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덕분에 노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노래를 곁에 두고 제주, 제주바다, 제주의 삶 곁에서 살아가고픈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흐르기 시작한 노래는 제주에서 출발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유럽까지 수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노래로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이후로는 자연스레 여행하는 삶을 살았고 평화 네트워크 그룹 ‘이매진피스’의 공동책임자로 쓰나미, 지진, 가난, 난민 등 여러 상황들에 놓인 이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잇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노래는 더 많은 여행을 했고 여행은 이야기가 되고 다시 노래가 되었습니다.
제주 바다와의 첫 만남은 오래전이지만 온전히 제주바다와 제주의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은 강정마을을 오고 가면서부터였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바다도, 지역의 삶도 무너져가는 강정,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구럼비 바위 위에서 바라보던 제주 바다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제주 해군 기지를 짓기 위해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기로 결정하기 몇 해 전부터 강정을 오고 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1.2Km 크기의 바위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바위 틈새로 나오는 용천수도 거기서 살고 있는 붉은 발 말똥개도 전부 함께 말입니다. 이매진피스팀과 제주생태관광이 함께 ‘제주를 여행한다면 당신의 하루는 강정과 함께 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달고 ‘Oneday for peace’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강정의 바다를 지키고 개발을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며 덕분에 제주를 자주,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행하는 청년 한 명과 함께 구럼비 바위를 맨발로 걷고, 조용히 바다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라가 하는 일에 왜 지역에서 반대를 하냐’며 ‘해군기지를 찬성한다’ 던 그 청년이 구럼비 바위 위를 걷고 나서 몇 분이 체 지나지 않아서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사라진다는 건가요?’ 제가 말했지요. ‘바로 당신이 밟고 있는 그 바다, 그 구럼비 바위 전부 다요.’
청년은 잠시 생각을 곱씹느라 말을 잃었습니다. ‘그건 안되죠!’라고 외치더니 청년은 꽤 오래도록 구럼비 바위를 맴돌다 떠났습니다.
어딘가 가 닿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 닿은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곳을 함께 지킬 용기도 더 오래 지속할 자신도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가 ‘평화의 바람’입니다. 음악을 공부해 보겠다며 뒤늦게 시작한 버클리 음대의 합격증을 들고 장학금을 기다리며 시작된 일이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지요.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제주가 나를 노래하게 했고 내가 닿는 곳곳마다 노래를 담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첫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 홀로 있는 작업실보다는 거친 바다 앞, 삶이 닿은 구럼비 바위가, 아름다운 풍경 뒤로 보이지 않는 거친 삶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고 그 이야기들이 비로소 노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이 노래들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 어디 일지를 묻게 되는 여정으로 들어선 셈입니다. 결국 버클리 음대 대신에 삶의 이야기 곳곳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제주가 저의 음악학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주의 이야기는 오름, 한라산, 숲, 바다 그리고 마을에 이르기까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제주의 그 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주로 향하는 걸음이 잦아지던 무렵, 제주 2 공항 소식을 들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새 길을, 더 넓고 편한 길을 만들기 위해 벌목이 결정된 비자림숲. 그리고 이 숲을 지키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노래는 숲을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하늘에 새 길을 내기 위해 더 많은 길을 지우고 더 많은 편리함을 위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워가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 지워지는 것들 앞에서 온몸을 다해 싸우고 지켜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 앞에서 바다와 숲이 내쉬는 한숨이 얼마나 깊을지, 무슨 말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즈음 신영복 선생님의 전시를 갔다가 ‘숲’이라는 그 한자를 오랫동안 곱씹어 봤습니다. 우리가 ‘숲’이 되어가는 건 어떤 과정일까. ‘우리’라 부르는 우리는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걸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그런 길’을 내어가는 사람들의 길은 빠르지도 고르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자림 숲에 집을 짓고 매일을 노래하고 춤을 추고 베어진 나무를 어루만지는 사람들을 보며 숲으로 가는 우리의 길은 ‘멀고도 구부러진 길’,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뇌어지고 자연스럽게 노래로 담기기 시작 헸습니다.
