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바다를 감각하는 태도 | 김보은 대표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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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닮아가는 기술

- 바다를 감각하는 태도 -

김보은 | 어라우드랩 대표

기술 1.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수면 아래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는다. 하나 둘 셋 넷, 4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8초 동안 천천히 내뱉는다. 들숨과 날숨의 속도를 의식하며 실눈을 뜬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고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오늘은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어 긴장된 목에 힘을 풀어본다. 그리고 다른 감각에 집중해 본다. 차가운 물이 찰랑이며 내 뺨을 툭툭 치고, 귀에서는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그때 무엇인가 내 어깨와 등을 두드린다. 빗방울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맞는 비는 나에게 용기를 내보라는 듯 내 어깨를 다독였다. 마지막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목 끝까지 숨을 채우고, 수면 아래로 양손을 뻗어 들어갔다. 

물속으로 들어가니 귀에 수압이 느껴진다. 한 손으로 코를 잡고 입안의 공기를 이용해 이관을 연다. 그럼 다시 귀가 편안해진다. 수심 10미터를 지나고 알람이 울리면 프리폴 자세를 취한다. 이곳부터는 음성부력으로 바뀌어 더 이상 핀을 차지 않아도 내 몸은 계속 떨어진다. 나는 그저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나의 몸과 나의 몸을 스쳐가는 물살에만 집중하며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내려간다.

그날 나는 목표했던 수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쉬며, 버디와 눈을 맞춘다. “아임 오케이”. 

목표한 곳에 내려가지 못해도 괜찮다. 고요한 바다에서 나를 다독이던 빗방울의 감각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비 오는 바다의 수면. ©김보은


기술 2. 바다에서 빠져나오기 

2024년 8월, 나는 <파란탐사대>로 함께 하며, 제주의 해안보호구역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날은 마라도 탐사가 진행되었고,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 앞 바다로 내려갔다. 지는 햇빛을 받아 수면이 반짝였다. 핀과 다이빙 마스크를 챙겨오지 않아 신고 있던 스포츠 샌들을 신고, 수경을 쓰고, 스노클을 물고 들어갔다. 코는 뚫려있었지만 스노클을 통해 하는 호흡은 익숙했기에 수면 위에 엎드려 따뜻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바다로 나갔다. 어느새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와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물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감상하고 있었다. 평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작은 해파리들이 가까이 몰려왔다. 나중에 물에서 나와서 알았지만, 해파리는 자포동물의 한 종류라고 했다. 나의 몸이 갑자기 경직되었고, 호흡이 거칠어지자 뚫려있던 코로 물이 들어왔다. 나는 컹컹 되며 몸을 일으켰다. 배우다 말았던 입영의 흉내를 내보았지만 될 턱이 없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은 계속 가라앉았고, 나는 코로 계속 물을 들이마셨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께 했던 탐사대원들이 보이지만 목소리가 안 나와서 부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물에서는 항상 자신했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물에 빠져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물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려 누웠다. 하늘이 보였다. 스노클을 입에서 빼고, 천천히 입으로 공기를 마시고 내쉬었다. 몸과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자, 다시 돌아갈 여유가 생겼다.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 그대로 팔과 발을 저어 해안가로 돌아갔다. 

해변으로 돌아가서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라도에서 수영하는 파란탐사대 [출처] 파란탐사대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내가 생각하는 바다에서 가장 편한 자세 ©김보은


기술 3. 바다에서 상괭이 찾기

나는 한 달에 이틀, 혹은 사흘 동안의 시간을 추자도의 바다에서 상괭이를 찾는다. 추자도 바다에 살고 있지만, 누구도 조사한 적 없는 상괭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상괭이편>이 모였다. 우리는 매달 정해진 루트를 8-10노트의 속도로 천천히 바다를 누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배 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괭이를 기다린다. 

