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말
최근에 제주에서 도는 이상한 소문을 접했다. ‘노슬미’라는 청년 활동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일곱 명이 있다는 거다. 여기저기 온갖 활동의 현장에 출몰해 다양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활동가 노슬미(이하 슬미) 님. 대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 가득 안고 그를 만나 보았다. 역시나 바쁜 슬미 님, 한 번에 인터뷰가 어려워 제주시 한 카페에서 7월 말과 8월 말,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만났다.

제주여민회 사무실 새단장 프로젝트를 마치며 성과 발표 때 모습 ⓒ노슬미
홍시 : 슬미 님.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주에는 일곱 명의 슬미가 있다던데요.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같이 웃음)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몹시 궁금한데요. 차례대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선 제주에 살고 계신 슬미 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어릴 때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슬미 : 어릴 때 부모님 따라 강릉 바다에 많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바다는 가족들이 버스 타고 막 노래를 부르면서 바다로 가는데 그 한여름의 바다는 너무나 화창하고 반짝거리는 바다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만난 바다, 제 기억 속의 바다는 되게 우중충하고 회색 빛이고 사람들도 없는 한적한 바다였어요. 아마 흐린 날 많이 갔나 봐요.(웃음)
홍시 : 제주의 바다는 어땠나요?
슬미 : 제가 제주에 정착해 사는 건 2020년부터니까 이제 6년 차예요. 그전엔 제주에 왔다 갔다 했고요. 특별하게 떠오르는 바다는 2014년 제주의 곽지 바다인데요. 어느 날 한밤중에 바다에 들어갔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데 갑자기 발이 쑥 빠지면서 물이 너무 깊어지는 거예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너무 놀랐고 그때 바다가 엄청 무서웠어요. 다행히 무사히 잘 나오기는 했어요. 다음 날 다른 바다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이번엔 바닷속이 너무 아름답고 예쁜 거예요. 그 황홀한 바닷속에 계속 있고 싶더라고요. 바다가 무섭기도 했지만 또 아름다운 바다의 기억 덕분에 제가 제주에 살게 된 것 같아요. 함덕에 살 때는 혼자서도 자주 바다에 나갔고 또 친구들과도 바다에서 많이 놀고 지냅니다.

2025 제주차별철폐대행진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스에서 ⓒ노슬미
홍시 : 슬미 님은 지금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궁금하네요.
슬미 : 서울에 살 때, 주로 전시 기획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제주도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동시에 제주의 아름다운 비자림로 나무들이 베어진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들었고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 상황을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비자림로의 잘려 나가는 나무들의 상황을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행사를 기획해 짧은 연극 공연도 하고 음악 공연도 하고 그림도 전시하고 영상물도 상영했어요. [이야기잔치]라는 행사였는데요. 저는 총괄 기획을 맡아 진행했지요. 이후에 [이야기잔치]는 제주로 이어져 일곱 번째까지 지속되었고요. 제주로 와서는 조작 간첩 사건이나 세월호 관련한 전시와 공연, 토크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홍시 : 조작 간첩 사건에 대한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된 건가요?
슬미 : 제주도에 [수상한 집 광보네]라는 공간이 있어요. 강광보라는 어르신이 계신데요. 1960년대 초에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1979년도에 제주로 강제추방 된 분이에요. 입국하자마자 간첩 죄목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지요. 그런데 한참 지나 1986년에 보안사로 다시 끌려갔고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하셨어요.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려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신 거죠. 이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2017년에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강광보 님 소유의 집과 토지에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과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수상한 집 광보네]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전시 공간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섰죠. 여기 관련된 분이 제가 서울에서 [이야기잔치] 진행한 것을 보시고 제주에 와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저도 마침 제주에 오고 싶었는데 냉큼 좋아라 했지요. [강광보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고 토크 콘서트도 열었어요. 강광보 어르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홍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너무도 귀한 공간이네요. 공간이 크건 작건 전시하고 공연하는 일의 총괄기획은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슬미 님은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었나요?
슬미 :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제주도에 있습니다. 2014년 무렵, 그 친구들과 한 소아암 환우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뜻이 맞는 열 명 정도가 모여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자, 200킬로미터 돌면서 1킬로미터 당 1만 원씩 모아보자 했지요. 자전거로 달리면서 중간중간 거리 공연도 하고 그걸 영상으로 올리면서 후원금을 모았어요. 그리고 모은 후원금을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추진하고 진행하면서 여러 배움이 일어난 거죠.
