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 ‘에코토피아’ 책이 절판되어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많은 분이 원문을 찾아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소설 원문을 함께 싣습니다.
- 그래서 글이 매우 길어요! 적당한 길이의 글을 원하신다면 까만색 글씨만 읽으시길요^^!
50년 전 소설 속 상상, 현실이 되다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장편소설 <에코토피아> 톺아보기

들어가기.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나는 여행할 때면 중고 서점이나 지역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 그 지역 사람들의 취향과 일상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인천에서는 배다리 골목을, 서울 나들이에는 청계천 헌책방을, 부산 여행에서는 보수동의 책방을 찾아다니곤 했다. 제주도에는 헌책방 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검색해 보니 이곳저곳에 작은 헌책방들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친구와 함께 나들이 겸 제주시에 있는 중고 서점인 책대로책방에 들렀다.
서귀포 5평 원룸 집에 살게 되며 물건을 집에 들이는 일에 신중해졌다. 특히 책은 그 경계 대상 1호다. 한참 책방을 둘러보았지만 5평 원룸, 그중에서도 작디작은 책꽂이 선반에 자리를 내어줄 매력적인 책을 찾지 못하고 책방에서 나서려는 찰나, 친구가 “어? 이 책 네가 왠지 좋아할 것 같아!”라며 책을 하나 가르쳤다. 켜켜이 가로로 쌓여있던 책들 사이에서 꺼낸 책 제목은 ‘에코토피아’였다.
이름도 수상쩍은 ‘정신세계사’라는 출판사에서 1991년 출판한 초판 1쇄 본이었다.(2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30년 이상 세월만큼 종이는 조금 노래졌지만, 책 상태는 새 책과 다름없었다. 우선 흥미로운 제목만으로도 이미 집에 들이기로 하고, 기분 좋게 서점을 나섰다.
에코토피아로 빠져들기
에코토피아는 1975년 미국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환경활동가였던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썼다. 1999년을 배경으로 오리건, 워싱턴,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이 미국에서 분리되어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새로운 국가 에코토피아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저 ‘환경과 관련된 공상 과학 소설이려나…’ 하고 읽다가, 2025년 지금 세상에서 외치는 사회적 대안들이 예언처럼 소설 안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어서, 깜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잡고 책을 읽었다.
주인공은 에코토피아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주류 언론 기자 윌리엄 웨스턴이다. 그가 에코토피아 건설 후에 여행과 통신이 단절되었던 20년이 지난 후, 6주간 특별 취재원으로 지내며 작성한 일기와 보고서를 통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로운지, 나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에코토피아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주인공이 미국과 에코토피아의 국경을 넘어 중심부로 들어가는 열차에서 느끼는 첫 감명은 에코토피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재활용에 능숙한 생활이다.
p.17
자연에 대해 유별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열차에까지 푸르름을 들여놓았다. 열차 안은 늘어진 양치류와 이름 모를 작은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내 길동무들은 그 식물들의 이름을 자신만만하게 줄줄이 주워섬겼다) 객차 끝에는 쓰레기통 모양의 용기가 몇 개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큼직한 글씨로 각각 M과 G 및 P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들은 '재활용 쓰레기통'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보면 이런 것도 다 있나 싶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행하는 동안 승객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금속이나 유리,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당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인이라면 어느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겠지만,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정확한 쓰레기통을 척척 찾아냈다. 나는 에코토피아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자원 재생과 재활용의 엄격한 실천을 처음 목격한 셈이다.
감정과 의견 표현이 확실한 에코토피아 사람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초면에도 거침없는 속내(좋은 것과 나쁜 것 둘 다!)를 이야기하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피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사람들은 상대방에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격식을 차리거나 애써 다른 이에게 아부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소설안에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 감정에 확신이 있고, 표현하고 발언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제약이나 이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은 없다. 소설에서 계속 그려지듯, 에코토피아 사회가 매우 수평적이기 때문인것 같다. 아부가 없으니 종종 냉소적인 말투로 대화한다거나, 감정 표현이 다들 강하니 심하게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싸움의 끝은 언제나 후련한 화해로 마무리 된다.
p.29
어젯밤에는 호텔 여종업원과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다. 거리에서 꽃을 꺾어다가 내 방에 꽂아두었는데, 그녀가 여기에 시비를 건 것.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꽃을 꺾지 않고, 꽃이 자라는 곳에 그대로 두고 즐기기를 더 좋아한다. 그녀는 나도 이런 관습을 지켜야 한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p.21
그들의 태도는 훨씬 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때는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짜릿하다. 지금까지는 내가 먼저 눈길을 돌렸지만, 계속 마주 보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마치 시간을 무한정으로 갖고 있어서 다가오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것처럼 느긋하고, 서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공공장소에 만연해 있는 공공연한 범죄적 폭력의 위협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너무 많다.
에코토피아 공무원에게는 우리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열차표 매표창구에 앉아 있던 공무원은 내 말투를 참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열차표 자동판매기인 줄 아느냐고 대들었다. 누구든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그는 차표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누구 와도 상대하기를 피하지 않는다. 질문을 퍼붓고, 자신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주기를 기대하며, 진지한 반응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이런 고함과 분노는 대부분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p.38
이곳 사람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어젯밤 저녁 식사를 끝낸 뒤 호텔방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복도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 남녀가 마치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내려갔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밖으로 나갔거나 자기네 방으로 돌아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다시 돌아오더니, 내 방문 바로 밖에서 발을 멈췄다. 나는 마침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서너 명의 투숙객들이 그 주위를 에워싼 채 구경하고 있었다.
…중략…
이런 장면이 I5 분 가량 계속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구경꾼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 싸움은 언젠가 내가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장면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마침내 두 남녀는 부아가 가라앉은 얼굴로 서로를 한 참 바라보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울면서 꽉 껴안은 채, 복도를 지나 자기들 방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생생한 목격담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권투 시합에서 유난히 격렬한 라운드가 끝났을 때 두 선수를 비교 평가하는 것과 비슷했다. 무엇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격렬한 감정 표현을 보고 짜릿한 흥분을 느낀 것은 분명했다. 여기서는 대인관계에 대한 제약이 느슨해진 게 분명하고, 그래서 극단적인 적대 행위조차 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그런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의견 제시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참여로 연결된다. TV에서는 예능과 드라마 같은 방송보다는 지방정부나 국회 활동이 실시간 중계되고, 사람들은 전화로 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정치적 의제는 사람들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일상생활로부터 나온다.
p.63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그들을 이용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텔레비전을 이용하는 것 같다. 몇몇 채널은 정부 조직에 속해 있는 일종의 기구임이 분명한데, 말하자면 확성기 장치가 되어 있는 회의실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지방정부나 국회의 활동이 방영되고 있을 때 이 채널을 본다. (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언론이나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시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들은 전화를 걸어, 때로는 그 자리에 있는 정부 관리에게, 때로는 방송 요원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논평한다. 따라서 텔레비전은 뉴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에는 텔레비전 자체가 곧 뉴스다.
