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파란 홍시가 간다] "제가 모태 해녀거든요."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를 기록하는 고명효 회원
2023-12-18
조회수 1287
지난 12월 14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2023 산호탐사대 조사 결과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문섬, 범섬 일대의 바다에 들어가 바닷속 산호를 조사한 파란의 산호 탐사대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영상으로 촬영한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발표회 관련 글 보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제주의 여러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왔고 현장은 취재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이날 발표자 중 한 명으로, 산호탐사대에서 활동 중인 고명효 회원입니다. [산호
탐사대 조사 결과 발표회]를 마친 후, 고명효(이하 명효) 회원을 만났습니다.
홍시 : 우선 오늘 [2023 산호탐사대 기조사결과 발표회]에서 직접 발표도 하셨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어떠셨나요?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명효 : 너무너무 떨렸어요. 제가 준비를 약간 잘못한 게, 전체 전문이 있는데 너무 요약본으로 준비를 한 거예요. 요약본을 발표해서 설명이 약간 부족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더 얘기해 줘야 했는데... 끝나고 나서 그것(고명효 회원이 발표한 부분)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제 설명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홍시 : 제가 앞에서 발표를 들었잖아요. 준비된 화면에 맞게 내용 설명 잘하셨어요. 기자의 질문은 ‘산호에 대한 위협 요인’이 아주 중요하니까, 그 부분을 상세히 쓰고 싶으니까 다시 한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한 것 같아요. 명효님, 아주 잘하셨어요. 이렇게 카메라 많은 데서 발표하는 건 처음인 거죠?
명효 : 처음이에요. 근데 탐사대원들은 그냥 시민이잖아요. 이런 것을 한 적 없던 시민들한테는 도전이 되는 경험이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사람을 세워 가고 만들어가고 하는 자리니까 조금 부족하더라도요! 저한테 뭘 얼마나 바라겠어요? (웃음)
홍시 : 파란이 원래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거예요. 전문가 몇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학습을 통해 일정 기술을 익히고 그걸 기초로 탐사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거잖아요. 저는 오늘 발표를 들으며 굉장히 좋았어요.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했거든요. 여러 분들의 발표를 듣고 기자들이 질문하고 또 답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파란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자, 이제 첫 번째 질문드릴게요. ‘바다’ 하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세요? 명효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 이야기 해 주세요.
명효 : 이호테우 해변 있잖아요. 거기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엄마는 해녀로 계속 물질을 하셨고, 저랑 언니랑 바다 조간대, 조간대가 되게 넓게 있었어요. 그 조간대에서 그냥 하루 종일 놀았어요. 갱이 잡고 보말 잡고 아니면 조그마한 물고기들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집에 가고. 나중에 또 나와서 또 놀고 이렇게 했었던 곳. 바다, 하면 어렸을 때 놀던 그 바다가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바다가 15년 전에 매립이 됐어요. 개발로 매립이 되면서 특별히 거기가 이용되지도 않고 어떻게 사용되지도 않고 있어요. 매립 되며 해녀들은 바다를 뺏겼고 그것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든요. 해녀들은 그나마도 탈의장을 지어준다거나 또 다른 어떤 보상을 해준다니까 허락을 한 건데, 이런 약속들이 구두로만 이루어진 거예요. 이루어진 건 없는 상태에서 바다도 뺏기고 해녀 창고도 뺏겼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3년째 해녀가 돼서 같이 있는데, 예전에 그 약속한 사람들은 이제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 거예요. 옛날에 저의 바다의 기억은 반짝반짝하는 윤슬 같은 그런 바다인데, 지금 그 바다는 매립이 돼서 바다에 들어갈 때 마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홍시 : 넓은 조간대에서 놀았던 그 자리를 다 빼앗겼을 때 그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명효 : 제가 스물 몇 살쯤이었는데 그때는 학교 다니고 이러면서 밖에 나가잖아요. 바다를 그렇게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그냥 동네에서 발전위원회 그리고 해녀들이 다 오케이 했다고 하고. 그냥 우리 동네에 더 좋은 거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좋았던 바다를 다 덮어버린 거죠. 그런 건 줄은 몰랐어요. 해녀 할머니들도 몰랐고. 그냥 듣기 좋은 말로 해녀 탈의장 멋있게 지어준다고 하니까 다 그냥 넘어간 거죠. 바다를 매립하고 그 앞에다 빨간 말 하얀 말을 세운 건데 매립한 바다에 다 생물들이 있었잖아요. 또 해녀 창고가 있었어요. 40년쯤 전에 해녀들이 바다에 있는 돌을 주워다가 지은 창고인데, 그게 매립지에 걸쳐지면서 나중에는 경매로 넘어간 거예요. 그리고 제일 어이없는 게, 원래 있던 불컥 거기를 없앴어요. 좋은 거는 다 없애고 이상한 것만 만들고 그러는 중이에요. 너무너무 속상하고 그런 상황이에요.
