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말
2021년 3월부터 석 달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마이크로 발언을 이어간 시민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땡볕이 쏟아져도 하루도 쉼 없이 ‘제2공항 반대’를 외치며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죠. 지금은 서귀포시 표선면의 가시리에서 ‘놀부’라는 별칭을 갖고 텃밭을 일터 삼아 지내는 이, 이성홍 님을 2024년 12월 16일, 제주시 구좌읍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홍시 : 제주에 살고 계신 이성홍 님에게 바다는 어떤 느낌인지요? 어릴 때 바다에 대한 기억도 궁금합니다.
성홍 : 바다는 일단 편안하게 느껴져요.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그동안 살면서 섬으로 많이 다녔더라고요. 부산에서 오래 살았는데 부산에 영도라고 조그마한 섬이 있어요. 거기서 17년 독서실을 운영했어요. 거제도에서도 4년 살았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섬 하고 뭔가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 기억들이 저한테는 아주 편안합니다. 제주도는 그냥 다 좋았던 것 같아요. 하늘과 바다, 다 좋았어요. 제가 사는 가시리의 벌판과 오름들 이런 게 다 좋더라고요. 부산에 살게 된 건, 한국전쟁 당시 피난 내려온 제 부모님들이 부산에 정착하셨어요. 부산말로 산만디, 산 근처에서 주로 살았는데 친구들하고 바닷가로 해수욕장 좀 다니곤 했지요. ‘이기대’라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바위로 된 곳이 있는데 주로 거기 가서 놀고는 했어요.
홍시 : 바다와 인연이 깊으시군요. 그러다가 제주에 오신 지 10년 되었다고 하셨는데 오래전 이긴 하지만 제주에 처음 왔을 때 제주 바다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성홍 : 늘 보아오던 바다인데 제주 바다가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어요. 누군가 말하기를 이 제주 바다는 태평양하고 닿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엄청 광활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생을 돌아보면 바다는 제게 아주 친숙한 곳입니다.
홍시 : 이성홍 님에 대해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해 오랫동안 1인 시위 한 사람으로 기억하더라고요. 부산에 살다가 어떻게 제주에 와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제2공항 반대 투쟁에 나서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성홍 : 제주에 오게 된 계기는 제 몸에 병이 생겨서입니다. 혈액암인 판정을 받고 자연치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일차적 치료를 마친 후, 제주도 토평동에 사는 지인을 소개받았어요. 감귤농장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농장에 와서 휴양하며 머물게 된 거죠. 약 6개월 정도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살았는데, 살다 보니 제주도가 되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2013년에 아예 제주도로 이주해 정착했죠. 가시리 마을 안에 500평 되는 집을 구했는데 처음엔 온통 자갈밭이었어요. 자갈을 걷어내고 군데군데 텃밭을 만들어 살아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네요. 10년을 살다 보니 이제 제주의 속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아름다운 제주가 여러 가지 이슈로 망가져가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결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해 제2공항 반대 싸움을 시작했고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마이크를 잡고 그렇게 100일 넘게 시위를 했어요.
홍시 :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는지요? 지나가는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성홍 : 2021년 당시 합의 하에 도민들 대상으로 제2공항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공항 반대 여론이 더 높은 수치로 나왔거든요. 그렇게 공항은 더 이상 짓지 않기로 합의된 줄 알았는데, 원희룡 지사가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주민들의 찬성이 반대보다 높다며 공항 건설 추진을 강행한 거예요. 그 당시 제가 보기에 제2공항 반대운동 하시는 분들의 움직임이 좀 소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시청 앞 조형물 광장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이었고, 1인 시위나 피켓팅보다 좀 더 영향력이 있는 방법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시민들 대상으로 직접 발언을 하기 시작했죠.
제가 부산에 살 때, 골프장 반대 그리고 반핵 싸움을 한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살려 이때 활용했지요. 판에다가 제주의 아름다운 전경 혹은 망가지는 모습들을 찍은 사진을 전시했어요. 사진을 찍어 좌판을 벌여놓고 저는 마이크를 사용해 2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갔죠. 제주가 처한 위기 상황과 제주도 행정과 정부의 부당함, 개발 위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관심 갖고 들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녹색당 사람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발언도 해 주었어요. 한림 지역 축산오염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이 와서 발언도 하고 지지 방문한 가수 조성일 씨 같은 경우 노래 공연도 했고요. 음료수를 주고 가는 시민들도 많았어요.

