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말 :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일이 파란에도 있습니다. 이번에 그 이야기의 주인공 정산호, 장한이 님을 만나러 갑니다. 파란의 회원 350여 명 중에 서울에 거주하는 회원이 100여 명 되는데요. 이 두 분은 서울 도봉구의 한 청년주택에 삽니다. 어느 날 장한이 님이 집에 온 우편물을 확인하던 중 파란에서 온 우편물이 보이더랍니다. 당연히 본인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가려는데 이름을 확인하니 다른 사람이더래요. 입주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태라 한집에 살면서 평소 눈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도 파란의 회원이었다는 거죠. 그 넓은 서울에서, 청년주택도 한 두 개가 아닌데, 어찌 같은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파란의 회원일까요? 세상에 이런 일이! 맞죠?
홍시 :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두 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산호(이하 산호) : 저는 환경교육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 디자이너였거든요. 상업 디자인을 하다가 디자이너들이 숙명적으로 갖는 죄책감이 있는데요, 계속 뭔가를 생산해 내고 팔리게 하는 것에 고민하게 되었죠. 최근에는 환경 관련된 프로젝트나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영등포에 있는 작은 환경미술관이라는 전시 공간에서 디자인 전시를 하고 있고요. 생태 명상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홍시 : 정산호 님, 원래 산호라는 이름이 본명이에요?
산호 : 원래는 닉네임으로 쓰던 이름이었는데 ‘산호’란 이름이 좋아서 아예 개명했어요. 주민등록상으로도 다 바꿨고요. 이름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문화 기획 회사를 다닐 때 엄청 힘들게 일했거든요. 힘들다 하면서도 근데 또 좋아서 하는 거예요. 항상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한 순간에는 다 싫더라고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 미역으로 태어나야지 했어요. 제가 원래 바닷속을 좋아하는데 미역은 그냥 물에 이렇게 살랑살랑하면서 물고기 구경도 실컷 할 수 있고 평안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활동명을 정하려다 보니 미역보다는 그 옆에 있는 산호가 좋을 것 같더라고요. 산호가 군집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이 저랑 맞는 것 같았죠.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기획을 해왔고 사람들과 같이 어우러져 사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진은 관람객들과 만들 그림을 보는 정산호 님)
홍시 : 장한이(이하 한이)님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이 : 저는 대학교를 다니다 중퇴를 하고 혼자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이렇게 쭉 돌았는데 그때 만난 외국 여행자들과 얘기 나눌 기회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꼭 성공한 인생은 아닐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여행 중에 바르셀로나 친구를 만났는데 함께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같이 시도를 해보긴 했는데 짧게 머무는 여행자 신분이라 받아줄 수 있는 기관이 없었어요. 그때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때 알게 되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지역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는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서울시 혁신활동가로 얼마간 일하다가 이후 협치, 자원봉사, 주민자치 분야에서 일하며 행정 실무업무를 해 왔어요. 현재는 청년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제주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여행 중인 장한이 님)
홍시 :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바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요. 실제로 바다에 들어간 첫 기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산호 : 실제 바닷물에 들어간 첫 기억은 되게 찝찝했어요. 인천에 계속 살았거든요. 짠물이고 약간 따갑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바다의 심해를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는 심해가 마치 우주 같거든요. 다큐의 바다 영상을 보면 외계인 같은 생물들도 있고. 확대해 보면 작은 조류 같은 것들도 우주 같고 그래서 좋았어요. 심해로 갈수록 더 화려한 컬러의 생물들이 많은데 제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심해 생물의 색감이나 움직임이 그래픽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생애는 무생물로 태어나고 싶다, 산호가 되고 싶다는 건 사실 죽고 싶다는 얘기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무거워지니까. 바다도 좋아하고 해서 그냥 바다의 생물이 되고 싶다고 한 거예요. 마음의 슬픔, 그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홍시 : 산호란 이름을 쓰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산호 : 산호라는 이름을 쓰면서 제 인생에 재밌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환경교육을 하면서 산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동네에서 공간 하나 얻어 뜨개질하며 놀다 일하다 하는 그런 삶을 로망으로 생각했어요. 그때는 뜨개질할 줄은 몰랐는데 환경교육사 친구들이 녹색연합 산호 뜨개 워크숍을 알려줬어요. 제가 산호라는 이름을 써서 그런 거죠.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동네 초등학생들이랑 같이 뜨개질하고 있거든요. 뜨개질이 저에게는 치유의 매체이기도 해요. 뜨개질로 풀어가고 싶은 얘기들이 많고 나의 삶과 연결되는 게 많더라고요. 산호를 뜨면서 산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냥 산호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저를 좋아해요. 제가 되게 사랑을 많이 받는 거예요.
