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도
강윤희 | 우도 천진리 해녀
- 바다만큼 큰 스승은 없다 -
나는 우도에서 나고 자라 인생의 중반을 돌아 어머니의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해녀 언니들과 서툰 숨비소리를 내며 해녀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의 우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질하는 우도 해녀 ©강윤희
성산일출봉과 한라산, 지미봉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곳. 본섬과 우도 사이, 크고 작은 여가 넓게 펼쳐진 넙대기 바당이 나의 무대다.
2023년 봄, 넙대기 바다를 처음 마주했다. 시어머니께서 평생 물질하며 지켜온 바다였기에 숨을 참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은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어머니의 품처럼 고요하고, 또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바닷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우미 물질을 시작으로 미역, 톳, 성게 물질을 지나 오분자기와 소라 물질에 이르기까지 바다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나는 선배 해녀 언니들에게 물질에 필요한 기본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다.
새 해녀가 바다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때에 맞게 물질 도구를 챙기는 일부터 물때를 읽는 법. 그리고 해산물과 해조류를 구분하고 캐는 방법까지 익혀야 한다. 바닷속 지형을 차근차근 알아가는 일은 긴 호흡과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물질 시작하던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에 고난의 연속이다. 몸에 맞지 않는 고무옷을 입고 벗느라 매번 찢기고 풀로 붙이기 일쑤였다. 물안경을 거꾸로 쓰는 바람에 얼굴에 물이 줄줄 스며들기도 하고, 연철 차는 걸 깜빡한 채 물에 들어가 몸이 둥둥 뜨는 웃픈 기억도 있다.
특히 물멀미가 심한 나는 바다에 들 때마다 먹을 것을 모두 게워 내는 괴로움을 오래 견뎌야 했다. 들고 나는 때를 잘 몰라 조류에 휩쓸리다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 적도 여러 번 있다. 뒤집힌 파도에 밀려 엿 동산 위로 올라앉아 다칠뻔한 순간도 있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고 견디며 숨비다 보면 코밑은 헐고 입술은 터져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던 날들도 적지 않았다.

물질하는 우도 해녀 ©강윤희
그럼에도 바다는 묵묵히 제 시간을 살아간다. 봄이면 해초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스스로를 내어주어 다시 바다로 돌아가 다음을 준비한다. 이 순환을 바다는 해마다 반복한다.
넙대기 바다에서 나는 두 번의 아기거북을 만났다.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연산호와 무낭(해송)이 있는 바다정원이 펼쳐지고. 크고 작은 물고기 떼가 무리 지어 다닌다. 그러다 감태 숲이 우거진 어둡고 깊은 바닷속으로 언니들이 들어갈 때면 눈물 나도록 서글픈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도 바닷속 연산호 ©강윤희
이 모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바다에서 서두르지 않는 것을 배웠다. 천천히 과정을 견디며, 소라 서너 개 건진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언니들 따라 부지런히 숨비다 보면 바다에서 직접 잡은 소라 두 개, 해삼 하나, 문어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곤 한다.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얼굴에 함박웃음이 솟아난다. 언젠가 나 또한 이 바다에서 그렇게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도 해녀탈의장 앞에서 ©강윤희
바다에 몸이 적응됐는지, 올해 들어 물멀미가 사라졌다. 속이 편안해지자 바다를 읽는 시야도 조금 넓어졌다. 이제는 언니들과 함께 먼바다로 나간다. 넙대기의 거센 파도와 조류를 견디며, 숨을 참고 오랜 시간 물질을 이어온 언니들에 대한 존경과 이해도 깊어졌다.

바다로 향하는 우도 해녀들 ©강윤희
호~~이
나는 해녀의 고향, 우도 바다에서
해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 바다가 알려주는 대로 인생을 다시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우도 해녀들 ©강윤희
우 도
강윤희 | 우도 천진리 해녀
- 바다만큼 큰 스승은 없다 -
나는 우도에서 나고 자라 인생의 중반을 돌아 어머니의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해녀 언니들과 서툰 숨비소리를 내며 해녀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의 우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질하는 우도 해녀 ©강윤희
성산일출봉과 한라산, 지미봉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곳. 본섬과 우도 사이, 크고 작은 여가 넓게 펼쳐진 넙대기 바당이 나의 무대다.
2023년 봄, 넙대기 바다를 처음 마주했다. 시어머니께서 평생 물질하며 지켜온 바다였기에 숨을 참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은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어머니의 품처럼 고요하고, 또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바닷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우미 물질을 시작으로 미역, 톳, 성게 물질을 지나 오분자기와 소라 물질에 이르기까지 바다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나는 선배 해녀 언니들에게 물질에 필요한 기본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다.
새 해녀가 바다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때에 맞게 물질 도구를 챙기는 일부터 물때를 읽는 법. 그리고 해산물과 해조류를 구분하고 캐는 방법까지 익혀야 한다. 바닷속 지형을 차근차근 알아가는 일은 긴 호흡과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물질 시작하던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에 고난의 연속이다. 몸에 맞지 않는 고무옷을 입고 벗느라 매번 찢기고 풀로 붙이기 일쑤였다. 물안경을 거꾸로 쓰는 바람에 얼굴에 물이 줄줄 스며들기도 하고, 연철 차는 걸 깜빡한 채 물에 들어가 몸이 둥둥 뜨는 웃픈 기억도 있다.
특히 물멀미가 심한 나는 바다에 들 때마다 먹을 것을 모두 게워 내는 괴로움을 오래 견뎌야 했다. 들고 나는 때를 잘 몰라 조류에 휩쓸리다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 적도 여러 번 있다. 뒤집힌 파도에 밀려 엿 동산 위로 올라앉아 다칠뻔한 순간도 있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고 견디며 숨비다 보면 코밑은 헐고 입술은 터져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던 날들도 적지 않았다.
물질하는 우도 해녀 ©강윤희
그럼에도 바다는 묵묵히 제 시간을 살아간다. 봄이면 해초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스스로를 내어주어 다시 바다로 돌아가 다음을 준비한다. 이 순환을 바다는 해마다 반복한다.
넙대기 바다에서 나는 두 번의 아기거북을 만났다.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연산호와 무낭(해송)이 있는 바다정원이 펼쳐지고. 크고 작은 물고기 떼가 무리 지어 다닌다. 그러다 감태 숲이 우거진 어둡고 깊은 바닷속으로 언니들이 들어갈 때면 눈물 나도록 서글픈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도 바닷속 연산호 ©강윤희
이 모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바다에서 서두르지 않는 것을 배웠다. 천천히 과정을 견디며, 소라 서너 개 건진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언니들 따라 부지런히 숨비다 보면 바다에서 직접 잡은 소라 두 개, 해삼 하나, 문어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곤 한다.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얼굴에 함박웃음이 솟아난다. 언젠가 나 또한 이 바다에서 그렇게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도 해녀탈의장 앞에서 ©강윤희
바다에 몸이 적응됐는지, 올해 들어 물멀미가 사라졌다. 속이 편안해지자 바다를 읽는 시야도 조금 넓어졌다. 이제는 언니들과 함께 먼바다로 나간다. 넙대기의 거센 파도와 조류를 견디며, 숨을 참고 오랜 시간 물질을 이어온 언니들에 대한 존경과 이해도 깊어졌다.
바다로 향하는 우도 해녀들 ©강윤희
호~~이
나는 해녀의 고향, 우도 바다에서
해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 바다가 알려주는 대로 인생을 다시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우도 해녀들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