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째 부모성 함께쓰기를 해온, 제주 버스운전원
김송기은 님 인터뷰
홍시의말
한국 사회에서 30여 년째 ‘부모성 함께쓰기‘를 실천해 온 육십 넘은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직업은 버스 운전원. 그러면서 바이크와 요트를 타고 평화운동, 생태운동의 현장 곳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김송기은(이하 기은) 님을 수국이 막 피어나는 6월 초, 드넓은 백사장을 드러낸 제주도 표선 바다 앞 카페 ‘플로’에서 만났습니다.

바이크로 제주 일주 중 성산 섭지코지 앞에서(2016년 봄) ⓒ김송기은
"나’를 이루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한쪽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기은 님은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서 8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살던 집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집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밀물에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장면, 해 질 무렵이면 고깃배들이 가득 올라오는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린 시절, 졸(부추의 충청도 방언)을 가지고 마당의 구멍에 쑤셔 넣었던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구멍에 졸을 넣으면 벌레가 꼬물꼬물 올라오는데 그게 그렇게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혼자 놀 때 주로 그러고 놀았다. 흙이 깔린 마당은 농사를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추수 타작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잔치가 있을 때면 차일을 쳐서 햇빛도 가리고 비 가림도 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인 천안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새로 개교한 사립학교였는데 성적만을 중요하게 내세우는 강압적인 분위기와 이에 따른 입시 부담감으로 고등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비좁고 어두운 하숙방에서 작은 형광등 불빛 아래 공부하다가 반년 만에 시력이 심각할 정도로 나빠졌다. 입학원서에 붙일 사진 찍으러 갔는데 사진관 조명에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렌즈를 삽입해 지금은 어느 정도 잘 보인다.
육십 넘은 남성이 ‘부모성 함께쓰기’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97년 무렵 여성운동 단체에서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성차별이고 사회적 편견이라 생각했어요. ‘나’를 이루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한쪽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의 ‘김’과 아버지의 ‘송’을 함께 쓰며 이후 30여 년 가까이 ‘김송기은’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 천막 미사에서 ⓒ김송기은
8남매를 낳았어도 셋은 어려서 잃고 41세에 얻은 늦둥이 막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어머니와 정서적 유대가 매우 강했다.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억눌려 살던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컸던 것도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고자 한 계기도 된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시민운동 조직 혹은 생태환경을 기치로 내거는 정당 같은 곳에서 민주와 평등을 지향한다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가부장성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그런 가부장성은 때론 권위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대응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가해자로부터 폭력적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에 성인지교육은 어려서부터, 가정 내에서부터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운 스님과 평화의 길 순례 중 충남 예산에서 ⓒ김송기은
십 년 차 버스 운전원의 어떤 보람
대전에서 대학을 마치고 청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이도 둘을 낳았다. 마흔여덟 살 되던 해 사별을 하고 이듬해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마치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선뜻 따라나서 주었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임실을 지나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쳐 장흥 노력항까지 와서 오렌지 호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들어왔다. 사흘 반이 걸렸다. 그러고는 자동차를 빌려 제주 일대를 좀 돌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아들이 학교에 가서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타고 제주도 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단다. 이 아들이 지금은 서른한 살이 되었고, 딸은 서른네 살이 되었다. 둘 다 육지에 살아 가끔 만나곤 한다. 제주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53세 되던 2015년도의 일이니 이제 11년째다. 현재 서귀포 공영버스 소속의 버스 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2주마다 일하는 시간과 노선이 바뀌는데 같은 곳을 계속 운전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긴장감도 떨어지기에 정기적으로 바꾸는 것을 운영 정책으로 한단다. 2017년 3월에 입사했으니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십 년 차 버스 운전원에게는 어떤 보람이 있을까?
"제주시에 비해 서귀포시 쪽은 손님도 적고 차량 통행도 적어 시간에 그리 쫓기는 편은 아니에요. 손님들은 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거나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인데,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어르신들을 기다려 줄 여유가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올라오면서 ‘아이고’를 대여섯 번 하면서 올라오시거든요. 버스에 오르는 게 산을 하나 오르는 것 같은 힘든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운전하는 노선은 승객이 많지 않다 보니 자주 오가는 분들과 인사하게 되어 좀 지나니 친숙해지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자기 가족 얘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신흥 2리 고수 동이 버스 종점인데 오늘도 거길 돌아 나오는데 거기 사는 사람이 저보고 '오라방 오라방' 하더라고요. 106세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분인데, 그런 분 만나면 어머니 안부도 묻고 또 산책 나오시면 내려가 인사도 드리고요. 귤 철이면 어떤 분은 버스에서 내려 귤 한 컨테이너를 올려놓고 가셔요. 먹으라고. 이런 건 마을에서나 가능하지, 도시에는 없는 일이잖아요. 운전하면서 그런 게 참 보람 있고 좋습니다."

