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말 :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제주의 들판과 오름에서 이슬을 맞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업은 한의사인데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속내를 절로 털어놓게 하는 따뜻한 한의사이면서 사진 책을 내고 두 번에 걸쳐 사진 전시회도 연 작가입니다. 제주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사진에 매료된 채 7월 2일 저녁, 한의원 북카페에서 김수오(이하 수오) 님을 만났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저녁이면 왜 제주의 오름을 헤매고 다니는지, 그의 제주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홍시 : 어릴 때 제주 바다와 관련된 기억이 있으신가요?
수오 : 해 질 녘에 물때 시간에 맞춰서 긴 옷에 패랭이 쓰고 바구니 들고 가서 바다로 갔어요. 먹돌들 딱 뒤집으면 깅이(게)들 또 보말(고둥)들 있었죠. 잡아서 바구니에 막 담고는 했어요. 산지천 쪽에 살아서 사라봉에 가서 많이 놀았는데 여름철 되면 동네 고등학교 형들 따라다녔어요. 동부두 쪽 방파제로 가서 뛰어들어 다이빙도 했고요. 고등학교 형아들은 작살 들고 수경 쓰고 물에 들어가서 객주리(쥐치) 잡았어요. 그때는 뭐 객주리가 지천이니까. 그 당시 객주리는 잡아도 맛없다고 해서 그냥 밭에다 거름으로 주곤 했거든요. 형아들이 객주리 잡아 탁 던지면 우리 꼬맹이들은 그거 받았어요. 형아들이 연필 깎는 칼로 짝짝짝 잘라서 가져간 된장에다가 찍어 먹을 때 (우리도 옆에서) 얻어먹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사라봉 뒤 별도봉 쪽 바다에서 노는데 거기엔 큰 바위들이 있었어요. 수경 끼고 바위 사이로 헤엄쳐 가서 잠수해 들어가면 보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큰 보말들이 지천에 있는데 그걸 따는 거죠. 또 성게들도 많았어요. 배고프면 성게 잡아서 돌로 깨서 후루룩 먹고요. 그렇게 놀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물었어요.
홍시 :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동화책 속 한 장면 같네요. 한동안 육지에 계시다가 다시 제주로 귀향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수오 : 원래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해 연구소에 5~6년 근무하다가 한의학에 매료돼서 다시 한의대에 들어갔어요. 84년도에 육지에 나가서 전자공학도가 되고 94년도에는 한의대생이 돼서 30대부터 지금까지는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제주 사람들은 방학 때 되면 무조건 고향 바닷가에 다 모입니다. 소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다 탑동 바닷가에서 모여 한 사나흘 친구들 만나는 거죠. 한의사를 하게 되니까 고마운 건, 전자공학 엔지니어로서는 은퇴 이후에나 고향에 내려올 수밖에 없는데 한의사로서는 고향에 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15년 전인 40대 중반에 고향으로 회귀해 한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김수오
홍시 : 고향인 제주에 돌아오니 어떠신가요?
수오 : 제일 좋은 건 바다를 마음껏 보는 거, 그리고 오름을 마음껏 다니는 거죠. 고향에 돌아와 한의사 하면서 카메라로 제주의 풍광을 담는데 저녁에 진료 마치고 주로 오름이나 들판 위주로 다니고 있어요. 바다는 이제 들어가지는 않고 육지 사람들이 오면 가끔 드라이브시켜주는 정도예요. 지나친 개발로 원래의 그 바다, 유년 시절의 바다가 아니더라고요. 어릴 때는 놀다가 그냥 바로 성게 까먹고 보말 잡아먹고 그랬는데 40대가 되어 돌아온 바다는 그걸 그냥 먹었다가는 탈 난다는 걸 아는 거죠. 바다가 너무 많이 오염됐어요. 이제 바다는 그냥 노을 지는 풍경을 담는 정도로만 남아 있어요.
홍시 : 본업이 한의사인데 저녁이면 집에 가서 쉬는 게 아니라 들판이나 오름들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시던데 그렇게 된 계기가 있나요?
