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그 아이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 | 최정화 소설가

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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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 


최정화 소설가


태순아, 안녕? 지금부터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네 이름인 ‘태순’은 내 이름인 ‘복순’과 아빠인 ‘태산’에게서 한 자씩 따와서 지었단다. 네 아빠와 난 꽤 유명한 커플이었어. 자랑스러워 해도 좋단다.

사람들은 우릴 ‘우울증 돌고래’라고 불렀어. 조련사의 훈련을 거부하고 다른 돌고래들처럼 사람들에게 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병들었다고 했어. 그래. 네 아빠와 난 죽은 고등어를 먹고 무대에서 재주 부리는 일들을 거부했지. 능력이 없었느냐고? 아니, 그 반대란다. 우린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거야.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쇼는 능력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라 권리를 빼앗긴 돌고래들의 처참한 노예상태의 전시와 다름없으니까. 우리에겐 살아있는 생선을 먹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갇힌 수족관이 아니라 드넓은 바다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헤엄칠 자유가 있었으니까. 

네 아빠와 난 우울증에 걸린 적은 없어.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우리가 사람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 수족관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건 저항이었지 병이 아니었단다.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적응을 거부한 거야. 몸이 마르고 입이 비뚤어진 것이 겉으로는 병든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아가. 나 복순과 네 아빠 태산의 정신은 누구보다 맑단다. 바다처럼 하늘처럼 맑게 푸르게 스스로의 정신을 가다듬으며 살아왔단다.

아빠가 왜 엄마에게 반했는지 아니? 처음에 태산은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다른 돌고래들이 수족관에 갇힌 현실에 적응할 때 나만이 조련사의 접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적응하는 대신 굶었어. 아빤 엄마를 돕고 싶어했지. 바다가 그립고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들이 그리워 병이 난 거라며 위로했어. 그점에 있어서만은 네 아빠가 틀렸단다. 난 그저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결국 내 아빠는 내게 동조해주었어. 다른 돌고래들이 내가 어리석다고 놀리거나 불쌍하게 여길 때 태산만은 내가 옳다고 지지해줬어. 그는 자기가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해줬단다. 그 순간부턴 난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 계속 용기를 내고 의지를 꺾지 않겠다고 태산에게 약속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단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지. 첫 딸의 이름은 애란이었어. 네 언니의 운명도 너와 같았단다. 그리고 두 번 째 아들, 세 번 째 아들, 네 번째 딸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죽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 난 내 아이들이 엄마를 원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태산은 내게 말했어. 복순아, 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엄마야. 난 가장 멋진 아빠고. 우리 아이들은 우리에게서 태어났었다는 걸 기뻐하고 있을 거야. 난 그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단다. 

그래, 난 태순이 네가 날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해. 엄마의 강인한 의지와 맑은 정신을 응원해줄 거라고 생각해. 옳지 않은 일에 저항하는 것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너의 영혼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의 삶이 궁금하지? 네 아빠의 일상이. 엄마와 아빠는 수족관에 갇힌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단다. 움직이지 못하고 웅크린 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사실대로 말해도 좋다면 매우 끔찍했단다. 난 가끔 이 일을 그만두고 인간에게 항복해 좁은 수족관에서나마 헤엄을 치는 작은 자유를 누려보고 싶기도 했어. 언젠가는 태산을 설득하려 한 적도 있었는데, 네 아빠는 완강하게 반대했단다. 네 아빠는 그게 자유가 아니라 굴욕이라고 말했어. 그 점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는 고집쟁이셨단다. 물론 그게 네 아빠의 매력이기도 하고.

태순아, 너는 내가 낳은 다섯 번째 딸이야. 우리 부부는 다섯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그 아이를 잊고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다. 다섯 아이 모두 태산이와 내 마음 속에서 살아있어. 우린 너희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단다. 네 아빠와 내 가슴 속에서 너희들은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어. 그것만은 꼭 기억해주길 바래.

네가 태어났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너를 낳았을 때 너의 숨이 이미 끊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우린 사람과 다르잖니. 우린 영혼을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죽은 너를 바다 위로 계속 띄워 올렸지. 바다 위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일이 돌고래의 일이니까. 내 움직임 때문에 너의 몸에는 생채기가 났어. 그건 몹시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내 귀에는 너의 영혼이 즐거워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너를 바다 위로 띄워 올리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단다. 돌고래로 태어나 멋지게 바다 위를 점프하는 순간을, 부모로서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늘의 도움이었을까? 네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아빠와 나는 제주 바다로 풀려났단다. 고향인 바다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기뻤고, 또 그만큼 슬펐어. 너와 함께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네 아빠는 그런 내 생각이 바보 같다고 나무란단다. 바다를 헤엄칠 때마다 나는 상상 속에서 너희 다섯 아이들과 함께 헤엄쳐. 혼자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다. 엄만 늘 너희 다섯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어. 자식을 잊고 사는 부모는 세상에 없단다. 