고 채현국 선생님 부부와 제주 돌문화공원에서(2020년 무렵) ⓒ김송기은
승객들과 안부 인사 나누는 모습,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귀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 태우면서 높은 버스 계단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은데, 휠체어나 유아차 태울 때도 그렇고 저상버스 필수 운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진도 팽목항에서(2015년 4월 초) ⓒ김송기은
"맞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노인이거나 버스 타는데 제약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차별이고 불평등이죠. 우리 회사도 저상버스가 있긴 해요. 저상버스를 타면 확실히 편하다고들 말씀하시고요. 그런데 저상버스 도입한 초창기에 자꾸 고장이 났대요. 고장이 잦아 운행하는 날과 정비하는 날이 거의 엇비슷할 정도라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휠체어 실을 수 있는 전기 버스가 운행 중이긴 한데 20% 정도 되려나, 숫자가 아직 많이 미흡합니다."
일하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제주가 따뜻할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겨울철 제주는 춥고 눈도 많이 내리거든요. 폭설이 내리면 운전원들은 긴장하게 되죠. 전날 밤부터 눈이 얼마나 내리나 예의주시하고 새벽이 되면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체인도 감고 단단히 준비합니다. 그럴 때 좀 진땀을 빼죠. 그 외에 특별히 애로사항은 별로 없습니다."

버스운전원으로 일하는 중에 ⓒ김송기은
제주 바다에 대한 어떤 바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는 지인의 소개로 가입했고, 창립총회에도 참석했다. 제주는 사면이 다 바다라 그가 바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버스 운행하다가 쉬는 시간에 잠시 맨발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고 한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봉지를 하나 들고 걷는다. 줍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담배꽁초인데 특히 담배꽁초 필터가 물에 풀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악스럽다. 이건 바다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며 반드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빨대도 많이 보인다.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플라스틱 가득 찬 섬도 있다고 들었다. 미세플라스틱이 먹이사슬 타고 인간에게까지 영향 미친다니 그래서 더욱 바다를 지키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파란’이 이미 제주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해양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 바이크 면허를 따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제주 전역의 집회 현장에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다. 제주에는 더 이상 공항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동검은이오름 ‘제2공항 반대 달맞이 행사’에도 참여한다. 남원의 남선사에서 열리는 ‘좋은 영화보기 모임’에도 참여하고 ‘송악산 알뜨르 사람들’ 주최의 송악산 달 마실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한다. 요즘 특별하게 관심 두는 곳은 반전 평화운동 하는 ‘개척자들’이란 단체인데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 덕에 요트에 흠뻑 빠져 있다.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구호품을 전달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들과 교류하며 요트 조종 면허도 따고 바다에 나가 훈련도 함께한다.

인터뷰 중인 카페에서 ⓒ김송기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 앞에서 제주 바다에 대한 어떤 바람이 있는지 물었다.
"제주 바다의 백화현상이 심각해지고 산호초 군락이 훼손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느리고 불편하게, 좀 덜 갖고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으로 전환이요, 며칠 후면 지방선거일인데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미래의 주역들을 책임질 교육감이 누가 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적극 개입해 작은 일부터 세상을 바꿔 나갈 좋은 후보를 뽑아야 해요. 공영버스 운전원이 공무원이라 지금은 당적을 포기했지만 그 이전엔 녹색당원이었어요. 녹색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당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의 자녀, 손주 세대를 위해서라도 녹색당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꼭 녹색당 의원이 제주도의회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1)

인터뷰를 마치고 표선항에서 ⓒ김송기은
육십을 넘긴 후부터는 음력 대신 양력 생일을 기념하는데 양력 생일이 공교롭게도 10월 10일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도 스스로 원하는 날,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다. 평소 스콧 니어링2)을 존경하는데 그는 딱 100세 되는 해, 100세 생일 밥을 먹은 후에 곡기를 끊고 18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스콧 니어링처럼 때가 되면 곡기를 끊어 이 세상을 마치고 싶단다. 별 탈 없이 오래 살게 된다면 미수인 88세 혹은 망백인 91세쯤 되면 지인들을 불러 장례식 대신 2박 3일 잔치를 하며 세상에 하직 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 기은 님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잔치에 초대받길 고대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1) 지방선거 결과 제주의 녹색당 비례대표 김순애 후보는 3%를 얻으며 안타깝게도 제주도의회 진출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2) 스콧 니어링(1883.8.6.-1983.8.24.) 사회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이며 반전평화운동가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30여 년째 부모성 함께쓰기를 해온, 제주 버스운전원
김송기은 님 인터뷰
홍시의말
한국 사회에서 30여 년째 ‘부모성 함께쓰기‘를 실천해 온 육십 넘은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직업은 버스 운전원. 그러면서 바이크와 요트를 타고 평화운동, 생태운동의 현장 곳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김송기은(이하 기은) 님을 수국이 막 피어나는 6월 초, 드넓은 백사장을 드러낸 제주도 표선 바다 앞 카페 ‘플로’에서 만났습니다.
