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홍시가 간다] 자신만의 색깔로 바다를 사랑하는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 이루리 님 인터뷰

파래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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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의 말

2023년 11월 8일,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 ‘돌핀맨’에 의해 입과 꼬리지느러미가 낚싯줄에 얽혀 있는 아기 돌고래가 발견되었습니다. 종달리 앞바다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름이 ‘종달이’인 이 아기 돌고래 구조를 위해 ‘돌핀맨’, ‘핫핑크돌핀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가 제주돌고래 긴급구조단을 결성했습니다. 구조를 위해서는 배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한데요. 이 소식을 접하고 돌고래 구조를 위해 무엇이든 해보자고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인데요. 이 모임을 처음 제안한 이루리(이하 루리) 님을 지난 9월 21일 저녁에 제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907제주기후정의행진에서 사회를 보는 중 ⓒ이루리


홍시 :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가 주최하는 전시(9월 21일, 제주시 소통협력센터 전시실)와 행사가 방금 끝난 것 같은데요. 시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좀 전에 전시장에 들러 보았어요. 파란 돌고래 모형들이 공중에 달려 있던데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상영되는 영상에서는 바다와 바닷속의 물살들이 보이니까 저도 빨려 들어가 제가 마치 바닷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루리 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바다, 하면 생각나는 거요. 

 루리 : 제일 기억에 남는 바다는 첫 입수했던 바다예요. 프리다이빙을 배우면서 첫 잠수를 하는 순간인데요. 바다가 굉장히 터프했고 엄청 거칠었어요. 시야도 굉장히 흐린 날이었고요. 친구 권유로 들어가긴 했는데 그땐 진짜 너무 두려웠어요. 한림에 있는 바다인데 동네 사람들이 다이빙하고 노는 동네 포구였어요. 좋은 기억보다는 대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바닷속에서 내가 아주 작아지는 느낌이었고 과연 내가 다이빙을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여러 번 거듭하다 보니 괜찮아졌어요. 이제는 자연이 시시각각 바뀌는 모습을 다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홍시 : 프리다이빙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단지 수영이 아니라 바닷속에 들어간다는 건 매우 특별한 일인데 어떻게 바닷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루리 : 저는 원래 육지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어요. 2020년에서 2021년쯤인 것 같은데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 혼자 쓰레기를 계속 주웠어요. 코로나 때여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우연히 동네를 걷는데 길에 쓰레기가 굉장히 많이 보이는 거예요. 있으면 안 될 곳에 쓰레기가 있는 걸 보고 여기를 치워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나 둘 동네 정리를 하다 보니 점점 범위가 넓어졌죠. 그때가 플로깅이라는 활동이 막 유행할 즈음이었어요. 집게도 사고 종량제 봉투도 들고 다니면서 쓰레기 주워온 걸 아키이빙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해양 쓰레기까지 관심이 가는 거예요. 제가 뭐 하나 꽂히면 막 파는 편이라서요.(웃음)

해양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고 다이빙을 하면서 해양 쓰레기 줍는 활동들이 해외에도 국내에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나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프리다이빙을 배웠어요.     




유령어구를 수거하는 중, 제주도 옹포포구 ⓒ이루리


홍시 : 바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다이빙을 배웠다는 게 놀라워요. 흔히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하고 즐기기 위해 다이빙을 배우는데 바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다이빙을 배웠다는 게 특이하네요.     

루리: 친구랑 둘이 여행 차 제주에 왔는데 친구는 올레길을 걷고 저는 그 동선을 따라 해양 쓰레기 줍는 활동을 했어요. 어느 날 갯바위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문득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본 거예요. 표선에서 남원 사이의 길이었을 거예요. 노을이 너무 예뻐서 바다에 홀리듯이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평생 이런 풍경을 보면서 살면 너무 행복하겠다 생각이 들어서 바로 제주로 왔죠. 2021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홍시 : 생각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인가 봐요.(웃음) 하던 일도 있었을 테고 제주로 이주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루리 :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서 공간의 구애가 없었어요. 제가 원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는데 제주 와서도 계속할 수 있었고 최근까지 영상 디자인 일을 했어요. 그게 생업이었어요.  


홍시 : 저는 인스타에서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가 바자회를 한다는 웹자보를 보고 루리 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그 웹자보 내용도 그랬지만 디자인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돌고래 서포터즈와 바자회 당시의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루리 : 낚싯줄에 걸린 아기 돌고래 ‘종달이’ 구조를 위해 돌핀맨, 핫핑크돌핀스, 마크 이렇게 세 단체가 모여 ‘제주 돌고래 긴급구조단’이 결성되었는데요. 구조 작업을 위해서는 배도 필요하고 배 운행에 필요한 기름값도 많이 들잖아요. 그 구조에 필요한 비용을 보태기 위해 기부 바자회를 열게 된 거예요.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고 저 포함 다섯 명이 모여 준비를 했어요. 생각보다 규모가 커졌고 예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셔서 너무도 성공적으로 바자회를 마쳤어요. 바자회에 오신 분들은 셀러 포함해 300여 명 정도였고 수익금 490여만 원에 저희가 좀 더 보태서 500만 원을 채워 돌고래 긴급구조단에 전달했어요.  