부산 백양산 골프장반대투쟁 당시 단오제에서 고천문 올리는 모습 ⓒ이성홍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2공항 문제점에 대해 발언 중인 이성홍 님 ⓒ이성홍
홍시 : 몸이 안 좋아서 요양하러 제주 오셨다고 하셨는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성홍 : 그동안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내는 한 번도 반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때는 심하게 반대하더라고요. 실제로 시청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가는 게 힘들었는지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 제2공항 반대 싸움은 단순히 공항 반대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제주도는 화산섬이지 않습니까? 물이 귀한 데예요. 지금 지하수 퍼 올리며 물을 함부로 쓰는데 그 물이 언제까지 나오는 물이 아니잖아요. 지하수 고갈의 문제, 오염의 문제, 하수처리장 문제 등 총체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싶게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현재 10년째 제주에 살고 있는데요. 저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있어요. 자기소개할 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제주에 살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주말 잘 못 알아 들어도 알아듣는 척해야 하는, 뭐 그런 콤플렉스가 있는데요. 그러면서 ‘나는 제주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제주 사람일까, 오래도록 생각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죠. 제주 사람은 제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선주민들이 오히려 제주를 망가뜨리는 사례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제주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21년 3월에 1인 시위를 시작했는데 7월이 되니 국토부에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반려를 하더라고요, 이제 더 이상은 저쪽에서 어쩌지 못하겠다 싶어 저는 판을 접었지요.
홍시 : 몸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고 가족들 걱정도 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일인 시위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은 주로 어떻게 지내시나요?
성홍 : 이제 집에서 현관문을 열면 바로 일터지요. 텃밭을 가꾸면서 내리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놀부’라는 별칭을 쓰고 있는데요. ‘놀부’는 농부가 되고 싶은데 제대로 된 농부는 못되고 ‘놀면서 농사짓는다’는 뜻입니다. 여기 200평 정도 되는 텃밭에서 푸성귀, 감자, 고구마, 콩 조금씩 이렇게 농사짓고 살아요. 자급자족 삶에 관심이 있어 흉내 정도 내는 거죠.

현관문을 열면 바로 일터인 텃밭 ⓒ이성홍
홍시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회원이신데 제주의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성홍 : 몇 년 전에 녹색연합(현 파란)에서 제주 바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를 보니 거의 모든 바닷가에 갯녹음이 나타났더라고요. 해안가를 둘러싼 양식장도 그렇고 소위 목 좋은 곳은 다 대형 식당이나 대형 카페가 들어선 상황이니 바다가 오염될 수밖에 없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바다를 살리는 일에 머릿 수라도 보태야겠다 생각했어요.
홍시 : 그런 힘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올 여름 제주 바다 표층 수온이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변화하는게 아니라 너무 급속하게 변화하니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은 제주 바다에 대해서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성홍 : 간절한 바람들이 있죠. 기후변화가 바다의 식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해안가에 양식장이 400여 개 있는데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제주시, 서귀포시에 각각 한 명씩 있다네요. 그 일만 전담하는 것도 아니니 배출수에 대한 수질 검사도 제대로 못하는 거지요. 축산 오염의 문제도 심각해요. 얼마 전에 무허가로 운영되던 양돈장이 불이 나서 알게 된 상황도 있었잖아요. 하수처리장도 포화상태이고요. 그 와중에 드림타워가 생겼는데 드림타워에서 배출되는 하루 오수량이 삼다수 하루 취수량과 같아요. 총체적인 난국이죠. 제주의 골프장이 대부분 중산간에 있는데요. 이 골프장이 지하수 소비를 엄청 많이 합니다. 농약, 화학비료, 축산 오폐수 이런 것들이 다 바다로 갈 텐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런 걸 막아내야 한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홍시 : 이제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 어떻게 살고 싶으신지요?