홍시 : 생각하면 그냥 하시는군요.(웃음)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슬미 : 제주에서 창립한 지 38년 된 여성단체인 제주여민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합니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보적 여성단체인데요. 저는 성평등교육센터 담당 활동가이면서 그 외 여민회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모인 2030 위원회 활동도 하고 농촌 지역의 성평등을 위한 성평등마을사업단 활동과 정책위원회 활동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홍시 :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네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주에 슬미 님이 일곱 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온갖 곳에 슬미 님이 출몰한다는 거예요. 제주여민회 활동뿐 아니라 그 외 활동도 많은 것 같던데요. 대체 무슨 일들을 하시는 거예요?
슬미 : 제주여민회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제가 활동가로서 여기저기 참여하는 바람에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아요.(웃음) 다양한 연대활동이 있는데요.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대중교통과 풍력발전에 대한 논의, 기후정의행진, 생명평화대행진 등등의 현안에 참여하면서 토론회, 기자회견, 행사 진행에 대해 논의하고 현장에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제주도에서 주관하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라는 게 있는데요.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논의하고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위원회예요. 작년에 청년정책 원탁회의가 있었고 제가 청년으로서 거기에 참석하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원탁회의 이후 이 위원회에서 모집 공고가 떴더라고요. 여민회 사무국과 의논해 제가 응모하게 되었는데 선정이 되었어요. 이제 시작하는 거라 기대도 되고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좌) 2025제주생명평화대행진 웹자보와 (우) 2025제주생명평화대행진 단체사진 ⓒ노슬미
홍시 : 정말 많은 활동에 결합하고 있네요.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게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인 것 같은데요. 행진은 왜 하는지, 올해의 행진은 어떠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슬미 :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올해 11회 차인데요. 평화의 바람을 담아 3박 4일간 제주 일대를 걷습니다. 올해는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기자회견으로 시작해 안덕, 한림, 애월을 거쳐 제주시청 앞에서 평화문화제로 마칠 때까지 약 51.3킬로미터를 함께 걷는 거죠.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고요. 제주해군기지의 문제점, 기후위기, 제2공항, 송악산 알뜨르 난개발 문제 같은 제주의 현안을 생각하며 현장에서 강의도 듣고 행진을 마친 저녁에 모여 토론도 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행진에 참여했고요. 안전팀의 역할을 맡아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행진에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데요. 1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요. 육지에서 오는 분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참여합니다. 이렇게 다양하다 보니 참여자들 간에 규칙이 필요하고 그래서 ‘약속문’이라는 것을 만들어 함께 읽고 다짐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는 성 역할로부터 자유로우며 서로를 존중한다’ ‘외모에 대한 발언과 행동에 주의하며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이고요. 둘째 날 저녁에는 ‘성인지감수성’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는데 그런 게 신기하기도 하고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탄핵집회에서 제주여민회 깃발을 들고 ⓒ노슬미
홍시 : 가장 더울 때 걷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행진 중에 슬미 님이 겪은 작은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슬미 : 저는 안전팀에서 차량이 지나가는 길과 사람이 행진하는 길 사이 딱 그 경계선에서 일렬로 맞춰 안전봉을 흔들면서 가거든요. 안전이 매우 중요한데 둘째 날, 한 분이 갑자기 이탈해 어디론가 가는 거예요. 일단 상황 알리는 무전을 치고 그분을 따라갔어요. 외국인이었는데 골목으로 계속 가시더라고요. 따라가 보니 골목골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걸 사진 찍느라 계속 골목으로 들어가신 것이었어요. 미처 말 못 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좀 이따 합류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저는 한참 멀어진 행진 대열을 쫓아가느라 전력질주 했죠. 최고 속도로 달려 쫓아가면서 머릿속에 문득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거예요. 벽화를 보며 사진을 찍은 외국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난 것 같아요.

