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해녀의 삶이 흐른다 | 황은미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활동가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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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오랜만에 편지드려요. 제주시 따이에요. 

늘 바다를 보면 삼춘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함께 물질하던 때가 생각나요.

저는 태어나서 바다 가까이 살아본 적도 없고,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바다는 그저 풍경이었어요.

뭍에서 바쁜 삶에 지쳐 공허했던 제가 삼춘들을 만나고 달라졌어요. 

애기해녀로서 사계절 함께 숨비면서, 바다와 함께 하는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요.

아직 해녀가 되려면 갈길이 멀었고 삼춘들과 바다로부터 한참 배워야겠다고 느꼈어요.

지금도 삼춘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물질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황은미


요즘 사람들은 해녀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저 바다에 잠수해 무엇이든 잡아 돈을 버는 직업으로만 보거나,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해녀증을 따고 해녀가 되고 싶어들 해요. 

저에게 해녀는 바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 자체였어요.

바다를 닮은 삼춘들의 곁에서 잠시나마 지낸 나날들이 저에겐 얼마나 소중했는지 몰라요. 


삼춘, 혹시 그날 기억나세요?

한번은 동쪽 바다에서 소라가 잘 잡히는 날에 욕심을 내다가 고생한 적 있잖아요. 

별 생각 없이 언니와 저는 물질에만 몰두하다가, 삼춘들이 점점 멀어진다는 걸 뒤늦게 느꼈어요. 

결국 저희는 조류에 휩쓸려서 한 시간 가까이 제자리에서 허우적 헤엄쳤죠. 

지쳐서 뭍으로 겨우 기어 나왔을 때, 삼춘들이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던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사실 삼춘들께 엄청 혼구녕이 나겠구나 하면서 올라왔는데, 

놀란 마음을 다독여주며 “이럼서 배우는 거다양” 한마디만 하셨죠.

바다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마주할 때면 바다가 무섭기도 해요.

삼춘처럼 바다의 흐름을 읽는 지혜를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런 걸 보면 저는 물질 오래 해야 할 것 같아요.


ⓒ황은미


제가 삼춘들의 모든 움직임을 항상 곁눈질하고 따라다녔잖아요.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서는 물질 갈 채비부터 믹스커피 한잔까지 

삼춘의 아침 루틴을 다 따라하고 싶었어요. 

바다가 잠잠해질 때까지 몇 시간씩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셨잖아요.

처음에는 ‘왜 물에 들지 않고 마냥 기다리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두가 안전하게 서로를 살피며 물질 할 수 있도록 

바다를 수시로 지켜보면서 함께 물에 나설때와 나올 때를 결정하신 거더라고요.


바다에서는 삼춘들의 숨비소리가 다 달라서, 누구신지 다 알 수 있었어요.

6 시간 물질을 거뜬히 하시는걸 보곤 삼춘들의 건강비결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저를 안 보시는 줄 알았는데, 모든 걸 지켜보고 계셔서 놀랐어요.

금체기가 끝나고 첫 소라 물질에서 제가 20키로 정도 잡았을 때,

문어에게 미안해 하면서 처음으로 문어를 잡았을 때,

물질을 하는 모든 순간에  “아이구 우리 막내 잘 잡는다양! 상군 될크라!”하시며

항상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죠. 삼춘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황은미


“바다가 삼춘들보다 늙은 거 닮아. 물건이 없다”면서도,

삼춘들은 제 생계까지 걱정해 주셨잖아요. 

삼춘, 몰래 제 빈 조렝이에 살짝 해삼을 넣어두시고 소라도 더 주곤 하셨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하시지 않으셨지만, 저는 다 알고 있었어요.

할망바다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직접 그 마음을 느끼고,

해녀는 바다에서 서로를 돌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알았어요.




ⓒ황은미


삼춘들은 저에게 바다였어요.

바다의 품에 안긴듯이 따뜻했고, 존경심도 생겨요.

삼춘의 마음은 바다처럼 깊고 넉넉했어요.

평생을 바다에 의지해 살아간 사람이어서, 삼춘들은 바다와 닮았나봐요.

잠시나마 삼춘들의 일상에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삼춘들 생각날 때마다 사둔 자그마한 선물들만 집에 쌓이고 있어요.

제가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커다란 걸 하고 싶어서,

고르다보니 아직 찾아뵙지 못했네요. 

곧 찾아뵐게요 삼춘!



해녀의 삶이 흐른다

황은미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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