홍시 : 산호 이야기를 하는 산호님 표정이 지금 엄청 행복해 보여요. 이름이 갖는 지향이라는 게 있다네요. 태어날 때 부여된 이름이 본인의 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새로 짓는 이름은 자신의 지향을 담아서 부르는 거니까 이름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산호를 닮고 싶은 산호 님의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좋아요.


(좌) 2023년 전시회 때 산호 님이 관람객들과 함께 만든 작품 전시 윈도우, (우)두 사람이 사는 청년주택 거실의 식물 존
한이 : 제가 기억하는 첫 바다는 대천 앞바다예요. 할머니 댁 놀러 가면 대천 바다에 늘 데려가셨고 거기서 해수욕하고, 새조개 샤부샤부랑 낙지호롱 먹고 그랬던 기억이요. 조개 해물라면이 있는 맛있는 곳간이랄까. 그리고 어릴 때 아빠 품에 이렇게 안겨서 바다에 들어갔던 기억, 그런 게 생각나요.
20대의 제게 바다는 아픈 바다였어요. 세월호가 제 인생의 큰 충격적 사건이었거든요. 처음 뉴스 봤을 땐 다 구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잖아요.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에 빠져 있었다는데 저도 그랬어요. 바다는 너무 무섭고 슬프고 뭔가 다 집어삼키는 느낌이었죠. 바다 수영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 바다가 뒤틀려서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되게 컸어요. 그러면서도 무섭기 때문에 내가 이 바닷속에 들어가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에 더 내가 맞서야 한다, 뭐 그런 생각이요.
30대가 되고 나서 제주에 길게 여행하면서 제주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어요. 최근에 제주에 갔다가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어쩌다 돌고래 얘기가 나왔어요. 그 선배의 말이 원래는 제주도 전역에 돌고래들이 다 서식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바다에 해상풍력 발전소를 만들면서 돌고래들이 그 소음을 못 견뎌 서식지가 점차 좁아진다고 했어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넓게 살던 돌고래들의 서식지가 좁아졌다니 그게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요새는 그냥 인간의 존재가 지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스무 살 무렵 어른들이 기성세대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 미안해해야지, 그렇게 생각을 좀 했는데요. 요새는 결혼한 친구가 낳은 한 두 살 어린 아기들 보면 제가 너무 미안해요. 나조차 지구를 계속 망가뜨리고 있는데 이 아기들이 자라면 이런 좌절감, 무력감을 더 크게 느낄 것 같아요.
홍시 : 파란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산호 : 환경단체를 후원해 본 건 파란이 처음이에요. 청소년 단체랑 많이 일을 했는데 기후환경 프로젝트 하면서 산호 워크숍을 준비하다가 신주희 님을 알게 되었어요. 시민과학 활동하는파란이란 단체를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현장에는 잘 가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후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이 : 제가 관심 있는 일, 지지하는 일에 제 수입의 일부를 써야지 생각해 왔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홍시에게서 파란이란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듣고 나도 후원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게 ‘살리는 일이다.’ 생각하거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가치가 또 다른 사람의 가치와 만나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그 결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은 모이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산호님을 한 집에서 만나고 보니 역시 맞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홍시 :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인상 깊은 책 있나요?
한이 : [모든 삶은 흐른다]라는 ‘로랑스 드빌레르’라는 사람이 쓴 책이요. 우리 삶을 바다와 산에 빗대어서 풀어 나가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삶과 인생에서 바다를 통해 내가 깎이고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가 얼마 전 이직하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제주를 여행하면서 바다와 삶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는 순간이 되게 좋았어요.
산호 : 사진작가 문선희의 [이름 보다 오래된] 이요. 고라니 사진이 쭉 있는 책이에요. 그걸 보니 고라니들이 생긴 게 다 다른 거예요. 얼굴형이 동그란 애도 있고 길쭉한 애도 있고 각기 다른 생김을 하고 있더라고요. 얘네들도 각자 다 생명이고 존엄한 존재인데 내가 그걸 잘 몰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고라니를 좀 무서워했지, 지켜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는 못했거든요.