탄핵집회에서 제주여민회 깃발을 들고 ⓒ노슬미
홍시 : 슬미 님은 그림 그리는 일도 하는 것 같던데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그리고 그림 작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슬미 : 2022년부터 [달리도서관]에서 사람들과 주 1회 모여 3개월 정도 그림 그리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모일 때마다 각각 어떤 주제로 그릴까를 쪽지에 적어 뽑기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토끼’가 뽑혔다 하면 그날은 각자 ‘토끼’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것 무엇이든 그리는 거예요. 다 그리고 나면 펼쳐 놓고 자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느낌을 나눠요. 그리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한 기가 3개월 프로그램인데 벌써 10기가 되었고요. 연말엔 도서관에서 간단하게 전시도 해요.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몸 안에 심리적 독소가 쌓이는데 저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불필요한 감정들이 몸 안에 쌓이지 않도록 빼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면 아, 이런 게 내 안에 남아 있었구나 알게 되고 이후엔 달리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모임의 이름이 ‘달리 그릴 수밖에’인데요. 딱 맞는 이름인 것 같아요. 저는 여기에서 모임장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로 그리는 그림 ⓒ노슬미 / 제목: <주머니>, 2024 그림 설명: 마음 속 생겨난 응어리는 몸과 함께 자라서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되었다.
홍시 : 바다에 자주 가서 논다고 하셨는데 요즘 기후위기 상황에서 바다는 어떻다고 느끼는지 궁금하고요, 또 제주 바다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요?
슬미 : 땡볕의 무더위와 폭우를 보면서 기후위기 심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바닷가에 떠밀려오는 해조류가 쌓이면서 냄새나는 현장을 볼 때도 그렇고 바닷물도 뜨거워졌다는 뉴스를 볼 때도 그렇고 최근엔 해파리들도 엄청 늘었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갑자기 바다가 확 변한 것 같아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회원으로서 파란 활동이 너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요. 제가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활동은 못하지만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중이에요. 일회용품 안 쓰고 컵도 가지고 다니고, 남은 음식은 싸 갈 수 있게 그릇 챙겨야겠다 생각하고요. 가급적 배달 음식도 적게.. 악동뮤지션의 노래 중에 ‘고래’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를 보면, “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고래야 헤엄하던 대로 계속 헤엄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부러운데 아마도 다들 그래서 너한테 바다를 뺏으려는 지도 몰라.” 이런 내용이에요. 이 노래를 진짜 좋아해요. 바다도, 고래도, 인간도, 자연 만물도 다 그냥 자기대로 그렇게 헤엄치고 흐르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종종 만나는 제주 삼양 바다의 석양 ⓒ노슬미
홍시 : 너무도 감동적인 말씀이네요. 이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홍시의 말
최근에 제주에서 도는 이상한 소문을 접했다. ‘노슬미’라는 청년 활동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일곱 명이 있다는 거다. 여기저기 온갖 활동의 현장에 출몰해 다양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활동가 노슬미(이하 슬미) 님. 대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 가득 안고 그를 만나 보았다. 역시나 바쁜 슬미 님, 한 번에 인터뷰가 어려워 제주시 한 카페에서 7월 말과 8월 말,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만났다.
제주여민회 사무실 새단장 프로젝트를 마치며 성과 발표 때 모습 ⓒ노슬미
홍시 : 슬미 님.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주에는 일곱 명의 슬미가 있다던데요.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같이 웃음)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몹시 궁금한데요. 차례대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선 제주에 살고 계신 슬미 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어릴 때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슬미 : 어릴 때 부모님 따라 강릉 바다에 많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바다는 가족들이 버스 타고 막 노래를 부르면서 바다로 가는데 그 한여름의 바다는 너무나 화창하고 반짝거리는 바다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만난 바다, 제 기억 속의 바다는 되게 우중충하고 회색 빛이고 사람들도 없는 한적한 바다였어요. 아마 흐린 날 많이 갔나 봐요.(웃음)
홍시 : 제주의 바다는 어땠나요?
슬미 : 제가 제주에 정착해 사는 건 2020년부터니까 이제 6년 차예요. 그전엔 제주에 왔다 갔다 했고요. 특별하게 떠오르는 바다는 2014년 제주의 곽지 바다인데요. 어느 날 한밤중에 바다에 들어갔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데 갑자기 발이 쑥 빠지면서 물이 너무 깊어지는 거예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너무 놀랐고 그때 바다가 엄청 무서웠어요. 다행히 무사히 잘 나오기는 했어요. 다음 날 다른 바다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이번엔 바닷속이 너무 아름답고 예쁜 거예요. 그 황홀한 바닷속에 계속 있고 싶더라고요. 바다가 무섭기도 했지만 또 아름다운 바다의 기억 덕분에 제가 제주에 살게 된 것 같아요. 함덕에 살 때는 혼자서도 자주 바다에 나갔고 또 친구들과도 바다에서 많이 놀고 지냅니다.
