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당진과 서산 | 물도깨비

2026-06-25
조회수 138

당진과 서산

물도깨비 | 한바랄

 

탁하고 잔잔한 바다

태어나길 도시 한가운데서 태어난 나. 산과 바다는 멀기만 한 도시 한가운데의 인간인데도 나는 바다가 더 고향 같다. 돌아가야만 하는 곳, 바다는 언제나 깊고 탁한 색으로 느리게 넘실거리며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도시는 뭐라도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굶어 죽기라도 할 것처럼 숨통을 조인다. 정신이 비쩍 말라붙어 도저히 못 견디겠을 때마다 나는 주춤주춤 짐보따리를 싸고 홀홀히 바다로 떠나게 된다.

 

내게 ‘바다’하면 떠오르는 것은 푸르른 수평선과 백사장이 아니라 게와 조개들이 뽀글뽀글, 빠끔거리는 갯벌이다. 그 소리하며 짭짤한 냄새를 어떻게 잊을까? 아빠를 따라 친할머니 댁이 있는 충청남도 당진 일대의 바다를 자주 쏘다니다보니 나에게 갯벌은 바다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었다. 어딜가나 물살이가 바글거리니 눈을 어디로 돌려도 활기가 넘친다. 분주하고 작은 마을이 바위마다, 바위 아래 웅덩이마다 번성한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담황줄말미잘이 옹기종기 모여 촉수를 가다듬고, 줄새우가 톡톡 튀듯이 잘은 움직임으로 사이를 누빈다.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는 눈치를 살피는 침침한 소라게들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숨바꼭질을 한참 하고나면 다리가 저린 줄도 모르고 한두시간은 금방 가기 마련이다.

 

갯벌 탐사 도감이 다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가며 생김새를 익혔던 나는 어느덧 다달이 출근하듯 제주도의 문섬과 범섬을 오가고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 이끌려 수심 20여 미터까지 잠수해 산호들을 기록하는 시민과학자가 되어 있다니, 가끔은 지금의 내가 당연하다가도 낯설다. 분명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른이 된 내가 갯벌에서 조간대 생물을 코 박고 들여다보며 연구하는 괴짜가 되어 있을 줄로만 알았다.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가끔은 갯벌에 잘 가지 않는 내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좋은 거지.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 준 그리운 바다, 충남 당진과 서산 일대의 바다를 다시 돌아본다.


나의 몸은 맵싸리, 바카지, 바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손바닥이 지금 내 손의 절반 크기밖에 안 될 만큼 어릴 때, 젊었던 아빠는 사회 초년생의 월급으로 우리집을 지탱하기도 벅찼다. 게다가 당시 부모님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친가에 대부분의 돈을 보태느라 생활비가 빠듯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친할머니 댁에 갈 때 딱하니 귀하고 좋은 것을 사들고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다리가 부러질듯 가득 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바글바글 끓는 게국지가 낮은 전골냄비에 담겨 한가운데에 놓이고, 그 옆에는 투박한 간장게장, 삶은 맵싸리, 생굴, 깻잎 절임과 바지락국이 같이 올라왔다. 바닥이 찌그러진 큰 주전자에 담긴 뜨뜻미지근한 보리차를 사발에 따라 들이키고 있자면 할머니는 어느새 나와 언니 옆에 엉덩이를 붙여 앉아 등딱지가 날카로운 바카지*를 발라서 우리 밥그릇에 그득히 올려주셨다. 언제나 담백한 초록보다 짭짤하고 비린 것이 많은 밥상인데도 어린 우리는 곧잘 야무지게 받아먹고는, 배가 불러 한껏 나른해진 채로 따끈한 아랫목에 드러누워 강아지들과 함께 뒤엉켜 낮잠을 잤다. 

*바카지(박하지): 민꽃게를 이르는 충남 해안 지역 방언. 

 

언제나 바다는 변변찮은 형편의 우리에게 넉넉한 한상을 차려주는 품이었다. 할머니 댁은 당진시 안에서도 바다와 조금 떨어진 안쪽에 있었는데, 이따금 간조가 되면 차로 십여 분 거리의 가까운 바다로 나서곤 했다. 우리 가족은 들통과 호미를 지고 논일할 때 쓰던 장화를 꿰어 신은 채 갯벌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가 언니와 함께 한참을 바위 밑 웅덩이를 휘젓고 다니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동안 할머니는 호미로 굴을 캐거나, 바닥을 긁어 바지락을 잡거나, 맵싸리를 찾아 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휘휘 다니셨다. 머지않아 할머니의 들통은 다음 날 종일 먹을 만큼 가득 차곤 했다. 어린 내 눈에 바다를 속속들이 아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바닷새 그 자체였다. 콕콕 찍어 쑤시기도 하고, 때로는 펄을 뒤집고, 재빠르게 낚아채는 모습을 보면 인간도 실은 다른 생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도 바다에서 같이 살아가는 일부구나, 어린 나는 그런 당연한 이치를 바다에게서 배웠다. 


d7263f40bc0f8.png

왜목마을 갯벌, 사진 출처 | 당진시

 

바다가 내어 준 맵싸리, 바카지, 바지락으로 자란 나는 이제 그들을 들여다본다. 나는 그들이 먹여 살렸다. 나의 뼈와 근육과 연한 조직은 분명 바카지, 맵싸리, 바지락, 미역, 우럭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들을 먹고 자란 나의 부분이 바다라면 나도 나중에 먹히고 분해되어 바다 뭇 생명들의 일부가 될 때가 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해보면 바다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꼭 연결된 기분이 든다. 