제주 돌고래 긴급구조단 기부바자회 단체 사진 ⓒ이루리

홍시 : 단체가 아닌 개인 다섯 명이 모여 소소하게 준비한 바자회인데 무려 300여 명이 참석하고 기부금도 500여 만원을 모았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이렇게 잘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루리 : 그물에 걸린 아기 돌고래 ‘종달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인간 활동으로 인해서 낚싯줄에 걸려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홍보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일일이 발로 찾아다니며 곳곳에. 동네 도서관들은 물론 지역 하나로마트에까지 했거든요. 함께 한 다섯 명 중 한 명이 대정 하나로마트 단골이었는데 이 상황을 알리고 홍보 가능한지 물었더니 흔쾌히 스크린에 바자회 포스터를 넣어 주신 거예요. 지역사회에서 그렇게 받아주시는 게 너무도 감동적이었어요. 돌고래 구조 활동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구나, 새삼 확인했죠.      


(아기돌고래 종달이는 몇 차례의 구조 작업을 통해 2024년 8월 16일, 모든 낚싯줄에서 해방되었다. 척추도 쫙 펴고 이제는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 중이다.)  


홍시 : 최근에는 바다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요?     

루리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해양보호구역탐사대가 가장 최근의 활동이고 이제 산호탐사대에도 참여하고 싶어서 스쿠버 다이빙을 막 배웠습니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막 땄어요. 종달이 같은 친구들이 더 이상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고 마침 해양보호구역 탐사대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지난 4개월 동안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난개발에 대한 지역 갈등이었어요. 찬반으로 갈린 주민들의 입장을 보면서 이것이 지역사회 붕괴를 가져올 수 있구나 느꼈죠. 난개발은 단순히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임을 알게 되었어요. 우도의 훈데르트 바써 리조트 이슈, 추자도 해양풍력발전 이슈, 서귀포 해양레저센터 이슈 등등이요.      


홍시 : 제주를 여행하다 제주를 사랑하게 되어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제주 바다에 대한 바람이 있나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루리 : 제주에 살면서 오랫동안 바다를 보신 분들은 예전 아름다웠던 바다의 풍경을 기억하고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 항상 최선의 바다는 지금의 바다예요. 현재의 바다 모습이라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걸 위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하나 바꾼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는 얘기를 최근에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남에게는 사소한 일로 보일지라도 내가 살린 그날의 생명들에게는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있거든요. 오늘 하루 이 물살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나의 행동으로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홍시 : 지난 9월 7일에 제주에서도 기후정의행진이 있었는데요. 루리 님이 그렇게 큰 행사의 오프닝 사회자로 진행을 맡으셨더라고요. 준비과정에서 그리고 진행하면서 어떤 생각이었는지요?     

루리 :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에 참여하면서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사회를 맡게 된 건, 새로운 사람들이 이런 진행도 맡으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하게 된 거예요. 저는 이런 진행이 처음이어서 ‘진행 잘하는 법’ 공부고 하고 유튜브에서 막 찾아보고 그랬어요.(웃음) 너무 긴장했고요. 어떻게 했는지도 끝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다행히 주변 친구들이 응원을 많이 해줘서 좀 나아졌죠. 그날 집회에서 발언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이 분들의 말이 참석자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907제주기후정의행진,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 단체사진 ⓒ이루리

홍시 : 제가 제주 기후정의행진에 작년에도 참석하고 올해도 참석했는데요. 많은 분들의 발언 중에 가슴 깊이 와닿는 건, 큰 목소리의 투쟁적인 언사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게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이번 루리 님의 진행이 그랬어요. 첫 진행을 그렇게 열어주니까 편안하고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루리 :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운동에서 시민들이 편안하게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이면 좋겠어요. 이게 제가 원하는 운동의 그림인 것 같아요. 어린아이들도 안전하게, 어른들도 편견 없이 누구나 귀를 열고 들을 수 있고 그걸 존중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거부감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시 : 오늘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에 전시실에서 열린 전시회는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루리 : 저희 다섯 명이 모인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가 해양 활동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어요.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바다 현황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졌지요. 그러다가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의 지원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고 오늘의 전시회를 준비했어요. 바다 쓰레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해양 생물들의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고 해양보호구역 확대에 대한 필요성도 전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바자회에서, 서포터즈 대표사진 ⓒ이루리


홍시 : 기부 바자회로 모인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 다섯 명이 바자회 끝나도 흩어지지 않고 모임을 이어왔고 급기야 오늘의 전시회까지 이어졌는데요. 이 다섯 명은 어떤 분들인가요?      

루리 : 비건 식당 사장, 프리다이빙 강사, 문화예술 기획자, 수학 강사,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명이예요. 모두 프리다이버이고 이 다섯 명의 공통점은 바다를 정말 사랑한다는 거예요. 바다를 지킬 수 있는 활동을 우리만의 색깔로 풀어내자, 그런 고민을 하면서 오늘의 전시회도 준비했고 이후의 활동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저희의 장점은 기획을 잘한다는 거예요. 디자이너, 기획자로 일한 경험들이 있어서 어떤 활동을 문화로 해석해 풀어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홍시 :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한테 바다 관련 책이나 영화 추천하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루리 :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이요. 오늘 우리가 진행한 전시와 행사도 해양생태계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전시와 어린이와 부모 대상 비건 요리 만들기 수업이었는데요. 해양 환경을 지킨다는 건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명 개체에 대해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문어라는 생명체와의 교감을 다룬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 시선에 적합한 예인 것 같아요.     


이루리님 다큐멘터리 추천 '나의 문어 선생님'


홍시 : 오늘 전시와 행사로 많이 바쁘고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시간 내어 주시고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루리 님의 활동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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