바이크로 제주 일주 중 성산 섭지코지 앞에서(2016년 봄) ⓒ김송기은
"나’를 이루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한쪽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기은 님은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서 8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살던 집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집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밀물에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장면, 해 질 무렵이면 고깃배들이 가득 올라오는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린 시절, 졸(부추의 충청도 방언)을 가지고 마당의 구멍에 쑤셔 넣었던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구멍에 졸을 넣으면 벌레가 꼬물꼬물 올라오는데 그게 그렇게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혼자 놀 때 주로 그러고 놀았다. 흙이 깔린 마당은 농사를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추수 타작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잔치가 있을 때면 차일을 쳐서 햇빛도 가리고 비 가림도 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인 천안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새로 개교한 사립학교였는데 성적만을 중요하게 내세우는 강압적인 분위기와 이에 따른 입시 부담감으로 고등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비좁고 어두운 하숙방에서 작은 형광등 불빛 아래 공부하다가 반년 만에 시력이 심각할 정도로 나빠졌다. 입학원서에 붙일 사진 찍으러 갔는데 사진관 조명에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렌즈를 삽입해 지금은 어느 정도 잘 보인다.
육십 넘은 남성이 ‘부모성 함께쓰기’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97년 무렵 여성운동 단체에서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성차별이고 사회적 편견이라 생각했어요. ‘나’를 이루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한쪽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의 ‘김’과 아버지의 ‘송’을 함께 쓰며 이후 30여 년 가까이 ‘김송기은’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 천막 미사에서 ⓒ김송기은
8남매를 낳았어도 셋은 어려서 잃고 41세에 얻은 늦둥이 막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어머니와 정서적 유대가 매우 강했다.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억눌려 살던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컸던 것도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고자 한 계기도 된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시민운동 조직 혹은 생태환경을 기치로 내거는 정당 같은 곳에서 민주와 평등을 지향한다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가부장성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그런 가부장성은 때론 권위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대응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가해자로부터 폭력적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에 성인지교육은 어려서부터, 가정 내에서부터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운 스님과 평화의 길 순례 중 충남 예산에서 ⓒ김송기은
십 년 차 버스 운전원의 어떤 보람
대전에서 대학을 마치고 청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이도 둘을 낳았다. 마흔여덟 살 되던 해 사별을 하고 이듬해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마치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선뜻 따라나서 주었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임실을 지나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쳐 장흥 노력항까지 와서 오렌지 호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들어왔다. 사흘 반이 걸렸다. 그러고는 자동차를 빌려 제주 일대를 좀 돌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아들이 학교에 가서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타고 제주도 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단다. 이 아들이 지금은 서른한 살이 되었고, 딸은 서른네 살이 되었다. 둘 다 육지에 살아 가끔 만나곤 한다. 제주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53세 되던 2015년도의 일이니 이제 11년째다. 현재 서귀포 공영버스 소속의 버스 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2주마다 일하는 시간과 노선이 바뀌는데 같은 곳을 계속 운전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긴장감도 떨어지기에 정기적으로 바꾸는 것을 운영 정책으로 한단다. 2017년 3월에 입사했으니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십 년 차 버스 운전원에게는 어떤 보람이 있을까?
"제주시에 비해 서귀포시 쪽은 손님도 적고 차량 통행도 적어 시간에 그리 쫓기는 편은 아니에요. 손님들은 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거나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인데,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어르신들을 기다려 줄 여유가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올라오면서 ‘아이고’를 대여섯 번 하면서 올라오시거든요. 버스에 오르는 게 산을 하나 오르는 것 같은 힘든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운전하는 노선은 승객이 많지 않다 보니 자주 오가는 분들과 인사하게 되어 좀 지나니 친숙해지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자기 가족 얘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신흥 2리 고수 동이 버스 종점인데 오늘도 거길 돌아 나오는데 거기 사는 사람이 저보고 '오라방 오라방' 하더라고요. 106세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분인데, 그런 분 만나면 어머니 안부도 묻고 또 산책 나오시면 내려가 인사도 드리고요. 귤 철이면 어떤 분은 버스에서 내려 귤 한 컨테이너를 올려놓고 가셔요. 먹으라고. 이런 건 마을에서나 가능하지, 도시에는 없는 일이잖아요. 운전하면서 그런 게 참 보람 있고 좋습니다."