수오 : 직접적인 계기는 강정마을이었어요. 외돌개부터 시작해 월평포구까지 올레 7코스에 해당되는 곳인데 아름답기로 이름난 강정천에 엄청 넓적하고 평평한 구럼비 바위가 있어요. 저도 거기 자주 갔는데 누워서 하늘 보고 있으면 그 느낌이 아주 좋거든요. 강정천은 제주에서 아주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예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구럼비를 폭파해서 군사 기지를 만든다는 거예요. 이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개발 광풍이 불어 탑동이 매립되면서 그 아름답던 바다가 없어져 버렸는데 제2의 탑동 문제처럼 다가왔죠. 구럼비를 폭파해 버리고 공사가 강행되면서 24시간 현장에서 그걸 막는 주민들이 막 다치기도 했어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죠.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진료하게 된 거예요. 한의원은 제주시에서 가장 번화가인 노형동이고 강정마을은 한라산 너머 바닷가 조그마한 오래된 마을인데 극과 극인 공간을 넘나들었어요.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해질 무렵 도착해 공사 막다가 다친 분들, 농성하는 분들 침놓아 드리고 같이 공사 차량도 막았죠. 밤 12시쯤 되어 소강상태가 되면 저는 다시 운전해 제주시로 넘어왔어요.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전쟁터 같은 그곳에서 다시 번화가인 도시로 넘어오는 그 사이의 길, 제주 풍광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중산간 들판인 새별오름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면 밤바다에 불빛이 가득하고 한라산 쪽을 보면 사방의 오름들 실루엣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보는 저 오름의 풍광들도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할 줄 알았던 탑동이 사라져 버렸고 구럼비도 사라져 가고 있는 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한의사로서 치료도 하지만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래서 거의 매일 오름과 들판을 다니면서 제주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제주 중산간 들판에서 한라산 위로 떠오른 보름달을 담는 김수오 님 ⓒ김수오

동검은이 오름의 새벽 풍광. 봄부터 늦가을까지 오름 들판에 자유로이 방목된 소들 ⓒ김수오
홍시 :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제주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지요?
수오 : 제가 지금은 바다에 들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바닷가의 백화현상으로 알 수 있어요. 바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보말은 너무도 흔했는데 이제 보말도 그렇고 바다의 해조류들도 점점 귀한 물건이 되고 있어요. 바다가 죽어가니 해녀 삼촌들 인심도 죽어가고 있고요. 그렇게 인심이 야박해지고 각박해지는 것도 기후위기로 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게 기후위기는 바다에서부터 로 느껴집니다.
홍시 : 아직도 제2공항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 전에 ‘제2공항 반대 투쟁 10년 후원 한마당’ 행사가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제2공항 반대 투쟁 현장에 항상 나타나는 선생님은 제2공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오 : 개발 광풍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은데 죽어가고 오염되는 것들의 최정점이 지하수더라고요. 온갖 리조트와 골프장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지하수가 한계를 보이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제2공항은 지하수를 망가뜨리는 최정점에 있는 거죠. 오름을 밀어 버리고 농지가 없어지고 철새들도 사라지는 등등 이런 것들도 있지만 제가 볼 때 가장 큰 위험은 제주 사람들 삶의 원천이 되는 지하수가 마지막 위험 수위를 넘어버리는 거라고 봅니다. 공항이 들어오게 되면 도로가 확장되고 리조트들이 생겨나고 끝도 없이 지하수를 뽑아 쓰고 또 마구 버리면서 지하수맥까지 오염이 됩니다. 그렇게 근원이 오염되면 재생이 어려워요.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너무 위험한 거죠.

2018년 새해 첫날 제2공항 예정지가 내려다 보이는 성산일출봉에서 제2공항반대 시민들의 퍼포먼스 ⓒ김수오
홍시 : 사진작가로서 제주를 자세히 들여다보실 것 같은데 제주 자연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수오 : 사진을 찍은 저는 제주 서쪽은 안 가요. 이미 온갖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꽉 들어차 있어요. 서쪽에 있는 오름에서 카메라 들이대면 카메라 앵글에 아름다운 오름들 사이에 있는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무조건 다 들어와요. 그걸 지울 수 없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동쪽으로 가는데 동쪽은 그나마 제주의 원형이 남아 있어요. 인공적인 거대한 건축물들이 막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 속에 불이 꺼지고 관광객 차들이 빠지고 나면 원래의 어둠이 있고 제주 본연의 느낌이 살아 있어요. 원초적인 자연의 풍광이 있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힐링이 되고 자연이 살아 숨 쉬거든요. 제주가 유네스코 3관왕이라고 하는데 모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덕분이죠. 그걸 보러 사람들이 오는 건데 제2공항 만들면 아름다운 풍광이 사라져 버리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제주를 찾을 이유가 없는 거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재버리는 게 저는 제2공항이라고 느껴져요.