상괭이의 집

시속 30km, 도심 주행이라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나 낼 법한 속도이다. 정해진 길 위에서 나란히 앞뒤로 달리는 차들과 같이 달리면 오히려 느리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사방에 드물게 보이는 부표와 깃대뿐인 바다라면 어떨까. 망망한 바다 위, 파도를 가르고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시속을 올리자면 조금의 변속과 변침만으로도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리력이 나를 치고받는 것만 같아 뒷목이 오싹거린다. 곧게 버티고 선 다리 사이에 운전석의 안장을 단단히 끼고 힘을 준다. 1톤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모터보트의 뱃머리를 조금씩 틀어 가며, 모터가 혹시 모를 암초에 처박히지 않도록 뱃길을 흘끔대며 섬 사이로 나아간다.

 

당진에서 서산으로 넘어가자마자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육지 끄트머리에 작은 배를 띄우기 딱 좋은 항구인 삼길포항이 있다. 여기에서 배로 30여 분을 달리면 소난지도와 대난지도를 지나 육도가 보이는 섬 사이의 바다에 다다른다. 3미터가 될까 말까 하던 수심은 어느새 25미터까지 깊어진다. 배를 멈추고 시동을 끈 나는 조류에 따라 시속 0.6km도 안 되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 아버지의 “뱃머리 좀 다시 어초로 돌려 봐”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넋을 놓고 섬 사이와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는 보트의 난간에 기대 서서는 ‘푸슈’ 내지는 ‘점벙’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330697ea80b04.png

저멀리 지나가는 상괭이 ©이채환

69cf6f5c6272c.jpeg

가까이 등을 보인 상괭이 ©상괭이편


가끔 갈매기들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수면의 특정한 지점에 갑자기 모여든다. 혹은 갑자기 새까맣고 민들거리는 것이 소리 없이 스윽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하면 보통 거의 십수 분에 한 번씩 두어 명의 상괭이들이 잇따라 들락날락거리며 지나가곤 한다. 섬 바다의 주인 상괭이는 자주 우리를 살피고 지나간다. 상괭이가 나타날 때면 나는 숨을 죽이고 그들의 기척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배에 부딪히는 잘은 파도 소리밖에 나지 않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숨소리는 소름이 돋을 만큼 감격스럽다. 이런 존재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도시에서는 잊고 살았던 자연의 신비로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낚시꾼들은 자신의 낚싯감을 다 잡아먹는다며 상괭이를 싫어한다고 한다. 배로 너무 가까이 다가온 상괭이를 쫒아내려고 노로 때리는 사람도 있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남의 집에 배를 몰고 들어온 사람이다. 남의 집 밭과 곳간을 털어 놓고선 겸손하게 물러나지 못할망정 점입가경인 꼴이다. 나는 속으로 잔뜩 인간을 괘씸해하면서 괜히 한 번씩 레저 낚시를 즐기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한다. 그러다가도 배를 몰고 나온 나도 사실 마찬가지인데, 시무룩해져서는 어떻게 하면 상괭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지 고심하게 된다.


멋모르고 지나가던

자라면서 부쩍 서먹해진 나와의 사이를 잇기 위해 종종 아버지는 나더러 바다에 가자고 꼬신다. 배를 바다에 한 번 띄워 봐야 하지 않겠냐, 날씨가 좋던데 배 한 번 몰아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에 나는 반은 마지못해, 그리고 나머지 반은 조금 기꺼운 마음으로 따라가곤 한다. 작년 초여름 어느 날.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걷던 아빠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툭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원래 고향이 여기야, 대산.” 당진 기지시가 아니라 대산이라고? 27살이 되도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놀라운 얘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학교 끝나고 집까지 몇 시간이 걸려서 걸어 다녔어. 여기가 매립되고서는 한참을 걸어서 소풍도 갔어.” 

 

여기가 원래 다 바다였어. 그 말을 하는 아빠의 표정을 봤어야 한다. 아빠는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서도 언젠가 내게 개발을 위해서라면 바다가 매립되어도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바다가 그리운 걸까? 집에 돌아오고 난 후 며칠이 지나서야 더 물어봤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빠가 자라온 바다와 내가 자란 바다가 완전히 달랐구나. 뒤늦게 서해안의 어색하리만치 곧은 해안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길러 준 바다를 이제 내가 돌봐야 할 때가 된 걸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의 등이 작아 보이듯이 이제는 그 너르고 영원히 아름답기만 할 것 같았던 바다가 한없이 마음에 걸린다. 환경 운동을 하며 파괴와 공존을 배우기 위해서 구태여 멀리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돌이켜 본 당진의 바다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었다.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