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파란 홍시가 간다] 나고 자란 곳을 지킨다는 것_오은주 님 인터뷰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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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곳을 지킨다는 것

오은주 님 인터뷰


 

홍시의 말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성산 일대의 마을들이 있습니다. 공항 건설로 삶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마을 공동체가 해체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마을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마을의 가치와 존재이유를 알리는 일입니다. 성산읍 수산리에서 나고 자란 오은주 님은 수산마을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수산리의 역사와 전통, 다양한 생물들의 생태 현황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마을 안내자로 나서는 순간, 흥이 나고 신이 나는 오은주(이하 은주) 님을 지난 8월 말 제주 선흘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홍시 : 얼마 전에 논문 발표회를 하셨던데 아쉽게도 제가 가 보질 못했어요. 어떤 주제로 쓰신 건지, 논문 쓰면서 어려운 점이라든가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은주 : “평소에 마을과 습지에 대한 관심으로 제 고향 성산읍 수산리 마을에 대해 사람들에게 안내해 오고 있었거든요. 논문 주제를 잡으면서 수산리의 습지뿐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반적인 것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산리는 제2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지는 마을에 해당이 됩니다.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질 위기 앞에서 마을의 역사와 전통, 생활 방식과 문화 등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알리고 싶었어요. 수산리 마을의 전체사를 쓰는 동안 이론적 배경으로 연결하는 것이 어려워 헤매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신화나 전설, 지명의 유래 등을 담아 완성하고 나니 제가 자란 마을에 대해 기록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논문 쓰고 대학원 졸업을 했는데 얼마 전에 다른제주연구소에서 논문 주제를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발표 준비를 하다 보니 또 부족한 게 보이더라고요. 논문 쓸 때만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앞으로 수산마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더 풍성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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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산마을 안내 중에 할머니 그림책 '이제나 오카 저제나 오카' 읽어주는 중(2024.11) ⓒ오은주


홍시 : 수산리에서 나고 자란 은주 님은 어릴 때 주로 뭐 하면서 놀았나요?   


은주 : 제가 자란 마을에서 저는 ‘알동네 쌍둥이’로 불립니다. 1남 4녀 중 제가 큰 딸이면서 쌍둥이거든요. 어릴 때 동네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마을에 우리 괸당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제 어머니가 큰딸, 저는 그 어머니의 큰딸이다 보니 이모나 고모, 삼촌들이 저를 아주 예뻐했어요. 일찍부터 밭에도 많이 갔어요. 제 동생은 몸이 약해 집에 있고 어머니가 저만 데리고 콩밭에 가서 검질(잡초의 제주말) 매고 그랬죠. 어린아이가 얼마나 잡초를 뽑았겠어요? 어머니 혼자 밭에 가는 게 좀 외롭기도 하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열 살 무렵이었나, 우리 집 과수원을 만들 때는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과수원 밭에 가서 돌 치우고 그랬어요. 나무를 심으려면 돌을 치워야 하는데 치워도 치워도 계속 돌들이 있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면서 돌 치웠던 것 같아요.



홍시 :어린아이가 돌 치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안 한다고 떼쓰거나 짜증 내지는 않았어요? 어떤 마음으로 한 건가요?


은주 : 제가 큰딸이다 보니 그냥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항상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착한 딸 콤플렉스’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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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산읍 수산한못에서 수산초등학교 학생들과(2023.06) ⓒ오은주


홍시 : 현재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언제부터 하신 일인지요?


은주 : 남편과 함께 광고 기획사를 하고 있습니다. 직함은 총무팀장인데 남편은 저보고 ‘오 회장님’이라고 불러요. 실질적 회장이라고. (웃음) 저는 원래 대학 졸업 후 흥사단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이후 독서 논술 강사로 일했어요. 독서 논술 그룹을 만들어 일할 때 돈을 꽤 잘 벌었지요. 밤늦게 끝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택시비가 아까워 이십 대 중반에 부모님과 의논도 없이 차를 확 사버렸어요. 어차피 할부금은 제가 낼 거니까요. 제가 좀 독립적이었던 것 같아요. 27년째 남편과 광고 일을 하고 있는데 와중에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어른도 동화책 보면서 배우는 게 많고 그림책 보면서 심리치료도 되는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하고 아부오름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친구들에게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었어요.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지 못하는 데 제 주변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고요. 항상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런 것도 같고요.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살면 좋겠다 싶어 이 책을 골라서 가져 갔지요. 아부오름에 올라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더니 모두 엄청 감동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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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화유산답사회 삼달리 미와미못 습지 해설 중(2025.7)(왼) / 4.성산읍 수산리 습지 '돌리미못'에서(2023.8)(오) ⓒ오은주