제2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는 동쪽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원초적인 자연의 느낌이 얼마나 우리를 치유하게 하는지 알리고 싶어서 5-6년 전부터 ‘달맞이 오름’이라는 행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달빛 아래 오름을 걷는 거예요. 동쪽에 있는 동거믄이 오름에서 추석 연휴 때 달빛 아래 함께 걷고 또 연주자도 와서 첼로 연주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시고 서로 인사 나누고 해요.

2024년 5월, 동검은이오름에서 달맞이오름 행사 ⓒ김수오

2019년 8월, 제2공항 예정지인 신산리 해변에서 ‘성난 오름 문화제’에 참석 중인 주민들 ⓒ김수오
홍시 : 제주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수오 : 제주 바다 생각하면 슬픈 느낌이 먼저 들죠. 죽어가는 게 너무 생생하게 보이니까 마음 한편이 아린 거예요. 그래서 바다는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강요배 화백께서 그런 말을 했어요. “태풍이 불면 바다가 막 되싸져.” 태풍이 불면 바다가 막 뒤집어진다는 거죠. 파도가 쳐서 밑에 있는 것들이 막 뒤집어지면 바다가 파란 바다가 아니라 흙탕물이 되는데 그렇게 한번 뒤집어 주면 바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고요. 강요배 선배의 바다 그림을 보면 바다의 그 원초적인 느낌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이제는 난개발로 조간대가 망 가지고 백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니 기후위기 시대에 과연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요. 다행히 제주 바다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파란’이 있으니까 감사하죠. 내가 풀지 못하고 감당 못하는 큰 짐을 맡겨 놓았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중이예요.
홍시 :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바다는 또 회복력도 있잖아요. 회복의 힘을 믿으며 열심히 할동하는 파란에 선생님 같은 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긴 시간 시간 내어주시고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 밤바다를 비추는 고깃배 불빛 ⓒ김수오

4월 하순 갯무꽃 만발한 제주 바닷가 저녁 풍경 ⓒ김수오
김수오 작가 사진전 '가닿음으로' 관련 기사와 사진 <링크>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홍시의 말 :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제주의 들판과 오름에서 이슬을 맞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업은 한의사인데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속내를 절로 털어놓게 하는 따뜻한 한의사이면서 사진 책을 내고 두 번에 걸쳐 사진 전시회도 연 작가입니다. 제주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사진에 매료된 채 7월 2일 저녁, 한의원 북카페에서 김수오(이하 수오) 님을 만났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저녁이면 왜 제주의 오름을 헤매고 다니는지, 그의 제주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홍시 : 어릴 때 제주 바다와 관련된 기억이 있으신가요?
수오 : 해 질 녘에 물때 시간에 맞춰서 긴 옷에 패랭이 쓰고 바구니 들고 가서 바다로 갔어요. 먹돌들 딱 뒤집으면 깅이(게)들 또 보말(고둥)들 있었죠. 잡아서 바구니에 막 담고는 했어요. 산지천 쪽에 살아서 사라봉에 가서 많이 놀았는데 여름철 되면 동네 고등학교 형들 따라다녔어요. 동부두 쪽 방파제로 가서 뛰어들어 다이빙도 했고요. 고등학교 형아들은 작살 들고 수경 쓰고 물에 들어가서 객주리(쥐치) 잡았어요. 그때는 뭐 객주리가 지천이니까. 그 당시 객주리는 잡아도 맛없다고 해서 그냥 밭에다 거름으로 주곤 했거든요. 형아들이 객주리 잡아 탁 던지면 우리 꼬맹이들은 그거 받았어요. 형아들이 연필 깎는 칼로 짝짝짝 잘라서 가져간 된장에다가 찍어 먹을 때 (우리도 옆에서) 얻어먹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사라봉 뒤 별도봉 쪽 바다에서 노는데 거기엔 큰 바위들이 있었어요. 수경 끼고 바위 사이로 헤엄쳐 가서 잠수해 들어가면 보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큰 보말들이 지천에 있는데 그걸 따는 거죠. 또 성게들도 많았어요. 배고프면 성게 잡아서 돌로 깨서 후루룩 먹고요. 그렇게 놀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물었어요.
