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나는 침묵하는 이를 변호합니다. | 신지형 변호사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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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변호하는 기술

- 나는 침묵하는 이를 변호합니다. -


신지형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변호사)

바다를 둘러싼 법의 해석

법정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입니다. 변호사로서 수없이 법정을 드나들었지만, 유독 바다와 같은 환경과 관련된 사건을 다룰 때면 다른 떨림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제가 변호해야 할 의뢰인은 스스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법정에 출석할 수 없고, 의견서를 쓸 수도 없으며,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항변할 수도 없습니다.

거대한 유조선이 좌초되어 검은 기름이 해안을 뒤덮었을 때도, 육지에서 흘러든 플라스틱이 해류를 타고 거대한 섬을 이룰 때도, 무분별한 매립으로 갯벌이 사라질 때도, 바다는 그저 침묵 속에서 피해를 감내할 뿐입니다.

법률 용어로 가득한 서류 속 어디에도 바다 그 자체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개발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공익과 사익의 비교형량’, '환경영향평가의 적법성’만이 논의될 뿐,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바다의 생명들, 그 생태계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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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를 타고 섬에 쌓인 쓰레기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법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 법체계에서 바다는 오랫동안 ‘자원’이자 ‘공간’으로만 취급되어 왔습니다. 「수산업법」은 바다를 수산자원의 ‘이용’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해양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심지어 「해양환경관리법」 역시 ‘보전’보다는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얼마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라는 기준으로만 평가되어 온 것입니다.

환경 사건에서 법원 판결 역시 이런 시각을 반영합니다. “환경에 일정한 영향이 있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고, 그보다 더 큰 공익이 있다면 사업 시행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판단이 반복됩니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문장은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회복 불가능한 정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공익’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의미하는가?


말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변론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그렇다면 바다는 의뢰인이 될 수 있을까요? 현행법상 권리능력이 없는 바다는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회로를 찾아야만 합니다. 인근 주민의 ‘어업권 침해’, 환경단체의 ‘환경권 침해’,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 침해’를 근거로 삼아 간접적으로 바다를 보호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2017년 뉴질랜드는 황가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고, 2022년에는 스페인의 마르 메노르 석호가 유럽 최초로 법적 권리를 인정받은 자연이 되었습니다. 에콰도르는 이미 2008년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시했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고, 유지되고, 재생산될’ 권리를 가진다는 과감한 선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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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황가누이 강(왼쪽, 출처: [istock] ©imagoDens)과 스페인 마르 메노르 석호(오른쪽, 출처: [istock] ©Antonio Lopez Velasco)


법률가의 시도: 새로운 해석을 찾아서

그렇다면 현재의 법 체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방향의 시도가 가능합니다.

첫째, 법 해석의 확장입니다.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이 조항을 ‘인간의 생활환경’에 국한하지 않고, ‘생태계 자체의 온전성’에 대한 권리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관련 소송에서 ‘생물다양성의 감소’ 그 자체를 환경권 침해의 근거로 주장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과학과 법의 연결입니다.

파란의 시민과학 조사 결과는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다숲 조사 데이터, 상괭이 출현 기록, 산호 군락 모니터링 자료는 추상적인 ‘환경 피해’를 구체적인 ‘생태계 파괴’로 전환시키는 도구입니다. 법원이 바다의 변화를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실을 증거화하는 작업입니다.

셋째, 입법과 정책 개선입니다. 

현행법이 바다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면, 법을 바꿔야 합니다. 2025년 4월, 남방큰돌고래의 핵심 서식지인 신도리 해역이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주도는 더 나아가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체 수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서식지 보호’, ‘이용 규제’가 아니라 ‘공존의 원칙’을 제도화하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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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시민학교-바다기록자 되기>에서 촬영한 남방큰돌고래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바다의 시간과 법의 시간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법적 절차는 느리고, 바다는 빠르게 변합니다. 행정소송은 1심 판결까지만도 평균 1년 이상이 걸립니다. 항소와 상고까지 이어지면 3~5년은 순식간에 흐릅니다. 그 사이 개발은 진행되고, 바다는 계속 변화합니다. 법적 분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바다숲이 이미 사라지고, 산호가 죽어버린 뒤일 때도 있습니다. 법의 시간과 바다의 시간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바다를 변호하는 진짜 기술은 법정 밖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민들이 직접 바다를 모니터링하고 그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바다의 가치를 끊임없이 말하고 설득하는 일, 다음 세대에게 바다와 공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모든 활동이 결국 바다를 위한 ‘변론’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법률가로서 저는 여전히 법정에 서고, 서류를 쓰고, 판례를 검토하며 변론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제가 변호하려는 대상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바다입니다. 그리고 그 바다의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것이 제가 맡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는 여전히 스스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를 대신해 말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정책회의에서,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서. 그것이 제가 믿는 바다를 변호하는 기술입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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