홍시 : 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을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가 은주 님인데요.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은주 : 처음부터는 아니었어요. 그저 지켜보는 상황이었고 응원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다가 2018년쯤이었나, 제주시청 앞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한번 가봐야겠다 싶더라고요. 갔는데 거기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제가 살던 동네 삼춘들이 다 와있는 거예요. 그때가 11월인데 촌에서는 한창 바쁠 때, 미깡(귤) 딸 때거든요. 어른들이 밭에서 미깡 따다가 씻고 오면서 머리도 못 말린 채 버스 타고 막 오신 거예요. 그걸 보면서 너무 충격받았고 너무 미안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울음) 이건 어른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제2공항 반대 집회에 막 열심히 갔죠. 그때는 어느 단체 소속도 아니고 그저 제2공항의 피해 지역이 될 수산리 출신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참여했어요. 이후 ‘제주가치’라는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해 활동하다가 지금은 ‘제주가치’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홍시 : 누구보다 열심히 수산리 마을 안내를 하고 있던데요. 이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은주 : 제2공항 막아내야 하고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산리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06회 진행했는데요. 하면 할수록 저도 모르게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제가 살던 마을이니까 “여기 진성은 제가 어릴 때 소꿉놀이하며 놀던 곳이에요.” “여기 과수원에선 맨날 검질을 맸어요.” 그런 설명을 곁들이며 안내하니 사람들이 더 재미있어하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마을을 잘 알게 되니 꼭 지켜내야겠단 생각이 더 강해지네요. 성산읍에는 습지가 많아요. 습지가 많다는 건 새들이 많이 온다는 거죠. 새들이 많은데 공항이 생기면 조류 충돌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위험합니다. 구체적 상황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고 마을의 청년들과 조사팀을 만들었어요. 23년과 24년에는 한 달에 두 번, 그리고 작년과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씩 습지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를 취합해 사진과 글, 그림으로 전시회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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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회의 제2공항 예정지 숨골조사 중(2023.7) ⓒ오은주


홍시 : 습지는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은주 : 습지는 동굴과 오름과 연결되어 있어요. 예전엔 습지를 쓸모없는 땅으로 생각하면서 개발과 함께 매립하곤 했는데 이건 잘못된 거죠. 습지에는 다양한 생물종들이 서식하고 있고 보호종들도 많아요. 습지가 사라진다는 건 습지를 서식지로 하는 수많은 생물종이 사라지고 결국 생태계가 파괴되고 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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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우도 떼까마귀 조사 발표 중(2026.5) ⓒ오은주


홍시 : 제주 바다는 은주 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은주 : 기후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 바다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생기면 회복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바다는 전 세계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으니 제주 바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수온이 올라가고 해조류가 사라지고 이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잖아요. 어릴 적에 바닷가에 가서 보말 잡고 하던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이런 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답답해요. 바다 쓰레기도 넘쳐 나는데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홍시 : 맞습니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 방식의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겠죠.


은주 : 그래서 저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제주에 꼭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해요. 바다에 들어가 직접 조사해서 현황을 알리고 해양 정책을 만들어가는 게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이유인 것 같아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바다를 들어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럴 수 있도록 파란이 역할을 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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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무튼책방에서 열린 다른제주연구소 주최 논문발표회에서 발표 중(2026.7) ⓒ오은주


홍시 : 제2공항 반대운동이나 습지보전 활동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은주 : 속상했던 적 있지요. 제2공항 반대운동 하면서 같이 반대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내뱉는 말들이 저는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너네 그것 밖에 못하냐” 그런 말들이 제게는 무척이나 책임감 없는 말로 들리고 그만 힘이 빠져 버리는 거예요. 정작 힘들게 마련한 집회에는 나오지도 않으면서 말은 쉽게 하는 게 무책임하게 들리고 입으로만 평가하는 그 사람들이 원망스럽더라고요. 그래도 꼭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며칠 지나면 속상한 마음은 잊어버리고 또 이 일에 매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나간 일은 생각 안 하려는 제 성격도 있고요.

 


홍시 :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보는 은주 님을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긴 시간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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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선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26.8) | 사진_ 김연순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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