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오조리 | 수플 다큐멘터리스트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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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리

하도리 - 오조리 - 표선리까지 이어지는

수플 | 다큐멘터리스트


새가 삶에 다가온 2024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마흔일곱 번의 바다


- 너른 바다 곁에서 -

저는 2024년 여름부터 제주 바닷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나절 해수욕을 즐기다 떠나던 바다가 매일 눈에 익는 일상이 되고 나니, 사뭇 다른 층위로 다가옵니다. 바다 가장자리를 걸을 때면 이렇게 다양한 향을 품은 존재들이 곁에 있었다니 놀라곤 합니다. 진득한 우묵사스레피 향, 시큰한 순비기 열매 향, 현무암 거스러미를 덮은 파래 향처럼요. 예전엔 그저 미끄덩한 초록색을 드리운 바다를 보면 왠지 유해할 것 같아 기피하기도 했습니다. 바다를 세밀히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미세한 변화를 읽게 된 것은 파란 덕분이기도 합니다. 바다숲탐사대의 인연으로 작년 한 해, 동네 조간대 해조류를 같은 자리에서 계절마다 기록했습니다.


매번 돌아오는 계절, 그 문턱에서 만난 바다는 단 한 번도 같은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뜨거워진 바닷물 탓인지 현무암 그늘진 곳을 활보하던 게들이 줄었습니다. 용천수가 흘러 마을 주민들이 일을 마치고 더위를 식히러 들어가던 그 자리에서, 2025년 3월 11일에는 넓적부리, 고방오리, 홍머리오리, 쇠오리 등 다양한 오리 무리를 만났습니다. 올 3월에는 주로 텃새인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몇 외엔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 여름 무렵,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란한 색을 칠한 관광시설이 들어선 탓인지도 모릅니다. 빛공해와 소음공해가 생기면서 저부터도 발길을 끊게 된 그곳은 매일 산책을 나서던 길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새들에게도 기피 장소가 되어버린 탓일까요? 바로 옆은 양어장 배출수 앞이라 늘 바닷새들이 먹이활동을 하던 곳이었는데 말이죠.


제주에서 만난 새 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존재는 긴 겨울을 지나고도 북쪽 서식지로 돌아가지 않고 여름 내내 혼자 동쪽에 머문 혹고니입니다. 왜 떠나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 그가 있는 곳으로 종종 찾아가 안부를 살폈습니다. 기수역에서 구멍갈파래를 먹는 그에게 너무 덥지는 않았는지, 혹시 용천수가 나오는 곳을 찾아다니며 차가운 물에 몸을 띄우고 있는 건지 말이에요. 시월의 바람을 타고 그는 마을 안쪽 연안습지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겨울, 오리와 기러기들이 철새 도래지로 돌아왔을 때 기러기 서른셋과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과 지내는 것이 편한지도 궁금했습니다.


언젠가 철새 도래지 팻말이 있는 한적한 연안습지에서 새들에게 돌을 던지며 즐거워하는 3대 가족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안절부절못하다 그냥 돌아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어디든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길을 내고 관광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는 탓에, 새들의 은신처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아주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도 다리 건너 드리운 제 그림자에 놀라 경고음을 내며 날아오르는 오리들. 새들은 한 번 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기에 별일이 없다면 날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그 예기치 못한 날갯짓을 볼 때면 항상 미안하다 사과하곤 합니다.


벌써 춘분이 지났습니다. 겨울 새가 머문 자리는 비워지고, 다른 자리에 여름 새가 찾아와 앉겠지요. 바삐 둥지를 틀고 새 생명을 지구에 초대할 여름 철새들이요. 혹시 작년에도 제주에 왔던 새라면, 같은 자리를 찾아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사업 앞에 그들이 돌아갈 보금자리는 온전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이 시작된 직후 2년간, 전 세계 붉은어깨도요 중 20%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1 철새들에게 중요한 중간 기착지인 한국의 갯벌과 제주 같은 섬이 이전과 달라져 있다면, 그래서 먹이를 찾을 수 없다면, 1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새는 쉴 곳을 찾지 못한 채 아사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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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고니, 제주, 2026.02.13. ©수플


혹고니는 여름이 오기 전 북쪽으로 떠날까요? 그가 돌아갈 자리가 온전하기를, 그리고 언젠가 가족과 함께 이 익숙한 바다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현생 인류보다 머나먼 날부터 삶을 이어온 새들의 바다로.



백승목. (2008.10.29). “새만금 공사후 붉은어깨도요 20% 사라져”. https://www.khan.co.kr/article/20081029181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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