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홍시가 간다] 개인을 넘어 세상의 마음을 돌보는 생태예술가 정은혜 님 인터뷰

파래
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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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의 말

3년 전 12월의 일입니다. 생일을 맞아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과 북적이는 생일파티 말고 오롯이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요. 그러던 중 sns에서 ‘플라스틱 만다라’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한 생태예술가의 안내에 따라 바닷가 모래 속에서 주워 모은 작은 플라스틱들을 집어 마음이 가는 대로 늘어놓았어요. 고요함 속에 파란 색깔에 유독 마음이 끌렸고 파란 조각들을 주워 먼저 참여한 사람들이 만들어 둔 형태에 이어 연결해 갔습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의 완성된 그림은 바다거북이였습니다. 내 손가락은 바다거북이의 일부에 참여하면서 거북이가 되고 내 몸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체감하는 시간이었지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안내한 이는 생태예술가 정은혜 님입니다. 억새 만발한 11월 말, 제주시의 한 카페에서 정은혜 님을 만났습니다.     


플라스틱을 줍고 있는 생태예술가 정은혜 ⓒ정은혜


홍시 : 정은혜 선생님(이하 은혜) 반갑습니다. 최근까지 온라인으로 미술치료 워크숍을 진행하셨던데 성황리에 잘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바다에 대한 은혜 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은혜 : 일단 물에 대한 기억은 강인데요.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강에 놀러 갔다가 물에 빠졌어요. 꼬르륵 빠져 들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무서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 기억은 무섭다가 아니라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가는 게 너무 예쁜 거예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물속이 너무 예쁘구나 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바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에요. 아버지가 바다와 수영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바다에서 수영하다 보면 아빠랑 얘기하고 아빠랑 함께 위에 떠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2010년 즈음엔 바다 다이빙 하면서 산호와 바닷속 생명들을 처음 봤는데 너무나 웃음이 났어요. 어떻게 이런 것들이 있지 싶은 거예요.  


홍시 : 바다 다이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바다의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은혜 : 십 년 전쯤인가, 녹색연합 해양생태팀과 강정해군기지 측과 해외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에 제가 통역 자원봉사를 맡게 되었어요.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데 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전문 용어들이 오가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결국 통역을 못했어요.  몹시 부끄러웠고 도대체 물속에 뭐가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띤 토론을 할까 궁금했어요. 직접 봐야겠다 싶어 다이빙을 배우게 되었죠.      


홍시 : 첫 다이빙의 느낌은 어땠나요? 어디 바다로 들어가신 거예요?     

은혜 : 서귀포 앞 범섬 바다였어요. 들어갔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어요.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이었죠. 산호는 사진으로 많이 보긴 했어도 실제의 바다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갑자기 꽃밭이 펼쳐지는데 그냥 웃음이 났어요. 기가 막히고 놀랍고 말도 안 되고 그런 장면이었어요.      

산호뜨개 ⓒ정은혜


홍시 : 저도 얼마 전에 범섬 앞바다에 들어갔는데 지금 은혜 님이 말씀하신 거랑 똑같이 느꼈어요. 너무도 놀라웠고 기가 막혔고 그냥 막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바닷속에 어떻게 꽃동산이 있는 거지? 숨이 막히더라고요. 

자, 이제 며칠 전까지 진행하신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미술치료 프로그램 <외로움의 연결>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지요?     

은혜 : 저는 생태예술가이고 미술치료사입니다. 지난 1주일간 매일 한 시간 동안 진행한 프로그램 <외로움의 연결>은 미술치료사로서의 활동이에요. 3년째 되는 이 프로그램은 이태원 참사 직후에 시작한 거예요. 그 무렵이 제 생일이었고 생일파티 뭐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거예요. 너무 괴롭고 슬펐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슬픔의 연대>라는 응급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순식간에 미술치료사 몇 십 명이 모였고 포맷이 완성되고 홍보까지 5일 만에 다 끝났어요. 온라인으로 매일 100명 정도가 들어왔어요. 우리 서로 붙잡자 그런 마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힘들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보통 차가운 동굴 속이나 절벽 위에 서 있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둥지 워크숍’을 준비했어요. 참여자들에게 새 둥지를 상상하게 해서 스스로 보호하고 서로를 따뜻하게 안고 안정시키는 거예요. 

작년엔 보살핌이 주제였고 올해는 외로움이 주제였어요. 세상이 점점 외로워지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이번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외로워서 지구를 파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왼쪽부터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 중, 바다 플라스틱 ⓒ정은혜


: 사람들이 외로워서 지구를 파괴한다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래요?     

