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민주주의와 바다, 인간 너머의 바다 | 황준서 함부르크대학교 지속가능성미래센터 연구원

202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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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바다, 인간 너머의 바다


황준서 (함부르크대학교 지속가능성미래센터 연구원)


바다와 인간

바다가 인간에게 주는 감정은 여기서 전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거센 파도는 인간에게 공포를 심어주기도 하지만, 잔잔한 물결은 안정을 준다. 너른 바다를 보며 인간은 수많은 욕망, 희망, 선망을 품기도 한다. ‘신대륙’을 찾아 떠난 식민주의자들은 세찬 파도를 뚫고 나가 그들의 ‘영웅담’을 역사로 기록했으며, 안전과 만선을 희망하며 떠나는 고기잡이 배에는 민중의 삶이 담겨있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는 미지와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장 깊은 바다는 깊이가 10,984m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수심 200m까지만 들어가도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 오늘날 인간이 바다 위의 세상에서 지배자처럼 군림하며 살고 있지만, 바다는 그런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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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격리시설에 있는 동안 찍은 무의도 앞바다 일출 사진 ©황준서


바다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는 뜻의 ‘사상누각’이라는 말은 오늘날 전 지구적 생태위기에 직면해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가장 적절히 설명한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평민’이 주인으로서 힘을 행사하는 제도이자 이념을 의미하며, 오래전 노예해방전쟁을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제도로 규정했다. 

오늘날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라 칭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는 인간세계에서 보편적인 정치제도로 자리 잡은 동시에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 수많은 제도적 차이를 넘어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공통적으로 ‘국민국가’ 틀 안에서 ‘(다수) 인민의 의지 행사’와 ‘인민의 보호’라는 세 개의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관련 설명은 국가와 다수결 원리,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보호제도의 발전(과 퇴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가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항상 외면받아 왔는데, 바로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는 인간이 지구상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정치제도라는 점이다. 즉,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을 불문하고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의 유일한 행위자는 인간이다. 권력의 정당성을 인간 다수의 뜻에서 도출하는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인간이 아닌 생명은 의지를 행사할 수도,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 보호받을 수도 없었다. 

경제성장을 인간 삶의 가장 최우선 과제로 삼는 사고방식이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환경문제’는 인간이 자연의 변화로부터 ‘중대한’ 위험에 직면해야만 다뤄야 할 부차적인 사안으로 여겨져왔다. 생태법 이론가 클라우스 보셀만(Klaus Bosselmann)은 오늘날 환경법이 본질적으로 자원고갈로 인해 기술적 진보가 멈추지 않도록 환경을 관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의 재생능력보다 과도하게 빠른 인간의 자원소비를 오히려 장려한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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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0년 전 제주 강정 앞바다 ©황준서


예를 들어 바다(이른바 ‘영해’와 ‘공해’)를 둘러싼 국민국가 사이 관계를 규제하는 국제해양법, 국가별 해양에 관한 접근, 관리, 보호, 이용에 관한 법률과 정책 등은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법들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만들어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하더라도, 바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연결된 생태계로서 인간이 만든 국민국가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의사결정과정에서 의사결정 주체로서 ‘바다’ 및 바다에 서식하는 생명의 참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바다를 쓰레기처리장, 채굴장, 군사기지 등 다양한 인간의 용도로 쓰기 위한 법에 비해 바다를 바다의 입장에서 보호하는 법과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인간만이 정치의 주인인 현행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인간 아닌 ‘것’들을 동등하게 고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아야 바다에게 있어서 오늘날 인간의 민주주의는 ‘바다를 위해’ 작동한다. 


바다의, 바다에 의한 민주주의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넘어서 바다의, 바다에 의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또한 새로운 상상력을 따라다니는 냉소와 회의적인 시선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방향에서 가능하겠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실험적인 시도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바다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우리를 국가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국민국가의 틀을 해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국제협약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 사이 약속을 의미한다. 2023년 6월 19일에 유엔에서 채택된 ‘국가 관할권을 초월한 지역에서 해양생물다양성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협약(Agreement on Marine Biodiversity of Areas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BBNJ))’ 역시 국가 간 약속으로 맺어진 약 1,300여 개의 국제환경협약 중 하나이다 (한국은 2025년 3월 19일 비준). 최근 다른 ‘국적’을 가진 여러 나라의 선주민 단체가 ‘우리는 모두 하나의 바다로 연결되어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 협약의 당사자 집단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만약 이들의 대의권이 인정된다면 국민국가 체제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서 바다와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배타적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며 ‘내가 곧 바다이며 바다가 곧 나’라는 세계관을 가진 선주민들의 ‘바다 거버넌스’ 참여 확대는 바다가 영토로서 국민국가에 귀속된 재산이 아니라 바다 그 자체로 존중받는 지위를 확립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과 제도의 전환은 바다의, 바다에 의한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난 선주민의 민주적 참여 확대도 여전히 인간의 대의권 확대라는 점에서 진정 ‘바다가 주인인 민주주의 제도’가 가능할지를 둘러싸고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2024년 9월 브라질 리냐리스(Linhares) 시는 파도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인정하며 그것이 ‘존재하고, 재생하고, 회복할 권리’를 인정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여러 방면에서). 이처럼 그동안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진 권리를 인간 아닌 생명체도 동등하게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바다도 권리의 주체로서 민주주의 제도에 참여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연결된 생태계로서 존재하는 바다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제주 바다’라는 다소 제한적인 형태의 생태계가 제주도의회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실험적으로 검토 중인 제주남방돌고래 법인격 인정 시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된다면 바다에 의한 민주주의 실험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의 핵심 목적은 바다 또는 바다를 서식지로 하는 생명체를 바다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 같은 인간의 민주주의 제도에 하나의 당사자로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삼는 민주주의 제도로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포함해 바다와 삶을 함께하는 생명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들도 실천해야 한다 (‘환경인권옹호자’의 보호, 전통어업의 보존, 관광 제한, 바다로 이어지는 강 생태계 회복 등). 


민주주의는 전진한다 

민주주의는 때로는 퇴보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역동적으로 나아간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그 어느 때보다 확연한 바다의 죽음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인간의 민주주의는 ‘바다의,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민주주의’를 향해 스스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동안 인간이 중심인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많은 법과 정책이 결정되었지만, 바다의 입장에서는 그 방식이 결코 민주적이지도, 바다를 살리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바다는 하나로 연결된 생태계로서, 유한한 공간으로서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인간은 바다 없이 살아갈 수 없기에 바다를 품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정당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생태적으로 지속불가능한 민주적인 제도를 어떻게 개혁하는지에 따라 바다의 미래도 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 가장 나을지는 아무도 확답을 내릴 수 없겠지만, ‘바다의,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민주주의’를 상상하며 실천하다 보면 더 나은 민주주의로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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