노래가 미처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진 즈음, <제주사람 허계생>의 이혜영 작가에게 우도에 사시는 1928년생 해녀할망의 물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평생 시집살이, 집안일, 밭 일을 하다가 바다로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두렵지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할망이 물에 들어가고 굽은 허리가 펴지는 그 순간 ‘꽃이 피고’, ‘새가 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은 여전히 두렵고 또 고마운 일임을, 물숨만큼만 딱 그만큼 정도에 감사하는 삶이어야 바다도 할망의 삶도 온전하다는 것을 할망의 이야기를 통해 헤아려봅니다. 노래를 만들고 후 보게 된 영화 <물꽃의 전설>(2023/고희영)에서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할망이 만나 온 바닷속, 바다 숲은 어땠을까, 할머니가 ‘물꽃’이라 부르는 산호는 점점 사라지고 더 이상 물꽃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먹먹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잃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바라보던 물꽃, 그 바다 숲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 ‘들물여’에 가면, 돌이 층계층계 쌓인 곳이 있는데 그 아래 가면 모래판이야. 거기에 꽃이 있는데 ‘물꽃’이라고 해. 빨갛고 푸르스름한 꽃이 있는데 나무처럼 뻗어 올라오지. 곱닥한 꽃, '물꽃.‘ " - 제주 현순직 할망
‘재난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삶도 음악으로 연결된 일들도 조금 더 생태적 태도와 관점을 가지고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3년 ‘솔가, 노래의 24계절’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절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음악동료들과 함께 ‘요란한 고사리’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음악을 매개로 사회 여러 곳곳의 변화의 목소리를 들어보는‘생생생’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비자림 숲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은 미술작가, 제주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산호이야기, 광주 청소년들의 기후위기행동까지 서로 가진 질문과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수 있는 일들에 대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솔가, 노래의 24계절’은 여러 생태작가와의 작업으로도 이어졌고 봄, 여름에 걸쳐 제주 4.3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동백의 봄’, 그리고 비로소 해녀할망의 이야기가 온전히 담긴 노래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바다를 보았네(My first ocean)'는 프로젝트의 두 번째로 발표한 싱글로 제주 소녀가 해녀가 되어 다시 만난 첫 바다 이야기입니다. ‘이혜영’작가가 해녀들의 첫 물질과 제주 옛 바다를 조사하며 만난 해녀 할망의 이야기가 ‘그런길’에 담긴 이후 이야기는 시가 되고 비로소 멜로디를 담은 노래로 들려졌습니다. 열다섯 무렵 첫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은 자신이 열어가야 할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것은 설레기도, 두렵기도, 벅차기도 한 바다였다고 합니다. 노래 속에서 반복되는 코러스 '바다를 보았네'는 소녀가 만나게 될 생의 수많은 의미의 중첩인 셈입니다. 그 수많은 바다는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아흔의 할머니를 여전히 그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소녀의 조심스러운 설렘에서 힘차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유영(遊泳)을 음악에 녹여냈습니다.
바다를 보았네
곡 : 솔가 / 노랫말 : 이혜영
열다섯 소녀 숨을 참았네 늘 놀던 바닷가
내려가고 싶었지 늘 알던 바다
열다섯 소녀 숨을 참았네 늘 놀던 바닷가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헤엄치고 싶었어
숨을 꼭 참고 두 팔을 허우쳐
두 다릴 흔들어 두 눈을 떴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왁왁한 바다숲 소리가 멈추고
햇살 물결치고 어린 물고기들 햇살이 되네
두 손을 뻗어 그 숲을 잡고파
마지막 남은 숨 움켜쥔 주먹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주먹을 펴보니 미역 꽁다리
내 첫 물질 미역 꽁다리
2024년부터 질문의 깊이를 더해가고 예술가로 해야 할 일들을 본격적으로 찾기 위해 ‘Song of hope’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재난의 시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질문을 품고 예술가, 기획자,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땅 위에서 예술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들에 대해 묻고 만나고 연결하는 일들입니다. 그곳엔 각자의 뿌리내린 땅을 위한 삶의 질문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각자의 철학과 방법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행 중인 이곳에서 사람들에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Song’은 무엇인지. 누군가에겐 삶의 철학이고 살아온 삶의 배경이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일상의 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Hope’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함께 바라는 그 무엇이기도 하고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 변화를 향한 저의 음악, 노래의 이야기도 다시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보는 중입니다.