홍시 : 명효님은 현재 해녀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해녀가 되셨는지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명효 : (명함을 내밀며) 제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결혼한 후, 가족 사업으로 메추리알 농장이랑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해녀문화연구원에서 조남용 선생님(파란 전문위원)이랑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축산식품회사와 젓갈 공장도 운영하고 판매도 하고 있어요. 매장 한편에 샵인샵으로 아이스크림 가게도 운영 중이고요. 그러던 중에 2020년도에 제가 해녀를 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동네가 이렇게 계속 뺏기고만 있는 게 보이잖아요. 엄마가 해녀신데, 엄마한테 그런 자료 같은 거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구요. 도움받을 수도 있으니까 자료 있으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는 안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봐야겠다 한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너무 반대 했어요. 옛날에 엄마 친구들은 다 학교 가고 그랬는데, 엄마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셨어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아들들만 학교를 보내고 엄마는 첫째 딸이라서 학교를 안 보내준 거예요. 엄마는 저한테도 “무슨 해녀냐, 이렇게 하는 일도 많으면서. 너희 집 살림이나 살라” 이렇게 하시면서 절대 못 하게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계속하려 하고 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러면 “해녀학교라도 나가보라. 요즘 해녀 학교 많이 하는데 거기 가보라” 해서 드디어 해녀학교에 가게 된 거에요. 해녀학교에 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직업반과 인문반, 이렇게 있는데 직업반 16명 중에 제가 제일 잘하는 거예요. 제가 모태 해녀거든요. 엄마가 임신 8개월까지 물질을 했어요. 제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물질을 같이 한 거죠. (웃음) 졸업하고 바로 해녀가 된 거. 그래서 지금 3년 차 해녀에요.
홍시 : 해녀는 왜 하고 싶었어요?
명효 : 제가 하는 일 여러 가지 중에 제일 의미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엄마가 현직 해녀고, 바다 가까이에 살고 그래서 해녀가 그냥 존재만으로도 제일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해녀는 아무나 될 수가 없잖아요. 엄마가 해녀라 저는 되기가 쉽거든요. 지금 해녀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제가 해녀를 하면 그것도 보완이 가능하고 사라져가는 바닷속의 그 모든 상황을 기록할 계획으로 들어간 거예요. 계속해서 사진이랑 영상을 많이 찍고 있어요. 물속에서도 테왁에 카메라 끼워 항상 찍어요. 기록이라도 하면 나중에 어떤 증거로라도 쓰려고요.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의 기록이잖아요.
홍시 : 파란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3월부터 11월 까지 올 출석한 산호탐사대는 어쩌다가 시작했는지요?
명효 : 전에 우연한 기회에 산호 사진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제주 바다에 산호가 있고 그 산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게 되었어요. 강정 바다 실태 조사한 책인데 ‘국가를 막아선 산호’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산호가 국가를 막아선다는 말, 너무 충격받았어요.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때 알았어요. 아무도 강정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산호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못 갔어요. 작년(2022)에 9.23 기후행진에 참석하면서 몇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윤상훈 위원이 범섬 바다로 들어가 산호를 보려면 스쿠버다이빙 자격을 따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준비해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죠. 그리고 올해 산호탐사대에 같이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산호탐사대의 출석률이 제일 높은 이유는요. 제 계획이 처음부터 산호탐사였어요. 그거 하고 싶어서 모든 일정은 산호탐사대가 우선이었죠.
홍시 : 파란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 혹은 책 있나요?
명효 : 정혜윤님이 쓴 [삶의 발명]이라는 책이에요. 고래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이분도 우리가 산호를 보고 기뻐하는 그런 마음으로 돌고래를 바라보고 동물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
안에 생물의 다양성, 식물이 각자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홍시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
명효 : 내년에 마을사업으로 ‘해녀문화아카데미’ 할 거예요. 유네스코에 지정된 해녀문화, 해녀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아카데미 만들고 싶어요. 바다와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배려
하며 살았던 해녀 문화, 그 가치를 이야기 해주는 센터를 만들 거예요.
홍시 : 명효님은 하고 싶은 건 하는 분인 것 같아요. 그것도 잘하실 것 같네요. 응원합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덧1, 지난 달, 명효님의 이야기가 JIBS에서 방송되었어요! 명효님의 멋진 활동이 감동스레 잘 담겨있네요~^-^!! 같이 보아요!