너희들을 잊는 일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야. 엄만 한시도 태순이 너를 잊은 적 없어. 그러니 엄마를 만난 일이 없다는 사실, 아빠의 얼굴을 본 적 없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워하지 말거라. 너에겐 네 명의 언니와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거라. 꺾이지 않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걸 자랑스러워 하거라. 우리가 매일 너희들의 꿈을 꾼다는 걸 행복해하렴. 우리 일곱 식구가 매일 밤마다 함께 헤엄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내 아가.

어제는 장례식이 있었단다. 나는 아기들이 죽는 일이 수족관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곳 제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바다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바다 속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해서 우린 매일 힘겹게 버티고 있어. 

매일매일 크고 작은 역경을 넘어서는데, 그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태순이 너와 같은 아기 돌고래들이 바다를 한 번도 헤엄쳐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야. 엊그제도 남방큰돌고래 아기가 죽은 채 태어났고 우리는 그 아이의 장례를 함께 치렀어. 

  아이의 엄마가, 내가 언젠가 너에게 그랬듯이 죽은 아이를 바다 위로 띄워 올렸어. 주둥이 위에 아이를 얹고 바다를 헤엄쳤지. 우리는 그 아이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단다. 우리 돌고래들에게도 당연히, 태어나고 살아갈 권리가 있지 않겠니? 어째서 인간들이 그걸 모르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 네 아빠는 지금 곤히 잠들어있어.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시단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우리 부부의 삶은 혹독했어. 우린 납치되었다가 감금되었고 죽음 같은 삶을 살다가 겨우 풀려났지. 자식을 잃는 고통을 다섯 번이나 반복해야 했지만 견뎌냈단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린 패배하지 않았어. 후회하는 일 또한 없단다. 그것만은 몹시 위로가 돼.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네 아빠와 사랑에 빠졌던 연애시절이야. 네가 잉태되던 날의 행복을 엄마는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본단다. 그런 완전한 행복이 내게 주어졌으니, 커다란 슬픔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 가혹한 생을 납득할 수 있을 것도 같아. (물론 내 아빠는 내가 그런 식으로 부당한 일을 합리화 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단다.) 

 우리 돌고래들을 이렇게 만든 인간들을 미워하느냐고? 아니, 인간의 삶이야 말로 우리 돌고래들보다 더 한 참혹한 처지에 놓여 있어.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지옥에서 그들은 살아가고 있단다.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잊었어. 다른 인간과 동물과 식물, 광물을 총쏘아 죽이고, 착취하고, 병들게 하지.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아 점점 더 부유해지는 걸 행복으로 여기면서 말이야. 더 가진 사람의 일상이란 건 한심하기 짝이 없단다. 그들은 자연과 점점 더 멀어지도록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고 있어. 그들이 우리에게 그랬듯, 그들 자신을 감금하고 병들게 하면서 그것을 문명이라 말해. 스스로 자유를 빼앗고 어리석음에 갇힌 채 고통받는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 속에 빠져 있단다.

태순아, 아무도 미워하지 말거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 전부니까. 언제나 사랑을 기억해. 내가 너를 바다에 띄우려던 노력 같은 것들 말이야. 뱃속에서 매일매일 너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응원을 보냈던 엄마의 마음을, 너를 깔깔거리게 했던 너그러운 자연을, 바다를,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아빠와 엄마를 잊지 마렴. 사랑은 삶의 전부란다.

  태순아, 기억해. 내 이름은 복순이, 네 아빠의 이름은 태산이야. 다음 세상에서 우리들 다시 만날 거고, 그 세상에는 납치와 감금, 폭력 따윈 없을 거란다. 그땐 두려워하지 말고 아파하지도 말고 마음껏 행복해해도 좋아. 다시 태어나 세상의 행복과 평화를 만나자. 사랑을 만나자. 진짜 세상을 말이야!


추신

안녕하세요? 최정화 소설가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제주남방 큰돌고래 문제를 고민하고 새끼돌고래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럴 시간과 기회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저희 아이(고양이)를 장례치르고, 또 아이를 생각하며 수정을 해서 보냅니다. 복순이의 마음과 제 마음이 겹치기도 했어요. 파란의 독자들에게도 애도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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