처음 나간 바다에서 나는 이 넓은 바다에서 어떻게 상괭이를 찾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는 돌고래이다. 무리를 지어 다니지도 않는다. 혼자 다니거나 두세 마리 정도가 같이 다닌다. 조용히 쑤욱 올라왔다 다시 쑤욱 내려간다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내가 포착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의 왼편 수평선과 맞닿는 곳에 점을 하나 찍고, 사선 아래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사선 위로 올라가길 나의 오른편 수평선까지 반복했다. 나의 시선과 상괭이가 올라오는 순간이 만날 수 있을까. 바다가 넘실거리며 만드는 검은 물결이 모두 상괭이로 보였다. 저 많은 검은 물결 중에 상괭이가 있던 것은 아닐까. 상괭이가 없었던 것인지, 못 본 건지, 보고도 모른 건지도 모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한참 보내고 나서 드디어 상괭이를 보았다. 바다 위에서 넘실거리는 검은 물결의 속도와 다른 속도의 무언가가 올라왔다. 상괭이의 등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고 상괭이의 “푸쉬식”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2025년 1월 처음 만났던 상괭이의 모습. [출처] 상괭이편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그리고 4. 작업 안에서

일상 대부분의 날들은 서울 남산 밑의 작업실에서 보낸다. 오전 10시쯤 작업실에 도착해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나면, 모니터에 푸른 바다가 보인다. 육지에 있는 나에게 바다를 마주하는 잠깐이자 유일한 시간이다. 그리고 어제 작업하던 파일을 열어 덮는다. 나는 이곳에서 디자인 작업을 한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의 여러 정의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작업이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한 장 혹은 몇 장의 이미지로 변환된다.

디자인 작업의 시작은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수면 위에 엎드려 들숨과 날숨의 속도를 맞추듯, 상대방의 호흡을 따라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살펴본다. 혹시, 내가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들어가는 중에 놓친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너무 힘을 주어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본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남아 있을 이야기의 잔해도 찾아본다. 

바다를 만나면서 기술을 익혔다기보다는 바다를 통해 바다를 만나는 태도를 배운다.

힘을 빼고, 주변의 소리와 감각에 더 귀 기울이는 것. 다 같아 보이는 물결이지만, 그 속에서 다른 물결 하나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내가 디자인을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에 간다.


너무 거치지 않은 파도와 속도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를 늘 고민한다. 아직도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그래서 잘 듣고 주변을 잘 살피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좋은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그 좋은 태도는 바다와 닮았다. 물에 가라앉기 위해서 힘을 빼는 것처럼, 디자이너로서 표현하고 싶은 힘을 빼고, 바다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다 같아 보이는 물결이지만, 그 속에서 다른 물결 하나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내가 디자인을 하는 방법이다.

결국 바다는 나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태도를 가르친다. 흐름을 읽는 태도, 힘을 빼는 태도, 시야가 좁아질수록 감각은 넓어져야 한다는 태도. 그 태도는 그대로 내가 만든 모든 디자인 속에 스며든다. 바다에서 배운 기술은 곧 내가 살아가는 기술이며, 만드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바다로 들어간다. 더 깊이 헤엄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이 디자인하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디자이너다. 한 달에 한 번 제주에 내려와 제주와 추자의 바다를 만나지만, 대부분은 서울 남산 밑의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날들은 보낸다. 그래도 오전 10시쯤 작업실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그리고 커피테이블로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를 들으며, 물을 끓인다. 클리퍼라는 드리퍼에 원두를 넣고 끓은 물을 따라 1분쯤 기다리다 잔에 커피를 덜어 그제야 컴퓨터 앞에 앉는다. 모니터에 바다의 모습이 가득하다. 맥 컴퓨터에서 기본으로 설정할 수 있는 화면이지만, 어느 날은 해파리가, 어느 날은 돌고래가, 또 어느 날은 물살이가 모니터 가득 움직인다. 

그렇게 바다를 만나고 나서 그날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확인하고 한다. 


대부분의 날을 육지에 사는 디자이너가 매달 바다에 나가서 뭐 하는 것이냐 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이빙을 배워 바다에 들어간지도 10여 년, 내가 그린디자인을 공부하고 2015년에 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어 환경과 디자인에 대해 작업한 것도 10여 년이 되었다. 바다를 만난 시간과 디자인으로 바다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이 글을 쓰면서 같았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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