홍시 :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동화책 속 한 장면 같네요. 한동안 육지에 계시다가 다시 제주로 귀향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수오 : 원래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해 연구소에 5~6년 근무하다가 한의학에 매료돼서 다시 한의대에 들어갔어요. 84년도에 육지에 나가서 전자공학도가 되고 94년도에는 한의대생이 돼서 30대부터 지금까지는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제주 사람들은 방학 때 되면 무조건 고향 바닷가에 다 모입니다. 소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다 탑동 바닷가에서 모여 한 사나흘 친구들 만나는 거죠. 한의사를 하게 되니까 고마운 건, 전자공학 엔지니어로서는 은퇴 이후에나 고향에 내려올 수밖에 없는데 한의사로서는 고향에 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15년 전인 40대 중반에 고향으로 회귀해 한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김수오
홍시 : 고향인 제주에 돌아오니 어떠신가요?
수오 : 제일 좋은 건 바다를 마음껏 보는 거, 그리고 오름을 마음껏 다니는 거죠. 고향에 돌아와 한의사 하면서 카메라로 제주의 풍광을 담는데 저녁에 진료 마치고 주로 오름이나 들판 위주로 다니고 있어요. 바다는 이제 들어가지는 않고 육지 사람들이 오면 가끔 드라이브시켜주는 정도예요. 지나친 개발로 원래의 그 바다, 유년 시절의 바다가 아니더라고요. 어릴 때는 놀다가 그냥 바로 성게 까먹고 보말 잡아먹고 그랬는데 40대가 되어 돌아온 바다는 그걸 그냥 먹었다가는 탈 난다는 걸 아는 거죠. 바다가 너무 많이 오염됐어요. 이제 바다는 그냥 노을 지는 풍경을 담는 정도로만 남아 있어요.
홍시 : 본업이 한의사인데 저녁이면 집에 가서 쉬는 게 아니라 들판이나 오름들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시던데 그렇게 된 계기가 있나요?
수오 : 직접적인 계기는 강정마을이었어요. 외돌개부터 시작해 월평포구까지 올레 7코스에 해당되는 곳인데 아름답기로 이름난 강정천에 엄청 넓적하고 평평한 구럼비 바위가 있어요. 저도 거기 자주 갔는데 누워서 하늘 보고 있으면 그 느낌이 아주 좋거든요. 강정천은 제주에서 아주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예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구럼비를 폭파해서 군사 기지를 만든다는 거예요. 이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개발 광풍이 불어 탑동이 매립되면서 그 아름답던 바다가 없어져 버렸는데 제2의 탑동 문제처럼 다가왔죠. 구럼비를 폭파해 버리고 공사가 강행되면서 24시간 현장에서 그걸 막는 주민들이 막 다치기도 했어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죠.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진료하게 된 거예요. 한의원은 제주시에서 가장 번화가인 노형동이고 강정마을은 한라산 너머 바닷가 조그마한 오래된 마을인데 극과 극인 공간을 넘나들었어요.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해질 무렵 도착해 공사 막다가 다친 분들, 농성하는 분들 침놓아 드리고 같이 공사 차량도 막았죠. 밤 12시쯤 되어 소강상태가 되면 저는 다시 운전해 제주시로 넘어왔어요.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전쟁터 같은 그곳에서 다시 번화가인 도시로 넘어오는 그 사이의 길, 제주 풍광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중산간 들판인 새별오름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면 밤바다에 불빛이 가득하고 한라산 쪽을 보면 사방의 오름들 실루엣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보는 저 오름의 풍광들도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할 줄 알았던 탑동이 사라져 버렸고 구럼비도 사라져 가고 있는 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한의사로서 치료도 하지만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래서 거의 매일 오름과 들판을 다니면서 제주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제주 중산간 들판에서 한라산 위로 떠오른 보름달을 담는 김수오 님 ⓒ김수오
동검은이 오름의 새벽 풍광. 봄부터 늦가을까지 오름 들판에 자유로이 방목된 소들 ⓒ김수오
홍시 :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제주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지요?
수오 : 제가 지금은 바다에 들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바닷가의 백화현상으로 알 수 있어요. 바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보말은 너무도 흔했는데 이제 보말도 그렇고 바다의 해조류들도 점점 귀한 물건이 되고 있어요. 바다가 죽어가니 해녀 삼촌들 인심도 죽어가고 있고요. 그렇게 인심이 야박해지고 각박해지는 것도 기후위기로 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게 기후위기는 바다에서부터 로 느껴집니다.
