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
조은별 | 동상동 해녀

표선 바다에서 물질 전
제주 동쪽 표선 바다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처음 물질을 시작했던 그 바다입니다.
열세 분의 해녀 삼춘들 앞에서 면접을 보고, 해녀가 되어가는 첫 순간을 담은 시입니다.
〈해녀 면접〉
“어디 살암시니?
어멍, 아방은 이시냐?
무사 물질은 허잰햄시니?
공부 헌 아이가 미시거허래(뭐하러) 촌에 와시니?
말은 알아 먹엄시냐?
물질 허민 얼굴 카그네 시커멍해영 못생겨지매
야이, 고생길 훤햄쩌?
반찬값도 못 벌껀디 서방이 돈 하영(많이) 벌엄시냐?”
“야이, 아이가 빙삭이(빙그레) 잘 웃엄쩌이. 오늘부터 물질허라”
그렇게 나는 해녀가 되었다.
해녀 면접이 끝난 뒤, 드디어 바다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물질 후에 빈 테왁을 들고 물 밖으로 나올까 봐 걱정된 삼춘들은 제 테왁에 소라를 한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함께 나누는 해녀들의 '게석 문화'를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해녀 공동체를 배웠습니다.
〈아기해녀 첫 물질〉
테왁과 잠수복 채비하고
삼춘들 따라 바다로 간다.
닻 돌멩이를 찾고
쑥으로 수경을 닦는다.
이리저리 소라 찾아
바다 휘저을 때
삼춘 한 명씩 다가와
몰래 건넨 소라 한 주먹
“은별이 소라 하영 잡았쪄.”
“잘만 배우민 물질 잘허키여. 꼬마 상군인게”
열세 명 삼춘들과 나만 아는 비밀 이야기
해녀들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다이빙 기술과 물때와 바람을 보는 어플로 바다를 쉽게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늘 예상을 뛰어 넘었습니다.
파도가 높아 물질을 하지 못 하는 날이면 해녀 탈의장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 삼춘들이 바다를 향해 흥얼거리던 자장가 노래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파도야, 파도야, 잠잠해라. 우리 해녀들 물질허게.”
바다에서 바람은 물질을 하러 들어가야 하는지, 물러서야 하는지 판단하는 생존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거친 바람과 파도 앞에서 해녀들은 서로의 벗이 되어 생명을 지켜줍니다.
저 역시 삼춘들의 든든한 물벗이 되고자 인명구조 교육을 받았고, 안전하게 물질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잠잠하라〉
잔치 커피 마시며 기다려도
성난 파도 거칠기만 하네
벌써 두 시간째,
내 마음도 모르고
분주하고 들썩이는 구나
고요한 마음, 충만한 사랑이
가득차고 싶구나
내 마음도, 파도도 잠잠하라
해녀들 물질하게
파도야 파도야 잠잠하라

표선바다와 수평선에 뜬 무지개 ©조은별
멸치 때가 휘감아주는 찬란함을 느끼고, 바다 물고기를 따라 수영하며 물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계형 물질을 하는 해녀는 낭만 가득한 바다 작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게 작업을 하면, 손톱 밑에 성게 가시가 자주 박히기도 합니다. 또한 거센 파도에 물 속에서 두 세바퀴 구르다가 간신히 바위를 붙잡았지만, 무릎과 엉덩이에 성게 가시가 잔뜩 찔려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성게 가시 파고드는 밤〉
검은 가시 한 올
손끝이 시리듯 쑤셔
피부 속 깊은 곳에 숨어든다
바늘로 살을 헤집고
식초에 담그고,
오줌 방울 적셔도
고집 센 가시는
더욱 뿌리내려
온 신경을 손가락 끝자락에 붙들어둔다
작년 이맘때,
무르팍에서 억세게 뽑아낸 성게 가시 하나
남은 자리에 동그란 연골이 솟아
손길 닿을 때마다
묵은 통증 은은히 되살아난다
문득,
내 말속에도 가시가 돋아
당신 마음 후벼 파고
찔러 온 적은 없는지
체증처럼 솟구치는 기억되어
성게 가시 박힌 손가락과 무르팍이
나를 조용히 불러 세운다
물질을 하다 보면 삼춘들이 툭 던지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는 날이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제주어 속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삼춘들의 입말을 고스란히 살리며 기록하고, 정겨운 순간들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해녀들의 바당 속 지혜〉
“네 숨만큼 허라”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만큼,
자족하는 삶을 살아라
“숨 이실 때 올라오라”
지치지 않는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구쟁기 고득 담은 테왁은
아멩 버쳐도 느가 들엉 나와선다.”
(뿔소라 가득 담은 테왁은 아무리 힘들어도 너가 들고 나와야 한다.)
내 삶의 무게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물벗은 함께 물질하는 동료이자 인생의 벗입니다. 거친 바다에서 서로를 지켜낸 해녀들처럼 우리 곁에도 서로를 지켜주는 소중한 벗들이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바다가 전하는 위로가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물질 시작 전 ©조은별
〈물벗, 인생의 벗이 될 때〉
낯설고 바람 거센 타향살이
바다의 품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제주 바다의 숨결을 배우며
숨비소리 따라
서로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다
물결처럼 스며드는 취향,
바다보다 깊고
소금보다 진한 정이 잔잔히 맺혀간다
이 섬이 더 이상 홀로 아닌 건
같은 바다를 향해
숨을 고르는
인생의 벗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조은별 물소중이 | 사진_ 양종훈
표선
조은별 | 동상동 해녀
표선 바다에서 물질 전
제주 동쪽 표선 바다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처음 물질을 시작했던 그 바다입니다.
