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산
김병직 | 제주대학교 연구교수
성산일출봉의 남서쪽 해안에는 작은 포구가 하나 있다. 수마포(輸馬浦)다.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은 성산일출봉의 거대한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선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는 제주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스쿠버다이버나 프리다이버, 갯바위 낚시꾼을 제외하고 수마포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출봉 그늘에 펼쳐진 수마포 앞바다는 매력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성산 수마포 조간대 2002.11.12. ©김병직
수마포에는 화산이 만들어 낸 검은 현무암 절벽과 용암이 뒤섞인 바위 해안 사이로 검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나는 제주 바다를 처음 배웠고, 연구자로서 관찰을 시작했으며, 가족과 함께 바다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수마포 조간대1에는 작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남는다. 멀리서 보면 그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작은 생명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바위틈 사이를 재빠르게 헤엄치고, 작은 게와 새우들은 집게발로 무엇인가를 집어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바닷물은 잠시 물러났지만, 조간대 웅덩이의 좁은 공간 안에서는 여러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오랫동안 그런 물웅덩이들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늘 성산의 바다가 있었다. 처음 수마포에 온 것은 1992년 늦여름이었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앳된 대학생이었던 시절 선배들과 함께 수마포 조간대를 찾았다. 족대와 작은 뜰채, 그리고 채집통을 들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웅덩이 하나하나를 살폈다. 여기저기 흩어진 크고 작은 웅덩이를 기웃거리며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을 잡느라 분주했다. 선배가 몇몇 물고기의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뿐이었다. 제주 바다는 처음이었고, 제주 물고기 역시 낯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작은 도감을 펼쳐 놓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수마포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마치 그림 맞추기 같았다. 몸의 형태와 특징적인 색깔, 반문을 떠올리며 낮에 보았던 물고기들을 찾아갔다. 그날 수마포 조간대 웅덩이에서 살아가던 작은 물고기 하나하나에도 저마다의 이름과 삶이 있다는 사실은 어류학자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온전히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류학은 그 여름, 성산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 가을, 다시 성산 바다를 찾았다.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수산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1년쯤 지난 때였다. 학생이 아니라 젊은 어류학자로서 성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를 채집하는 일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물고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가며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물고기와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수마포 앞바다에는 여러 기억이 겹쳐 있다. 물고기 조사 때문에 수마포를 찾은 나는 예쁜 어린 딸을 보조 바퀴가 달린 조그마한 핑크빛 자전거에 태웠다. 그리고 바다를 앞에 둔 포구의 넓은 터에서 놀게 했다.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던 아내와 함께 조간대 웅덩이를 살폈다. 아내 역시 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꽤 괜찮은 한 팀이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망둑어나 가늘고 긴 베도라치가 눈에 띄었다. 재빨리 뜰채를 들이밀어 보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민첩했다. 작은 웅덩이 앞에서 둘이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한참이 지나 뒤돌아보았다. 딸아이는 혼자 노는 게 싫증이 났는지 자전거를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물이 빠진 미끄러운 바닷길을 넘어질 듯 말 듯 걸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웅덩이를 들여다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엄마 아빠, 물고기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수마포 조간대 웅덩이에는 작은 물고기들만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의 시간도 함께 담겨 있었다.

성산 앞바다 딸 아이 2005. 05. 04. ©김병직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는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니다. 작은 물고기와 게, 새우들이 말미잘과 해조 사이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작은 바다 생태계이다. 나에게 그곳은 현장 실험실이자 바다와 물고기를 배워 가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조간대 웅덩이를 들여다보다가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작은 망둑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은 녹색으로 비늘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진하게 감도는 물고기였다. 첫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녀석은 아직 우리 바다에서 기록되지 않은 한국 미기록종이다고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학술적 근거가 되는 최소한의 표본이 필요했다. 그늘 하나 없는 울퉁불퉁한 웅덩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물속을 뒤졌다. 그러나 웅덩이 바닥의 현무암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숨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물속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 녀석들에게 손바닥만 한 뜰채를 피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뾰족한 현무암 바닥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찔러왔다. 결국 뜰채로는 채집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전을 바꿨다. 웅덩이의 물을 조금씩 퍼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물을 퍼낸 끝에 겨우 세 마리의 소중한 표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망둑어는 제주 조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한 회색빛의 ‘풀비늘망둑(Eviota abax)’과 달리 녹색이 강했다. 제주보다 남쪽 바다에 주로 분포하는 종이어서 ‘남방풀비늘망둑(Eviota prasin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손에 넣은 표본들은 지금도 과학적 증거로서 표본소장기관에 소중히 보존되어 있다.