2025 제주차별철폐대행진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스에서 ⓒ노슬미
홍시 : 슬미 님은 지금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궁금하네요.
슬미 : 서울에 살 때, 주로 전시 기획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제주도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동시에 제주의 아름다운 비자림로 나무들이 베어진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들었고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 상황을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비자림로의 잘려 나가는 나무들의 상황을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행사를 기획해 짧은 연극 공연도 하고 음악 공연도 하고 그림도 전시하고 영상물도 상영했어요. [이야기잔치]라는 행사였는데요. 저는 총괄 기획을 맡아 진행했지요. 이후에 [이야기잔치]는 제주로 이어져 일곱 번째까지 지속되었고요. 제주로 와서는 조작 간첩 사건이나 세월호 관련한 전시와 공연, 토크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홍시 : 조작 간첩 사건에 대한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된 건가요?
슬미 : 제주도에 [수상한 집 광보네]라는 공간이 있어요. 강광보라는 어르신이 계신데요. 1960년대 초에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1979년도에 제주로 강제추방 된 분이에요. 입국하자마자 간첩 죄목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지요. 그런데 한참 지나 1986년에 보안사로 다시 끌려갔고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하셨어요.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려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신 거죠. 이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2017년에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강광보 님 소유의 집과 토지에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과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수상한 집 광보네]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전시 공간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섰죠. 여기 관련된 분이 제가 서울에서 [이야기잔치] 진행한 것을 보시고 제주에 와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저도 마침 제주에 오고 싶었는데 냉큼 좋아라 했지요. [강광보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고 토크 콘서트도 열었어요. 강광보 어르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홍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너무도 귀한 공간이네요. 공간이 크건 작건 전시하고 공연하는 일의 총괄기획은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슬미 님은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었나요?
슬미 :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제주도에 있습니다. 2014년 무렵, 그 친구들과 한 소아암 환우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뜻이 맞는 열 명 정도가 모여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자, 200킬로미터 돌면서 1킬로미터 당 1만 원씩 모아보자 했지요. 자전거로 달리면서 중간중간 거리 공연도 하고 그걸 영상으로 올리면서 후원금을 모았어요. 그리고 모은 후원금을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추진하고 진행하면서 여러 배움이 일어난 거죠.
홍시 : 생각하면 그냥 하시는군요.(웃음)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슬미 : 제주에서 창립한 지 38년 된 여성단체인 제주여민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합니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보적 여성단체인데요. 저는 성평등교육센터 담당 활동가이면서 그 외 여민회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모인 2030 위원회 활동도 하고 농촌 지역의 성평등을 위한 성평등마을사업단 활동과 정책위원회 활동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홍시 :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네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주에 슬미 님이 일곱 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온갖 곳에 슬미 님이 출몰한다는 거예요. 제주여민회 활동뿐 아니라 그 외 활동도 많은 것 같던데요. 대체 무슨 일들을 하시는 거예요?
슬미 : 제주여민회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제가 활동가로서 여기저기 참여하는 바람에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아요.(웃음) 다양한 연대활동이 있는데요.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대중교통과 풍력발전에 대한 논의, 기후정의행진, 생명평화대행진 등등의 현안에 참여하면서 토론회, 기자회견, 행사 진행에 대해 논의하고 현장에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제주도에서 주관하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라는 게 있는데요.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논의하고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위원회예요. 작년에 청년정책 원탁회의가 있었고 제가 청년으로서 거기에 참석하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원탁회의 이후 이 위원회에서 모집 공고가 떴더라고요. 여민회 사무국과 의논해 제가 응모하게 되었는데 선정이 되었어요. 이제 시작하는 거라 기대도 되고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좌) 2025제주생명평화대행진 웹자보와 (우) 2025제주생명평화대행진 단체사진 ⓒ노슬미
