크기가 커지는 것, 기생생물 번성, 연안 오염도 모두 산호에 영향을 미친다. 수중 지형을 바꿀 만큼 큰 태풍으로 산호가 사라지고, 보키반타이끼벌레와 담홍말미잘 같은 기생생물이 번성하면서 산호가 잠식되기도 한다. 연안 매립과 항만 확장 등으로 바다의 물 흐름이 달라지고 육상 오염원이 증가하면 산호의 먹이활동과 생식에 악영향을 준다. 연산호와 해송류가 어구와 낚싯줄에 뒤엉켜있고, 관광잠수함이 운항하면서 암반을 긁어 위협받는 상황도 확인된다.
이용과 보전 사이
수온상승, 태풍 같이 기후변화로 인한 거대한 ‘징후’ 앞에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라고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어떨까.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을 둘러싼 2개의 사례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관광잠수함 운항으로 인한 연산호 군락훼손과 위협문제이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6월, 7월, 10월 세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서귀포 관광잠수함 운항으로 인해 천연기념물 문섬의 훼손과 잠수함 ‘중간기착지’의 인위적 현상변경 의혹, 운항 구간 내 법정보호종 산호 서식 현황, 절대보존지역(F구간) 훼손 등을 알렸다. 당초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관광 잠수함에 의한 문섬 훼손, 절대보존지역 훼손 관련 확인된 바 없다’는 요지의 입장을 발표하였고, 서귀포 관광잠수함 사업자 측도 천연기념물 문섬의 암반 충돌은 인정하면서도 ‘절대보존지역에서 운항한 적이 없고, 기존의 중간기착지 이외의 제2의 중간기착지 형태로 운항하는 곳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 끝에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관광잠수함 운항 허가구간 대비 훼손 면적은 최소 19.4%로 드러났다.1 정밀조사보고서는 암반과 산호 서식지 훼손이 진행된 부분은 관광잠수함 운항 방향과 일치하며, 잠수함 운항에 따른 물리적 충격으로 인한 훼손으로 결론지었다. 이어 올해 2월 문화재청 회의록을 보면, 문화재청은 서귀포 관광잠수함의 제2중간기착지의 존재와 절대보전지역 불법 운항, 훼손을 확인하였으며 운항 허가조건 위반으로 사업자 측에 대한 ‘고발 조치’를 의결하였다. 서귀포 문섬과 주변 해역은 문화재청과 해양수산부, 제주특별자치도, 유네스코까지 겹겹으로 지정한 보호구역임에도 산호군락과 수중경관에 대한 보호 장치는 작동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해중경관지구 사업과 항만 확장 공사문제이다. 해양수산부는 2018년 강원도 고성군과 제주도 서귀포시 문섬 등 2곳을 수중레저 활성화를 목적으로 해중경관지구로 지정하였다. 총사업비 400억 원(국비 200억 원, 도 200억 원)으로 육상부에 해양레저체험센터, 해상부에 스쿠버다이빙 해상 체험장과 다이버 운송용 계류시설을 계획하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양레저관광거점사업 공사 구간인 서귀포항 동방파제 자구리 해안 일대는 해양보호생물인 푸른바다거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며, 공사 구간 내에서 해양보호생물인 밤수지맨드라미와 천연기념물인 긴가지해송이 발견돼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문섬 등 주변해역’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며 해양생물다양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기에 생태계 보호를 위한 특별한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행정의 일관성 없음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해중경관지구사업 외에도 서귀포항 확장 계획도 진행 중이다. 해양수산부 제4차 전국항만기본계획의 서귀포항 계획평면도를 보면, 현재의 새섬에서 확장된 남방파제를 전부 제거하고 외항 방파제를 400m가량 보호구역 방향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서귀포항 확장 공사는 문섬 일대의 산호류 등 해양 생물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태계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보호종, 보호구역이라는 ‘보호’ 장치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재해가 빈번해지고, 생태계 변화 징후가 두드러지면서 탄소흡수원으로서 연안 해양 공간과 해양생물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신공항, 항만 확대, 연안 매립을 전제로 한 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법 제도로서의 장치인 ‘보호종’ ‘보호구역’ 제도를 강화하여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법률에 따라 65,558개의 보호지역이 지정되어 있는데, 해양은 전체면적의 2.13%, 육상은 17.30% 수준으로 국제사회의 보호구역 확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여 사이에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협약에서 2030년까지 전 지구의 육상, 해상 면적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UN 공해해양생물다양성보전협약(BBNJ)에서도 공해 등 국가관할권 이원해역에서의 2030년까지 30% 보호구역 지정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는 국제협약을 계기로 해양보호구역 확대 및 지정·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지정만 하고 관리되지 않은 페이퍼 파크(paper park)로 전락하지 않고, 실제 ‘보호구역’의 공간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목표 연도인 2030년까지 해양보호구역을 전체면적 대비 30%까지 지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연차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기타 효과적인 보전조치(OECM) 지표 및 관리체계 구축, 인식증진 교육도 필수적이다.
