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리!
내 어머니의 바다
강원보 |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푸른 숨비소리가 머물던 곳, 내 고향 제주섬 동쪽 신산리 바다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간직한 곳이 아니었다. 거친 파도와 맞서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배고픔을 채워주고 삶을 지탱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어릴 적 물질 나가는 어머니 몰래 따라가서 뭍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조수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놀던 그 시절, 그곳은 온통 갈색 숲을 이룬 해조류로 가득했다. 그 무엇보다도 풍요로운 나만의 세상이었다.
해녀였던 어머니, 나의 우상.
바다에서 올라오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불러 놀라게 하던 기억,
큰 소라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시던 손길이 그립다.

바다 쪽에서 본 우리 마을 신산리 ©강원보
허접한 대나무 낚싯대에 수없이 낚여 올라오던 고기들, 친구들과 수영하며 먼 바다로 나갈라치면 빨리 들어가라고 호통치던 해녀 삼촌들, 온몸에 감기는 긴 해조류의 부드러운 감촉, 모래가 있는 쪽빛 바다, 해조 군락이 있는 갈색 바다, 무섭게 깊은 진청색 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진다. 나만의 우주에서 꿈을 키우던 당시 느꼈던 싱그러운 바다내음, 살갑게 찰랑이며 오가던 잔물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바당에는 곳곳에 전해 내려오는 이름들이 있어 정겨움을 더했다.
유독 용천수가 많은 우리 마을, 만물이라고 불리는 맑고 시원한 큰 용천수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이자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검은먹돌이 많아서 진멀, 풀이끼가 많아서 샌동산, 검은여, 기러기 나는 모양이라 안비리, 까마귀 통, 홀어멍돌, 우알, 분드르, 큰불턱 등등 그 지명들은 우리들만의 비밀지도이자 안식처였다. 그 이름들은 단순한 위치를 넘어 거친 바닷속에서 시대를 살아오며 삶을 일궈온 이들의 땀과 눈물이 새겨진 소중한 역사일 것이다.

검은먹돌이 많은 진멀해안 ©강원보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어느덧 인생의 뒤안길에선 지금, 내 어릴 적 기억들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제 마주하는 고향 바다는 말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숨비소리도, 발을 동동 구르며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진 그곳엔, 탐욕이 남긴 상처와 침묵만이 가득하다.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같이 밀려든 개발의 바람과 상업시설들은 바다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 만큼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육상양식장에서 쏟아내는 배출수는 바다를 병들게 했고, 토사에 섞여 있는 비료와 농약 등 오염물질은 폭우와 함께 육상에서 급격히 흘러들어 해조류 가득했던 바다를 텅 빈 사막으로 바꾸어 놓았다. 썰물이 되어 바닥이 드러나면 그 많았던 해조류는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맨 돌만 가득하다. 싱그럽던 바다내음은 많이 사라져 정체불명의 냄새가 역겹게 코를 자극하고, 조수에 밀려든 쓰레기 더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육상양식장 ©강원보
어머니 품같이 따스하고 포근했던 바다는 어느새 눈을 돌려보니 전혀 다른 바다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방치된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그 푸른바다는 점점 사라져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향의 바다를 지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향한 우리의 마지막 속죄이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가장 간절한 약속일지 모른다.
메마른 갯바위에 해조류들이 돌아오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싱그러운 갯내음이 돌아오고 맑고 투명한 바다색이 돌아오면,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도 함께 돌아오시지 않을까.
신산리!
내 어머니의 바다
강원보 |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푸른 숨비소리가 머물던 곳, 내 고향 제주섬 동쪽 신산리 바다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간직한 곳이 아니었다. 거친 파도와 맞서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배고픔을 채워주고 삶을 지탱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어릴 적 물질 나가는 어머니 몰래 따라가서 뭍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조수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놀던 그 시절, 그곳은 온통 갈색 숲을 이룬 해조류로 가득했다. 그 무엇보다도 풍요로운 나만의 세상이었다.
해녀였던 어머니, 나의 우상.
바다에서 올라오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불러 놀라게 하던 기억,
큰 소라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시던 손길이 그립다.
바다 쪽에서 본 우리 마을 신산리 ©강원보
허접한 대나무 낚싯대에 수없이 낚여 올라오던 고기들, 친구들과 수영하며 먼 바다로 나갈라치면 빨리 들어가라고 호통치던 해녀 삼촌들, 온몸에 감기는 긴 해조류의 부드러운 감촉, 모래가 있는 쪽빛 바다, 해조 군락이 있는 갈색 바다, 무섭게 깊은 진청색 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진다. 나만의 우주에서 꿈을 키우던 당시 느꼈던 싱그러운 바다내음, 살갑게 찰랑이며 오가던 잔물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바당에는 곳곳에 전해 내려오는 이름들이 있어 정겨움을 더했다.
유독 용천수가 많은 우리 마을, 만물이라고 불리는 맑고 시원한 큰 용천수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이자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검은먹돌이 많아서 진멀, 풀이끼가 많아서 샌동산, 검은여, 기러기 나는 모양이라 안비리, 까마귀 통, 홀어멍돌, 우알, 분드르, 큰불턱 등등 그 지명들은 우리들만의 비밀지도이자 안식처였다. 그 이름들은 단순한 위치를 넘어 거친 바닷속에서 시대를 살아오며 삶을 일궈온 이들의 땀과 눈물이 새겨진 소중한 역사일 것이다.
검은먹돌이 많은 진멀해안 ©강원보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어느덧 인생의 뒤안길에선 지금, 내 어릴 적 기억들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제 마주하는 고향 바다는 말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숨비소리도, 발을 동동 구르며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진 그곳엔, 탐욕이 남긴 상처와 침묵만이 가득하다.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같이 밀려든 개발의 바람과 상업시설들은 바다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 만큼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육상양식장에서 쏟아내는 배출수는 바다를 병들게 했고, 토사에 섞여 있는 비료와 농약 등 오염물질은 폭우와 함께 육상에서 급격히 흘러들어 해조류 가득했던 바다를 텅 빈 사막으로 바꾸어 놓았다. 썰물이 되어 바닥이 드러나면 그 많았던 해조류는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맨 돌만 가득하다. 싱그럽던 바다내음은 많이 사라져 정체불명의 냄새가 역겹게 코를 자극하고, 조수에 밀려든 쓰레기 더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육상양식장 ©강원보
어머니 품같이 따스하고 포근했던 바다는 어느새 눈을 돌려보니 전혀 다른 바다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방치된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그 푸른바다는 점점 사라져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향의 바다를 지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향한 우리의 마지막 속죄이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가장 간절한 약속일지 모른다.
메마른 갯바위에 해조류들이 돌아오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싱그러운 갯내음이 돌아오고 맑고 투명한 바다색이 돌아오면,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도 함께 돌아오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