홍시 : 제주 곶자왈을 산책하다가 고라니를 가까이에서 만난 적 있어요. 걷고 있는데 길에 갑자기 쓱 나타나더니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신기해서 나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잘 모르고 낯선 존재는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알게 되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산호, 한이 : 맞아요(모두 웃음)
홍시 :두 분은 올해 제주바다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거 있을까요?
한이 : 3년 안에 산호탐사대를 하려고요. 20대 때는 바다가 무서웠지만 이제 바다에 들어가 다이빙도 해보고 싶어요. 바다가 하나의 우주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어요. 전에 TV를 보다가 다이빙하며 해양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들을 봤는데, 다이빙 자격증이 취미활동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살리는 활동으로도 작용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그걸 꼭 하고 싶어요.
산호 : 산호라는 이름을 쓰면서 제가 사랑받는 일도 많아지고 즐거운 일도 많아졌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받은 것들이니까 (뭔가 기여를 해야 하는데) 산호의 백화 현상을 제가 막을 수는 없어도 쓰레기 하나라도 주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홍시 : 얼마 전에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파란 북토크 [우리가 바다에 버린 모든 것]에 두 분 다 참석하셨는데요. 어떠셨는지 소감 좀 들려주세요.
한이 : 북토크에서 일단 해양 쓰레기들을 쫙 펼쳐놨잖아요. 그거 보면서 되게 참담하면서 동시에 되게 고마웠어요. 그 책을 번역하고 출판한 분들이 저보다 훨씬 나이 어린 분들인데요. 그렇게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고맙고 부러웠어요.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한테 주어진 역할들을 최대한 포기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책을 보면 우리가 바다에 버린 것들 보면서 많이 낙담하게 되는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한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는 북토크가 바로 그런 자리였던 것 같아요.
산호 : 북토크에서 참가자들이 뭘 질문할 때마다 그분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어떤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해서 전달하시던데 저는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 말씀 중에 바다를 이용하러 가는 것과 바다를 만나러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와닿았고요. 어떻게 하면 만나러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어 좋았어요.
홍시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에서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장한이&정산호(왼쪽부터) 님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 |
홍시의 말 :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일이 파란에도 있습니다. 이번에 그 이야기의 주인공 정산호, 장한이 님을 만나러 갑니다. 파란의 회원 350여 명 중에 서울에 거주하는 회원이 100여 명 되는데요. 이 두 분은 서울 도봉구의 한 청년주택에 삽니다. 어느 날 장한이 님이 집에 온 우편물을 확인하던 중 파란에서 온 우편물이 보이더랍니다. 당연히 본인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가려는데 이름을 확인하니 다른 사람이더래요. 입주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태라 한집에 살면서 평소 눈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도 파란의 회원이었다는 거죠. 그 넓은 서울에서, 청년주택도 한 두 개가 아닌데, 어찌 같은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파란의 회원일까요? 세상에 이런 일이! 맞죠?
정산호(이하 산호) : 저는 환경교육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 디자이너였거든요. 상업 디자인을 하다가 디자이너들이 숙명적으로 갖는 죄책감이 있는데요, 계속 뭔가를 생산해 내고 팔리게 하는 것에 고민하게 되었죠. 최근에는 환경 관련된 프로젝트나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영등포에 있는 작은 환경미술관이라는 전시 공간에서 디자인 전시를 하고 있고요. 생태 명상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홍시 : 정산호 님, 원래 산호라는 이름이 본명이에요?