법정 보호종 제도의 경우 해양수산부는 ‘6개 생물군 91종’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있는데,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단일 분류학적 생물군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척추동물인 산호류이다. 2023년 현재, 금빛나팔돌산호, 둔한진총산호, 망상맵시산호, 미립이분지돌산호, 별혹산호, 깃산호, 유착나무돌산호, 잔가지나무돌산호, 착생깃산호, 측맵시산호, 검붉은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연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흰수지맨드라미, 빨강해면맨드라미, 긴가지해송, 망해송, 빗자루해송, 실해송, 해송 등 산호류 21종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래류 15종, 조류 16종 등). 하지만 산호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해양보호구역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의 비양도 수중 암반 지역, 차귀도 장군바위 외곽 암초, 화순 형제섬과 가파도 넓개 등 송악산 해역, 섶섬·문섬·범섬 등 서귀포 해역, 표선읍 해저 분화구 ‘금덕이여’ 일대, 성산 일출봉 앞 자리여, 우도 검멀레 절벽과 수중동굴 일대, 조천읍 북촌리 외곽 산호 군락지, 제주 북부 관탈도와 소관탈 등은 전문가 사이에 산호 군락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제주 전역의 산호 서식 조사를 통해 전체 공간을 종합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호’를 보호, 관리하기 위한 보호구역 지정을 제안하고 싶다.
또한, 장기적으로 산호를 포함 해양생태계 조사는 현지 다이버나 훈련된 시민과학자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아름다운 수중경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생물종과 서식 양상을 기록할 수 있는 ‘에코-다이버’를 양성하고 그 문화를 확산한다면,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공간에 대한 인식증진 효과도 있고 조사를 통해 축적된 자료는 해양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를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사 설계와 기록방식 관련 기관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미 서귀포항 동방파제에 건설 중인 해양레저체험센터의 경우, 그 사업목적을 해양레저와 관광 활성화가 아닌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연구 및 시민 인식증진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의 용도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해양보호구역과 해양보호생물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시민과학 프로그램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면 바람직한 전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작성: 신수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센터장)
* 이 글은 2023년 8월에 작성하였으며, '2023 제주의 환경을 말하다(제주환경운동연합 연례보고서)'에 게재되었습니다.
* 영화 '물꽃의 전설' 소개 영상
1 ‘「제주연안 연산호 군락」 훼손 관련 추가 정밀조사 결과보고’를 작성한 조사기관(에코이앤비(주), 조사기간 2022.10.04.~2022.12.02)에 따르면, 조사면적 3,264㎡ 대비 훼손 면적 634㎡으로 훼손 면적 비율은 19.4%이다.
바다의 꽃, 제주 바다 연산호
지난 8월 말 개봉한 영화 ‘물꽃의 전설’은 87년 경력의 최고령 상군 해녀 현순직과 막내 해녀 채지애가 제주 바닷속 비밀의 화원에 핀 ‘물꽃’을 다시 보기 위해 ‘들물여’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이다. 현순직 해녀가 본인만 찾아갈 수 있다고 하는 들물여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물꽃은 밤송이를 닮은 모습의 연산호, ‘밤수지맨드라미’이다.
