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제주 바다의 해조류,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최선경 |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주연구소 선임연구원
흔히 "바다가 뜨거워졌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는 말입니다. 인간의 산업 활동이 내뿜은 온실가스는 지구를 위한 담요가 되어 열을 가두었고, 그 과도한 열의 90% 이상을 바다가 묵묵히 흡수해왔습니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열 스펀지' 역할을 하며 스스로 뜨거워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 민감하고 극적인 변화의 현장이 바로 제주 바다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터전, 제주의 바다숲
제주 바다는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닙니다. 따뜻한 난류의 영향으로 아열대와 온대 해양 생물이 공존하는 생명의 보고이자, 수많은 생명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터전입니다. 특히, 10m 이상 자라나는 모자반과 같은 대형 해조류가 울창하게 형성하는 '바다숲'은 그 생태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숲은 물고기들에게 안전한 산란장이자 어린 치어들이 성장하는 보육장이며, 소라나 전복과 같은 무척추동물에게는 풍부한 먹이터를 제공하는 '바다의 아파트'와도 같은 곳입니다. 예로부터 제주도민의 삶의 원천이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 문화의 배경이 되어준 것도 바로 이 풍요로운 바다였습니다.


제주 바다숲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수온 상승이 불러온 제주 바다의 비극
온대성 기후에 적응해 온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는 겨울과 봄, 비교적 차가운 물(20°C 이하)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으며, 우리나라 연안의 제주와 남해안 등을 중심으로 높은 생육지 적합성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림 1). 하지만 바다숲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제주 바다의 수온은 약 2°C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이는 해양 생물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름철 수온이 열대 지역에서나 관찰되던 30°C를 넘나드는 고수온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고수온 현상은 수심 15m까지 영향을 미쳐 대형 갈조류뿐만 아니라 아열대성 산호까지 하얗게 죽어가는 백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해조류가 사라진 빈자리는 아열대성 돌산호나 열대 해역에서나 보이던 흑진주조개 같은 새로운 생물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제주 바다가 아열대를 넘어 열대 바다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종의 교체가 아니라 수십,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제주 해양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붕괴의 신호입니다. 바다숲이라는 아파트가 사라지자, 그곳을 먹이터로 삼던 소라와 전복이 먼저 타격을 받고, 알을 낳고 어린 시절을 보내던 수많은 물고기들이 갈 곳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생물들의 혼란은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르던 수산 자원의 고갈과 어민들의 시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갯녹음 현상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미래를 향한 갈림길, 우리의 선택
최근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모자반의 미래를 예측한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고탄소 시나리오(SSP5-8.5)'를 따라간다면, 불과 30여 년 후인 2060년대부터 제주 연안의 모자반 대부분이 사라지기 시작해, 2090년대에는 주요 4종 중 3종의 생육지가 90% 가까이 소멸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그림 2). 우리가 알던 제주의 풍요로운 바다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연구에서, 인류가 화석 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저탄소 시나리오(SSP1-1.9)'의 경우, 일부 모자반이 제주 바다에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그림 3). 이 결과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바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주 바다에서 사라져가는 해조류의 비명은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바다를 살리는 것은 곧 해양생물과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것이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제는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림 1 . 국내 서식 모자반 4종(괭생이모자반, 큰열매모자반, 쌍발이모자반, 구슬모자반) 대상 출현자료 기반 생육지 분석 결과 ⓒ최선경

그림 2 . 2060년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모자반 생육지 변동 예측 결과 ⓒ최선경

그림 3 . 2090년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모자반 생육지 변동 예측 결과 ⓒ최선경
논문제목: Spatio-Temporal Projections of the Distribution of the Canopy-Forming Algae Sargassum in the Western North Pacific Under Climate Change Scenarios Using the MAXENT Model
링크: https://www.mdpi.com/2079-7737/14/6/590
사라지는 제주 바다의 해조류,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최선경 |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주연구소 선임연구원
흔히 "바다가 뜨거워졌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는 말입니다. 인간의 산업 활동이 내뿜은 온실가스는 지구를 위한 담요가 되어 열을 가두었고, 그 과도한 열의 90% 이상을 바다가 묵묵히 흡수해왔습니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열 스펀지' 역할을 하며 스스로 뜨거워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 민감하고 극적인 변화의 현장이 바로 제주 바다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터전, 제주의 바다숲
제주 바다는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닙니다. 따뜻한 난류의 영향으로 아열대와 온대 해양 생물이 공존하는 생명의 보고이자, 수많은 생명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터전입니다. 특히, 10m 이상 자라나는 모자반과 같은 대형 해조류가 울창하게 형성하는 '바다숲'은 그 생태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숲은 물고기들에게 안전한 산란장이자 어린 치어들이 성장하는 보육장이며, 소라나 전복과 같은 무척추동물에게는 풍부한 먹이터를 제공하는 '바다의 아파트'와도 같은 곳입니다. 예로부터 제주도민의 삶의 원천이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 문화의 배경이 되어준 것도 바로 이 풍요로운 바다였습니다.
제주 바다숲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수온 상승이 불러온 제주 바다의 비극
온대성 기후에 적응해 온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는 겨울과 봄, 비교적 차가운 물(20°C 이하)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으며, 우리나라 연안의 제주와 남해안 등을 중심으로 높은 생육지 적합성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림 1). 하지만 바다숲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제주 바다의 수온은 약 2°C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이는 해양 생물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름철 수온이 열대 지역에서나 관찰되던 30°C를 넘나드는 고수온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고수온 현상은 수심 15m까지 영향을 미쳐 대형 갈조류뿐만 아니라 아열대성 산호까지 하얗게 죽어가는 백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해조류가 사라진 빈자리는 아열대성 돌산호나 열대 해역에서나 보이던 흑진주조개 같은 새로운 생물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제주 바다가 아열대를 넘어 열대 바다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종의 교체가 아니라 수십,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제주 해양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는 붕괴의 신호입니다. 바다숲이라는 아파트가 사라지자, 그곳을 먹이터로 삼던 소라와 전복이 먼저 타격을 받고, 알을 낳고 어린 시절을 보내던 수많은 물고기들이 갈 곳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생물들의 혼란은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르던 수산 자원의 고갈과 어민들의 시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갯녹음 현상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미래를 향한 갈림길, 우리의 선택
최근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모자반의 미래를 예측한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고탄소 시나리오(SSP5-8.5)'를 따라간다면, 불과 30여 년 후인 2060년대부터 제주 연안의 모자반 대부분이 사라지기 시작해, 2090년대에는 주요 4종 중 3종의 생육지가 90% 가까이 소멸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그림 2). 우리가 알던 제주의 풍요로운 바다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연구에서, 인류가 화석 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저탄소 시나리오(SSP1-1.9)'의 경우, 일부 모자반이 제주 바다에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그림 3). 이 결과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바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주 바다에서 사라져가는 해조류의 비명은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바다를 살리는 것은 곧 해양생물과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것이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제는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림 1 . 국내 서식 모자반 4종(괭생이모자반, 큰열매모자반, 쌍발이모자반, 구슬모자반) 대상 출현자료 기반 생육지 분석 결과 ⓒ최선경
그림 2 . 2060년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모자반 생육지 변동 예측 결과 ⓒ최선경
그림 3 . 2090년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모자반 생육지 변동 예측 결과 ⓒ최선경
논문제목: Spatio-Temporal Projections of the Distribution of the Canopy-Forming Algae Sargassum in the Western North Pacific Under Climate Change Scenarios Using the MAXENT Model
링크: https://www.mdpi.com/2079-7737/14/6/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