…중략…
우리나라의 뉴스 캐스터처럼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대체로 이 개념을 '부르주아의 맹목적 숭배물'로 경멸하고, 자기 뜻을 우선 내세운 다음 널리 퍼뜨리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공언한다.
p.135
집회에는 공식 의제가 전혀 없다. 집회는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사'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관심사를 토론하다 보면, 전체적인 쟁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회의에는 의사진행 규칙도 없고, 발의나 투표도 없다. 다만 감정의 점진적인 배출, 약간의 개인적인 적대감, 뻔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 순차적인 합의가 있을 뿐이다.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합의를 이루기 위해 양보해야 했던 이들의 감정을 달래려고 애쓴다. 이런 치유 과정이 이루어진 뒤에야 그 결정을 정식으로 승인한다.
…중략…
그들은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를 규정하고 거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정치라기보다 사회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쏟는다. 한편, 사람들이 그런 집회를 '즐기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느긋하게 산다. 국가정책으로 근무시간이 20시간으로 단축되어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며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살기 때문이다. '땅 위를 가볍게 걷고', 대지를 어머니처럼 대하고 싶어 하는 그들은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경외감을 드러내며 나무를 숭배한다. 에코토피아의 많은 구조물은 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나무를 사용하기를 원하면 쓸 만큼 다시 심어야 사용할 수 있다. 나무를 베거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성스럽게 비치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마리사의 직업이 바로 이 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 나온다.
p.49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시간 감각이 별로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시계를 찬 사람은 거의 없고, 실제 시각보다는 해돋이와 해넘이, 또는 밀물과 썰물 같은 자연 현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도 산업 문명의 요구에 어느 정도는 따르겠지만, 기꺼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손목시계를 찬 인디언은 한 명도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에코 토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인디언에 대해 감상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자연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다. 이 그리움은 에코토피아 사람들에게 신화의 원천이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인디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중략…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들은 '땅 위를 가볍게 걷고', 대지를 어머니처럼 대하고 싶어 한다. 이런 윤리에 비추어볼 때, 대부분의 산업 공정과 근무 시간 및 생산품이 수상쩍게 여겨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기 어머니한테 불도저를 들이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p.81
마리사 브라이트클라우드. 그녀가 직접 지은 인디언식 이름이다. 에코토피아 사람들 중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을 버리고 인디언식 이름을 직접 지어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마리사는 어제 열차에서 만났다. 숲속 캠프로 가기 위해. 나는 이곳에서 나무를 벌채하고 삼림을 관리하는 일을 며칠 동안 관찰할 예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홍보 담당 공무원일 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숲과 캠프의 관리를 맡은 7인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p.90
확실히 에코토피아의 목재산업은 고객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 가지 관행을 갖고 있다. 목조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우선 산림 캠프에 가서 '산림 봉사'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들이 소비하게 될 나무를 대신할 새로운 나무를 이 노동 기간에 충분히 키워놓게 되어 있다.
예언 1 자연을 자연답게 복원할지니… 리와일딩!
미국에서 독립하며 에코토피아는 대규모 도시를 해체하고 “미니도시” 들을 연결했다. 거대했던 도시는 자연으로 복원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거리를 개울로 바꾸고 꽃을 심고 샌프란시스코의 쇼핑몰을 숲으로 조성한다.
자연이 도시를 다시 뒤덮도록 했다. 산림을 벌채하기는 하지만, 관리하는 방법은 최대한 자연 그대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오늘날 새롭게 이야기되고 있는 리와일딩(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하고 균형을 되찾도록 돕는 자연 복원 방식)이 이미 에코토피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p.19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페인트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위와 진흙 벽돌, 비바람에 시달린 널빤지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재료를 가지고 집을 짓지만, 페인트로 단장할 만한 미적 감각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페인트를 칠하느니 차라리 포도덩굴이나 덤불로 집을 덧씌울 것이다.
p.47
우리는 열차를 타고 앨비조를 떠나 레드우드 시로 향했다. 이른바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곳. 샌프란시스코 만을 따라 펼쳐져 있는 탁 트인 시골에 반 마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 개의 새 도시가 땅에서 솟아난 듯 서 있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뒤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산기슭에는 또 다른 고리의 일부인 새 도시 두 개가 건설되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있는 옛 주택지의 일부는 이미 숲과 초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보니, 어린 시절 펜실베이니아의 시골에서 보낸 여름이 생각났다.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줄기를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하늘에는 매들이 한가롭게 맴돌고 있다. 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을 나온 아이들이 힘차게 달리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분잡한 문명의 흔적들(도로, 자동차, 주유소, 슈퍼마켓)은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다는 듯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p.91
숲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대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 자라는데, 이것은 야생동물들에게 더없이 좋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충과 질병이 침입할 기회를 줄인다고 한다. 죽은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한테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숲속에는 사슴을 비롯한 동물들의 서식지로 군데군데 풀밭을 만들어두었다. 늙은 나무는 자연히 씨를 뿌려 어린나무를 키우기 때문에, 이제 산림 감독관들은 산림을 새롭게 조성하려고 애쓰고 있는 지역에 인공적으로 식목하는 일만 하고 있다.
p.94
에코토피아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숲이다. 그들은 정성껏 숲을 돌보고,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방식대로 숲을 관리한다. 그들은 자연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운동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언 2 무한한 성장은 필요 없다 하거늘… 탈성장!