산호 : 원래는 닉네임으로 쓰던 이름이었는데 ‘산호’란 이름이 좋아서 아예 개명했어요. 주민등록상으로도 다 바꿨고요. 이름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문화 기획 회사를 다닐 때 엄청 힘들게 일했거든요. 힘들다 하면서도 근데 또 좋아서 하는 거예요. 항상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한 순간에는 다 싫더라고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 미역으로 태어나야지 했어요. 제가 원래 바닷속을 좋아하는데 미역은 그냥 물에 이렇게 살랑살랑하면서 물고기 구경도 실컷 할 수 있고 평안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활동명을 정하려다 보니 미역보다는 그 옆에 있는 산호가 좋을 것 같더라고요. 산호가 군집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이 저랑 맞는 것 같았죠.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기획을 해왔고 사람들과 같이 어우러져 사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진은 관람객들과 만들 그림을 보는 정산호 님)
한이 : 저는 대학교를 다니다 중퇴를 하고 혼자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이렇게 쭉 돌았는데 그때 만난 외국 여행자들과 얘기 나눌 기회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꼭 성공한 인생은 아닐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여행 중에 바르셀로나 친구를 만났는데 함께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같이 시도를 해보긴 했는데 짧게 머무는 여행자 신분이라 받아줄 수 있는 기관이 없었어요. 그때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때 알게 되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지역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는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서울시 혁신활동가로 얼마간 일하다가 이후 협치, 자원봉사, 주민자치 분야에서 일하며 행정 실무업무를 해 왔어요. 현재는 청년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제주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여행 중인 장한이 님)
홍시 : 바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바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요. 실제로 바다에 들어간 첫 기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산호 : 실제 바닷물에 들어간 첫 기억은 되게 찝찝했어요. 인천에 계속 살았거든요. 짠물이고 약간 따갑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바다의 심해를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는 심해가 마치 우주 같거든요. 다큐의 바다 영상을 보면 외계인 같은 생물들도 있고. 확대해 보면 작은 조류 같은 것들도 우주 같고 그래서 좋았어요. 심해로 갈수록 더 화려한 컬러의 생물들이 많은데 제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심해 생물의 색감이나 움직임이 그래픽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생애는 무생물로 태어나고 싶다, 산호가 되고 싶다는 건 사실 죽고 싶다는 얘기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무거워지니까. 바다도 좋아하고 해서 그냥 바다의 생물이 되고 싶다고 한 거예요. 마음의 슬픔, 그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홍시 : 산호란 이름을 쓰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산호 : 산호라는 이름을 쓰면서 제 인생에 재밌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환경교육을 하면서 산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동네에서 공간 하나 얻어 뜨개질하며 놀다 일하다 하는 그런 삶을 로망으로 생각했어요. 그때는 뜨개질할 줄은 몰랐는데 환경교육사 친구들이 녹색연합 산호 뜨개 워크숍을 알려줬어요. 제가 산호라는 이름을 써서 그런 거죠.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동네 초등학생들이랑 같이 뜨개질하고 있거든요. 뜨개질이 저에게는 치유의 매체이기도 해요. 뜨개질로 풀어가고 싶은 얘기들이 많고 나의 삶과 연결되는 게 많더라고요. 산호를 뜨면서 산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냥 산호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저를 좋아해요. 제가 되게 사랑을 많이 받는 거예요.
홍시 : 산호 이야기를 하는 산호님 표정이 지금 엄청 행복해 보여요. 이름이 갖는 지향이라는 게 있다네요. 태어날 때 부여된 이름이 본인의 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새로 짓는 이름은 자신의 지향을 담아서 부르는 거니까 이름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산호를 닮고 싶은 산호 님의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좋아요.
(좌) 2023년 전시회 때 산호 님이 관람객들과 함께 만든 작품 전시 윈도우, (우)두 사람이 사는 청년주택 거실의 식물 존
한이 : 제가 기억하는 첫 바다는 대천 앞바다예요. 할머니 댁 놀러 가면 대천 바다에 늘 데려가셨고 거기서 해수욕하고, 새조개 샤부샤부랑 낙지호롱 먹고 그랬던 기억이요. 조개 해물라면이 있는 맛있는 곳간이랄까. 그리고 어릴 때 아빠 품에 이렇게 안겨서 바다에 들어갔던 기억, 그런 게 생각나요.
20대의 제게 바다는 아픈 바다였어요. 세월호가 제 인생의 큰 충격적 사건이었거든요. 처음 뉴스 봤을 땐 다 구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잖아요.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에 빠져 있었다는데 저도 그랬어요. 바다는 너무 무섭고 슬프고 뭔가 다 집어삼키는 느낌이었죠. 바다 수영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 바다가 뒤틀려서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되게 컸어요. 그러면서도 무섭기 때문에 내가 이 바닷속에 들어가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에 더 내가 맞서야 한다, 뭐 그런 생각이요.
