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말
2025 제주 기후정의행진을 열흘 앞둔 시점, 제주의 한 극장에서 기후위기를 다룬 영화 [바로 지금 여기] 상영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중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진 활동가이자 치과의사인 강동진 님이 보였습니다. 순간, 이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더군요. 할 얘기 없다고 사양하셨지만, 간곡히 부탁드려 9월 25일 다른제주연구소에서 강동진(이하 동진)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제주연구소에서 | 사진_홍시
홍시 : 선생님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들었는데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바다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는지요?
동진 : 추억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지금도 바로 바다 옆에 살거든요.(웃음) 어릴 때 바다는 놀이터였죠. 여름에 놀러 가는 곳이요. 애월읍 구엄 바다에서 주로 놀았는데 소라, 보말, 문어 같은 거 잡고 놀던 기억이 있어요. 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바다 감시를 돌게 했어요. 혹시 사고가 날까 바닷가 한 바퀴 쭉 도는 거죠. 고등학교는 제주 시내에서 다녀서 이후엔 탑동 바다에서 좀 놀았어요. 탑동 바다 매립하기 전이요. 대학 들어가서는 방학 때 제주에 오면 모두 모여 술 먹는 데가 탑동 바다였어요. 거기가 친구들 만나는 자리이고 술 먹는 자리였죠. 술 먹다가 바다로 들어가기도 하고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저런 사고도 잦았어요.(웃음)
홍시 : 현재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선생님이신데 기후위기와 기후정의를 외치는 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된 이유가 매우 궁금한데요. 우선 이전에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동진 : 86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 치과 의사로 취업했어요. 동시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라는 단체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보건의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93년쯤 ‘민중의료연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그때 저도 참여했죠. 제 정치적 성향이 좌파에 가까웠거든요. 민중의료연합에서는 한동안 대표로도 활동했는데 2004년쯤 이 단체는 해산했어요.
홍시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워낙 대중적 단체라 저도 함께 연대활동 한 적이 있는데요. ‘민중의료연합’이란 단체는 낯서네요.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고 활동했는지 궁금합니다.
동진 :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로 구성된 단체인데요. 가급적 회비도 ‘십일조’로 내자고 하며 결속력이 매우 높은 단체였어요. 의료 문제가 사회구조나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사람의 건강 문제를 예로 들면 ‘방역’은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거죠. 의료 문제도 사회 체제나 구조의 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게 가장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료의 사회화’라고 표현했고, 공공의료와 연관 지어 주장했어요. 지금은 공공의료가 대중적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 당시 공공의료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데가 저희 단체였습니다. 보건의료 정책 관련 활동과 더불어 다국적 제약회사에 지배된 고가의 의약품 가격 문제 상황에서 의약품 접근성을 강화하는 운동도 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의 산업재해에 해당하는 노동 안전 보건이라는 주제도 함께 다루며 활동했지요. 그 분야는 이후 분화되어 지금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보건의료가 공공적으로 재편되려면 보건의료 노동자가 핵심 주체여야 한다고 생각해 노동조합과 연구도 같이 하고 투쟁의 방향도 같이 논의하고 했어요. 또 당시 망하는 병원들도 많았는데 공공병원으로 전환하자 뭐 그런 논의도 많이 했고요. 연대활동으로 의료보험 통합운동도 같이 했어요. 당시 보건의료 운동이 스펙트럼이 넓었는데 우리 단체가 가장 좌파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홍시 : 보건의료와 산업재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선구적 활동을 펼치셨네요. 그런 시작이 있었기에 또 현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소회가 어떠신가요?
동진 : 그 당시 저희가 주장했던 내용이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윤보다 생명을’이란 구호가 있잖아요? 그 당시 저희가 단행본 책을 하나 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이윤보다 생명’이었어요. 공공의료도 당시엔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대중적으로 누구나 다 얘기하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그 당시 참 열심히 싸워서 의제화하고 대중화시킨 게 제일 큰 보람인 것 같습니다.
홍시 :민중의료 운동을 하다가 이제 기후위기 활동가가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동진 : 의료 문제가 사회복지 제도와 연계되는 게 많다 보니 사회복지 쪽 활동가들과도 교류하고 정치조직 활동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가 있던 2008년 무렵 제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데 뇌출혈이었습니다. 몇 년을 쉬다가 사회변혁노동자당(지금의 노동당) 사회운동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그 내부에 생태팀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일상적인 세미나를 했고요. 그때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그 책을 읽고 “아, 이 활동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기후 관련 활동은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9.27 제주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 | 사진_홍시
홍시 :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에 그렇게 꽂혔나요?