에코토피아 경제의 핵심 원칙은 "안정 상태" 또는 무성장 경제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경제 성장보다는 복지 증진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에코 토피아의 대부분 국민들은 일정 수준의 의료, 주택, 식량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혐오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만들고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 20시간 근무 제도 덕분에 일자리는 넘쳐나고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열정적으로 여가 시간을 즐긴다. 경제 성장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치 중심의 사회·경제적 전환을 꾀하는 오늘날의 탈성장 철학마저 소설에 등장해 있다.
p.44
그리고 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들은 대부분 완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에코토피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손수 만들기' 풍조에 따라, 이 공장에서는 주로 '앞축'과 '뒤축' 및 배터리를 생산한다. 그러면 개인과 단체는 이것들을 사다가, 각자 취향대로 설계하여 손수 만든 차체와 연결한다. 손수 만든 차체는 대부분 기묘하기 짝이 없어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운행하는 미니버스들도 평범한 겉모습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예로 나는 물에 떠내려온 통나무로 만든 트럭을 본 적이 있는데, 트럭 전체가 전복껍질로 촘촘히 장식되어 있었다. 이 트럭은 해안의 어촌 공동체에 소속된 차량이었다.
p.66
그들은 손으로 만든 이런 물건들을 예술품처럼 애지중지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일부 물건은 훌륭한 예술품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약간 구식인 것 같다. 에코토피아에서 제작 한 공구나 기구들은 아마 미국 텔레비전으로 방영된다면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물건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갖가지 변명을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용자들이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면 쉽게 고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들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능률적인 제품과는 거리가 멀다. 부품들은 엉뚱한 각도로 불 쑥 튀어나와 있고, 볼트와 그 밖의 조임 장치는 겉으로 드러나 있으며, 심지어는 나무로 만든 부품도 있다.
그러나 에코토피아에서는 자기 물건을 자기가 직접 고친다. 실제로 거리에는 수리점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에코토피아에는 상품에 대한 보증이 아예 없다는 기묘한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제품이란 튼튼하고 오래가며 직접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것은 또한 그 제품들이 우리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에코토피아가 이런 상태에 쉽게 도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초기에 만들어진 제품들의 우스꽝스러운 디자인과 제조업자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 밖의 숱한 어려움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법률에는 신제품을 만들어 팔려면 열 명의 보통 사람('소비자'라는 용어는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말이어서, 정중한 대화에는 쓰이지 않는다)으로 구성된 공공심사위원회에 시제품을 제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보통 사람들이 신제품에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고장을 흔히 쓰는 도구로 쉽게 고칠 수 있어야만 신제품 제조가 허가된다.
예언 3. 플라스틱, 흙으로 돌아갈지니… 생분해플라스틱!
에코토피아의 가장 주요한 개념은 ‘안정상태’이다. 사회, 경제, 문화, 생물학적 모든 측면에서 성장보다는 지금의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탈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에코토피아에서 집착하는 것은 물질의 순환, 순환 경제와 같은 것들이다. 에코토피아에서는 모든 플라스틱을 식물로부터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생분해플라스틱으로 대체해냈다. 이 소설이 1975년에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당시 사회에서 아직 플라스틱 쓰레기 논란이 일기 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플라스틱의 사용을 반기는 사회였을 텐데, 20년 후 다가올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문제를 예상하고 ‘생분해플라스틱’이라는 상상(지금은 현실이 된!)을 해냈다니!!! 저자는 예언가가 아닐 수가 없다!
p. 32
우리는 하수구 찌꺼기를 건조시켜 자연 비료를 만드는 체계를 전국적으로 건설했어요. 7년 뒤에 우리는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수 재활용과 쓰레기 퇴비 질소 고정력을 가진 새로운 농작물의 윤작, 그리고 동물성 거름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p.37
허리띠의 버클은 동물 뼈나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요리용 냄비는 대부분 무거운 쇠로 되어 있고, 안쪽에 플라스틱을 덧씌워 음식이 달라붙지 않게 한다. 페인트를 칠한 물건은 거의 없다. 페인트는 분해 되지 않는 납, 고무나 플라스틱을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 같은 물건도 거의 모아두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미국인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읽은 다음에는 책을 친구에게 주는 방식으로 순환 처리한다.
…중략…
쓰레기차가 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내 생각은 잘못이었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를 만한 것, 즉 쓰레기 수거장에 갖다 버려야 하는 물건을 사실상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통에 담겨 있는 물건을 운반하려면 더 많은 트럭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p.12
에코토피아의 플라스틱은 우리나라 플라스틱처럼 화석원료(석유와 석탄)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살아 있는 생물원료(식물)에서만 추출한 것이다.
…중략…
또 하나의 목적은 그 플라스틱이 모두 생물분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썩어 없어지는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플라스틱이 들판에 묻히면 비료로 환원될 수 있고, 이 비료는 새로운 농작물을 키우고, 이 농작물은 다시 새로운 플라스틱 원료로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순환이 무한히 계속되는데, 이것을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거의 종교적인 열정을 담아 '안정상태 체계'라고 부른다.
p.151
나는 머리빗을 잃어버렸는데, 중심 상점에는 동물의 뻣뻣한 털로 만든 머리빗 밖에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머리빗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내 동료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골동품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골동품 가게는 일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우리나라의 잡화점에서 파는 수많은 물건이 여기에 포함된다)을 살 수 있는 특별한 상점이었다.
…중략…
어쨌든 골동품 가게의 단골손님은 주로 나이 든 여성과 약간 퇴폐적으로 보이는 몇몇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계속 낄낄거리면서 멋 부린 가공물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플라스틱 머리빗을 고르자, 점원은 그것이 구식 플라스틱이어서 재생 처리할리할 수가 없다고 한바탕 강연을 늘어놓은 다음, 혐오감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 빌어먹을 물건은 아마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을 겁니다."
예언 4. 기후위기, 정의로운 전환 가능할지니!
에코토피아의 소설 배경을 따라가보면 미국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에 대한 대응으로 분리되었다. 깨끗한 물과 공기, 건강한 환경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같은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태양과 바다로부터 얻은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오염 제로 정책을 시행해서 오염 물질을 만들거나 내뿜는 공장은 모조리 문을 닫았다. 이런 꽤 과격한 정책에서 피해입은 사람은 없없을까? 오늘날 핵발전소나 화석연료 발전소를 폐쇄하며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듯, 에코토피아에서 해법을 내놓았다. 실업자들을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업에 흡수시켰다.
p.73
수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생겨났다. 그러자 새 정부는 두 가지 대처방안을 내놓았다. 하나는 실업자들을 철도망과 하수처리장 및 생태계의 안정상태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그 밖의 순환처리 시설 건설 사업에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위험하거나 불쾌한 구체제의 유물, 예를 들면 주유소 같은 곳을 해체하는 작업에도 투입되었다. 또 하나의 조치는 주당 기본 노동시간을 20시간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사실상 일자리를 두 배로 늘려주었지만, 개인소득은 사실상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에코토피아는 몇 년 동안 모든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p.138
이런 중대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에코토피아의 초기 정책은 기존의 정부기구를 폐지하는 대신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주정부의 도로건설국에서 일하던 수많은 직원은 독립한 뒤 해고당하지 않고, 과거의 협력자인 건설회사들과 함께 오염이 심한 해안과 호숫가 및 강둑을 복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략…
한 에코토피아인이 말했듯이, 일찍이 "자동차에게는 낙원이지만 인간에게는 지옥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막강한 재산수용권을 행사했던 도로건설국은 이제 똑같은 권한으로 무장하고 모든 주요 강둑 및 수많은 하천을 순식간에 청소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센 강처럼 아름다운 강둑과 강변공원, 작은 배들이 접안할 수 있는 선착장, 숲이 우거지고 모래가 깔린 해변을 만들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개선했다.