홍시 : 아직도 제2공항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 전에 ‘제2공항 반대 투쟁 10년 후원 한마당’ 행사가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제2공항 반대 투쟁 현장에 항상 나타나는 선생님은 제2공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오 : 개발 광풍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은데 죽어가고 오염되는 것들의 최정점이 지하수더라고요. 온갖 리조트와 골프장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지하수가 한계를 보이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제2공항은 지하수를 망가뜨리는 최정점에 있는 거죠. 오름을 밀어 버리고 농지가 없어지고 철새들도 사라지는 등등 이런 것들도 있지만 제가 볼 때 가장 큰 위험은 제주 사람들 삶의 원천이 되는 지하수가 마지막 위험 수위를 넘어버리는 거라고 봅니다. 공항이 들어오게 되면 도로가 확장되고 리조트들이 생겨나고 끝도 없이 지하수를 뽑아 쓰고 또 마구 버리면서 지하수맥까지 오염이 됩니다. 그렇게 근원이 오염되면 재생이 어려워요.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너무 위험한 거죠.
2018년 새해 첫날 제2공항 예정지가 내려다 보이는 성산일출봉에서 제2공항반대 시민들의 퍼포먼스 ⓒ김수오
홍시 : 사진작가로서 제주를 자세히 들여다보실 것 같은데 제주 자연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수오 : 사진을 찍은 저는 제주 서쪽은 안 가요. 이미 온갖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꽉 들어차 있어요. 서쪽에 있는 오름에서 카메라 들이대면 카메라 앵글에 아름다운 오름들 사이에 있는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무조건 다 들어와요. 그걸 지울 수 없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동쪽으로 가는데 동쪽은 그나마 제주의 원형이 남아 있어요. 인공적인 거대한 건축물들이 막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 속에 불이 꺼지고 관광객 차들이 빠지고 나면 원래의 어둠이 있고 제주 본연의 느낌이 살아 있어요. 원초적인 자연의 풍광이 있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힐링이 되고 자연이 살아 숨 쉬거든요. 제주가 유네스코 3관왕이라고 하는데 모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덕분이죠. 그걸 보러 사람들이 오는 건데 제2공항 만들면 아름다운 풍광이 사라져 버리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제주를 찾을 이유가 없는 거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재버리는 게 저는 제2공항이라고 느껴져요.
제2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는 동쪽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원초적인 자연의 느낌이 얼마나 우리를 치유하게 하는지 알리고 싶어서 5-6년 전부터 ‘달맞이 오름’이라는 행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달빛 아래 오름을 걷는 거예요. 동쪽에 있는 동거믄이 오름에서 추석 연휴 때 달빛 아래 함께 걷고 또 연주자도 와서 첼로 연주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시고 서로 인사 나누고 해요.
2024년 5월, 동검은이오름에서 달맞이오름 행사 ⓒ김수오
2019년 8월, 제2공항 예정지인 신산리 해변에서 ‘성난 오름 문화제’에 참석 중인 주민들 ⓒ김수오
홍시 : 제주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수오 : 제주 바다 생각하면 슬픈 느낌이 먼저 들죠. 죽어가는 게 너무 생생하게 보이니까 마음 한편이 아린 거예요. 그래서 바다는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강요배 화백께서 그런 말을 했어요. “태풍이 불면 바다가 막 되싸져.” 태풍이 불면 바다가 막 뒤집어진다는 거죠. 파도가 쳐서 밑에 있는 것들이 막 뒤집어지면 바다가 파란 바다가 아니라 흙탕물이 되는데 그렇게 한번 뒤집어 주면 바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고요. 강요배 선배의 바다 그림을 보면 바다의 그 원초적인 느낌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이제는 난개발로 조간대가 망 가지고 백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니 기후위기 시대에 과연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요. 다행히 제주 바다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파란’이 있으니까 감사하죠. 내가 풀지 못하고 감당 못하는 큰 짐을 맡겨 놓았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중이예요.
홍시 :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바다는 또 회복력도 있잖아요. 회복의 힘을 믿으며 열심히 할동하는 파란에 선생님 같은 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긴 시간 시간 내어주시고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 밤바다를 비추는 고깃배 불빛 ⓒ김수오
4월 하순 갯무꽃 만발한 제주 바닷가 저녁 풍경 ⓒ김수오
김수오 작가 사진전 '가닿음으로' 관련 기사와 사진 <링크>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