30대가 되고 나서 제주에 길게 여행하면서 제주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어요. 최근에 제주에 갔다가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어쩌다 돌고래 얘기가 나왔어요. 그 선배의 말이 원래는 제주도 전역에 돌고래들이 다 서식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바다에 해상풍력 발전소를 만들면서 돌고래들이 그 소음을 못 견뎌 서식지가 점차 좁아진다고 했어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넓게 살던 돌고래들의 서식지가 좁아졌다니 그게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요새는 그냥 인간의 존재가 지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스무 살 무렵 어른들이 기성세대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 미안해해야지, 그렇게 생각을 좀 했는데요. 요새는 결혼한 친구가 낳은 한 두 살 어린 아기들 보면 제가 너무 미안해요. 나조차 지구를 계속 망가뜨리고 있는데 이 아기들이 자라면 이런 좌절감, 무력감을 더 크게 느낄 것 같아요.
홍시 : 파란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산호 : 환경단체를 후원해 본 건 파란이 처음이에요. 청소년 단체랑 많이 일을 했는데 기후환경 프로젝트 하면서 산호 워크숍을 준비하다가 신주희 님을 알게 되었어요. 시민과학 활동하는파란이란 단체를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현장에는 잘 가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후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이 : 제가 관심 있는 일, 지지하는 일에 제 수입의 일부를 써야지 생각해 왔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홍시에게서 파란이란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듣고 나도 후원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게 ‘살리는 일이다.’ 생각하거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가치가 또 다른 사람의 가치와 만나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그 결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은 모이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산호님을 한 집에서 만나고 보니 역시 맞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홍시 :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인상 깊은 책 있나요?
한이 : [모든 삶은 흐른다]라는 ‘로랑스 드빌레르’라는 사람이 쓴 책이요. 우리 삶을 바다와 산에 빗대어서 풀어 나가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삶과 인생에서 바다를 통해 내가 깎이고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가 얼마 전 이직하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제주를 여행하면서 바다와 삶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는 순간이 되게 좋았어요.
산호 : 사진작가 문선희의 [이름 보다 오래된] 이요. 고라니 사진이 쭉 있는 책이에요. 그걸 보니 고라니들이 생긴 게 다 다른 거예요. 얼굴형이 동그란 애도 있고 길쭉한 애도 있고 각기 다른 생김을 하고 있더라고요. 얘네들도 각자 다 생명이고 존엄한 존재인데 내가 그걸 잘 몰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고라니를 좀 무서워했지, 지켜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는 못했거든요.
홍시 : 제주 곶자왈을 산책하다가 고라니를 가까이에서 만난 적 있어요. 걷고 있는데 길에 갑자기 쓱 나타나더니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신기해서 나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잘 모르고 낯선 존재는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알게 되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산호, 한이 : 맞아요(모두 웃음)
홍시 :두 분은 올해 제주바다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거 있을까요?
한이 : 3년 안에 산호탐사대를 하려고요. 20대 때는 바다가 무서웠지만 이제 바다에 들어가 다이빙도 해보고 싶어요. 바다가 하나의 우주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어요. 전에 TV를 보다가 다이빙하며 해양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들을 봤는데, 다이빙 자격증이 취미활동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살리는 활동으로도 작용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그걸 꼭 하고 싶어요.
산호 : 산호라는 이름을 쓰면서 제가 사랑받는 일도 많아지고 즐거운 일도 많아졌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받은 것들이니까 (뭔가 기여를 해야 하는데) 산호의 백화 현상을 제가 막을 수는 없어도 쓰레기 하나라도 주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홍시 : 얼마 전에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파란 북토크 [우리가 바다에 버린 모든 것]에 두 분 다 참석하셨는데요. 어떠셨는지 소감 좀 들려주세요.
한이 : 북토크에서 일단 해양 쓰레기들을 쫙 펼쳐놨잖아요. 그거 보면서 되게 참담하면서 동시에 되게 고마웠어요. 그 책을 번역하고 출판한 분들이 저보다 훨씬 나이 어린 분들인데요. 그렇게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고맙고 부러웠어요.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한테 주어진 역할들을 최대한 포기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책을 보면 우리가 바다에 버린 것들 보면서 많이 낙담하게 되는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한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는 북토크가 바로 그런 자리였던 것 같아요.
산호 : 북토크에서 참가자들이 뭘 질문할 때마다 그분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어떤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해서 전달하시던데 저는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 말씀 중에 바다를 이용하러 가는 것과 바다를 만나러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와닿았고요. 어떻게 하면 만나러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어 좋았어요.
홍시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에서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인터뷰어 : 홍시 (김연순)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제주로 이주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 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