p.160
그들은 송전선이 길게 이어져 있는 풍경을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한 곳에 거대한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과정에는 무언가 부자 연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에너지가 필요한 곳 근처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학기술에 더 관심이 많다)해안 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은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배수관을 통해 운반된다. 이 플라스틱 속에는 기포가 들어 있어서 약간의 부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배수관은 물 위로 떠 오르는 경향이 있고, 바다 밑바닥과 연결된 케이블로 배 밑바닥 아래의 적당한 곳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p.164
에코토피아에서는 건물의 남쪽 벽과 지붕이 대부분 태양열을 흡수하는 장치로 덮여 있지만, 이 장치는 주택 관리비를 크게 줄여주고 중앙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 필요성도 없애주기 때문에,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이런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또한 온수기와 바닷물 증류기에도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즐겨 지적한다. 태양열을 이용한 바닷물 증류기는 여름에 물공급이 불확실한 해안지역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그 밖의 예언. e-book, 독립 출판, 줌 강의, 공유자전거
World Wide Web(www.)이 1990년 12월에 등장했다니, 소설이 쓰여진 1975년에 인터넷이 존재했을 리는 만무할 터! 그러나 소설 안에는 지금 웹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서비스들이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즉시 책을 인쇄할 수 있는 단말기를 만들어 연결망에 접속한 뒤 책 번호를 누르면 책이 바로 인쇄된다.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고급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의 e-book이 책 인쇄 대신 모니터로 보는 것일 뿐 아주 같은 시스템이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2010년대가 들어 시작된 독립출판 마저 이미 일상화 되어있다. 코로나 이후에 많아진 인터넷 강의도 에코토피아의 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는 비디오 강의로 표현된다. 시민 누구나 탈 수 있는 공유자전거가 도시 이곳저곳에 있고, 수거 시스템까지 갖추어져 있다. 이건, 공짜로 타는 카카오바이크가 아닌가!!
p.172
이 체제는 출판에도 적용된다. 대중적인 신간 서적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인쇄되어 가판대나 서점에서 팔리지만, 전문 서적은 특정한 출력 연결망을 통해서만 구해 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사려면 우선 도서 목록에 적힌 서적 번호를 보고, 주크박스 같은 키보드로 숫자를 입력한다. 그러면 화면에 짧은 선전문과 견본용 단락 및 가격이 나온다. 그것을 검토해 보고 한 부를 사고 싶으면, 화면에 표시된 가격만큼 동전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몇 분 뒤에 책이 인쇄되어 나온다. 도시 사람들은 좀 더 읽기 쉽게 인쇄된 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단말기를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단말기는 전국 방방곡곡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골 지역 주민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대중적인 신간 서적과 전문 서적을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중략…
에코토피아에는 이런 '직업적'인 출판업 이외에 상당히 규모가 큰 '아마추어' 출판업도 있다. 에코토피아는 초기에 누구나 다룰 수 있고 쉽게 수리할 수 있는 휴대용 오프셋 인쇄기를 개발하여 곳곳에 배치했기 때문에, 작가와 예술가, 정치 집단과 전문 단체들은 쉽고 값싸게 책을 인쇄할 수 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어린이들도 여덟 살만 되면 이 기계를 조작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법을 배운다. 이런 방식으로 인쇄된 자료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하다. 요리책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미식을 즐기는데, 이것은 분명 프랑스와 그들 사이의 문화적 유대 가운데 하나다), 정치적 팜플렛, 과학 논문, 만화책 (일부 뛰어난 예술가들이 표현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만화가 광범위하고 기묘하게 발달했다), 실험적인 문학, 시, 공예나 기술 입문서 등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인쇄된다. 형식도 다양하여, 집에서 만든 조잡한 것도 있지만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훌륭한 것도 있다.
p.201
각 대학에는 학생들에게 고용되어 학생들이 낸 수업료에서 직접 봉급을 받는 교수들도 있다. 이 '학생용' 교수들은 정규 교수들에 비하면 똑똑하지만, 괴짜인 경우가 많다. 이 교수들은 다른 대학에서 I년 동안 불려 오는 예도 있고, 때로는 유명한 문필가나 과학자, 또는 정치가인 경우도 있으며, 학생들이 자세히 듣고 싶어 하거나 토론하고 싶어 하는 독특한 인생 경험을 가진 보통 사람인 경우도 있다.
여러 학부가 개설한 강좌 가운데 학생들이 저마다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 제도는 비디오를 통해 대중적인 제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비디오 강좌에 등록만 하면, 생물학이나 공학, 음악학을 비롯한 수백 가지 학문을 교육받을 수 있다.
p.25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한두 블록이 넘는 거리를 갈 때는 대개 하얗게 칠해진 튼튼한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전거는 길가에 수백 대씩 세워져 있어서, 누구나 마음대로 탈 수 있다. 낮과 저녁에 퇴근하는 시민들이 귀가하면서 타고 가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진 자전거들은, 야간 근무자들이 이튿날 아침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장소에 되돌려 옮겨진다.
도둑들이 좋아할 만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행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어서 그는 택시나 미니버스를 더 많이 공급하는 것보다 자전거 몇 대를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설명했는데, 그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다.
나오기. 실현된 에코토피아를 꿈꾸며
소설은 주인공이 취재를 모두 마친 후, 결국 에코토피아에 감흥을 느껴 평생 남아있기를 선택하며 끝난다. 256쪽의 소설책을 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글씨가 작고 빡빡한 옛 판형이라 생각보다 길었던 탓도 있지만, 각 장마다, 문단마다 곱씹어 읽을 부분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분량의 글에도 미처 담지 못한 내용도 아직 많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을 다루며 여성의 해방을 표현하려는 시도에서 에코토피아의 여성을 지나치게 문란하게(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표현한다든지, ‘전쟁놀이’를 통해 인간 특히 남성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내용들은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적 본성을 표현한 것이라 추측되는데, 조금 과한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1975년에 이런 상상을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무려 50년 전에 한 소설가가 상상했던 소설 속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이다. 그의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만큼 그가 제시했던 대안들도 2025년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대안이지 않을까. 그가 그렸던 에코토피아가 진짜로 실현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주인공처럼 (조금 이상한 구석은 있지만) 에코토피아에서 살길 선택하고 싶다.