동진 : 제목처럼 모든 것과 다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은 그런 것을 다 건드리고 있더라고요. 좌파 운동 자체가 침체해 활로를 못 찾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활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시 : 이후 기후위기 관련해 어떤 활동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동진 : 기후 문제는 체제 문제를 건드리는 것으로 판단했고요. 때마침 서울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만들어졌는데 저도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전의 환경운동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환경운동에 꽤 비판적이었거든요. 예전에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임하는 환경단체들과 저는 입장이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거대 환경단체인 모 단체의 행사에 기업 후원이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 비판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어요. 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하면서 내부에 여러 논쟁이 많았는데요. 조직의 명칭에 ‘탈핵’을 넣을지 말 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들어진 탄소중립위원회도 저는 그 구성이나 내용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기후운동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고요. 그 중심으로 ‘기후정의포럼’이 만들어졌습니다. 몇 명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포럼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정리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팸플릿처럼 내보기로 했지요.

공저 [기후정의선언 2021] ⓒ강동진
홍시 :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기후정의선언 2021]이군요.
동진 : 맞아요. 그 책을 쓰고 나서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하고 2021년 8월에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해 10월에 치과를 개원하고 의사로 일하며 기후 관련 공부를 계속했어요. 얼마 후 지인이 [다른제주연구소]가 만들어지니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으니 그런 공부 같이한다는 차원에서 자연스레 합류했습니다. 지금까지 2주에 한 번씩 모여 책 읽고 세미나 하고 있어요. [기후책], [모두를 위한 지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미래는 탈성장], [행복도시 꾸리찌바]라는 책을 공부했고요. 이제 [블루 뉴딜]을 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파란에서 그 책으로 북토크를 하더라고요. 잘 됐다 싶었어요.
홍시 : 10월 18일 오후 2시에 하는 파란 북토크에 오시면 되겠네요.(웃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는 어떻게 가입하시게 된 건가요?
동진 : 옛말에 “선배를 잘 못 만나..” 그런 말이 있죠. 박성인 형을 만나는 바람에.(웃음) 환경운동 한다는 단체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파란은 좀 다른 것 같았어요.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시민과학을 표방하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활동의 내용을 만드는 것, 그런 취지가 좋았어요. 게다가 바다가 어떻게 변하는지 가장 생생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취지가 좋아서 가입했습니다.


9.27 제주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 | 사진_홍시
홍시 :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제주 바다에 대해 어떤 바람이 있으신가요?
동진 : 바다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바닷가 산책을 나가는데 옛날과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 없던 해안도로가 생기고 도로가 생기니까 주변으로 건물들이 또 가득 생겨나고. 더 이상 도로는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이 모든 문제가 기후 위기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요. 제주 바다, 원래의 바다로 회복되게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홍시의 말
2025 제주 기후정의행진을 열흘 앞둔 시점, 제주의 한 극장에서 기후위기를 다룬 영화 [바로 지금 여기] 상영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중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진 활동가이자 치과의사인 강동진 님이 보였습니다. 순간, 이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더군요. 할 얘기 없다고 사양하셨지만, 간곡히 부탁드려 9월 25일 다른제주연구소에서 강동진(이하 동진)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제주연구소에서 | 사진_홍시
홍시 : 선생님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들었는데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바다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는지요?
동진 : 추억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지금도 바로 바다 옆에 살거든요.(웃음) 어릴 때 바다는 놀이터였죠. 여름에 놀러 가는 곳이요. 애월읍 구엄 바다에서 주로 놀았는데 소라, 보말, 문어 같은 거 잡고 놀던 기억이 있어요. 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바다 감시를 돌게 했어요. 혹시 사고가 날까 바닷가 한 바퀴 쭉 도는 거죠. 고등학교는 제주 시내에서 다녀서 이후엔 탑동 바다에서 좀 놀았어요. 탑동 바다 매립하기 전이요. 대학 들어가서는 방학 때 제주에 오면 모두 모여 술 먹는 데가 탑동 바다였어요. 거기가 친구들 만나는 자리이고 술 먹는 자리였죠. 술 먹다가 바다로 들어가기도 하고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저런 사고도 잦았어요.(웃음)
홍시 : 현재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선생님이신데 기후위기와 기후정의를 외치는 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된 이유가 매우 궁금한데요. 우선 이전에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동진 : 86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 치과 의사로 취업했어요. 동시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라는 단체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보건의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93년쯤 ‘민중의료연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그때 저도 참여했죠. 제 정치적 성향이 좌파에 가까웠거든요. 민중의료연합에서는 한동안 대표로도 활동했는데 2004년쯤 이 단체는 해산했어요.
홍시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워낙 대중적 단체라 저도 함께 연대활동 한 적이 있는데요. ‘민중의료연합’이란 단체는 낯서네요.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고 활동했는지 궁금합니다.