성산 수마포 남방풀비늘망둑 서식지 2002. 11. 12. ©김병직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웅덩이였지만, 그 안에서 한 생물종의 이름을 찾아 기록하는 과정은 나에게 연구자로서의 눈매와 손놀림,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수마포 앞바다에서 처음 발견한 물고기는 남방풀비늘망둑만이 아니다. 청베도라치과의 ‘검은점베도라치(Istiblennius dussumieri)’, 놀래기과의 ‘무점황놀래기(Pseudolabrus eoethinus)’, 그리고 활치과의 ‘남방제비활치(Platax orbicularis)’라는 이름도 이곳 성산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발견들은 제주 연안의 조간대가 물고기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나 작은 포구가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생물 서식지인 것이다. 물 빠진 바위틈과 작은 웅덩이를 관찰하며 물고기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아가며 바다에서 보낸 시간들. 연구자로서의 눈과 손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제주 바다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제주 연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조사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고기들이 달랐고 바다의 풍경도 조금씩 변했다. 바다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논문이나 도감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제주에서 보낸 그 시간은 내 연구 인생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남방풀비늘망둑_MRIC109 ©김병직
2007년 제주를 떠났다. 우리나라 생물다양성 연구를 총괄하는 국립 연구기관에 연구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 국가 연구자로서의 길을 열어 준 셈이었다. 그곳에서 1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물고기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문득문득 제주의 성산 바다가 떠오르곤 했다. 이름 모를 물고기를 들여다보던 풋풋한 대학생 시절의 성산 바다와, 열정 가득한 젊은 연구자로서 가족과 함께 바다를 기록하던 제주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2026년 1월,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나이 예순을 앞둔 지금,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주 바다를 만나려 한다. 스쿠버다이버들과 함께 우리 바다와 우리 물고기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시민과학 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다. 변해가는 제주 바닷속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싶다.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단편적인 조사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것이 바닷속의 변화이다.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다이버들은 바다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들이다. 어제와 오늘의 바다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물고기가 늘었고 어떤 물고기가 사라졌는지 그들은 몸으로 기억한다. 한 시간 남짓 숨 쉴 수 있는 공기탱크에 의지해 매일 같이 바다의 외침을 듣는다.
얼마 전 성산 바다를 다시 찾았다. 바닷물이 물러난 조간대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수마포에 처음 왔을 때처럼 웅덩이 속 물고기들을 들여다보았다.
1992년 여름,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이 막 움트던 대학생으로.
2002년 가을, 제법 학자티가 나던 젊은 연구자로.
그리고 2026년 봄, 오랫동안 학자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한 자연인으로.
나는 다시 성산 바다를 찾았다. 시간은 꽤 흘렀지만 성산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도 그대로였다. 그 안에 담긴 작은 바다에는 지금도 여러 물고기들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34년 전 처음 찾아왔던 그 웅덩이 앞에 다시 쪼그려 앉는다. 어쩌면 나에게 성산은 도착지가 아니라, 바다를 알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여러 번 되돌아오게 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나의 바다는 아마도 이곳 성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 제주 바다에서 계속되고 있다.
