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과거의 바다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
인천 바다 다시 읽기
김화용 | 미술작가, 기획자
'짠물로 나고 자랐다'는 말이 얼른 읽히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구 인천 지역에서 7, 80 그리고 90년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단박에 그 뜻까지 이해할 것이다. 인천은 한반도에서 소금이 가장 많이 나던 곳이었고, 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 그리고 짠내 나게 가난한 피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짠물'이라 불렀다. 혐오이자 동시에 자기혐오의 말이었다. 연안부두나 소래포구를 지나온 버스를 타면, 봉다리에 담긴 바다와 갯벌의 생물들, 거기 딸려 온 바닷물기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과 체취가, 에어컨은 당연히 없던 시절 차 안의 끈적한 온기에 뒤얽혀 특유의 '짠내'를 가득 풍겼다. 이는 분명 바다의, 바다가 있는 지역의, 그곳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바다'와 함께 살아온 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바다의 이야기라고 여기지 못했다.
'바다'라고 하면 노을 지는 수평선,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신 윤슬 같은, 어떤 풍경으로서의 바다가 연상된다. 이 또한 일종의 대상화다. 몸에 바다의 기억이 진하게 쌓이기 전까지, 육지 위에 직립해 사는 인간에게 바다를 풍경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바다를, 그저 눅진한 비린내를 풍기는 장소 정도로만 막연히 느껴 왔다. 그 비린 바다는 '바다'라는 말이 불러오는 연상과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그곳이 바다인 줄 알면서도 내가 바다와 관계 맺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귀포로 이주해, '바다'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런 찬란히도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멋진 풍경으로서의 바다만이 아니라 그 안팎을 알아가고 더 깊이 만나면서, 한 뼘 풍경 너머에 깊고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이로운 세계에 대한 감탄이었지만, 동시에 위기와 맞닿은 일을 목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위기는 하나같이 오로지 셈법으로만 구성된 인간 세계의 욕심과 이어져 있었다. 편리한 삶만 좇다 닥친 기후재난,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개발로 바다는 예상보다 빠르게 망가져 가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많은 것들은 위기의 최전선에 놓여 있었다. 제주에서, 또 새만금의 수라에서, 그렇게 위태로운 처지에서도 생명의 경이로운 힘을 간직한 바다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을 문득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른바 인천의 '똥바다', 공장이 즐비한 작은 포구들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이 마음이 답답할 때 찾던 바다, 산업화 시대의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오폐수로 더럽혀진 바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었던 바로 그 바다 근처였다. 우리 가족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경위 또한 바다에 잇닿아 있다. 외가는 바닷길로 고향에 돌아가려다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실향민이었고, 아버지는 인천 연안부두를 오가는 중국의 물류에 기대어 일했다. 그런 가족 곁에서 자랐으면서도 나는 내가 바다에 연루되어 살고 있다고 감각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인천의 바다는 이미 여러모로 망가져 있었고, 무엇보다 저 이상화된 풍경만을 바다라고 여겨 온 나의 무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가 '원래'부터 망가진 바다였을 리 없다는 생각이, 바다의 안팎을 진지하게 알아가면서 비로소 머릿속을 스쳤다. 이 훼손된 터전은 어떤 경위로 여기에 이르렀으며, 그 본래의 얼굴은 무엇이었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문서와 사료, 여러 자료를 뒤지며 이미 사라지고 끊긴 그곳의 물길과 본래의 모습을 다시 그려 찾아 나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가 살아온 바다의 역사를, 그 영토가 몸에 새긴 기억을 뒤늦게 더듬어 갔다. 그렇게 인천 바다와 소금의 흔적을 따라 지역을 넘고 시대를 거슬러, 끝내 국경 밖과 지구 바깥 행성에까지 다다랐다가 다시 인천의 바다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담아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1 를 썼다.