글쓴이 신주희
읽기 전에!
50년 전 소설 속 상상, 현실이 되다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장편소설 <에코토피아> 톺아보기
들어가기.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나는 여행할 때면 중고 서점이나 지역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 그 지역 사람들의 취향과 일상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인천에서는 배다리 골목을, 서울 나들이에는 청계천 헌책방을, 부산 여행에서는 보수동의 책방을 찾아다니곤 했다. 제주도에는 헌책방 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검색해 보니 이곳저곳에 작은 헌책방들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친구와 함께 나들이 겸 제주시에 있는 중고 서점인 책대로책방에 들렀다.
서귀포 5평 원룸 집에 살게 되며 물건을 집에 들이는 일에 신중해졌다. 특히 책은 그 경계 대상 1호다. 한참 책방을 둘러보았지만 5평 원룸, 그중에서도 작디작은 책꽂이 선반에 자리를 내어줄 매력적인 책을 찾지 못하고 책방에서 나서려는 찰나, 친구가 “어? 이 책 네가 왠지 좋아할 것 같아!”라며 책을 하나 가르쳤다. 켜켜이 가로로 쌓여있던 책들 사이에서 꺼낸 책 제목은 ‘에코토피아’였다.
이름도 수상쩍은 ‘정신세계사’라는 출판사에서 1991년 출판한 초판 1쇄 본이었다.(2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30년 이상 세월만큼 종이는 조금 노래졌지만, 책 상태는 새 책과 다름없었다. 우선 흥미로운 제목만으로도 이미 집에 들이기로 하고, 기분 좋게 서점을 나섰다.
에코토피아로 빠져들기
에코토피아는 1975년 미국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환경활동가였던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썼다. 1999년을 배경으로 오리건, 워싱턴,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이 미국에서 분리되어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새로운 국가 에코토피아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저 ‘환경과 관련된 공상 과학 소설이려나…’ 하고 읽다가, 2025년 지금 세상에서 외치는 사회적 대안들이 예언처럼 소설 안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어서, 깜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잡고 책을 읽었다.
주인공은 에코토피아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주류 언론 기자 윌리엄 웨스턴이다. 그가 에코토피아 건설 후에 여행과 통신이 단절되었던 20년이 지난 후, 6주간 특별 취재원으로 지내며 작성한 일기와 보고서를 통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로운지, 나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에코토피아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주인공이 미국과 에코토피아의 국경을 넘어 중심부로 들어가는 열차에서 느끼는 첫 감명은 에코토피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재활용에 능숙한 생활이다.
p.17
자연에 대해 유별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열차에까지 푸르름을 들여놓았다. 열차 안은 늘어진 양치류와 이름 모를 작은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내 길동무들은 그 식물들의 이름을 자신만만하게 줄줄이 주워섬겼다) 객차 끝에는 쓰레기통 모양의 용기가 몇 개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큼직한 글씨로 각각 M과 G 및 P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들은 '재활용 쓰레기통'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보면 이런 것도 다 있나 싶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행하는 동안 승객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금속이나 유리,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당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인이라면 어느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겠지만,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정확한 쓰레기통을 척척 찾아냈다. 나는 에코토피아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자원 재생과 재활용의 엄격한 실천을 처음 목격한 셈이다.
감정과 의견 표현이 확실한 에코토피아 사람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초면에도 거침없는 속내(좋은 것과 나쁜 것 둘 다!)를 이야기하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피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사람들은 상대방에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격식을 차리거나 애써 다른 이에게 아부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소설안에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 감정에 확신이 있고, 표현하고 발언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제약이나 이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은 없다. 소설에서 계속 그려지듯, 에코토피아 사회가 매우 수평적이기 때문인것 같다. 아부가 없으니 종종 냉소적인 말투로 대화한다거나, 감정 표현이 다들 강하니 심하게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싸움의 끝은 언제나 후련한 화해로 마무리 된다.
p.29
어젯밤에는 호텔 여종업원과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다. 거리에서 꽃을 꺾어다가 내 방에 꽂아두었는데, 그녀가 여기에 시비를 건 것.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꽃을 꺾지 않고, 꽃이 자라는 곳에 그대로 두고 즐기기를 더 좋아한다. 그녀는 나도 이런 관습을 지켜야 한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p.21
그들의 태도는 훨씬 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때는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짜릿하다. 지금까지는 내가 먼저 눈길을 돌렸지만, 계속 마주 보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마치 시간을 무한정으로 갖고 있어서 다가오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것처럼 느긋하고, 서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공공장소에 만연해 있는 공공연한 범죄적 폭력의 위협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너무 많다.
에코토피아 공무원에게는 우리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열차표 매표창구에 앉아 있던 공무원은 내 말투를 참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열차표 자동판매기인 줄 아느냐고 대들었다. 누구든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그는 차표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누구 와도 상대하기를 피하지 않는다. 질문을 퍼붓고, 자신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주기를 기대하며, 진지한 반응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이런 고함과 분노는 대부분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p.38
이곳 사람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어젯밤 저녁 식사를 끝낸 뒤 호텔방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복도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 남녀가 마치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내려갔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밖으로 나갔거나 자기네 방으로 돌아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다시 돌아오더니, 내 방문 바로 밖에서 발을 멈췄다. 나는 마침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서너 명의 투숙객들이 그 주위를 에워싼 채 구경하고 있었다.
…중략…
이런 장면이 I5 분 가량 계속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구경꾼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 싸움은 언젠가 내가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장면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마침내 두 남녀는 부아가 가라앉은 얼굴로 서로를 한 참 바라보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울면서 꽉 껴안은 채, 복도를 지나 자기들 방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생생한 목격담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권투 시합에서 유난히 격렬한 라운드가 끝났을 때 두 선수를 비교 평가하는 것과 비슷했다. 무엇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격렬한 감정 표현을 보고 짜릿한 흥분을 느낀 것은 분명했다. 여기서는 대인관계에 대한 제약이 느슨해진 게 분명하고, 그래서 극단적인 적대 행위조차 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그런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의견 제시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참여로 연결된다. TV에서는 예능과 드라마 같은 방송보다는 지방정부나 국회 활동이 실시간 중계되고, 사람들은 전화로 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정치적 의제는 사람들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일상생활로부터 나온다.
p.63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그들을 이용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텔레비전을 이용하는 것 같다. 몇몇 채널은 정부 조직에 속해 있는 일종의 기구임이 분명한데, 말하자면 확성기 장치가 되어 있는 회의실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지방정부나 국회의 활동이 방영되고 있을 때 이 채널을 본다. (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언론이나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시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들은 전화를 걸어, 때로는 그 자리에 있는 정부 관리에게, 때로는 방송 요원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논평한다. 따라서 텔레비전은 뉴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에는 텔레비전 자체가 곧 뉴스다.