2026년 3월 광대나물이 연보랏빛 봄이 왔음을 알리는 서귀포에서

성산 수마포에서 2026.03.24. ©김병직
1 조간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해안 구간
성 산
김병직 | 제주대학교 연구교수
성산일출봉의 남서쪽 해안에는 작은 포구가 하나 있다. 수마포(輸馬浦)다.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은 성산일출봉의 거대한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선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는 제주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스쿠버다이버나 프리다이버, 갯바위 낚시꾼을 제외하고 수마포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출봉 그늘에 펼쳐진 수마포 앞바다는 매력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성산 수마포 조간대 2002.11.12. ©김병직
수마포에는 화산이 만들어 낸 검은 현무암 절벽과 용암이 뒤섞인 바위 해안 사이로 검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나는 제주 바다를 처음 배웠고, 연구자로서 관찰을 시작했으며, 가족과 함께 바다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수마포 조간대1에는 작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남는다. 멀리서 보면 그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작은 생명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바위틈 사이를 재빠르게 헤엄치고, 작은 게와 새우들은 집게발로 무엇인가를 집어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바닷물은 잠시 물러났지만, 조간대 웅덩이의 좁은 공간 안에서는 여러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오랫동안 그런 물웅덩이들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늘 성산의 바다가 있었다. 처음 수마포에 온 것은 1992년 늦여름이었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앳된 대학생이었던 시절 선배들과 함께 수마포 조간대를 찾았다. 족대와 작은 뜰채, 그리고 채집통을 들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웅덩이 하나하나를 살폈다. 여기저기 흩어진 크고 작은 웅덩이를 기웃거리며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을 잡느라 분주했다. 선배가 몇몇 물고기의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뿐이었다. 제주 바다는 처음이었고, 제주 물고기 역시 낯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작은 도감을 펼쳐 놓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수마포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마치 그림 맞추기 같았다. 몸의 형태와 특징적인 색깔, 반문을 떠올리며 낮에 보았던 물고기들을 찾아갔다. 그날 수마포 조간대 웅덩이에서 살아가던 작은 물고기 하나하나에도 저마다의 이름과 삶이 있다는 사실은 어류학자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온전히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류학은 그 여름, 성산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 가을, 다시 성산 바다를 찾았다.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수산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1년쯤 지난 때였다. 학생이 아니라 젊은 어류학자로서 성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를 채집하는 일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물고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가며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물고기와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수마포 앞바다에는 여러 기억이 겹쳐 있다. 물고기 조사 때문에 수마포를 찾은 나는 예쁜 어린 딸을 보조 바퀴가 달린 조그마한 핑크빛 자전거에 태웠다. 그리고 바다를 앞에 둔 포구의 넓은 터에서 놀게 했다.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던 아내와 함께 조간대 웅덩이를 살폈다. 아내 역시 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꽤 괜찮은 한 팀이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망둑어나 가늘고 긴 베도라치가 눈에 띄었다. 재빨리 뜰채를 들이밀어 보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민첩했다. 작은 웅덩이 앞에서 둘이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한참이 지나 뒤돌아보았다. 딸아이는 혼자 노는 게 싫증이 났는지 자전거를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물이 빠진 미끄러운 바닷길을 넘어질 듯 말 듯 걸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웅덩이를 들여다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엄마 아빠, 물고기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수마포 조간대 웅덩이에는 작은 물고기들만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의 시간도 함께 담겨 있었다.
성산 앞바다 딸 아이 2005. 05. 04. ©김병직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는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니다. 작은 물고기와 게, 새우들이 말미잘과 해조 사이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작은 바다 생태계이다. 나에게 그곳은 현장 실험실이자 바다와 물고기를 배워 가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조간대 웅덩이를 들여다보다가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작은 망둑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은 녹색으로 비늘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진하게 감도는 물고기였다. 첫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녀석은 아직 우리 바다에서 기록되지 않은 한국 미기록종이다고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학술적 근거가 되는 최소한의 표본이 필요했다. 그늘 하나 없는 울퉁불퉁한 웅덩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물속을 뒤졌다. 그러나 웅덩이 바닥의 현무암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숨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물속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 녀석들에게 손바닥만 한 뜰채를 피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뾰족한 현무암 바닥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찔러왔다. 결국 뜰채로는 채집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전을 바꿨다. 웅덩이의 물을 조금씩 퍼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물을 퍼낸 끝에 겨우 세 마리의 소중한 표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망둑어는 제주 조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한 회색빛의 ‘풀비늘망둑(Eviota abax)’과 달리 녹색이 강했다. 제주보다 남쪽 바다에 주로 분포하는 종이어서 ‘남방풀비늘망둑(Eviota prasin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손에 넣은 표본들은 지금도 과학적 증거로서 표본소장기관에 소중히 보존되어 있다.