성홍 : 예전에 김종철 선생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지는 해를 어디에서 맞이할 것인가. 저는 그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져 할 수 있는 일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남은 제 인생을 가장 재미있게, 가장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시 : 귀한 시간 내어 주시고 소중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홍시의 말
2021년 3월부터 석 달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마이크로 발언을 이어간 시민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땡볕이 쏟아져도 하루도 쉼 없이 ‘제2공항 반대’를 외치며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죠. 지금은 서귀포시 표선면의 가시리에서 ‘놀부’라는 별칭을 갖고 텃밭을 일터 삼아 지내는 이, 이성홍 님을 2024년 12월 16일, 제주시 구좌읍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홍시 : 제주에 살고 계신 이성홍 님에게 바다는 어떤 느낌인지요? 어릴 때 바다에 대한 기억도 궁금합니다.
성홍 : 바다는 일단 편안하게 느껴져요.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그동안 살면서 섬으로 많이 다녔더라고요. 부산에서 오래 살았는데 부산에 영도라고 조그마한 섬이 있어요. 거기서 17년 독서실을 운영했어요. 거제도에서도 4년 살았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섬 하고 뭔가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 기억들이 저한테는 아주 편안합니다. 제주도는 그냥 다 좋았던 것 같아요. 하늘과 바다, 다 좋았어요. 제가 사는 가시리의 벌판과 오름들 이런 게 다 좋더라고요. 부산에 살게 된 건, 한국전쟁 당시 피난 내려온 제 부모님들이 부산에 정착하셨어요. 부산말로 산만디, 산 근처에서 주로 살았는데 친구들하고 바닷가로 해수욕장 좀 다니곤 했지요. ‘이기대’라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바위로 된 곳이 있는데 주로 거기 가서 놀고는 했어요.
홍시 : 바다와 인연이 깊으시군요. 그러다가 제주에 오신 지 10년 되었다고 하셨는데 오래전 이긴 하지만 제주에 처음 왔을 때 제주 바다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성홍 : 늘 보아오던 바다인데 제주 바다가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어요. 누군가 말하기를 이 제주 바다는 태평양하고 닿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엄청 광활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생을 돌아보면 바다는 제게 아주 친숙한 곳입니다.
홍시 : 이성홍 님에 대해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해 오랫동안 1인 시위 한 사람으로 기억하더라고요. 부산에 살다가 어떻게 제주에 와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제2공항 반대 투쟁에 나서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성홍 : 제주에 오게 된 계기는 제 몸에 병이 생겨서입니다. 혈액암인 판정을 받고 자연치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일차적 치료를 마친 후, 제주도 토평동에 사는 지인을 소개받았어요. 감귤농장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농장에 와서 휴양하며 머물게 된 거죠. 약 6개월 정도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살았는데, 살다 보니 제주도가 되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2013년에 아예 제주도로 이주해 정착했죠. 가시리 마을 안에 500평 되는 집을 구했는데 처음엔 온통 자갈밭이었어요. 자갈을 걷어내고 군데군데 텃밭을 만들어 살아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네요. 10년을 살다 보니 이제 제주의 속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아름다운 제주가 여러 가지 이슈로 망가져가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결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해 제2공항 반대 싸움을 시작했고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마이크를 잡고 그렇게 100일 넘게 시위를 했어요.
홍시 :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는지요? 지나가는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성홍 : 2021년 당시 합의 하에 도민들 대상으로 제2공항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공항 반대 여론이 더 높은 수치로 나왔거든요. 그렇게 공항은 더 이상 짓지 않기로 합의된 줄 알았는데, 원희룡 지사가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주민들의 찬성이 반대보다 높다며 공항 건설 추진을 강행한 거예요. 그 당시 제가 보기에 제2공항 반대운동 하시는 분들의 움직임이 좀 소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시청 앞 조형물 광장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이었고, 1인 시위나 피켓팅보다 좀 더 영향력이 있는 방법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시민들 대상으로 직접 발언을 하기 시작했죠.
제가 부산에 살 때, 골프장 반대 그리고 반핵 싸움을 한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살려 이때 활용했지요. 판에다가 제주의 아름다운 전경 혹은 망가지는 모습들을 찍은 사진을 전시했어요. 사진을 찍어 좌판을 벌여놓고 저는 마이크를 사용해 2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갔죠. 제주가 처한 위기 상황과 제주도 행정과 정부의 부당함, 개발 위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관심 갖고 들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녹색당 사람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발언도 해 주었어요. 한림 지역 축산오염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이 와서 발언도 하고 지지 방문한 가수 조성일 씨 같은 경우 노래 공연도 했고요. 음료수를 주고 가는 시민들도 많았어요.