…중략…
우리나라의 뉴스 캐스터처럼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대체로 이 개념을 '부르주아의 맹목적 숭배물'로 경멸하고, 자기 뜻을 우선 내세운 다음 널리 퍼뜨리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공언한다.
p.135
집회에는 공식 의제가 전혀 없다. 집회는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사'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관심사를 토론하다 보면, 전체적인 쟁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회의에는 의사진행 규칙도 없고, 발의나 투표도 없다. 다만 감정의 점진적인 배출, 약간의 개인적인 적대감, 뻔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 순차적인 합의가 있을 뿐이다.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합의를 이루기 위해 양보해야 했던 이들의 감정을 달래려고 애쓴다. 이런 치유 과정이 이루어진 뒤에야 그 결정을 정식으로 승인한다.
…중략…
그들은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를 규정하고 거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정치라기보다 사회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쏟는다. 한편, 사람들이 그런 집회를 '즐기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느긋하게 산다. 국가정책으로 근무시간이 20시간으로 단축되어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며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살기 때문이다. '땅 위를 가볍게 걷고', 대지를 어머니처럼 대하고 싶어 하는 그들은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경외감을 드러내며 나무를 숭배한다. 에코토피아의 많은 구조물은 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나무를 사용하기를 원하면 쓸 만큼 다시 심어야 사용할 수 있다. 나무를 베거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성스럽게 비치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마리사의 직업이 바로 이 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 나온다.
p.49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시간 감각이 별로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시계를 찬 사람은 거의 없고, 실제 시각보다는 해돋이와 해넘이, 또는 밀물과 썰물 같은 자연 현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도 산업 문명의 요구에 어느 정도는 따르겠지만, 기꺼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손목시계를 찬 인디언은 한 명도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에코 토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인디언에 대해 감상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자연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다. 이 그리움은 에코토피아 사람들에게 신화의 원천이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인디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중략…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들은 '땅 위를 가볍게 걷고', 대지를 어머니처럼 대하고 싶어 한다. 이런 윤리에 비추어볼 때, 대부분의 산업 공정과 근무 시간 및 생산품이 수상쩍게 여겨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기 어머니한테 불도저를 들이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p.81
마리사 브라이트클라우드. 그녀가 직접 지은 인디언식 이름이다. 에코토피아 사람들 중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을 버리고 인디언식 이름을 직접 지어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마리사는 어제 열차에서 만났다. 숲속 캠프로 가기 위해. 나는 이곳에서 나무를 벌채하고 삼림을 관리하는 일을 며칠 동안 관찰할 예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홍보 담당 공무원일 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숲과 캠프의 관리를 맡은 7인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p.90
확실히 에코토피아의 목재산업은 고객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 가지 관행을 갖고 있다. 목조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우선 산림 캠프에 가서 '산림 봉사'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들이 소비하게 될 나무를 대신할 새로운 나무를 이 노동 기간에 충분히 키워놓게 되어 있다.
예언 1 자연을 자연답게 복원할지니… 리와일딩!
미국에서 독립하며 에코토피아는 대규모 도시를 해체하고 “미니도시” 들을 연결했다. 거대했던 도시는 자연으로 복원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거리를 개울로 바꾸고 꽃을 심고 샌프란시스코의 쇼핑몰을 숲으로 조성한다.
자연이 도시를 다시 뒤덮도록 했다. 산림을 벌채하기는 하지만, 관리하는 방법은 최대한 자연 그대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오늘날 새롭게 이야기되고 있는 리와일딩(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하고 균형을 되찾도록 돕는 자연 복원 방식)이 이미 에코토피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p.19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페인트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위와 진흙 벽돌, 비바람에 시달린 널빤지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재료를 가지고 집을 짓지만, 페인트로 단장할 만한 미적 감각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페인트를 칠하느니 차라리 포도덩굴이나 덤불로 집을 덧씌울 것이다.
p.47
우리는 열차를 타고 앨비조를 떠나 레드우드 시로 향했다. 이른바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곳. 샌프란시스코 만을 따라 펼쳐져 있는 탁 트인 시골에 반 마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 개의 새 도시가 땅에서 솟아난 듯 서 있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뒤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산기슭에는 또 다른 고리의 일부인 새 도시 두 개가 건설되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있는 옛 주택지의 일부는 이미 숲과 초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보니, 어린 시절 펜실베이니아의 시골에서 보낸 여름이 생각났다.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줄기를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하늘에는 매들이 한가롭게 맴돌고 있다. 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을 나온 아이들이 힘차게 달리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분잡한 문명의 흔적들(도로, 자동차, 주유소, 슈퍼마켓)은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다는 듯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p.91
숲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대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 자라는데, 이것은 야생동물들에게 더없이 좋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충과 질병이 침입할 기회를 줄인다고 한다. 죽은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한테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숲속에는 사슴을 비롯한 동물들의 서식지로 군데군데 풀밭을 만들어두었다. 늙은 나무는 자연히 씨를 뿌려 어린나무를 키우기 때문에, 이제 산림 감독관들은 산림을 새롭게 조성하려고 애쓰고 있는 지역에 인공적으로 식목하는 일만 하고 있다.
p.94
에코토피아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숲이다. 그들은 정성껏 숲을 돌보고,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방식대로 숲을 관리한다. 그들은 자연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운동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언 2 무한한 성장은 필요 없다 하거늘… 탈성장!
에코토피아 경제의 핵심 원칙은 "안정 상태" 또는 무성장 경제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경제 성장보다는 복지 증진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에코 토피아의 대부분 국민들은 일정 수준의 의료, 주택, 식량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혐오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만들고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 20시간 근무 제도 덕분에 일자리는 넘쳐나고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열정적으로 여가 시간을 즐긴다. 경제 성장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치 중심의 사회·경제적 전환을 꾀하는 오늘날의 탈성장 철학마저 소설에 등장해 있다.
p.44
그리고 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들은 대부분 완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에코토피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손수 만들기' 풍조에 따라, 이 공장에서는 주로 '앞축'과 '뒤축' 및 배터리를 생산한다. 그러면 개인과 단체는 이것들을 사다가, 각자 취향대로 설계하여 손수 만든 차체와 연결한다. 손수 만든 차체는 대부분 기묘하기 짝이 없어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운행하는 미니버스들도 평범한 겉모습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예로 나는 물에 떠내려온 통나무로 만든 트럭을 본 적이 있는데, 트럭 전체가 전복껍질로 촘촘히 장식되어 있었다. 이 트럭은 해안의 어촌 공동체에 소속된 차량이었다.
p.66
그들은 손으로 만든 이런 물건들을 예술품처럼 애지중지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일부 물건은 훌륭한 예술품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약간 구식인 것 같다. 에코토피아에서 제작 한 공구나 기구들은 아마 미국 텔레비전으로 방영된다면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물건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갖가지 변명을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용자들이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면 쉽게 고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들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능률적인 제품과는 거리가 멀다. 부품들은 엉뚱한 각도로 불 쑥 튀어나와 있고, 볼트와 그 밖의 조임 장치는 겉으로 드러나 있으며, 심지어는 나무로 만든 부품도 있다.