고 채현국 선생님 부부와 제주 돌문화공원에서(2020년 무렵) ⓒ김송기은
승객들과 안부 인사 나누는 모습,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귀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 태우면서 높은 버스 계단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은데, 휠체어나 유아차 태울 때도 그렇고 저상버스 필수 운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진도 팽목항에서(2015년 4월 초) ⓒ김송기은
"맞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노인이거나 버스 타는데 제약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차별이고 불평등이죠. 우리 회사도 저상버스가 있긴 해요. 저상버스를 타면 확실히 편하다고들 말씀하시고요. 그런데 저상버스 도입한 초창기에 자꾸 고장이 났대요. 고장이 잦아 운행하는 날과 정비하는 날이 거의 엇비슷할 정도라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휠체어 실을 수 있는 전기 버스가 운행 중이긴 한데 20% 정도 되려나, 숫자가 아직 많이 미흡합니다."
일하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제주가 따뜻할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겨울철 제주는 춥고 눈도 많이 내리거든요. 폭설이 내리면 운전원들은 긴장하게 되죠. 전날 밤부터 눈이 얼마나 내리나 예의주시하고 새벽이 되면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체인도 감고 단단히 준비합니다. 그럴 때 좀 진땀을 빼죠. 그 외에 특별히 애로사항은 별로 없습니다."
버스운전원으로 일하는 중에 ⓒ김송기은
제주 바다에 대한 어떤 바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는 지인의 소개로 가입했고, 창립총회에도 참석했다. 제주는 사면이 다 바다라 그가 바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버스 운행하다가 쉬는 시간에 잠시 맨발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고 한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봉지를 하나 들고 걷는다. 줍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담배꽁초인데 특히 담배꽁초 필터가 물에 풀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악스럽다. 이건 바다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며 반드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빨대도 많이 보인다.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플라스틱 가득 찬 섬도 있다고 들었다. 미세플라스틱이 먹이사슬 타고 인간에게까지 영향 미친다니 그래서 더욱 바다를 지키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파란’이 이미 제주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해양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 바이크 면허를 따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제주 전역의 집회 현장에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다. 제주에는 더 이상 공항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동검은이오름 ‘제2공항 반대 달맞이 행사’에도 참여한다. 남원의 남선사에서 열리는 ‘좋은 영화보기 모임’에도 참여하고 ‘송악산 알뜨르 사람들’ 주최의 송악산 달 마실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한다. 요즘 특별하게 관심 두는 곳은 반전 평화운동 하는 ‘개척자들’이란 단체인데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 덕에 요트에 흠뻑 빠져 있다.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구호품을 전달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들과 교류하며 요트 조종 면허도 따고 바다에 나가 훈련도 함께한다.
인터뷰 중인 카페에서 ⓒ김송기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 앞에서 제주 바다에 대한 어떤 바람이 있는지 물었다.
"제주 바다의 백화현상이 심각해지고 산호초 군락이 훼손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느리고 불편하게, 좀 덜 갖고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으로 전환이요, 며칠 후면 지방선거일인데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미래의 주역들을 책임질 교육감이 누가 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적극 개입해 작은 일부터 세상을 바꿔 나갈 좋은 후보를 뽑아야 해요. 공영버스 운전원이 공무원이라 지금은 당적을 포기했지만 그 이전엔 녹색당원이었어요. 녹색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당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의 자녀, 손주 세대를 위해서라도 녹색당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꼭 녹색당 의원이 제주도의회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1)
인터뷰를 마치고 표선항에서 ⓒ김송기은
육십을 넘긴 후부터는 음력 대신 양력 생일을 기념하는데 양력 생일이 공교롭게도 10월 10일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도 스스로 원하는 날,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다. 평소 스콧 니어링2)을 존경하는데 그는 딱 100세 되는 해, 100세 생일 밥을 먹은 후에 곡기를 끊고 18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스콧 니어링처럼 때가 되면 곡기를 끊어 이 세상을 마치고 싶단다. 별 탈 없이 오래 살게 된다면 미수인 88세 혹은 망백인 91세쯤 되면 지인들을 불러 장례식 대신 2박 3일 잔치를 하며 세상에 하직 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 기은 님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잔치에 초대받길 고대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1) 지방선거 결과 제주의 녹색당 비례대표 김순애 후보는 3%를 얻으며 안타깝게도 제주도의회 진출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2) 스콧 니어링(1883.8.6.-1983.8.24.) 사회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이며 반전평화운동가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