부산 백양산 골프장반대투쟁 당시 단오제에서 고천문 올리는 모습 ⓒ이성홍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2공항 문제점에 대해 발언 중인 이성홍 님 ⓒ이성홍
홍시 : 몸이 안 좋아서 요양하러 제주 오셨다고 하셨는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성홍 : 그동안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내는 한 번도 반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때는 심하게 반대하더라고요. 실제로 시청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가는 게 힘들었는지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 제2공항 반대 싸움은 단순히 공항 반대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제주도는 화산섬이지 않습니까? 물이 귀한 데예요. 지금 지하수 퍼 올리며 물을 함부로 쓰는데 그 물이 언제까지 나오는 물이 아니잖아요. 지하수 고갈의 문제, 오염의 문제, 하수처리장 문제 등 총체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싶게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현재 10년째 제주에 살고 있는데요. 저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있어요. 자기소개할 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제주에 살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주말 잘 못 알아 들어도 알아듣는 척해야 하는, 뭐 그런 콤플렉스가 있는데요. 그러면서 ‘나는 제주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제주 사람일까, 오래도록 생각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죠. 제주 사람은 제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선주민들이 오히려 제주를 망가뜨리는 사례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제주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21년 3월에 1인 시위를 시작했는데 7월이 되니 국토부에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반려를 하더라고요, 이제 더 이상은 저쪽에서 어쩌지 못하겠다 싶어 저는 판을 접었지요.
홍시 : 몸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고 가족들 걱정도 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일인 시위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은 주로 어떻게 지내시나요?
성홍 : 이제 집에서 현관문을 열면 바로 일터지요. 텃밭을 가꾸면서 내리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놀부’라는 별칭을 쓰고 있는데요. ‘놀부’는 농부가 되고 싶은데 제대로 된 농부는 못되고 ‘놀면서 농사짓는다’는 뜻입니다. 여기 200평 정도 되는 텃밭에서 푸성귀, 감자, 고구마, 콩 조금씩 이렇게 농사짓고 살아요. 자급자족 삶에 관심이 있어 흉내 정도 내는 거죠.
현관문을 열면 바로 일터인 텃밭 ⓒ이성홍
홍시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회원이신데 제주의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성홍 : 몇 년 전에 녹색연합(현 파란)에서 제주 바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를 보니 거의 모든 바닷가에 갯녹음이 나타났더라고요. 해안가를 둘러싼 양식장도 그렇고 소위 목 좋은 곳은 다 대형 식당이나 대형 카페가 들어선 상황이니 바다가 오염될 수밖에 없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바다를 살리는 일에 머릿 수라도 보태야겠다 생각했어요.
홍시 : 그런 힘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올 여름 제주 바다 표층 수온이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변화하는게 아니라 너무 급속하게 변화하니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은 제주 바다에 대해서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성홍 : 간절한 바람들이 있죠. 기후변화가 바다의 식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해안가에 양식장이 400여 개 있는데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제주시, 서귀포시에 각각 한 명씩 있다네요. 그 일만 전담하는 것도 아니니 배출수에 대한 수질 검사도 제대로 못하는 거지요. 축산 오염의 문제도 심각해요. 얼마 전에 무허가로 운영되던 양돈장이 불이 나서 알게 된 상황도 있었잖아요. 하수처리장도 포화상태이고요. 그 와중에 드림타워가 생겼는데 드림타워에서 배출되는 하루 오수량이 삼다수 하루 취수량과 같아요. 총체적인 난국이죠. 제주의 골프장이 대부분 중산간에 있는데요. 이 골프장이 지하수 소비를 엄청 많이 합니다. 농약, 화학비료, 축산 오폐수 이런 것들이 다 바다로 갈 텐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런 걸 막아내야 한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홍시 : 이제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 어떻게 살고 싶으신지요?
성홍 : 예전에 김종철 선생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지는 해를 어디에서 맞이할 것인가. 저는 그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져 할 수 있는 일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남은 제 인생을 가장 재미있게, 가장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시 : 귀한 시간 내어 주시고 소중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