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랑해 | 정은혜 작가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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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랑해


정은혜 | 에코오롯 대표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이 더 이상 잘 안 나온다. 일단, 내가 뭐라고 바다처럼 거대하고 광활하고 끝이 없는 깊이와 넓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보통 내가 “좋아한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들 (예를 들어, 짙은 파랑색 물감 색인 phthaloblue(따일로 블루) 색을 가장 좋아하고, 우리집 고양이의 부드러운 배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고, 로즈마리를 손으로 쓸고 나서 손에 남는 냄새를 좋아하고 등등)과 바다는 완전히 다르다. 바다를 상상하면, 그 속에서 녹아 없어질 듯하고,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지라 마차 달의 반대편을 상상하는 것과 같이 막막하고, 물속에서의 시원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떠올리면, 동시에 두려움도 떠오른다. 

밤수지맨드라미 범섬 새끼섬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처음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산호를 봤을 때, 환희와 놀라움은 어마어마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은 산호를 본 적이 없고, 제주에 산호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들갑을 피우며 산호 이야기를 했었다. 손가락을 하늘로 뻗고, “산호가 이렇게 촉수를 펼치고 팔랑팔랑 거려!”라고 말하기도 하고, 브로콜리나 양배추 갈라놓은 것을 가리키며 “이것 봐! 산호가 이렇게 생겼어!”라고 흥분하기도 하면서 온통 산호 산호 이야기를 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렇게 환희가 가득한 다이빙을 하다가 겁을 먹은 일이 생겨버렸다. 


한번은 물속에서 물이 코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죽을 것 같은 패닉이 왔고 (사실 별일 아니었다), 웃다가 공기를 너무 많이 써서 공기가 거의 바닥이 되었을 때는 비상 상승을 했었다 (그때는 사실 별 느낌이 없었지만 사실 아찔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 이전에 없었던 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각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바다를 생각하면 물속에서 본 아름다운 산호와 다이빙할 때의 기분 좋은 무중력의 상태와 더불어 답답하게 쪼여오던 심장이 떠올라, 가슴에 손을 얻고 심호흡을 몇 번 해야 진정이 되고는 했다. 


바닷속뿐만이 아니라 바다 위도 그렇다. 모래사장을 기어다니면서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줍고 그것들을 모아서 생태예술 작품인 <플라스틱 만다라>를 만드는 작업을 수년 동안 해왔는데, 2년 전에 망막에 구멍이 생겨서 실명할 뻔한 적이 있은 후에는 이 작업을 잠시 멈추게 되었었다. 실명 위기는 넘겼지만, 시력이 많이 떨어졌고, 눈부심 증상이 심해져서 햇빛이 강한 낮에는 바다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되었다. 의사는 아마 아닐 거라고 했지만, 어쩌면 망막의 손상 원인이 모래에서 반사된 햇빛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는 아닌가 싶어서 바다가 밉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해변의 미세플라스틱을 줍고있다. ©정은혜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이 바로 잘 안 나오지만, 그렇다면 바다가 싫어졌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의 반대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사라져서 상관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 바다를 생각하면 괴롭기도 불편하기도 안타깝기도 하면서 여러 감정이 일렁이지만 바다가 어떻대라는 말만 들으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해변의 미세플라스틱과 플라스틱 분류작업 중 ©정은혜


여러 사회심리학 연구 중에 사람들이 어떤 타인들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호감에 대한 연구들이 많은데, 결과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더 호감을 보이는 이유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매력적이나 더 좋은 사람이거나 여서가 아니라 어딘가가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그렇다. 삶의 여러 시절에서 그 당시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그때 가장 많이 만났던 사람들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 역시 그렇지 않은가 싶다.

제주에 14년을 살면서 내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간 곳은 딱 두 곳이다. 조천읍에 있는 동백동산 곶자왈 안에 있는 습지인 먼물깍, 그리고 함덕 서우봉 해변이다. 제주에 더 아름답고 더 좋은 곳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곳을 가장 많이 가보았고,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다 보았다. 큰 비가 온 후에 온 숲이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한 모습을 보았고, 태풍 후에 쓰레기가 가득한 바다처럼 쳐다보기 괴로운 모습도 보았다. 

어느 날, 먼물깍 주변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방문객 두 명이 지나가다가 서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뭄이 심해서 물이 사라지고, 시커먾고 질퍽한 바닥만 보이는 상태였다. “에게, 여기 멋지다고 그러더니, 이게 뭐야. 하나도 안 멋있네. 볼 거 없다. 빨리 가자.”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가서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장면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이곳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들려주고, 작은 연잎같이 생긴 순채가 물 위를 덮고 있고, 그 위를 길을 만들며 지나가는 원앙새 커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한밤중에 이곳 주위의 개구리 소리는 또 어떠한지. 희고 긴 날개를 펄럭거리는 백로의 날갯짓이 얼마나 우아한지, 당신들이 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를 멱살을 잡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 씩씩 거리는 그 순간 깨달은 것이 있다. 아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구나.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건강하고 예쁘고 젊었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주름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이 아파도 사랑하는 것처럼, 물이 마르고, 가물고 황폐해져도 나는 이곳과 연결되어 있구나. 익숙해지는 것은 더 이상 호기심을 일으키지 않고, 환희를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과 연결 속에 있게 하는구나. 


나는 탁 트인 바다를 보기 전에 제일 먼저 발 앞에 쓰레기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첫눈에 반하는 것 같은 환희를 느낄 수가 없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바다를 덜 좋아하게 되었지만, 내가 만약 바다와 이별을 한다면, 평생 내 한 심장이 아릴 것이고, 제주의 산호 군락이 정말로 죽어버린다면, 내 가족이 죽은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할 것 같고, ‘산호가 녹았대, 돌고래가 죽었대. 바다에 쓰레기가 가득하대’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목이 멘다.


몇 년 전, 나에게 미술치료를 받던 내담자가 나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라는 말을 했더니, 우울증으로 방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던 그녀가  벌컥 화를 냈다. 부모에게 받아본 적이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하고 짜증 난다고 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그때는 무안하기도 하고 할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는데, <싸움의 기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라는 책을 쓰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싸워본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알게 될 거라고. 사랑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한다는 것을. 


해외에서 진행한 <플라스틱 만다라> ©정은혜


나는 요즘 바다를 떠올리면, 청순 멜로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가슴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치정 멜로처럼 화나고 괴롭고 아프고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이 떠오른다. 이 마음 때문에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따라가서 욕을 해주고 싶고, 바닷가 노을 앞에서 폭죽을 터트리고는 버리고 가는 여행객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가득한 쓰레기를 애써 피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행동으로 땍땍거리며 쓰레기를 주워 담기도 하는 등 성질을 부리게 된다. 점점 악바리가 되어가는 내가 감히 이 크고 넓고 놀랍고 한없는 광활함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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