밤수지맨드라미는 해양보호생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으로 주로 수심 5~20m에서 군락을 이룬다. 제주 남부 연안을 대표하던 밤수지맨드라미가 지금은 수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서식지가 북쪽으로 상승하며 전체적으로 군락의 크기가 줄어들고 개체군이 급감하고 있다.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연산호는 어떤 생물일까?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제주연안 연산호 군락, 왼쪽 위가 밤수지맨드라미이다 ⓒ 파란
전 세계에는 7,500종의 산호가 확인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70여 종이 서식한다. 그중 제주 바다에 120여 종 이상이 산다.(2020년 10월 기준) 단단한 곳에 붙어사는 산호는 암반이 발달하고, 물의 흐름이 원활하여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잘 공급되는 환경을 좋아한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평평하거나 굴곡진 암반 지형이 발달하였고, 연중 따듯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 산호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 산호는 제주 바다 곳곳에서 살지만, 주로 남쪽 바다에 큰 군락을 이룬다. 섶섬, 문섬, 범섬 등 서귀포 앞바다와 송악산, 형제섬 인근 바다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연산호 군락이 잘 발달하여 바닷속 생물 군락지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연기념물 제442호(제주연안연산호군락)’로 지정되었다. 부드러운 표면에 줄기 구조로 꽃을 닮은 산호를 연산호(해계두목, Alcyonacea), 소나무처럼 생긴 모습의 산호를 해송류(각산호목, Antipatharia)라고 하는데, 연산호와 해송류가 많은 것이 제주 바다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아열대 바다에 많이 서식하는 돌산호(돌산호목, Scleractinia)는 크고 딱딱한 탄산칼슘 골격의 몸체를 만들어 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몸체 표면의 폴립을 관찰할 수 있다. 제주 바다에도 빛단풍돌산호, 그물코돌산호 등 돌산호류의 서식 면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산호는 알록달록한 색깔에 직벽이나 암반에 고착되어 있어 식물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자포세포를 이용해 먹이활동을 하는 ‘자포동물’이다. 폴립에 달린 촉수의 개수가 6개 혹은 6의 배수이면 육방산호, 촉수가 8개면 팔방산호이다. 부드러운 몸체가 특징인 연산호는 팔방산호이며 돌산호와 해송류, 말미잘은 육방산호에 속한다.
산호 군락은 다른 해양생물이 알을 낳는 산란처이자, 보육장, 은신처로 안성맞춤이다. 산호를 먹는 해양 생물들에게는 먹이원이 되기도 한다. 바닷속에선 자리돔, 주걱치, 줄도화돔이 연산호 군락을 제집 삼아 머물고, 각종 나비고기와 군데군데 호박돔, 벵에돔 무리가 보인다. 이들과 함께 멸치와 전갱이 무리가 떼 지어 급하게 이동한다. 어린 물고기를 취하기 위해 대형 줄삼치, 가다랑어, 방어 떼들의 날렵한 사냥도 시작된다. 갯지렁이와 갯민숭달팽이, 바다거미와 새우, 게 등 각종 갑각류가 산호 군락에 의지하여 풍부한 해양생태계를 이룬다. 바닷속 산호를 관찰하다 보면 바다 생명의 아름다운 공생과 조화로운 삶, 그 자체를 확인할 수 있다.
급격한 변화
작년 8월 10일, 제주의 최고기온이 37.5℃로 기상 관측 99년 중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8월 표층 수온은 마라도와 서귀포에서 30.0℃까지 올랐다. 지난 50년간 제주 바다의 표층 수온은 1.23℃ 올랐는데, 이는 전 세계 바다 평균 상승 온도 0.48℃의 2배 이상이다.2 바닷속 산호 생태계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수온이 오른다고 산호 서식 면적이 급격히 늘어나거나, 혹은 확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수온에 적응하는 유전인자를 확보한 산호는 급격한 수온 상승에도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산호는 더 깊은 수심의 바다로, 혹은 북쪽으로 서식지를 이동한다. 밤수지맨드라미처럼 수온상승에 취약한 종은 개체군이 급감하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패턴 중에서도 특히 빛단풍돌산호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이 두드러진다. 돌산호류는 제주 바다의 대표적 해조류인 미역과 감태와 같은 해조류가 사라진 곳에 자리잡고, 또 연산호와는 서식지 경쟁을 벌이면서 전체 서식 면적을 늘이고 있다. 즉 제주 바다가 온대의 연산호 서식지에서 아열대와 열대 경산호 서식지로 빠르게 바뀌는 상황이다. 제주수산연구소의 2018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아열대 지표종인 그물코돌산호는 연간 4cm 이상 자라며, 빠른 속도로 제주 바다에 정착하고 있다.