성산 수마포 남방풀비늘망둑 서식지 2002. 11. 12. ©김병직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웅덩이였지만, 그 안에서 한 생물종의 이름을 찾아 기록하는 과정은 나에게 연구자로서의 눈매와 손놀림,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수마포 앞바다에서 처음 발견한 물고기는 남방풀비늘망둑만이 아니다. 청베도라치과의 ‘검은점베도라치(Istiblennius dussumieri)’, 놀래기과의 ‘무점황놀래기(Pseudolabrus eoethinus)’, 그리고 활치과의 ‘남방제비활치(Platax orbicularis)’라는 이름도 이곳 성산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발견들은 제주 연안의 조간대가 물고기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나 작은 포구가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생물 서식지인 것이다. 물 빠진 바위틈과 작은 웅덩이를 관찰하며 물고기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아가며 바다에서 보낸 시간들. 연구자로서의 눈과 손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제주 바다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제주 연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조사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고기들이 달랐고 바다의 풍경도 조금씩 변했다. 바다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논문이나 도감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제주에서 보낸 그 시간은 내 연구 인생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남방풀비늘망둑_MRIC109 ©김병직
2007년 제주를 떠났다. 우리나라 생물다양성 연구를 총괄하는 국립 연구기관에 연구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 국가 연구자로서의 길을 열어 준 셈이었다. 그곳에서 1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물고기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문득문득 제주의 성산 바다가 떠오르곤 했다. 이름 모를 물고기를 들여다보던 풋풋한 대학생 시절의 성산 바다와, 열정 가득한 젊은 연구자로서 가족과 함께 바다를 기록하던 제주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2026년 1월,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나이 예순을 앞둔 지금,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주 바다를 만나려 한다. 스쿠버다이버들과 함께 우리 바다와 우리 물고기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시민과학 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다. 변해가는 제주 바닷속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싶다.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단편적인 조사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것이 바닷속의 변화이다.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다이버들은 바다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들이다. 어제와 오늘의 바다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물고기가 늘었고 어떤 물고기가 사라졌는지 그들은 몸으로 기억한다. 한 시간 남짓 숨 쉴 수 있는 공기탱크에 의지해 매일 같이 바다의 외침을 듣는다.
얼마 전 성산 바다를 다시 찾았다. 바닷물이 물러난 조간대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수마포에 처음 왔을 때처럼 웅덩이 속 물고기들을 들여다보았다.
1992년 여름,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이 막 움트던 대학생으로.
2002년 가을, 제법 학자티가 나던 젊은 연구자로.
그리고 2026년 봄, 오랫동안 학자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한 자연인으로.
나는 다시 성산 바다를 찾았다. 시간은 꽤 흘렀지만 성산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수마포의 조간대 웅덩이도 그대로였다. 그 안에 담긴 작은 바다에는 지금도 여러 물고기들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34년 전 처음 찾아왔던 그 웅덩이 앞에 다시 쪼그려 앉는다. 어쩌면 나에게 성산은 도착지가 아니라, 바다를 알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여러 번 되돌아오게 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나의 바다는 아마도 이곳 성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 제주 바다에서 계속되고 있다.
2026년 3월 광대나물이 연보랏빛 봄이 왔음을 알리는 서귀포에서
성산 수마포에서 2026.03.24. ©김병직
1 조간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해안 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