홍시 : 정말 많은 활동에 결합하고 있네요.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게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인 것 같은데요. 행진은 왜 하는지, 올해의 행진은 어떠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슬미 :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올해 11회 차인데요. 평화의 바람을 담아 3박 4일간 제주 일대를 걷습니다. 올해는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기자회견으로 시작해 안덕, 한림, 애월을 거쳐 제주시청 앞에서 평화문화제로 마칠 때까지 약 51.3킬로미터를 함께 걷는 거죠.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고요. 제주해군기지의 문제점, 기후위기, 제2공항, 송악산 알뜨르 난개발 문제 같은 제주의 현안을 생각하며 현장에서 강의도 듣고 행진을 마친 저녁에 모여 토론도 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행진에 참여했고요. 안전팀의 역할을 맡아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행진에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데요. 1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요. 육지에서 오는 분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참여합니다. 이렇게 다양하다 보니 참여자들 간에 규칙이 필요하고 그래서 ‘약속문’이라는 것을 만들어 함께 읽고 다짐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는 성 역할로부터 자유로우며 서로를 존중한다’ ‘외모에 대한 발언과 행동에 주의하며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이고요. 둘째 날 저녁에는 ‘성인지감수성’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는데 그런 게 신기하기도 하고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탄핵집회에서 제주여민회 깃발을 들고 ⓒ노슬미
홍시 : 가장 더울 때 걷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행진 중에 슬미 님이 겪은 작은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슬미 : 저는 안전팀에서 차량이 지나가는 길과 사람이 행진하는 길 사이 딱 그 경계선에서 일렬로 맞춰 안전봉을 흔들면서 가거든요. 안전이 매우 중요한데 둘째 날, 한 분이 갑자기 이탈해 어디론가 가는 거예요. 일단 상황 알리는 무전을 치고 그분을 따라갔어요. 외국인이었는데 골목으로 계속 가시더라고요. 따라가 보니 골목골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걸 사진 찍느라 계속 골목으로 들어가신 것이었어요. 미처 말 못 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좀 이따 합류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저는 한참 멀어진 행진 대열을 쫓아가느라 전력질주 했죠. 최고 속도로 달려 쫓아가면서 머릿속에 문득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거예요. 벽화를 보며 사진을 찍은 외국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난 것 같아요.
탄핵집회에서 제주여민회 깃발을 들고 ⓒ노슬미
홍시 : 슬미 님은 그림 그리는 일도 하는 것 같던데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그리고 그림 작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슬미 : 2022년부터 [달리도서관]에서 사람들과 주 1회 모여 3개월 정도 그림 그리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모일 때마다 각각 어떤 주제로 그릴까를 쪽지에 적어 뽑기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토끼’가 뽑혔다 하면 그날은 각자 ‘토끼’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것 무엇이든 그리는 거예요. 다 그리고 나면 펼쳐 놓고 자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느낌을 나눠요. 그리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한 기가 3개월 프로그램인데 벌써 10기가 되었고요. 연말엔 도서관에서 간단하게 전시도 해요.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몸 안에 심리적 독소가 쌓이는데 저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불필요한 감정들이 몸 안에 쌓이지 않도록 빼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면 아, 이런 게 내 안에 남아 있었구나 알게 되고 이후엔 달리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모임의 이름이 ‘달리 그릴 수밖에’인데요. 딱 맞는 이름인 것 같아요. 저는 여기에서 모임장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로 그리는 그림 ⓒ노슬미 / 제목: <주머니>, 2024 그림 설명: 마음 속 생겨난 응어리는 몸과 함께 자라서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되었다.
홍시 : 바다에 자주 가서 논다고 하셨는데 요즘 기후위기 상황에서 바다는 어떻다고 느끼는지 궁금하고요, 또 제주 바다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요?
슬미 : 땡볕의 무더위와 폭우를 보면서 기후위기 심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바닷가에 떠밀려오는 해조류가 쌓이면서 냄새나는 현장을 볼 때도 그렇고 바닷물도 뜨거워졌다는 뉴스를 볼 때도 그렇고 최근엔 해파리들도 엄청 늘었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갑자기 바다가 확 변한 것 같아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회원으로서 파란 활동이 너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요. 제가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활동은 못하지만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중이에요. 일회용품 안 쓰고 컵도 가지고 다니고, 남은 음식은 싸 갈 수 있게 그릇 챙겨야겠다 생각하고요. 가급적 배달 음식도 적게.. 악동뮤지션의 노래 중에 ‘고래’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를 보면, “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고래야 헤엄하던 대로 계속 헤엄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부러운데 아마도 다들 그래서 너한테 바다를 뺏으려는 지도 몰라.” 이런 내용이에요. 이 노래를 진짜 좋아해요. 바다도, 고래도, 인간도, 자연 만물도 다 그냥 자기대로 그렇게 헤엄치고 흐르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종종 만나는 제주 삼양 바다의 석양 ⓒ노슬미
홍시 : 너무도 감동적인 말씀이네요. 이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