👀 덧2, 자랑! 명효님이 산호탐사대 직인을 만들어 주셨지 뭐에요~! 우리 회원님~ 못하는게 없으십니다~
지난 12월 14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2023 산호탐사대 조사 결과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문섬, 범섬 일대의 바다에 들어가 바닷속 산호를 조사한 파란의 산호 탐사대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영상으로 촬영한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발표회 관련 글 보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제주의 여러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왔고 현장은 취재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이날 발표자 중 한 명으로, 산호탐사대에서 활동 중인 고명효 회원입니다. [산호 탐사대 조사 결과 발표회]를 마친 후, 고명효(이하 명효) 회원을 만났습니다.
홍시 : 우선 오늘 [2023 산호탐사대 기조사결과 발표회]에서 직접 발표도 하셨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어떠셨나요?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명효 : 너무너무 떨렸어요. 제가 준비를 약간 잘못한 게, 전체 전문이 있는데 너무 요약본으로 준비를 한 거예요. 요약본을 발표해서 설명이 약간 부족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더 얘기해 줘야 했는데... 끝나고 나서 그것(고명효 회원이 발표한 부분)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제 설명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홍시 : 제가 앞에서 발표를 들었잖아요. 준비된 화면에 맞게 내용 설명 잘하셨어요. 기자의 질문은 ‘산호에 대한 위협 요인’이 아주 중요하니까, 그 부분을 상세히 쓰고 싶으니까 다시 한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한 것 같아요. 명효님, 아주 잘하셨어요. 이렇게 카메라 많은 데서 발표하는 건 처음인 거죠?
명효 : 처음이에요. 근데 탐사대원들은 그냥 시민이잖아요. 이런 것을 한 적 없던 시민들한테는 도전이 되는 경험이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사람을 세워 가고 만들어가고 하는 자리니까 조금 부족하더라도요! 저한테 뭘 얼마나 바라겠어요? (웃음)
홍시 : 파란이 원래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거예요. 전문가 몇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학습을 통해 일정 기술을 익히고 그걸 기초로 탐사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거잖아요. 저는 오늘 발표를 들으며 굉장히 좋았어요.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했거든요. 여러 분들의 발표를 듣고 기자들이 질문하고 또 답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파란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자, 이제 첫 번째 질문드릴게요. ‘바다’ 하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세요? 명효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 이야기 해 주세요.
명효 : 이호테우 해변 있잖아요. 거기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엄마는 해녀로 계속 물질을 하셨고, 저랑 언니랑 바다 조간대, 조간대가 되게 넓게 있었어요. 그 조간대에서 그냥 하루 종일 놀았어요. 갱이 잡고 보말 잡고 아니면 조그마한 물고기들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집에 가고. 나중에 또 나와서 또 놀고 이렇게 했었던 곳. 바다, 하면 어렸을 때 놀던 그 바다가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바다가 15년 전에 매립이 됐어요. 개발로 매립이 되면서 특별히 거기가 이용되지도 않고 어떻게 사용되지도 않고 있어요. 매립 되며 해녀들은 바다를 뺏겼고 그것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든요. 해녀들은 그나마도 탈의장을 지어준다거나 또 다른 어떤 보상을 해준다니까 허락을 한 건데, 이런 약속들이 구두로만 이루어진 거예요. 이루어진 건 없는 상태에서 바다도 뺏기고 해녀 창고도 뺏겼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3년째 해녀가 돼서 같이 있는데, 예전에 그 약속한 사람들은 이제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 거예요. 옛날에 저의 바다의 기억은 반짝반짝하는 윤슬 같은 그런 바다인데, 지금 그 바다는 매립이 돼서 바다에 들어갈 때 마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홍시 : 넓은 조간대에서 놀았던 그 자리를 다 빼앗겼을 때 그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명효 : 제가 스물 몇 살쯤이었는데 그때는 학교 다니고 이러면서 밖에 나가잖아요. 바다를 그렇게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그냥 동네에서 발전위원회 그리고 해녀들이 다 오케이 했다고 하고. 그냥 우리 동네에 더 좋은 거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좋았던 바다를 다 덮어버린 거죠. 그런 건 줄은 몰랐어요. 해녀 할머니들도 몰랐고. 그냥 듣기 좋은 말로 해녀 탈의장 멋있게 지어준다고 하니까 다 그냥 넘어간 거죠. 바다를 매립하고 그 앞에다 빨간 말 하얀 말을 세운 건데 매립한 바다에 다 생물들이 있었잖아요. 또 해녀 창고가 있었어요. 40년쯤 전에 해녀들이 바다에 있는 돌을 주워다가 지은 창고인데, 그게 매립지에 걸쳐지면서 나중에는 경매로 넘어간 거예요. 그리고 제일 어이없는 게, 원래 있던 불컥 거기를 없앴어요. 좋은 거는 다 없애고 이상한 것만 만들고 그러는 중이에요. 너무너무 속상하고 그런 상황이에요.