그러나 에코토피아에서는 자기 물건을 자기가 직접 고친다. 실제로 거리에는 수리점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에코토피아에는 상품에 대한 보증이 아예 없다는 기묘한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제품이란 튼튼하고 오래가며 직접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것은 또한 그 제품들이 우리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에코토피아가 이런 상태에 쉽게 도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초기에 만들어진 제품들의 우스꽝스러운 디자인과 제조업자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 밖의 숱한 어려움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법률에는 신제품을 만들어 팔려면 열 명의 보통 사람('소비자'라는 용어는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말이어서, 정중한 대화에는 쓰이지 않는다)으로 구성된 공공심사위원회에 시제품을 제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보통 사람들이 신제품에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고장을 흔히 쓰는 도구로 쉽게 고칠 수 있어야만 신제품 제조가 허가된다.
예언 3. 플라스틱, 흙으로 돌아갈지니… 생분해플라스틱!
에코토피아의 가장 주요한 개념은 ‘안정상태’이다. 사회, 경제, 문화, 생물학적 모든 측면에서 성장보다는 지금의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탈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에코토피아에서 집착하는 것은 물질의 순환, 순환 경제와 같은 것들이다. 에코토피아에서는 모든 플라스틱을 식물로부터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생분해플라스틱으로 대체해냈다. 이 소설이 1975년에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당시 사회에서 아직 플라스틱 쓰레기 논란이 일기 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플라스틱의 사용을 반기는 사회였을 텐데, 20년 후 다가올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문제를 예상하고 ‘생분해플라스틱’이라는 상상(지금은 현실이 된!)을 해냈다니!!! 저자는 예언가가 아닐 수가 없다!
p. 32
우리는 하수구 찌꺼기를 건조시켜 자연 비료를 만드는 체계를 전국적으로 건설했어요. 7년 뒤에 우리는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수 재활용과 쓰레기 퇴비 질소 고정력을 가진 새로운 농작물의 윤작, 그리고 동물성 거름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p.37
허리띠의 버클은 동물 뼈나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요리용 냄비는 대부분 무거운 쇠로 되어 있고, 안쪽에 플라스틱을 덧씌워 음식이 달라붙지 않게 한다. 페인트를 칠한 물건은 거의 없다. 페인트는 분해 되지 않는 납, 고무나 플라스틱을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 같은 물건도 거의 모아두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미국인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읽은 다음에는 책을 친구에게 주는 방식으로 순환 처리한다.
…중략…
쓰레기차가 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내 생각은 잘못이었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를 만한 것, 즉 쓰레기 수거장에 갖다 버려야 하는 물건을 사실상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통에 담겨 있는 물건을 운반하려면 더 많은 트럭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p.12
에코토피아의 플라스틱은 우리나라 플라스틱처럼 화석원료(석유와 석탄)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살아 있는 생물원료(식물)에서만 추출한 것이다.
…중략…
또 하나의 목적은 그 플라스틱이 모두 생물분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썩어 없어지는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플라스틱이 들판에 묻히면 비료로 환원될 수 있고, 이 비료는 새로운 농작물을 키우고, 이 농작물은 다시 새로운 플라스틱 원료로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순환이 무한히 계속되는데, 이것을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거의 종교적인 열정을 담아 '안정상태 체계'라고 부른다.
p.151
나는 머리빗을 잃어버렸는데, 중심 상점에는 동물의 뻣뻣한 털로 만든 머리빗 밖에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머리빗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내 동료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골동품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골동품 가게는 일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우리나라의 잡화점에서 파는 수많은 물건이 여기에 포함된다)을 살 수 있는 특별한 상점이었다.
…중략…
어쨌든 골동품 가게의 단골손님은 주로 나이 든 여성과 약간 퇴폐적으로 보이는 몇몇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계속 낄낄거리면서 멋 부린 가공물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플라스틱 머리빗을 고르자, 점원은 그것이 구식 플라스틱이어서 재생 처리할리할 수가 없다고 한바탕 강연을 늘어놓은 다음, 혐오감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 빌어먹을 물건은 아마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을 겁니다."
예언 4. 기후위기, 정의로운 전환 가능할지니!
에코토피아의 소설 배경을 따라가보면 미국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에 대한 대응으로 분리되었다. 깨끗한 물과 공기, 건강한 환경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같은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태양과 바다로부터 얻은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오염 제로 정책을 시행해서 오염 물질을 만들거나 내뿜는 공장은 모조리 문을 닫았다. 이런 꽤 과격한 정책에서 피해입은 사람은 없없을까? 오늘날 핵발전소나 화석연료 발전소를 폐쇄하며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듯, 에코토피아에서 해법을 내놓았다. 실업자들을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업에 흡수시켰다.
p.73
수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생겨났다. 그러자 새 정부는 두 가지 대처방안을 내놓았다. 하나는 실업자들을 철도망과 하수처리장 및 생태계의 안정상태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그 밖의 순환처리 시설 건설 사업에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위험하거나 불쾌한 구체제의 유물, 예를 들면 주유소 같은 곳을 해체하는 작업에도 투입되었다. 또 하나의 조치는 주당 기본 노동시간을 20시간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사실상 일자리를 두 배로 늘려주었지만, 개인소득은 사실상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에코토피아는 몇 년 동안 모든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p.138
이런 중대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에코토피아의 초기 정책은 기존의 정부기구를 폐지하는 대신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주정부의 도로건설국에서 일하던 수많은 직원은 독립한 뒤 해고당하지 않고, 과거의 협력자인 건설회사들과 함께 오염이 심한 해안과 호숫가 및 강둑을 복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략…
한 에코토피아인이 말했듯이, 일찍이 "자동차에게는 낙원이지만 인간에게는 지옥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막강한 재산수용권을 행사했던 도로건설국은 이제 똑같은 권한으로 무장하고 모든 주요 강둑 및 수많은 하천을 순식간에 청소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센 강처럼 아름다운 강둑과 강변공원, 작은 배들이 접안할 수 있는 선착장, 숲이 우거지고 모래가 깔린 해변을 만들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개선했다.
