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진 바다, 그래도 봄
해녀가 되고 처음 이호에서 물질하던 날, 계장님이 주먹을 동그랗게 쥐시며 ‘이만이’ 한 소라만 잡아오라고 하셨다. 분명 물속에서는 왕소라 같아 보이던 것들이 올라오면 작아지는 통에, 테왁 앞에서 망사리에 넣을지 놓아줄지 망설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해녀들은 금채기를 두어 알배기 어미를 지키고 금지 체장을 정해 어린 개체들을 보호한다. 뿔소라는 7cm 이하로는 잡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해녀들의 주요 채취품이다 보니 각 어촌계마다 전용자가 있어 눈대중으로 애매한 상황에 유용하게 쓰인다. 숨을 참으며 잡아온 소라 하나가 아깝고 애틋한 나는 차마 볼 수 없는 장면, 자를 대 볼 새도 없이 계장님의 손에 작은 소라들이 골라져 나갔다. 남은 소라들을 저울에 달아보니 20kg이었다.

[사진1] 고명효
“아이고, 이제 큰일 나쪄. 춘숙이 똘 다 잡아불켜.”
해녀 삼춘들의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애매한 말이 들렸고, 몇 년 동안이나 해녀를 못 하게 말리던 엄마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왔다.
“어떻게 허난 영 하영 잡아젼?”
“엄마 뱃속에서 소라 어디이신가 다 봐놨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임신을 하고서 7개월까지 물질을 했다고 하셨다. 바다를 ‘엄마의 자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기억날 리 없는 나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나는 모태 해녀다”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80년대 어촌계 장부를 보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하루씩 앞으로, 수기로 적어 내려간 해녀들의 이름 사이에서 엄마를 찾는다. 손춘숙 12월 13일 소라 4kg, 딱 7개월을 채우고 출산휴가를 간 것이다. ‘임신 7개월이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집에서 쉬지, 뭐 한다고 4kg 잡으러 왔나…’ 궁시렁거리며 손은 계속 종이를 넘겼고 해가 바뀌어 다른 장부로 넘어간다. 짧은 2월을 보내고 엄마의 이름이 다시 나타난 건 3월 1일이었다.
‘손춘숙 소라 0.7kg’
출산 후 23일,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영등달인 음력 2월이었다는 거다.
영등신은 바람을 타고 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 동안 제주 섬을 돌아다니며 땅과 바다에 씨앗을 뿌린다는 신화 속 여신으로, ‘영등할망’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는 바다 날씨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혹한이 이어져서 해녀뿐만 아니라 어부들도 조업을 자제한다.


[사진2, 3] 고명효
며칠 전, 햇볕이 쨍쨍한 오후인데도 물에 들어가자마자 양말만 신은 발등이 얼얼했다. 물질하는 동안 파도도 세고 조류도 계속 바뀌는 요상스런 바다였다. 5mm 새 고무옷을 입었는데도 (새옷이 헌옷보다 방한 효과가 높다) 한 시간 반이 지나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슬금슬금 할망 삼춘들 틈에서 나와 데워진 돌담에 등을 기대고서야 살 것 같았다. 수협 영등제 전날이었다.
이 바다에서 40년 전, 나를 집에 뉘어 놓고 물에 나가 700g의 소라를 잡은 엄마는 얼마나 추웠을까.
한겨울에도 수온이 15도 안팎인 제주에서는 아무리 추위를 타는 해녀라도 5mm 물옷을 입는다. 3년쯤 전부터는 그마저도 두꺼워서 답답한지, 상의는 3mm, 하의는 5mm로 맞추며 해녀들의 물옷이 얇아졌다.
겨우 5년째 물질을 하는 나는 겨울 바다에 익숙해진 줄로만 알았는데, 겨울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짧아졌고, 여름 바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런 바다가 다시 추워진 거다.
오락가락하는 바다 날씨에 해녀들이 물옷을 손보느라 ‘소라잠수복’ 사장님의 손에 검은 고무풀이 질(마를) 새가 없다고 했다.
평생 한 바다에서만 물질을 하는 해녀들에게는 흘러가는 바람과 물때에 대한 기억이 몸으로 남아, 최소 50~70년의 바당 데이터가 쌓여 있다. 물질 들어가기 전, 바다 지식이 많은 대상군을 중심으로 다이빙 계획을 짜고 들어가는데, 물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많이 빠져버려 테왁을 끌고 오기가 힘들어 애먹은 날이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에 물건이 없어 헤매는 날이 많아졌다는 거다.
아무리 바깥바당으로 나가 봐도 구쟁기가 보이지 않던 날, 갯녹음을 알지 못하는 해녀 할망은 “여기에 소라가 이렇게 싹 없어질리 없는데! 분명 ‘스쿠버’들이 밤에 와서 소라를 다 잡아간 거라!”라고 욕을 했다.
모자반에 목이 걸려 죽을 뻔할 만큼 길게 뻗었던 모자반 포인트에는 두 뼘만 한 새 모자반이 간신히 나 있었고, 못 보던 말미잘은 세 덩어리나 보였다.
“바당이 옛날허고 틀려졈서”
달라진 게 아니라 틀리다는 삼춘의 말,
우리 바다는 이제 진짜 틀려버린 걸까.

