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파란 홍시가 간다] 삼십 년 차 스쿠버다이버가 보는 제주 바다, 어떻게 변했나? 이계준 님 인터뷰

2026-01-29
조회수 84


삼십 년 차 스쿠버다이버가 보는 제주 바다, 어떻게 변했나? 


홍시의말

제주 서귀포 문섬, 범섬 앞바다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비를 갖추고 배를 탈 준비를 하고 있다 보면 구릿빛 피부를 장착한 다이버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베테랑으로 보이는 이들이 어떤 한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짧은 인사말이지만 그 눈빛과 자세에 ‘존경’이 깃들어 있다. 제주 스쿠버다이빙 1세대라고 불리는 이계준 님이다. 창립 전부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제주 바다에 대한 조사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든든한 어른으로 존재하고 있다. 파란의 시민과학 활동에 기초가 되어 준 이계준 님을 지난 1월 14일에 서귀포에 있는 한 다이빙센터에서 만났다.  


b5e223a32a535.jpeg

다이빙센터 앞에서


전주에서 태어난 이계준 님은 1957년생이다.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2월 생이라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더니 형 친구들과 같은 학년이 되기도 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정읍에서 자랐다. 그 당시 정읍은 시골마을이었는데 학교에 가려면 도시락을 싸서 책가방을 메고 개울을 건너 다녀야 했다. 여름이면 큰 비가 와서 사람들이 비에 휩쓸려 가는 사고도 종종 났다. 평상시엔 돌 징검다리가 있어 그리 다녔는데 그게 물에 잠기면 다리가 있는 데로 멀리 돌아가야만 했고 그 거리는 8km가 넘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멱을 감았고 저수지에선 물고기를 잡았다. 가뭄이 들면 저수지가 쩍쩍 갈라지는데 저수지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물고기를 잡아 가마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좋아해 대학을 체육대로 진학했는데 수영 강사 자격증도 이때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갔고 사회에서의 첫 직업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평생의 반려인 배우자도 이 회사에서 만났고 사내 커플로 지내다가 이후 결혼에 골인했다. 첫 직장인 제약회사에 20년 정도 다니다 아내는 그대로 남고 이계준 님은 퇴사했다. 아내는 후에 총무이사 직함까지 달고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내내 자랑스러웠다. 


서울의 한 대형약국으로 이직해 5년 정도 근무하다가 이후 경기도 부평에서 선배가 하던 스포츠센터를 인수해 운영하게 되었다. 규모가 꽤 컸고 수영장의 레인도 많았다. 수영반 회원들을 지도했는데 베테랑 급인 마스터 반 회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가르쳤다. 꽤 인기 있었다. 그러나 큰 규모의 스포츠센터 운영은 쉽지 않았고 5년 정도 운영하다 접게 되었다. 


1997년 무렵 본격적으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연중 기온 차이가 큰 한국에서 스쿠버다이빙은 한 해에 5-6개월 밖에 못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필리핀으로 가 거기서 시즌을 보냈다. 손님들이 오면 공항으로 마중 나가 픽업하고 바다에 들어가 다이빙도 안내했다.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좋은 것도 많았지만 치안 측면에서는 불안한 점이 컸다. 지인이 사고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33a6556fab9d6.jpeg

다이빙 강습 중 중성 부력 잡아주는 중


한국에 들어와서는 제주도 서귀포로 바로 왔고 2007년부터 제주에서의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다이빙하러 많이 드나들던 곳이다. 제주도에 와 보니 산호도 많고 생태계도 좋았다. 지금은 최하 수온이 15도 정도인데 그 당시는 최하 수온이 13도까지 내려갔다. 겨울이면 바닷속에 몰망(모자반)이 하나 가득이라 다이빙하다 보면 오리발에 몰망이 수시로 걸리곤 했다. 바닷 속도 사계절이 있는데 봄의 바다가 가장 춥다. 바다는 한 계절씩 늦게 오기 때문이다. 수온이 낮으면 해조류가 왕성하게 자란다. 그 당시 제주 바다엔 미역, 감태 같은 해조류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이는 해녀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했다.     


다이빙은 주로 문섬, 범섬, 섶섬으로 다녔는데 섬 다이빙 방식이었다. 섬 다이빙은 배에 사람과 탱크를 싣고 가서 같이 내린 후 섬에서 탱크를 메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탱크를 맨 채, 바로 바다로 뛰어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다. 조류가 세거나 바다에서 섬으로 올라오는 역방향으로 흐를 땐 이를 거슬러 올라와야 하니 다이빙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빙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문섬의 작은섬(새끼섬)엔 하루에 150~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모두 산호를 보러 모여드는 것이다. 문섬은 조류가 매우 세다. 조류가 세다는 것은 플랑크톤이 많다는 거고, 플랑크톤이 많은 것은 산호들이 포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조건이 된다. 조류가 센 곳은 모든 것이 왕성하다. 플랑크톤, 산호,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그보다 더 큰 물고기 이렇게 차례로 먹이사슬을 이룬다. 당시 문섬은 한국 스쿠버다이빙의 메카였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계준 님 선배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 당시 다이빙 교육은 군대에서 사용하다 밖으로 흘러나온 스쿠버 장비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문섬이었고 다이빙은 굉장히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제주 스쿠버다이빙의 역사를 꿰고 있는 이계준 님에게 스쿠버다이빙의 1세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본인은 1세대까지는 아니고 1.5세대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한다. 