바다의 이야기 저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분들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이 담아내는 목소리는 무엇인지, 당신의 희망은 어디를 향해가는지를 묻고 담고 싶습니다. 저는 다시 바다를, 숲을, 사람을 노래에 담아 가며 어딘가에서 만나 노래 한 소절과 당신이 말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바다를 보았네
솔가(노래하는 사람)
노래하는 삶의 시작에 제주의 바람, 바다, 그리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덕분에 노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노래를 곁에 두고 제주, 제주바다, 제주의 삶 곁에서 살아가고픈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흐르기 시작한 노래는 제주에서 출발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유럽까지 수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노래로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이후로는 자연스레 여행하는 삶을 살았고 평화 네트워크 그룹 ‘이매진피스’의 공동책임자로 쓰나미, 지진, 가난, 난민 등 여러 상황들에 놓인 이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잇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노래는 더 많은 여행을 했고 여행은 이야기가 되고 다시 노래가 되었습니다.
©솔가
제주 바다와의 첫 만남은 오래전이지만 온전히 제주바다와 제주의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은 강정마을을 오고 가면서부터였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바다도, 지역의 삶도 무너져가는 강정,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구럼비 바위 위에서 바라보던 제주 바다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제주 해군 기지를 짓기 위해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기로 결정하기 몇 해 전부터 강정을 오고 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1.2Km 크기의 바위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바위 틈새로 나오는 용천수도 거기서 살고 있는 붉은 발 말똥개도 전부 함께 말입니다. 이매진피스팀과 제주생태관광이 함께 ‘제주를 여행한다면 당신의 하루는 강정과 함께 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달고 ‘Oneday for peace’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강정의 바다를 지키고 개발을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며 덕분에 제주를 자주,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행하는 청년 한 명과 함께 구럼비 바위를 맨발로 걷고, 조용히 바다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라가 하는 일에 왜 지역에서 반대를 하냐’며 ‘해군기지를 찬성한다’ 던 그 청년이 구럼비 바위 위를 걷고 나서 몇 분이 체 지나지 않아서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사라진다는 건가요?’ 제가 말했지요. ‘바로 당신이 밟고 있는 그 바다, 그 구럼비 바위 전부 다요.’
청년은 잠시 생각을 곱씹느라 말을 잃었습니다. ‘그건 안되죠!’라고 외치더니 청년은 꽤 오래도록 구럼비 바위를 맴돌다 떠났습니다.
어딘가 가 닿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 닿은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곳을 함께 지킬 용기도 더 오래 지속할 자신도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가 ‘평화의 바람’입니다. 음악을 공부해 보겠다며 뒤늦게 시작한 버클리 음대의 합격증을 들고 장학금을 기다리며 시작된 일이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지요.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제주가 나를 노래하게 했고 내가 닿는 곳곳마다 노래를 담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첫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 홀로 있는 작업실보다는 거친 바다 앞, 삶이 닿은 구럼비 바위가, 아름다운 풍경 뒤로 보이지 않는 거친 삶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고 그 이야기들이 비로소 노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이 노래들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 어디 일지를 묻게 되는 여정으로 들어선 셈입니다. 결국 버클리 음대 대신에 삶의 이야기 곳곳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제주가 저의 음악학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주의 이야기는 오름, 한라산, 숲, 바다 그리고 마을에 이르기까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제주의 그 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평화의 바람
곡: 솔가 / 노랫말 : 솔가, 임영신
평화는 노래 평화는 여행
평화는 만남 평화는 마주잡은 손
평화는 물결 평화는 울림
평화는 웃음 그러나 때론 눈물
흔들리고 흔들리며 놓아가는 삶의 걸음
흔들리고 흔들리며 함께 가는 평화의 걸음
여기는 사람이 사는 마을 강정
여기는 구럼비가 사는 마을 강정
여기는 붉은 발 말똥게가 사는 강정
강정에 평화의 바람이 분다.