2018년 4월 27일에 촬영한 인천 중구 개항동 북성포구 모습, 현재는 이곳도 매립되어 공원화되었다. ©김화용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감독 정재은)에서 태희(배두나 역)와 지영(옥지영 역)의 불안정한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이자 동시에 해방공간이었던 북성포구 | 출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화면 캡쳐
2026년 7월 1일부로 '서해구'로 이름이 바뀐 인천 서구 지역은 지금은 완연한 평지의 땅이지만, 본래 그 대부분이 바다와 갯벌과 섬이었다. 이곳의 해안은 원래 땅 안쪽 깊이까지 물이 들어와 곶과 만이 얽히고,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으며, 그 앞바다에는 수많은 작은 섬과 갯벌이 이어져 있었다. 매립은 그 섬과 물길을 지웠고, 지워진 자리와 함께 이름들도 사라졌다. 서른세 개의 이름을 가졌던 서른세 섬은 이제 이름도 형태도 없이 평지가 되거나 바다째 파묻혔다. 댕댕이덩굴 모양을 닮아 청라도(菁蘿島)라 불리던 섬은, 평평한 육지가 되어 버린 후 한자도 '푸른 보석(靑羅)'이라는 뜻으로 바꿔 단 청라국제도시가 되어 제 의미와 역사를 잃었다. 제비가 많아 자연도(紫燕島)라고도 불리던 영종도는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잠진도와 그 사이 갯벌을 하나로 묶은 뒤 그저 하나의 영종도가 되어 그 위에 공항이 들어섰다. 사라진 것은 지명만이 아니다. 작은 배를 타고 연안부두로 통학하고 장을 보며 살아가던 섬사람들의 생활권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지금 전국의 해안에서 벌어지는 신공항 건설 문제와 고스란히 겹친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고 여긴 장소에서 오히려 현재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름을 하나씩 되짚어 가면서 지금 새만금 수라에서, 또 무안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 새들이 왜 과거엔 인천에 그토록 많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있지만, 본래 인천의 해안은 수많은 무인도와 작은 섬이 흩뿌려진 풍경의 바다였다. 철새들은 드넓은 갯벌에서 먹이를 얻고, 그 작은 섬들에 숨어 사람의 눈을 피해 번식하고 쉬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인천의 옛 갯벌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강화도 초지리 갯벌에서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김화용
인천 남동유수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도심 속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곳을 '저어새섬'이라 부르며 소중한 생태 공간으로 호명한다. 그러나 그곳의 내력을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래 남동유수지 일대는 넓은 갯벌이었다. 1985년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전해 오는 공장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규모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이 일대 갯벌이 매립되었고, 갯벌을 메우면서 만조 때 바닷물이 차오르면 인근 도심이 잠길 위험이 커졌다. 그 침수를 막으려 빗물과 하천수를 잠시 가두었다 간조 때 바다로 흘려보내는 방재 시설로 남동유수지가 준공된 것이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동공단 주변의 남동유수지에는 인천의 깃대종인 저어새가 서식한다. ©김화용
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저어새섬이라 부르는 이곳은 드넓고 안락하던 집이 모두 침범당한 끝에 겨우 한 조각 남은 자리, 겨우 발붙이고 있는 대피소일 뿐이다. 이곳에 깃든 새들을 보호하는 일은 응당 옳다. 그러나 우리는 새들이 왜 하필 이곳까지 밀려와 머물게 되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생태적 장소로만 이곳을 재현할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는 장소로—말하자면 하나의 다크 투어로—다시 구성해 들려줄 필요가 있다.
남동유수지 근처 송도갯벌 언저리에는 아암도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었다. 1980년대 말 매립으로 육지가 되기 전까지 아암도는 바다 위의 무인도였다.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면 해안에서 섬까지 수백 미터의 갯벌과 모랫길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바지를 걷고 걸어서 섬까지 건너갔다. 길목과 섬 둘레의 갯벌에는 게와 고둥과 조개가 지천이어서 가족들이 그것을 잡으며 하루를 보냈다. 물이 다시 차기 전에 뭍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슬아슬함마저 놀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구 송도유원지와 그 갯벌의 기억이 남아 있다.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 섬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길은 그 시절 인천 언저리에서 자란 이들의 사진첩 어딘가에 비슷한 풍경으로 한 장씩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도 해안의 대규모 매립이 시작되면서 늘 물이 드나들던 그 바닷길 자리는 아스팔트가 되었다. 아암도는 바다 위의 섬이 아니라 도로 옆에 덩그러니 남은 바위 언덕이 되어 버렸다.