p.160
그들은 송전선이 길게 이어져 있는 풍경을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한 곳에 거대한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과정에는 무언가 부자 연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에너지가 필요한 곳 근처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학기술에 더 관심이 많다)해안 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은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배수관을 통해 운반된다. 이 플라스틱 속에는 기포가 들어 있어서 약간의 부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배수관은 물 위로 떠 오르는 경향이 있고, 바다 밑바닥과 연결된 케이블로 배 밑바닥 아래의 적당한 곳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p.164
에코토피아에서는 건물의 남쪽 벽과 지붕이 대부분 태양열을 흡수하는 장치로 덮여 있지만, 이 장치는 주택 관리비를 크게 줄여주고 중앙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 필요성도 없애주기 때문에,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이런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또한 온수기와 바닷물 증류기에도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즐겨 지적한다. 태양열을 이용한 바닷물 증류기는 여름에 물공급이 불확실한 해안지역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그 밖의 예언. e-book, 독립 출판, 줌 강의, 공유자전거
World Wide Web(www.)이 1990년 12월에 등장했다니, 소설이 쓰여진 1975년에 인터넷이 존재했을 리는 만무할 터! 그러나 소설 안에는 지금 웹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서비스들이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즉시 책을 인쇄할 수 있는 단말기를 만들어 연결망에 접속한 뒤 책 번호를 누르면 책이 바로 인쇄된다.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고급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의 e-book이 책 인쇄 대신 모니터로 보는 것일 뿐 아주 같은 시스템이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2010년대가 들어 시작된 독립출판 마저 이미 일상화 되어있다. 코로나 이후에 많아진 인터넷 강의도 에코토피아의 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는 비디오 강의로 표현된다. 시민 누구나 탈 수 있는 공유자전거가 도시 이곳저곳에 있고, 수거 시스템까지 갖추어져 있다. 이건, 공짜로 타는 카카오바이크가 아닌가!!
p.172
이 체제는 출판에도 적용된다. 대중적인 신간 서적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인쇄되어 가판대나 서점에서 팔리지만, 전문 서적은 특정한 출력 연결망을 통해서만 구해 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사려면 우선 도서 목록에 적힌 서적 번호를 보고, 주크박스 같은 키보드로 숫자를 입력한다. 그러면 화면에 짧은 선전문과 견본용 단락 및 가격이 나온다. 그것을 검토해 보고 한 부를 사고 싶으면, 화면에 표시된 가격만큼 동전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몇 분 뒤에 책이 인쇄되어 나온다. 도시 사람들은 좀 더 읽기 쉽게 인쇄된 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단말기를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단말기는 전국 방방곡곡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골 지역 주민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대중적인 신간 서적과 전문 서적을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중략…
에코토피아에는 이런 '직업적'인 출판업 이외에 상당히 규모가 큰 '아마추어' 출판업도 있다. 에코토피아는 초기에 누구나 다룰 수 있고 쉽게 수리할 수 있는 휴대용 오프셋 인쇄기를 개발하여 곳곳에 배치했기 때문에, 작가와 예술가, 정치 집단과 전문 단체들은 쉽고 값싸게 책을 인쇄할 수 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어린이들도 여덟 살만 되면 이 기계를 조작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법을 배운다. 이런 방식으로 인쇄된 자료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하다. 요리책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미식을 즐기는데, 이것은 분명 프랑스와 그들 사이의 문화적 유대 가운데 하나다), 정치적 팜플렛, 과학 논문, 만화책 (일부 뛰어난 예술가들이 표현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만화가 광범위하고 기묘하게 발달했다), 실험적인 문학, 시, 공예나 기술 입문서 등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인쇄된다. 형식도 다양하여, 집에서 만든 조잡한 것도 있지만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훌륭한 것도 있다.
p.201
각 대학에는 학생들에게 고용되어 학생들이 낸 수업료에서 직접 봉급을 받는 교수들도 있다. 이 '학생용' 교수들은 정규 교수들에 비하면 똑똑하지만, 괴짜인 경우가 많다. 이 교수들은 다른 대학에서 I년 동안 불려 오는 예도 있고, 때로는 유명한 문필가나 과학자, 또는 정치가인 경우도 있으며, 학생들이 자세히 듣고 싶어 하거나 토론하고 싶어 하는 독특한 인생 경험을 가진 보통 사람인 경우도 있다.
여러 학부가 개설한 강좌 가운데 학생들이 저마다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 제도는 비디오를 통해 대중적인 제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비디오 강좌에 등록만 하면, 생물학이나 공학, 음악학을 비롯한 수백 가지 학문을 교육받을 수 있다.
p.25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한두 블록이 넘는 거리를 갈 때는 대개 하얗게 칠해진 튼튼한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전거는 길가에 수백 대씩 세워져 있어서, 누구나 마음대로 탈 수 있다. 낮과 저녁에 퇴근하는 시민들이 귀가하면서 타고 가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진 자전거들은, 야간 근무자들이 이튿날 아침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장소에 되돌려 옮겨진다.
도둑들이 좋아할 만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행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어서 그는 택시나 미니버스를 더 많이 공급하는 것보다 자전거 몇 대를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설명했는데, 그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다.
나오기. 실현된 에코토피아를 꿈꾸며
소설은 주인공이 취재를 모두 마친 후, 결국 에코토피아에 감흥을 느껴 평생 남아있기를 선택하며 끝난다. 256쪽의 소설책을 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글씨가 작고 빡빡한 옛 판형이라 생각보다 길었던 탓도 있지만, 각 장마다, 문단마다 곱씹어 읽을 부분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분량의 글에도 미처 담지 못한 내용도 아직 많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을 다루며 여성의 해방을 표현하려는 시도에서 에코토피아의 여성을 지나치게 문란하게(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표현한다든지, ‘전쟁놀이’를 통해 인간 특히 남성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내용들은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적 본성을 표현한 것이라 추측되는데, 조금 과한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떻게 1975년에 이런 상상을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무려 50년 전에 한 소설가가 상상했던 소설 속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이다. 그의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만큼 그가 제시했던 대안들도 2025년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대안이지 않을까. 그가 그렸던 에코토피아가 진짜로 실현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주인공처럼 (조금 이상한 구석은 있지만) 에코토피아에서 살길 선택하고 싶다.
글쓴이 신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