우는 것으로 평화가 오지는 않지
하지만 함께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된다
평화의 바람 https://youtu.be/mh8M8gYqwJA?si=9PWZBgb5EEOEF0DT / 영상제작 | 조아신
제주로 향하는 걸음이 잦아지던 무렵, 제주 2 공항 소식을 들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새 길을, 더 넓고 편한 길을 만들기 위해 벌목이 결정된 비자림숲. 그리고 이 숲을 지키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노래는 숲을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하늘에 새 길을 내기 위해 더 많은 길을 지우고 더 많은 편리함을 위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워가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 지워지는 것들 앞에서 온몸을 다해 싸우고 지켜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 앞에서 바다와 숲이 내쉬는 한숨이 얼마나 깊을지, 무슨 말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즈음 신영복 선생님의 전시를 갔다가 ‘숲’이라는 그 한자를 오랫동안 곱씹어 봤습니다. 우리가 ‘숲’이 되어가는 건 어떤 과정일까. ‘우리’라 부르는 우리는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걸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그런 길’을 내어가는 사람들의 길은 빠르지도 고르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자림 숲에 집을 짓고 매일을 노래하고 춤을 추고 베어진 나무를 어루만지는 사람들을 보며 숲으로 가는 우리의 길은 ‘멀고도 구부러진 길’,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뇌어지고 자연스럽게 노래로 담기기 시작 헸습니다.
노래가 미처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진 즈음, <제주사람 허계생>의 이혜영 작가에게 우도에 사시는 1928년생 해녀할망의 물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평생 시집살이, 집안일, 밭 일을 하다가 바다로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두렵지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할망이 물에 들어가고 굽은 허리가 펴지는 그 순간 ‘꽃이 피고’, ‘새가 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은 여전히 두렵고 또 고마운 일임을, 물숨만큼만 딱 그만큼 정도에 감사하는 삶이어야 바다도 할망의 삶도 온전하다는 것을 할망의 이야기를 통해 헤아려봅니다. 노래를 만들고 후 보게 된 영화 <물꽃의 전설>(2023/고희영)에서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할망이 만나 온 바닷속, 바다 숲은 어땠을까, 할머니가 ‘물꽃’이라 부르는 산호는 점점 사라지고 더 이상 물꽃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먹먹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잃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바라보던 물꽃, 그 바다 숲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 ‘들물여’에 가면, 돌이 층계층계 쌓인 곳이 있는데 그 아래 가면 모래판이야. 거기에 꽃이 있는데 ‘물꽃’이라고 해. 빨갛고 푸르스름한 꽃이 있는데 나무처럼 뻗어 올라오지. 곱닥한 꽃, '물꽃.‘ " - 제주 현순직 할망
그런길
곡/노랫말 : 솔가
숲으로 가는 그 길은 멀고도 구부러진길
빠르게 갈 수는 없는 그런 길
숲으로 가는 그 길은 혼자선 갈 수 없는 길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하는 길
모나고 거친 마음들이 숲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는 서로에게 숲이 되어준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
어느새 숲에도 봄이 찾아 오네
바다로 가는 그 길은 깊고도 숨이 차는 길
함부로 뛰어 들 수는 없는 길
바다로 가는 그 길은 맘대로 갈 수 없는 길
물결에 몸을 맡겨야 가 닿을 수 있어
한없이 차오른 욕심들이 바다의 시간에 남겨두면
비로소 굽어졌던 마음들이 제 길을 찾고
어느새 거칠던 바다에도 시원한
꽃이 피네 새가 나네
춤을 추네 노래 하네
저 숲으로 저 바다로
그대로, 아름답게
그런길 https://youtu.be/SeKDFdYtPtM?si=5Q9ugnoO-ZKeYuRr / 영상제작 | 황일수