섬이 육지가 되고 갯벌이 크게 줄어든 뒤에도, 이곳은 산란지를 옮겨 다니던 철새와 텃새들의 먹이터이자 뭇 생명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전 세계에 만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검은머리갈매기도 이곳에 머물다 갔다. 그러나 이 갯벌마저 송도신도시 건설로 점점 줄어들었고, '인천판 사대강'이라 불리는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이 추진되면서 아암도 앞 갯벌은 아암호수가 되었고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송도국제도시 둘레를 'ㅁ' 자 형태의 인공 수로로 둘러, 치수와 수질을 개선하고 요트와 수상택시가 다니는 친수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다를 메워 생긴 문제를 다시 인공의 물길로 풀겠다는 셈이다. 뻗어 나갈 수 있는 만큼 뻗어 나간 극강의 개발 역사 속에서, 송도갯벌의 해양생물과 새들의 삶은 이리저리 내몰리고 또 사라져 갔다.
이곳에 대한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를 더듬는 과정에서 삶터를 잃어간 이들이 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광 명소였던 만큼 노점상들이 마차를 꾸려 들어섰고, 방문객은 이곳에서 요기를 했다. 그러나 송도신도시 건설이 구체화되면서 이 노점상들에 대한 혹독한 철거가 시작되었다. 생존권을 지키려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를 비롯한 이들이 아암도 바닷가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농성 중 식량과 물을 구하러 망루에서 내려왔던 그가 실종되었고, 1995년 11월 28일 망루 근처 아암도 앞바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두 손이 묶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스물여덟이던 그의 죽음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사로 남아 있다.2 오직 바다만이 목격한 죽음이었다. 만약 이곳이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가 아니었다면, 이 죽음은 끝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갯벌을 품은 이 바다가 끌어올린 힘이었다.
이런 역사를 더듬다 얼마 전 아암도 앞에 가 보았다. 구 인천과 송도신도시를 잇는 고속화도로가 아암도에 바싹 붙어 지나고 화물 트럭이 끊임없이 빠르게 오갔다. 옆 사람과의 작은 대화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소음도 컸다. 섬 안쪽은 철문으로 닫혀 유령처럼 덩그러니 폐허가 되어 있었고, 새들이 드나드는 기척은 있었지만 바깥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드론을 띄워 섬의 뒷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귀가 멍멍해지던 도로 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들이 그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차 소리에 묻혀 사람의 청력으로 드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그토록 예민한 새들조차 드론의 소리와 움직임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그들에게 하나의 전장(戰場)이었다.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 그곳에 고립되어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겹쳐지는 풍경이었다.
아암도 뒷편 바위에 모여있던 새들, 2026. 9. 13 ©김화용
남동유수지와 아암호수를 생태 공간이 아니라 전쟁터로 바라보니 제주의 정방폭포가 겹쳐 떠오른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해안 폭포다. 오랫동안 천혜의 절경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소개되어 왔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아래는 제주 4·3 당시 산남 지역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집단 희생된 최대의 학살터이며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아픔이 서린 역사가 있는 곳이다. 어쩌면 그 참혹함을 가리기 위해 더욱 과장된 관광지로 홍보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의도가 어떠했든 이런 것 또한 일종의 생태 워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남동유수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왜 그곳이 새들에게 겨우 한 조각 남은 서식지가 되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일은 꼭 필요할 것이다. 4·3의 다크 투어가 아픈 기억을 되짚는 여행을 통해 공간을 다시 감각하게 하듯, 인천의 바다도 나아가 서해안의 갯벌과 섬 그리고 사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까지, 말끔히 정돈된 듯 개발되어 세련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아래 무엇이 사라지고 지워졌는지를 되짚는 생태 다크 투어를 상상하게 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바다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망가져 버렸다고만 여겼던 인천의 바다가, 지금 위기에 봉착한 제주와 다른 바다들 앞에서 하나의 물음이자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진 것을 뒤늦게나마 따라가 보고서야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의 소중함을 더 깊이 가늠할 수 있었다. 훼손된 땅과 사라진 존재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과정은 지금의 바다를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를 우리에게 남겨 줄 것이다.
1 김화용,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2025.
2 최예륜, 「지금, 여기, 아암도」, 『비마이너』, 입력: 2019. 10. 23.