 

그는 바다에 나가면 굉장히 예민해진다. ADS(Association for Diving School)의 한국 본부장으로 오래 활동했는데 이 당시 자신은 트레이너들에게 매우 엄했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엄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관공서에 걸려 있는 깃발, 즉 풍향계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다로 나가 파도를 살피고 오늘은 어느 쪽으로 다이빙을 갈까, 살피고 결정했다.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그동안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어디에 어떤 바위가 몇 개 있다는 것까지 꿰고 있는 이계준 님은 어느새 ‘내추럴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ab8b310bc146f.jpeg

아들과 함께 문섬으로 다이빙 가는 중


운영하던 다이빙센터를 아들에게 넘긴 그는 이제는 가끔씩 바다에 들어간다. 예전과 달리 제주 바다는 모습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눈에 확인되는 생태계의 변화가 명확하다. 발에 걸릴 정도로 가득하던 감태가 사라지고 전에 없던 빛단풍 돌산호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수온이 올라간 것과 더불어 육지의 오염물질들이 바다를 상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온갖 항생제를 쓰는 양식장들과 농사에 쓰는 농약들이 비가 오면 그대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 제대로 관리 안 되는 하수종말처리장, 그리고 급격한 수온 변화가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쿠버 다이빙 초창기엔 해녀들과 갈등도 있었는데 다이버들이 해녀의 주 수입원인 ‘물건’을 가져간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오해는 풀렸지만 해녀들이 바다에서 건져갈 ‘물건’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b73b3da702563.jpeg69464aef3e6be.jpeg

제주 바다, 정방폭포 인근 바다에서 해양쓰레기 작업 중


그는 지금도 물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 이틀만 안 가면 바닷속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얘들은 어떻게 되어 있나, 쟤들은 또 어떻게 되어 있나 엄청 궁금하다. 아들이 운영하는 다이빙센터가 바쁠 땐 지원 차원에서, 간혹 본인의 손님이 올 때 함께 바다에 들어가곤 한다. 아무 일 없지만 가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땐 혼자 들어가기도 한다. 혼자 바다에 들어가면 혼자라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것도 보이는데 그때 한치는 번개처럼 빠르다. 한개창 안쪽에 수심 낮은 곳이 있는데 산란할 무렵의 한치들이 많이 모인다. 산란한 알이 며칠 지나면 알맹이가 투명했다가 점으로 보였다가 또 꿈틀거린다. 어떻게 변하나 이런 것들이 너무도 궁금하다. 자리돔 알 낳는 것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영역 싸움이 있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자리돔이 자신의 알을 지키려고 근처에 오는 것들을 마구 쪼아대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신비롭다. 비 오는 날 바다에 들어가 30분 정도 누워 있기도 한다. 빗속에 고요함이 있고 그 고요함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이계준 님에게서 바다에 대한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계준 님에게 바다 생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산호란다. 산호마다 모두 색깔이 다른데 각각의 색깔이 너무도 아름답단다. 가지고 간 돋보기로 산호의 폴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벌어졌다 오므라졌다 하는 그 움직임이 가히 환상적이라고 한다. 산호 중에 큰 가시수지맨드라미를 특히 좋아한다. 화려하고 투명하고 예쁘기도 한 큰 가시수지맨드라미는 다양한 색깔로 존재한다. 산호를 보려면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깊은 공간을 한없이  좋아한다. 아무 소리 안 나는 그 공간, 그 시간을 사랑한다.

 

30여 년 가까이 제주 바다에 뛰어든 이계준 님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면 자신이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깐깐하게 원칙을 지킨 덕분이라 생각한다. 만약 위험에 처한 다이버가 있다면 그 사람을 살리고 내가 가야겠다,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다. 이 일은 나의 전문직인데 상대의 사고는 결국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동안 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파란 창립 전부터 활동가들이 바다에 들어갈 때 성심껏 안내해 주었는데 그 이유는 이제 바다는 후배들의 것이라 생각했단다.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고 그런 것들이 토대가 되어 바다 생태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파란은 바다를 지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바다가 회복된다고 믿는다. 바다가 망가지면 인류도 멸망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에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신다. 젊은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젊은이들이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단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바다나 땅이나 모두 다 망가진다.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본인처럼 나이 든 사람도 젊은이들도 모두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결국 바다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6fd87c0e8bcdf.jpeg

이계준 님


지난 30여 년간 제주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계준 님의 제주 바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정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격하게 공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