빛단풍돌산호와 연산호가 서식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 ⓒ 파란
언젠가 서귀포항 인근에서 “제주 바다의 산호초를 지킵시다!”라는 캠페인 벽보를 보았다. 제주 바다에는 ‘산호초’는 없으니 지금은 틀린 슬로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맞는 말이 될 수 있겠다. 산호는 ‘생물’이고, 산호초는 산호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돌산호는 죽으면 연한 살 부분은 없어지고 딱딱한 탄산칼슘 구조물은 그대로 남는다. 산호초는 열대와 아열대 지역 얕은 바다의 돌산호 뼈대와 현재 살아있는 산호가 쌓여 형성된 커다란 암초 지대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산호초는 호주 대륙 동쪽에 있는 대보초(Great Barrier Reef)로 약 2,300km에 걸쳐 2,900개의 산호초와 9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산호초를 이룰 만큼 거대한 돌산호 군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변화, 수온 상승으로 인해 태풍의 빈도와 크기가 커지는 것, 기생생물 번성, 연안 오염도 모두 산호에 영향을 미친다. 수중 지형을 바꿀 만큼 큰 태풍으로 산호가 사라지고, 보키반타이끼벌레와 담홍말미잘 같은 기생생물이 번성하면서 산호가 잠식되기도 한다. 연안 매립과 항만 확장 등으로 바다의 물 흐름이 달라지고 육상 오염원이 증가하면 산호의 먹이활동과 생식에 악영향을 준다. 연산호와 해송류가 어구와 낚싯줄에 뒤엉켜있고, 관광잠수함이 운항하면서 암반을 긁어 위협받는 상황도 확인된다.
이용과 보전 사이
수온상승, 태풍 같이 기후변화로 인한 거대한 ‘징후’ 앞에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라고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어떨까.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을 둘러싼 2개의 사례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관광잠수함 운항으로 인한 연산호 군락훼손과 위협문제이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6월, 7월, 10월 세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서귀포 관광잠수함 운항으로 인해 천연기념물 문섬의 훼손과 잠수함 ‘중간기착지’의 인위적 현상변경 의혹, 운항 구간 내 법정보호종 산호 서식 현황, 절대보존지역(F구간) 훼손 등을 알렸다. 당초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관광 잠수함에 의한 문섬 훼손, 절대보존지역 훼손 관련 확인된 바 없다’는 요지의 입장을 발표하였고, 서귀포 관광잠수함 사업자 측도 천연기념물 문섬의 암반 충돌은 인정하면서도 ‘절대보존지역에서 운항한 적이 없고, 기존의 중간기착지 이외의 제2의 중간기착지 형태로 운항하는 곳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 끝에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관광잠수함 운항 허가구간 대비 훼손 면적은 최소 19.4%로 드러났다.1 정밀조사보고서는 암반과 산호 서식지 훼손이 진행된 부분은 관광잠수함 운항 방향과 일치하며, 잠수함 운항에 따른 물리적 충격으로 인한 훼손으로 결론지었다. 이어 올해 2월 문화재청 회의록을 보면, 문화재청은 서귀포 관광잠수함의 제2중간기착지의 존재와 절대보전지역 불법 운항, 훼손을 확인하였으며 운항 허가조건 위반으로 사업자 측에 대한 ‘고발 조치’를 의결하였다. 서귀포 문섬과 주변 해역은 문화재청과 해양수산부, 제주특별자치도, 유네스코까지 겹겹으로 지정한 보호구역임에도 산호군락과 수중경관에 대한 보호 장치는 작동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해중경관지구 사업과 항만 확장 공사문제이다. 해양수산부는 2018년 강원도 고성군과 제주도 서귀포시 문섬 등 2곳을 수중레저 활성화를 목적으로 해중경관지구로 지정하였다. 총사업비 400억 원(국비 200억 원, 도 200억 원)으로 육상부에 해양레저체험센터, 해상부에 스쿠버다이빙 해상 체험장과 다이버 운송용 계류시설을 계획하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양레저관광거점사업 공사 구간인 서귀포항 동방파제 자구리 해안 일대는 해양보호생물인 푸른바다거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며, 공사 구간 내에서 해양보호생물인 밤수지맨드라미와 천연기념물인 긴가지해송이 발견돼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문섬 등 주변해역’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며 해양생물다양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기에 생태계 보호를 위한 특별한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행정의 일관성 없음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해중경관지구사업 외에도 서귀포항 확장 계획도 진행 중이다. 