인천
'과거의 바다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
인천 바다 다시 읽기
김화용 | 미술작가, 기획자
'짠물로 나고 자랐다'는 말이 얼른 읽히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구 인천 지역에서 7, 80 그리고 90년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단박에 그 뜻까지 이해할 것이다. 인천은 한반도에서 소금이 가장 많이 나던 곳이었고, 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 그리고 짠내 나게 가난한 피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짠물'이라 불렀다. 혐오이자 동시에 자기혐오의 말이었다. 연안부두나 소래포구를 지나온 버스를 타면, 봉다리에 담긴 바다와 갯벌의 생물들, 거기 딸려 온 바닷물기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과 체취가, 에어컨은 당연히 없던 시절 차 안의 끈적한 온기에 뒤얽혀 특유의 '짠내'를 가득 풍겼다. 이는 분명 바다의, 바다가 있는 지역의, 그곳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바다'와 함께 살아온 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바다의 이야기라고 여기지 못했다.
'바다'라고 하면 노을 지는 수평선,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신 윤슬 같은, 어떤 풍경으로서의 바다가 연상된다. 이 또한 일종의 대상화다. 몸에 바다의 기억이 진하게 쌓이기 전까지, 육지 위에 직립해 사는 인간에게 바다를 풍경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바다를, 그저 눅진한 비린내를 풍기는 장소 정도로만 막연히 느껴 왔다. 그 비린 바다는 '바다'라는 말이 불러오는 연상과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그곳이 바다인 줄 알면서도 내가 바다와 관계 맺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귀포로 이주해, '바다'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런 찬란히도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멋진 풍경으로서의 바다만이 아니라 그 안팎을 알아가고 더 깊이 만나면서, 한 뼘 풍경 너머에 깊고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이로운 세계에 대한 감탄이었지만, 동시에 위기와 맞닿은 일을 목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위기는 하나같이 오로지 셈법으로만 구성된 인간 세계의 욕심과 이어져 있었다. 편리한 삶만 좇다 닥친 기후재난,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개발로 바다는 예상보다 빠르게 망가져 가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많은 것들은 위기의 최전선에 놓여 있었다. 제주에서, 또 새만금의 수라에서, 그렇게 위태로운 처지에서도 생명의 경이로운 힘을 간직한 바다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을 문득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른바 인천의 '똥바다', 공장이 즐비한 작은 포구들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이 마음이 답답할 때 찾던 바다, 산업화 시대의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오폐수로 더럽혀진 바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었던 바로 그 바다 근처였다. 우리 가족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경위 또한 바다에 잇닿아 있다. 외가는 바닷길로 고향에 돌아가려다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실향민이었고, 아버지는 인천 연안부두를 오가는 중국의 물류에 기대어 일했다. 그런 가족 곁에서 자랐으면서도 나는 내가 바다에 연루되어 살고 있다고 감각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인천의 바다는 이미 여러모로 망가져 있었고, 무엇보다 저 이상화된 풍경만을 바다라고 여겨 온 나의 무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가 '원래'부터 망가진 바다였을 리 없다는 생각이, 바다의 안팎을 진지하게 알아가면서 비로소 머릿속을 스쳤다. 이 훼손된 터전은 어떤 경위로 여기에 이르렀으며, 그 본래의 얼굴은 무엇이었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문서와 사료, 여러 자료를 뒤지며 이미 사라지고 끊긴 그곳의 물길과 본래의 모습을 다시 그려 찾아 나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가 살아온 바다의 역사를, 그 영토가 몸에 새긴 기억을 뒤늦게 더듬어 갔다. 그렇게 인천 바다와 소금의 흔적을 따라 지역을 넘고 시대를 거슬러, 끝내 국경 밖과 지구 바깥 행성에까지 다다랐다가 다시 인천의 바다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담아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1 를 썼다.