은혜: 사람들이 다 각자 떨어져 있으니까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거고, 일회용품 많이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누는 것도 나눠 달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해하고 그러니까 각자 사는 거잖아요. 각각 따로 밥 먹고 물건이건 도구건 각각 구비하고. 이러면서 소비가 늘어나는 게 아니겠어요. 사람들은 사랑받고 인정받는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니 물건을 사면서 그 욕구를 채우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보살핌을 받는 걸 어색해하는 사회가 되니 각각 따로 사는 사회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소비는 늘고 개발과 자연 파괴가 늘어간다고 생각해요. 타인과 연결이 되어야 대화가 가능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도 얘기할 수 있어야 전지구적 문제도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요. 관심이 많았는지 프로그램 첫날, 400여 명이 들어왔고 평균 250명 정도 들어와 참여했어요.       


플라스틱만다라와 산호뜨개 <아쿠아천국 2024> ⓒ정은혜


홍시 : 이제 생태예술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도 산호 뜨개 작업과 전시도 활발하게 하시던데 어떻게 그런 작업을 하시게 되었는지요?     

은혜 : 그 두 개가 제게는 중요한 프로젝트인데요. 플라스틱 만다라는 바닷가 모래 속에서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주어 작업을 하는 건데 6년째 하고 있어요. 산호 뜨개는 한국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더라고요. 사람들한테 뜨개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산호에 대해 서로 얘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각자 뜨개질로 산호의 부분을 뜨고 나중에 그 부분들을 연결해서 산호 군락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산호뜨개를 전시합니다. 얼마 전에는 조천읍 신촌리 해녀 탈의실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사람들이 자연과 만나는 경험을 갖게 했어요. 하이라이트는 해녀 불턱에서 사람들이 같이 뜨개질 한 산호 군락을 전시하고, 산호 뜨개 옷을 입고 무용수와 1대 1로 산호 춤을 추는 거였어요. 정말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왼쪽부터 <보이지 않아도 연결> 포스터, 산호가 되는 춤, 산호불턱 ⓒ정은혜


홍시 : 은혜 님에게 산호는 어떤 존재인가요? 산호가 어떻길래 산호에 그렇게 꽂히신 건가요?   

은혜 : 산호는 제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생명이에요. 저는 아름다움에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 아름다운 걸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 이 아름다운 산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산호 뜨개를 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거든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산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산호에 대해 알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산호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각자 떨어져 살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걸 산호를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거죠. 산호를 보면서 지구 전체의 연결을 상상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홍시 : 심리치료나 미술치료 같은 건 개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극히 개인적인 일에 해당되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은혜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개인적인 것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연결이 필요하고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각자도생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은혜님의 미술치료 작업과 생태예술 작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은혜 : 맞아요. 그래서 이런 작업에 함께 했던 미술치료사들이 되게 감격스러워해요. 왜냐하면 치료사들은 다 각자 활동하는 외로운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손을 잡으면 사회를 위해 뭔가 할 수 있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거죠. 그 경험을 후배 치료사들, 동료 치료사들과 나눌 수 있어서 되게 기뻤어요. 미술치료계에서도 이 작업을 독특하게 바라보고 있고 그 덕분에 지난주에 미술치료 학회에서 ‘사회를 위한 미술치료’를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어요.     


홍시 : 은혜 님은 어떻게 이런 데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개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넘어  세상의 슬픔과 사회적인 위로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가진 건지요?     

은혜 :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 전쟁 났을 때도, 네팔 지진 났을 때도, 아이티 지진 났을 때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작품 기증받아 전시회 해서 돈을 마련해 보내기도 했고요. 제주에 예맨 난민들 왔을 때는 예맨 어린이들 미술치료도 했어요. 예맨 난민들이 제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찾아갔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아랍어 몇 마디 준비하고 미술 재료들 싸 가지고 숙소로 찾아갔어요. 아랍어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쓴 종이를 보여 줬어요. 거기 있던 예맨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남자들 한 열명 정도가 어느 방으로 저를 데리고 가더라고요. 방문을 딱 열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다 저를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말도 필요 없이 준비해 간 미술 재료들 꺼내 놓고 그리게 했어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신나 하더라고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었어요.  

    

산호뜨개를 입은 생태예술가 정은혜 ⓒ정은혜


홍시 : 말은 통하지 않아도 미술이라는 도구로 예맨 아이들을 만난 거네요. 미술이라는 도구가 낯선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얼었던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말이 필요 없던 그 상황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미술은 굉장히 큰 힘이 있네요. 

은혜 님은 그동안 해 왔던 일도, 현재 하고 있는 일도 많은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은혜 : 최면이요. 농담이기도 하면서 진담인데요. 최면으로 사람들이 금연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처럼 최면 요법을 통해서 자다가 새벽이 되면 사람들이 바닷가에 가서 쓰레기를 줍거나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게 되거나 배달 음식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장에 가거나 하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최면을 통해 무의식에 집어넣은 거죠.(함께 웃음)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피곤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곤 하는데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즐겁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만나고 싶어요. 예술은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거든요.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홍시 : 예술도 치료도 지금까지 잘해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실 것 같아요. 긴 시간 마음의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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