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영
예혁 | 뮤지션, 자연환경해설사
나는 내 고향 통영바다를 보면 눕고 싶어진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잠결에도 들려오는 듯한 항구 가까이에서 자라는 동안, 바다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집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새끼 물고기처럼 꼬마이던 시절, 아장아장 거닐며 본 통영항에는 사방으로 부표 같은 섬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원에 놓인 듯한 바위틈에서 어린 게들이 왁자하게 몰려다녔다. 보리물결 장판이 깔린 거실에는 지느러미를 세우고 초롱초롱하게 물밑을 응시하는 어선들 사이로 여객선들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소금 볕이 물메기를 말리는 베란다 옆으로는 갯바람을 맞으며 통발들이 쉬고 있었다. 그곳이 나의 침실이고 노는 거실이고 밥을 먹고 자라는 부엌이었다. 또래보다 몸이 약했던 나는 뛰노는 아이들의 꽁무니를 헐레벌떡 쫓아다니는 것보다는 천천히 바다의 집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부표 같은 섬들이 벽을 이루는 통영 ©예혁
밤이 들면 고요한 바다 위에 별이 내려와 박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 반짝여보였다. 나는 무척 궁금했다. 별은 왜 반짝이는 걸까. 매일매일 찾아들어 세상을 감돌며 하얗게 내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가방이 무거워지던 청소년 무렵부터는 밤바다를 관찰하며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보낸 이삼십 대 동안 세상의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어릴 적 그 바다를 기억하기가 힘들어지곤 했다. 더 이상 별이 반짝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졌다.
나는 소금 같은 글을 바다에 뿌리며 사는 사람이고 싶었었다. 하지만 한적한 바다에 익숙한 나의 일상에 독기 서린 세상이 태풍으로 닥쳐오며 꿈들이 흔들렸다. 긴 진동의 시간 동안 나는 차츰 부서져갔다. 겁 없이 방랑했던 젊음은 생활의 풍파 앞에서 짠물만 삼켜야 했다.
그렇게 내가 난파선 마냥 길을 헤매는 동안 아버지는 당뇨망막 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어둠에 갇힌 아버지에게 암들도 절망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별 잃은 도시의 시린 밤보다 더한 암흑의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별 하나로 올려 보내드리기 위해 다시 집 같은 통영 바다에 섰다. 바다는 여전히 잘 지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세월이 만드는 소용돌이에 빛나는 무언가를 계속 빠트리며 살았다. 내가 잃어버린 빛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너울로 이는 슬픔을 바다에 게워냈다. 열망하던 기억들이 구토처럼 쏟아졌다. 그러고는 열망의 파편을 한참 바라보았다. 밤바다에 내려앉은 별빛 사이로 파편들이 반짝이며 떠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 궁금해졌다. 저 바다 위의 별은 왜 반짝이는 걸까. 어둠을 이기고 기어이 반짝이는 빛들이 바다에 여전히 무성했다. 어린 시절부터 뒤뚱거리는 지금까지 늘 바다에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둠 내려앉은 통영항 ©예혁
‘늘’. ‘늘’이라는 단어는 경이롭다. 별은 바다에서 억겁의 시간에 걸쳐 순백으로 드리웠을 것이다. 저들 중에는 부처와 예수가 살던 시대에 출발한 빛도 있다. 지구별에서 벌어져 온 숱한 질곡과 희열의 순간에 존재한 빛들이 바다에 뿌려진다. 암흑에 틈을 만드는 별빛들이 어쩌면 수억 년 전부터 바다 같은 세상에 필요한 지혜들을 우리에게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제야 나는 별이 반짝이는 이유에 답을 떠올렸다. 캄캄한 바다에서 별자리가 인류의 물길을 인도해왔듯, 선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원들이 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노래하며 적막한 공포의 물살을 청미하고 우렁차게 헤쳐 나갔듯 지금 우리 삶의 항해도 그러하라고. 우리의 밤길을 밝히는 별자리는 전쟁 같은 세계에서도 예술이 되고 철학이 된 선인들의 목소리다.
별은 수험서에 자리를 내준 탈색된 문학 전집에서도 반짝이고, 이윤의 법칙으로 쌓아 올려진 대학에서 쫓겨난 불온한 역사 강의실에서도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빛을 향해 불나비처럼 날고 싶어졌다. 레일을 질주할 때는 보지 못하던 밤빛은 넘어지고 멈추었을 때 비로소 보인다. 외롭고 괴로울 때 멍하니 바다를 본다. 별이 된 아버지가 흔들리는 나를 이 바다에 다시 세웠듯이 말이다.