2018년 4월 27일에 촬영한 인천 중구 개항동 북성포구 모습, 현재는 이곳도 매립되어 공원화되었다. ©김화용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감독 정재은)에서 태희(배두나 역)와 지영(옥지영 역)의 불안정한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이자 동시에 해방공간이었던 북성포구 | 출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화면 캡쳐
2026년 7월 1일부로 '서해구'로 이름이 바뀐 인천 서구 지역은 지금은 완연한 평지의 땅이지만, 본래 그 대부분이 바다와 갯벌과 섬이었다. 이곳의 해안은 원래 땅 안쪽 깊이까지 물이 들어와 곶과 만이 얽히고,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으며, 그 앞바다에는 수많은 작은 섬과 갯벌이 이어져 있었다. 매립은 그 섬과 물길을 지웠고, 지워진 자리와 함께 이름들도 사라졌다. 서른세 개의 이름을 가졌던 서른세 섬은 이제 이름도 형태도 없이 평지가 되거나 바다째 파묻혔다. 댕댕이덩굴 모양을 닮아 청라도(菁蘿島)라 불리던 섬은, 평평한 육지가 되어 버린 후 한자도 '푸른 보석(靑羅)'이라는 뜻으로 바꿔 단 청라국제도시가 되어 제 의미와 역사를 잃었다. 제비가 많아 자연도(紫燕島)라고도 불리던 영종도는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잠진도와 그 사이 갯벌을 하나로 묶은 뒤 그저 하나의 영종도가 되어 그 위에 공항이 들어섰다. 사라진 것은 지명만이 아니다. 작은 배를 타고 연안부두로 통학하고 장을 보며 살아가던 섬사람들의 생활권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지금 전국의 해안에서 벌어지는 신공항 건설 문제와 고스란히 겹친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고 여긴 장소에서 오히려 현재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름을 하나씩 되짚어 가면서 지금 새만금 수라에서, 또 무안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 새들이 왜 과거엔 인천에 그토록 많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있지만, 본래 인천의 해안은 수많은 무인도와 작은 섬이 흩뿌려진 풍경의 바다였다. 철새들은 드넓은 갯벌에서 먹이를 얻고, 그 작은 섬들에 숨어 사람의 눈을 피해 번식하고 쉬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인천의 옛 갯벌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강화도 초지리 갯벌에서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김화용
인천 남동유수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도심 속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곳을 '저어새섬'이라 부르며 소중한 생태 공간으로 호명한다. 그러나 그곳의 내력을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래 남동유수지 일대는 넓은 갯벌이었다. 1985년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전해 오는 공장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규모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이 일대 갯벌이 매립되었고, 갯벌을 메우면서 만조 때 바닷물이 차오르면 인근 도심이 잠길 위험이 커졌다. 그 침수를 막으려 빗물과 하천수를 잠시 가두었다 간조 때 바다로 흘려보내는 방재 시설로 남동유수지가 준공된 것이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동공단 주변의 남동유수지에는 인천의 깃대종인 저어새가 서식한다. ©김화용
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저어새섬이라 부르는 이곳은 드넓고 안락하던 집이 모두 침범당한 끝에 겨우 한 조각 남은 자리, 겨우 발붙이고 있는 대피소일 뿐이다. 이곳에 깃든 새들을 보호하는 일은 응당 옳다. 그러나 우리는 새들이 왜 하필 이곳까지 밀려와 머물게 되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생태적 장소로만 이곳을 재현할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는 장소로—말하자면 하나의 다크 투어로—다시 구성해 들려줄 필요가 있다.
남동유수지 근처 송도갯벌 언저리에는 아암도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었다. 1980년대 말 매립으로 육지가 되기 전까지 아암도는 바다 위의 무인도였다.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면 해안에서 섬까지 수백 미터의 갯벌과 모랫길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바지를 걷고 걸어서 섬까지 건너갔다. 길목과 섬 둘레의 갯벌에는 게와 고둥과 조개가 지천이어서 가족들이 그것을 잡으며 하루를 보냈다. 물이 다시 차기 전에 뭍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슬아슬함마저 놀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구 송도유원지와 그 갯벌의 기억이 남아 있다.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 섬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길은 그 시절 인천 언저리에서 자란 이들의 사진첩 어딘가에 비슷한 풍경으로 한 장씩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도 해안의 대규모 매립이 시작되면서 늘 물이 드나들던 그 바닷길 자리는 아스팔트가 되었다. 아암도는 바다 위의 섬이 아니라 도로 옆에 덩그러니 남은 바위 언덕이 되어 버렸다.