동진 : 의사나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로 구성된 단체인데요. 가급적 회비도 ‘십일조’로 내자고 하며 결속력이 매우 높은 단체였어요. 의료 문제가 사회구조나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사람의 건강 문제를 예로 들면 ‘방역’은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거죠. 의료 문제도 사회 체제나 구조의 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게 가장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료의 사회화’라고 표현했고, 공공의료와 연관 지어 주장했어요. 지금은 공공의료가 대중적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 당시 공공의료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데가 저희 단체였습니다. 보건의료 정책 관련 활동과 더불어 다국적 제약회사에 지배된 고가의 의약품 가격 문제 상황에서 의약품 접근성을 강화하는 운동도 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의 산업재해에 해당하는 노동 안전 보건이라는 주제도 함께 다루며 활동했지요. 그 분야는 이후 분화되어 지금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보건의료가 공공적으로 재편되려면 보건의료 노동자가 핵심 주체여야 한다고 생각해 노동조합과 연구도 같이 하고 투쟁의 방향도 같이 논의하고 했어요. 또 당시 망하는 병원들도 많았는데 공공병원으로 전환하자 뭐 그런 논의도 많이 했고요. 연대활동으로 의료보험 통합운동도 같이 했어요. 당시 보건의료 운동이 스펙트럼이 넓었는데 우리 단체가 가장 좌파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홍시 : 보건의료와 산업재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선구적 활동을 펼치셨네요. 그런 시작이 있었기에 또 현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소회가 어떠신가요?
동진 : 그 당시 저희가 주장했던 내용이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윤보다 생명을’이란 구호가 있잖아요? 그 당시 저희가 단행본 책을 하나 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이윤보다 생명’이었어요. 공공의료도 당시엔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대중적으로 누구나 다 얘기하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그 당시 참 열심히 싸워서 의제화하고 대중화시킨 게 제일 큰 보람인 것 같습니다.
홍시 :민중의료 운동을 하다가 이제 기후위기 활동가가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동진 : 의료 문제가 사회복지 제도와 연계되는 게 많다 보니 사회복지 쪽 활동가들과도 교류하고 정치조직 활동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가 있던 2008년 무렵 제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데 뇌출혈이었습니다. 몇 년을 쉬다가 사회변혁노동자당(지금의 노동당) 사회운동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그 내부에 생태팀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일상적인 세미나를 했고요. 그때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그 책을 읽고 “아, 이 활동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기후 관련 활동은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9.27 제주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 | 사진_홍시
홍시 :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에 그렇게 꽂혔나요?
동진 : 제목처럼 모든 것과 다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은 그런 것을 다 건드리고 있더라고요. 좌파 운동 자체가 침체해 활로를 못 찾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활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시 : 이후 기후위기 관련해 어떤 활동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동진 : 기후 문제는 체제 문제를 건드리는 것으로 판단했고요. 때마침 서울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만들어졌는데 저도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전의 환경운동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환경운동에 꽤 비판적이었거든요. 예전에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임하는 환경단체들과 저는 입장이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거대 환경단체인 모 단체의 행사에 기업 후원이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 비판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어요. 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하면서 내부에 여러 논쟁이 많았는데요. 조직의 명칭에 ‘탈핵’을 넣을지 말 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들어진 탄소중립위원회도 저는 그 구성이나 내용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기후운동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고요. 그 중심으로 ‘기후정의포럼’이 만들어졌습니다. 몇 명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포럼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정리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팸플릿처럼 내보기로 했지요.
공저 [기후정의선언 2021] ⓒ강동진
홍시 :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기후정의선언 2021]이군요.
동진 : 맞아요. 그 책을 쓰고 나서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하고 2021년 8월에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해 10월에 치과를 개원하고 의사로 일하며 기후 관련 공부를 계속했어요. 얼마 후 지인이 [다른제주연구소]가 만들어지니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으니 그런 공부 같이한다는 차원에서 자연스레 합류했습니다. 지금까지 2주에 한 번씩 모여 책 읽고 세미나 하고 있어요. [기후책], [모두를 위한 지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미래는 탈성장], [행복도시 꾸리찌바]라는 책을 공부했고요. 이제 [블루 뉴딜]을 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파란에서 그 책으로 북토크를 하더라고요. 잘 됐다 싶었어요.
홍시 : 10월 18일 오후 2시에 하는 파란 북토크에 오시면 되겠네요.(웃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는 어떻게 가입하시게 된 건가요?
동진 : 옛말에 “선배를 잘 못 만나..” 그런 말이 있죠. 박성인 형을 만나는 바람에.(웃음) 환경운동 한다는 단체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파란은 좀 다른 것 같았어요.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시민과학을 표방하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활동의 내용을 만드는 것, 그런 취지가 좋았어요. 게다가 바다가 어떻게 변하는지 가장 생생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취지가 좋아서 가입했습니다.
9.27 제주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 | 사진_홍시
홍시 :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제주 바다에 대해 어떤 바람이 있으신가요?
동진 : 바다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바닷가 산책을 나가는데 옛날과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 없던 해안도로가 생기고 도로가 생기니까 주변으로 건물들이 또 가득 생겨나고. 더 이상 도로는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이 모든 문제가 기후 위기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요. 제주 바다, 원래의 바다로 회복되게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