열세 분의 해녀 삼춘들 앞에서 면접을 보고, 해녀가 되어가는 첫 순간을 담은 시입니다.
〈해녀 면접〉
“어디 살암시니?
어멍, 아방은 이시냐?
무사 물질은 허잰햄시니?
공부 헌 아이가 미시거허래(뭐하러) 촌에 와시니?
말은 알아 먹엄시냐?
물질 허민 얼굴 카그네 시커멍해영 못생겨지매
야이, 고생길 훤햄쩌?
반찬값도 못 벌껀디 서방이 돈 하영(많이) 벌엄시냐?”
“야이, 아이가 빙삭이(빙그레) 잘 웃엄쩌이. 오늘부터 물질허라”
그렇게 나는 해녀가 되었다.
해녀 면접이 끝난 뒤, 드디어 바다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물질 후에 빈 테왁을 들고 물 밖으로 나올까 봐 걱정된 삼춘들은 제 테왁에 소라를 한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함께 나누는 해녀들의 '게석 문화'를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해녀 공동체를 배웠습니다.
〈아기해녀 첫 물질〉
테왁과 잠수복 채비하고
삼춘들 따라 바다로 간다.
닻 돌멩이를 찾고
쑥으로 수경을 닦는다.
이리저리 소라 찾아
바다 휘저을 때
삼춘 한 명씩 다가와
몰래 건넨 소라 한 주먹
“은별이 소라 하영 잡았쪄.”
“잘만 배우민 물질 잘허키여. 꼬마 상군인게”
열세 명 삼춘들과 나만 아는 비밀 이야기
해녀들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다이빙 기술과 물때와 바람을 보는 어플로 바다를 쉽게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늘 예상을 뛰어 넘었습니다.
파도가 높아 물질을 하지 못 하는 날이면 해녀 탈의장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 삼춘들이 바다를 향해 흥얼거리던 자장가 노래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파도야, 파도야, 잠잠해라. 우리 해녀들 물질허게.”
바다에서 바람은 물질을 하러 들어가야 하는지, 물러서야 하는지 판단하는 생존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거친 바람과 파도 앞에서 해녀들은 서로의 벗이 되어 생명을 지켜줍니다.
저 역시 삼춘들의 든든한 물벗이 되고자 인명구조 교육을 받았고, 안전하게 물질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잠잠하라〉
잔치 커피 마시며 기다려도
성난 파도 거칠기만 하네
벌써 두 시간째,
내 마음도 모르고
분주하고 들썩이는 구나
고요한 마음, 충만한 사랑이
가득차고 싶구나
내 마음도, 파도도 잠잠하라
해녀들 물질하게
파도야 파도야 잠잠하라
표선바다와 수평선에 뜬 무지개 ©조은별
멸치 때가 휘감아주는 찬란함을 느끼고, 바다 물고기를 따라 수영하며 물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계형 물질을 하는 해녀는 낭만 가득한 바다 작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게 작업을 하면, 손톱 밑에 성게 가시가 자주 박히기도 합니다. 또한 거센 파도에 물 속에서 두 세바퀴 구르다가 간신히 바위를 붙잡았지만, 무릎과 엉덩이에 성게 가시가 잔뜩 찔려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성게 가시 파고드는 밤〉
검은 가시 한 올
손끝이 시리듯 쑤셔
피부 속 깊은 곳에 숨어든다
바늘로 살을 헤집고
식초에 담그고,
오줌 방울 적셔도
고집 센 가시는
더욱 뿌리내려
온 신경을 손가락 끝자락에 붙들어둔다
작년 이맘때,
무르팍에서 억세게 뽑아낸 성게 가시 하나
남은 자리에 동그란 연골이 솟아
손길 닿을 때마다
묵은 통증 은은히 되살아난다
문득,
내 말속에도 가시가 돋아
당신 마음 후벼 파고
찔러 온 적은 없는지
체증처럼 솟구치는 기억되어
성게 가시 박힌 손가락과 무르팍이
나를 조용히 불러 세운다
물질을 하다 보면 삼춘들이 툭 던지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는 날이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제주어 속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삼춘들의 입말을 고스란히 살리며 기록하고, 정겨운 순간들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해녀들의 바당 속 지혜〉
“네 숨만큼 허라”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만큼,
자족하는 삶을 살아라
“숨 이실 때 올라오라”
지치지 않는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구쟁기 고득 담은 테왁은
아멩 버쳐도 느가 들엉 나와선다.”
(뿔소라 가득 담은 테왁은 아무리 힘들어도 너가 들고 나와야 한다.)
내 삶의 무게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물벗은 함께 물질하는 동료이자 인생의 벗입니다. 거친 바다에서 서로를 지켜낸 해녀들처럼 우리 곁에도 서로를 지켜주는 소중한 벗들이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바다가 전하는 위로가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물질 시작 전 ©조은별
〈물벗, 인생의 벗이 될 때〉
낯설고 바람 거센 타향살이
바다의 품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제주 바다의 숨결을 배우며
숨비소리 따라
서로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다
물결처럼 스며드는 취향,
바다보다 깊고
소금보다 진한 정이 잔잔히 맺혀간다
이 섬이 더 이상 홀로 아닌 건
같은 바다를 향해
숨을 고르는
인생의 벗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조은별 물소중이 | 사진_ 양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