낮의 통영항 ©예혁
먼 과거의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바다의 별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우주의 시간을 뚫고 빛이 내리는 바다를 보노라면 나보다 조금 먼저 그곳을 다녀간 이들이 느껴진다. 통영바다에서 자라며 별을 하염없이 보았을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그리고 또 많은 바다의 아이들이 모진 풍랑을 버티는 갯가의 표정들과 무상한 바다를 글로, 음표로, 색으로 남겼다. 그리고 나도 바다에 닿는 빛들을 주워 필통에 채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음악인의 길을 항해 중이다. 결국 내 지난 시간은 바다라는 나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긴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통 영
예혁 | 뮤지션, 자연환경해설사
나는 내 고향 통영바다를 보면 눕고 싶어진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잠결에도 들려오는 듯한 항구 가까이에서 자라는 동안, 바다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집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새끼 물고기처럼 꼬마이던 시절, 아장아장 거닐며 본 통영항에는 사방으로 부표 같은 섬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원에 놓인 듯한 바위틈에서 어린 게들이 왁자하게 몰려다녔다. 보리물결 장판이 깔린 거실에는 지느러미를 세우고 초롱초롱하게 물밑을 응시하는 어선들 사이로 여객선들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소금 볕이 물메기를 말리는 베란다 옆으로는 갯바람을 맞으며 통발들이 쉬고 있었다. 그곳이 나의 침실이고 노는 거실이고 밥을 먹고 자라는 부엌이었다. 또래보다 몸이 약했던 나는 뛰노는 아이들의 꽁무니를 헐레벌떡 쫓아다니는 것보다는 천천히 바다의 집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부표 같은 섬들이 벽을 이루는 통영 ©예혁
밤이 들면 고요한 바다 위에 별이 내려와 박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 반짝여보였다. 나는 무척 궁금했다. 별은 왜 반짝이는 걸까. 매일매일 찾아들어 세상을 감돌며 하얗게 내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가방이 무거워지던 청소년 무렵부터는 밤바다를 관찰하며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보낸 이삼십 대 동안 세상의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어릴 적 그 바다를 기억하기가 힘들어지곤 했다. 더 이상 별이 반짝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졌다.
나는 소금 같은 글을 바다에 뿌리며 사는 사람이고 싶었었다. 하지만 한적한 바다에 익숙한 나의 일상에 독기 서린 세상이 태풍으로 닥쳐오며 꿈들이 흔들렸다. 긴 진동의 시간 동안 나는 차츰 부서져갔다. 겁 없이 방랑했던 젊음은 생활의 풍파 앞에서 짠물만 삼켜야 했다.
그렇게 내가 난파선 마냥 길을 헤매는 동안 아버지는 당뇨망막 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어둠에 갇힌 아버지에게 암들도 절망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별 잃은 도시의 시린 밤보다 더한 암흑의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별 하나로 올려 보내드리기 위해 다시 집 같은 통영 바다에 섰다. 바다는 여전히 잘 지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세월이 만드는 소용돌이에 빛나는 무언가를 계속 빠트리며 살았다. 내가 잃어버린 빛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너울로 이는 슬픔을 바다에 게워냈다. 열망하던 기억들이 구토처럼 쏟아졌다. 그러고는 열망의 파편을 한참 바라보았다. 밤바다에 내려앉은 별빛 사이로 파편들이 반짝이며 떠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 궁금해졌다. 저 바다 위의 별은 왜 반짝이는 걸까. 어둠을 이기고 기어이 반짝이는 빛들이 바다에 여전히 무성했다. 어린 시절부터 뒤뚱거리는 지금까지 늘 바다에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둠 내려앉은 통영항 ©예혁
‘늘’. ‘늘’이라는 단어는 경이롭다. 별은 바다에서 억겁의 시간에 걸쳐 순백으로 드리웠을 것이다. 저들 중에는 부처와 예수가 살던 시대에 출발한 빛도 있다. 지구별에서 벌어져 온 숱한 질곡과 희열의 순간에 존재한 빛들이 바다에 뿌려진다. 암흑에 틈을 만드는 별빛들이 어쩌면 수억 년 전부터 바다 같은 세상에 필요한 지혜들을 우리에게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제야 나는 별이 반짝이는 이유에 답을 떠올렸다. 캄캄한 바다에서 별자리가 인류의 물길을 인도해왔듯, 선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원들이 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노래하며 적막한 공포의 물살을 청미하고 우렁차게 헤쳐 나갔듯 지금 우리 삶의 항해도 그러하라고. 우리의 밤길을 밝히는 별자리는 전쟁 같은 세계에서도 예술이 되고 철학이 된 선인들의 목소리다.
별은 수험서에 자리를 내준 탈색된 문학 전집에서도 반짝이고, 이윤의 법칙으로 쌓아 올려진 대학에서 쫓겨난 불온한 역사 강의실에서도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빛을 향해 불나비처럼 날고 싶어졌다. 레일을 질주할 때는 보지 못하던 밤빛은 넘어지고 멈추었을 때 비로소 보인다. 외롭고 괴로울 때 멍하니 바다를 본다. 별이 된 아버지가 흔들리는 나를 이 바다에 다시 세웠듯이 말이다.
낮의 통영항 ©예혁
먼 과거의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바다의 별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우주의 시간을 뚫고 빛이 내리는 바다를 보노라면 나보다 조금 먼저 그곳을 다녀간 이들이 느껴진다. 통영바다에서 자라며 별을 하염없이 보았을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그리고 또 많은 바다의 아이들이 모진 풍랑을 버티는 갯가의 표정들과 무상한 바다를 글로, 음표로, 색으로 남겼다. 그리고 나도 바다에 닿는 빛들을 주워 필통에 채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음악인의 길을 항해 중이다. 결국 내 지난 시간은 바다라는 나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긴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