해양수산부 제4차 전국항만기본계획의 서귀포항 계획평면도를 보면, 현재의 새섬에서 확장된 남방파제를 전부 제거하고 외항 방파제를 400m가량 보호구역 방향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서귀포항 확장 공사는 문섬 일대의 산호류 등 해양 생물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태계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보호종, 보호구역이라는 ‘보호’ 장치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재해가 빈번해지고, 생태계 변화 징후가 두드러지면서 탄소흡수원으로서 연안 해양 공간과 해양생물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신공항, 항만 확대, 연안 매립을 전제로 한 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법 제도로서의 장치인 ‘보호종’ ‘보호구역’ 제도를 강화하여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법률에 따라 65,558개의 보호지역이 지정되어 있는데, 해양은 전체면적의 2.13%, 육상은 17.30% 수준으로 국제사회의 보호구역 확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여 사이에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협약에서 2030년까지 전 지구의 육상, 해상 면적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UN 공해해양생물다양성보전협약(BBNJ)에서도 공해 등 국가관할권 이원해역에서의 2030년까지 30% 보호구역 지정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는 국제협약을 계기로 해양보호구역 확대 및 지정·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지정만 하고 관리되지 않은 페이퍼 파크(paper park)로 전락하지 않고, 실제 ‘보호구역’의 공간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목표 연도인 2030년까지 해양보호구역을 전체면적 대비 30%까지 지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연차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기타 효과적인 보전조치(OECM) 지표 및 관리체계 구축, 인식증진 교육도 필수적이다.
법정 보호종 제도의 경우 해양수산부는 ‘6개 생물군 91종’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있는데,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단일 분류학적 생물군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척추동물인 산호류이다. 2023년 현재, 금빛나팔돌산호, 둔한진총산호, 망상맵시산호, 미립이분지돌산호, 별혹산호, 깃산호, 유착나무돌산호, 잔가지나무돌산호, 착생깃산호, 측맵시산호, 검붉은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연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흰수지맨드라미, 빨강해면맨드라미, 긴가지해송, 망해송, 빗자루해송, 실해송, 해송 등 산호류 21종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래류 15종, 조류 16종 등). 하지만 산호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해양보호구역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의 비양도 수중 암반 지역, 차귀도 장군바위 외곽 암초, 화순 형제섬과 가파도 넓개 등 송악산 해역, 섶섬·문섬·범섬 등 서귀포 해역, 표선읍 해저 분화구 ‘금덕이여’ 일대, 성산 일출봉 앞 자리여, 우도 검멀레 절벽과 수중동굴 일대, 조천읍 북촌리 외곽 산호 군락지, 제주 북부 관탈도와 소관탈 등은 전문가 사이에 산호 군락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제주 전역의 산호 서식 조사를 통해 전체 공간을 종합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호’를 보호, 관리하기 위한 보호구역 지정을 제안하고 싶다.
또한, 장기적으로 산호를 포함 해양생태계 조사는 현지 다이버나 훈련된 시민과학자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아름다운 수중경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생물종과 서식 양상을 기록할 수 있는 ‘에코-다이버’를 양성하고 그 문화를 확산한다면,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공간에 대한 인식증진 효과도 있고 조사를 통해 축적된 자료는 해양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를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사 설계와 기록방식 관련 기관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미 서귀포항 동방파제에 건설 중인 해양레저체험센터의 경우, 그 사업목적을 해양레저와 관광 활성화가 아닌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연구 및 시민 인식증진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의 용도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해양보호구역과 해양보호생물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시민과학 프로그램과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면 바람직한 전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작성: 신수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센터장)
* 이 글은 2023년 8월에 작성하였으며, '2023 제주의 환경을 말하다(제주환경운동연합 연례보고서)'에 게재되었습니다.
* 영화 '물꽃의 전설' 소개 영상
1 ‘「제주연안 연산호 군락」 훼손 관련 추가 정밀조사 결과보고’를 작성한 조사기관(에코이앤비(주), 조사기간 2022.10.04.~2022.12.02)에 따르면, 조사면적 3,264㎡ 대비 훼손 면적 634㎡으로 훼손 면적 비율은 19.4%이다.
2 국립수산과학원 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