‘재난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삶도 음악으로 연결된 일들도 조금 더 생태적 태도와 관점을 가지고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3년 ‘솔가, 노래의 24계절’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절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음악동료들과 함께 ‘요란한 고사리’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음악을 매개로 사회 여러 곳곳의 변화의 목소리를 들어보는‘생생생’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비자림 숲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은 미술작가, 제주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산호이야기, 광주 청소년들의 기후위기행동까지 서로 가진 질문과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수 있는 일들에 대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솔가, 노래의 24계절’은 여러 생태작가와의 작업으로도 이어졌고 봄, 여름에 걸쳐 제주 4.3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동백의 봄’, 그리고 비로소 해녀할망의 이야기가 온전히 담긴 노래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바다를 보았네(My first ocean)'는 프로젝트의 두 번째로 발표한 싱글로 제주 소녀가 해녀가 되어 다시 만난 첫 바다 이야기입니다. ‘이혜영’작가가 해녀들의 첫 물질과 제주 옛 바다를 조사하며 만난 해녀 할망의 이야기가 ‘그런길’에 담긴 이후 이야기는 시가 되고 비로소 멜로디를 담은 노래로 들려졌습니다. 열다섯 무렵 첫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은 자신이 열어가야 할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것은 설레기도, 두렵기도, 벅차기도 한 바다였다고 합니다. 노래 속에서 반복되는 코러스 '바다를 보았네'는 소녀가 만나게 될 생의 수많은 의미의 중첩인 셈입니다. 그 수많은 바다는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아흔의 할머니를 여전히 그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소녀의 조심스러운 설렘에서 힘차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유영(遊泳)을 음악에 녹여냈습니다.
바다를 보았네
곡 : 솔가 / 노랫말 : 이혜영
열다섯 소녀 숨을 참았네 늘 놀던 바닷가
내려가고 싶었지 늘 알던 바다
열다섯 소녀 숨을 참았네 늘 놀던 바닷가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헤엄치고 싶었어
숨을 꼭 참고 두 팔을 허우쳐
두 다릴 흔들어 두 눈을 떴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왁왁한 바다숲 소리가 멈추고
햇살 물결치고 어린 물고기들 햇살이 되네
두 손을 뻗어 그 숲을 잡고파
마지막 남은 숨 움켜쥔 주먹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주먹을 펴보니 미역 꽁다리
내 첫 물질 미역 꽁다리
2024년부터 질문의 깊이를 더해가고 예술가로 해야 할 일들을 본격적으로 찾기 위해 ‘Song of hope’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재난의 시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질문을 품고 예술가, 기획자,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땅 위에서 예술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들에 대해 묻고 만나고 연결하는 일들입니다. 그곳엔 각자의 뿌리내린 땅을 위한 삶의 질문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각자의 철학과 방법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행 중인 이곳에서 사람들에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Song’은 무엇인지. 누군가에겐 삶의 철학이고 살아온 삶의 배경이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일상의 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Hope’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함께 바라는 그 무엇이기도 하고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 변화를 향한 저의 음악, 노래의 이야기도 다시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보는 중입니다.
바다의 이야기 저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분들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이 담아내는 목소리는 무엇인지, 당신의 희망은 어디를 향해가는지를 묻고 담고 싶습니다. 저는 다시 바다를, 숲을, 사람을 노래에 담아 가며 어딘가에서 만나 노래 한 소절과 당신이 말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솔가
참고 @solga. / @songofhope.emf / @Imaginepeace_bey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