섬이 육지가 되고 갯벌이 크게 줄어든 뒤에도, 이곳은 산란지를 옮겨 다니던 철새와 텃새들의 먹이터이자 뭇 생명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전 세계에 만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검은머리갈매기도 이곳에 머물다 갔다. 그러나 이 갯벌마저 송도신도시 건설로 점점 줄어들었고, '인천판 사대강'이라 불리는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이 추진되면서 아암도 앞 갯벌은 아암호수가 되었고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송도국제도시 둘레를 'ㅁ' 자 형태의 인공 수로로 둘러, 치수와 수질을 개선하고 요트와 수상택시가 다니는 친수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다를 메워 생긴 문제를 다시 인공의 물길로 풀겠다는 셈이다. 뻗어 나갈 수 있는 만큼 뻗어 나간 극강의 개발 역사 속에서, 송도갯벌의 해양생물과 새들의 삶은 이리저리 내몰리고 또 사라져 갔다.
이곳에 대한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를 더듬는 과정에서 삶터를 잃어간 이들이 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광 명소였던 만큼 노점상들이 마차를 꾸려 들어섰고, 방문객은 이곳에서 요기를 했다. 그러나 송도신도시 건설이 구체화되면서 이 노점상들에 대한 혹독한 철거가 시작되었다. 생존권을 지키려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를 비롯한 이들이 아암도 바닷가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농성 중 식량과 물을 구하러 망루에서 내려왔던 그가 실종되었고, 1995년 11월 28일 망루 근처 아암도 앞바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두 손이 묶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스물여덟이던 그의 죽음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사로 남아 있다.2 오직 바다만이 목격한 죽음이었다. 만약 이곳이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가 아니었다면, 이 죽음은 끝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갯벌을 품은 이 바다가 끌어올린 힘이었다.
이런 역사를 더듬다 얼마 전 아암도 앞에 가 보았다. 구 인천과 송도신도시를 잇는 고속화도로가 아암도에 바싹 붙어 지나고 화물 트럭이 끊임없이 빠르게 오갔다. 옆 사람과의 작은 대화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소음도 컸다. 섬 안쪽은 철문으로 닫혀 유령처럼 덩그러니 폐허가 되어 있었고, 새들이 드나드는 기척은 있었지만 바깥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드론을 띄워 섬의 뒷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귀가 멍멍해지던 도로 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들이 그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차 소리에 묻혀 사람의 청력으로 드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그토록 예민한 새들조차 드론의 소리와 움직임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그들에게 하나의 전장(戰場)이었다.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 그곳에 고립되어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겹쳐지는 풍경이었다.
아암도 뒷편 바위에 모여있던 새들, 2026. 9. 13 ©김화용
남동유수지와 아암호수를 생태 공간이 아니라 전쟁터로 바라보니 제주의 정방폭포가 겹쳐 떠오른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해안 폭포다. 오랫동안 천혜의 절경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소개되어 왔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아래는 제주 4·3 당시 산남 지역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집단 희생된 최대의 학살터이며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아픔이 서린 역사가 있는 곳이다. 어쩌면 그 참혹함을 가리기 위해 더욱 과장된 관광지로 홍보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의도가 어떠했든 이런 것 또한 일종의 생태 워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남동유수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왜 그곳이 새들에게 겨우 한 조각 남은 서식지가 되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일은 꼭 필요할 것이다. 4·3의 다크 투어가 아픈 기억을 되짚는 여행을 통해 공간을 다시 감각하게 하듯, 인천의 바다도 나아가 서해안의 갯벌과 섬 그리고 사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까지, 말끔히 정돈된 듯 개발되어 세련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아래 무엇이 사라지고 지워졌는지를 되짚는 생태 다크 투어를 상상하게 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바다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망가져 버렸다고만 여겼던 인천의 바다가, 지금 위기에 봉착한 제주와 다른 바다들 앞에서 하나의 물음이자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진 것을 뒤늦게나마 따라가 보고서야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의 소중함을 더 깊이 가늠할 수 있었다. 훼손된 땅과 사라진 존재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과정은 지금의 바다를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를 우리에게 남겨 줄 것이다.
1 김화용,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2025.
2 최예륜, 「지금, 여기, 아암도」, 『비마이너』, 입력: 2019.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