홍시 : 명효님은 현재 해녀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해녀가 되셨는지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명효 : (명함을 내밀며) 제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결혼한 후, 가족 사업으로 메추리알 농장이랑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해녀문화연구원에서 조남용 선생님(파란 전문위원)이랑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축산식품회사와 젓갈 공장도 운영하고 판매도 하고 있어요. 매장 한편에 샵인샵으로 아이스크림 가게도 운영 중이고요. 그러던 중에 2020년도에 제가 해녀를 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동네가 이렇게 계속 뺏기고만 있는 게 보이잖아요. 엄마가 해녀신데, 엄마한테 그런 자료 같은 거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구요. 도움받을 수도 있으니까 자료 있으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는 안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봐야겠다 한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너무 반대 했어요. 옛날에 엄마 친구들은 다 학교 가고 그랬는데, 엄마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셨어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아들들만 학교를 보내고 엄마는 첫째 딸이라서 학교를 안 보내준 거예요. 엄마는 저한테도 “무슨 해녀냐, 이렇게 하는 일도 많으면서. 너희 집 살림이나 살라” 이렇게 하시면서 절대 못 하게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계속하려 하고 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러면 “해녀학교라도 나가보라. 요즘 해녀 학교 많이 하는데 거기 가보라” 해서 드디어 해녀학교에 가게 된 거에요. 해녀학교에 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직업반과 인문반, 이렇게 있는데 직업반 16명 중에 제가 제일 잘하는 거예요. 제가 모태 해녀거든요. 엄마가 임신 8개월까지 물질을 했어요. 제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물질을 같이 한 거죠. (웃음) 졸업하고 바로 해녀가 된 거. 그래서 지금 3년 차 해녀에요.
홍시 : 해녀는 왜 하고 싶었어요?
명효 : 제가 하는 일 여러 가지 중에 제일 의미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엄마가 현직 해녀고, 바다 가까이에 살고 그래서 해녀가 그냥 존재만으로도 제일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해녀는 아무나 될 수가 없잖아요. 엄마가 해녀라 저는 되기가 쉽거든요. 지금 해녀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제가 해녀를 하면 그것도 보완이 가능하고 사라져가는 바닷속의 그 모든 상황을 기록할 계획으로 들어간 거예요. 계속해서 사진이랑 영상을 많이 찍고 있어요. 물속에서도 테왁에 카메라 끼워 항상 찍어요. 기록이라도 하면 나중에 어떤 증거로라도 쓰려고요.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의 기록이잖아요.
홍시 : 파란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3월부터 11월 까지 올 출석한 산호탐사대는 어쩌다가 시작했는지요?
명효 : 전에 우연한 기회에 산호 사진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제주 바다에 산호가 있고 그 산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게 되었어요. 강정 바다 실태 조사한 책인데 ‘국가를 막아선 산호’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산호가 국가를 막아선다는 말, 너무 충격받았어요.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때 알았어요. 아무도 강정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산호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못 갔어요. 작년(2022)에 9.23 기후행진에 참석하면서 몇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윤상훈 위원이 범섬 바다로 들어가 산호를 보려면 스쿠버다이빙 자격을 따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준비해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죠. 그리고 올해 산호탐사대에 같이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산호탐사대의 출석률이 제일 높은 이유는요. 제 계획이 처음부터 산호탐사였어요. 그거 하고 싶어서 모든 일정은 산호탐사대가 우선이었죠.
홍시 : 파란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 혹은 책 있나요?
명효 : 정혜윤님이 쓴 [삶의 발명]이라는 책이에요. 고래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이분도 우리가 산호를 보고 기뻐하는 그런 마음으로 돌고래를 바라보고 동물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 안에 생물의 다양성, 식물이 각자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홍시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
명효 : 내년에 마을사업으로 ‘해녀문화아카데미’ 할 거예요. 유네스코에 지정된 해녀문화, 해녀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아카데미 만들고 싶어요. 바다와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배려 하며 살았던 해녀 문화, 그 가치를 이야기 해주는 센터를 만들 거예요.
홍시 : 명효님은 하고 싶은 건 하는 분인 것 같아요. 그것도 잘하실 것 같네요. 응원합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덧1, 지난 달, 명효님의 이야기가 JIBS에서 방송되었어요! 명효님의 멋진 활동이 감동스레 잘 담겨있네요~^-^!! 같이 보아요!
👀 덧2, 자랑! 명효님이 산호탐사대 직인을 만들어 주셨지 뭐에요~! 우리 회원님~ 못하는게 없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