[사진4] 고명효
틀려진 바다, 그래도 봄
해녀가 되고 처음 이호에서 물질하던 날, 계장님이 주먹을 동그랗게 쥐시며 ‘이만이’ 한 소라만 잡아오라고 하셨다. 분명 물속에서는 왕소라 같아 보이던 것들이 올라오면 작아지는 통에, 테왁 앞에서 망사리에 넣을지 놓아줄지 망설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해녀들은 금채기를 두어 알배기 어미를 지키고 금지 체장을 정해 어린 개체들을 보호한다. 뿔소라는 7cm 이하로는 잡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해녀들의 주요 채취품이다 보니 각 어촌계마다 전용자가 있어 눈대중으로 애매한 상황에 유용하게 쓰인다. 숨을 참으며 잡아온 소라 하나가 아깝고 애틋한 나는 차마 볼 수 없는 장면, 자를 대 볼 새도 없이 계장님의 손에 작은 소라들이 골라져 나갔다. 남은 소라들을 저울에 달아보니 20kg이었다.
[사진1] 고명효
“아이고, 이제 큰일 나쪄. 춘숙이 똘 다 잡아불켜.”
해녀 삼춘들의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애매한 말이 들렸고, 몇 년 동안이나 해녀를 못 하게 말리던 엄마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왔다.
“어떻게 허난 영 하영 잡아젼?”
“엄마 뱃속에서 소라 어디이신가 다 봐놨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임신을 하고서 7개월까지 물질을 했다고 하셨다. 바다를 ‘엄마의 자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기억날 리 없는 나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나는 모태 해녀다”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80년대 어촌계 장부를 보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하루씩 앞으로, 수기로 적어 내려간 해녀들의 이름 사이에서 엄마를 찾는다. 손춘숙 12월 13일 소라 4kg, 딱 7개월을 채우고 출산휴가를 간 것이다. ‘임신 7개월이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집에서 쉬지, 뭐 한다고 4kg 잡으러 왔나…’ 궁시렁거리며 손은 계속 종이를 넘겼고 해가 바뀌어 다른 장부로 넘어간다. 짧은 2월을 보내고 엄마의 이름이 다시 나타난 건 3월 1일이었다.
‘손춘숙 소라 0.7kg’
출산 후 23일,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영등달인 음력 2월이었다는 거다.
영등신은 바람을 타고 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 동안 제주 섬을 돌아다니며 땅과 바다에 씨앗을 뿌린다는 신화 속 여신으로, ‘영등할망’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는 바다 날씨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혹한이 이어져서 해녀뿐만 아니라 어부들도 조업을 자제한다.
[사진2, 3] 고명효
며칠 전, 햇볕이 쨍쨍한 오후인데도 물에 들어가자마자 양말만 신은 발등이 얼얼했다. 물질하는 동안 파도도 세고 조류도 계속 바뀌는 요상스런 바다였다. 5mm 새 고무옷을 입었는데도 (새옷이 헌옷보다 방한 효과가 높다) 한 시간 반이 지나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슬금슬금 할망 삼춘들 틈에서 나와 데워진 돌담에 등을 기대고서야 살 것 같았다. 수협 영등제 전날이었다.
이 바다에서 40년 전, 나를 집에 뉘어 놓고 물에 나가 700g의 소라를 잡은 엄마는 얼마나 추웠을까.
한겨울에도 수온이 15도 안팎인 제주에서는 아무리 추위를 타는 해녀라도 5mm 물옷을 입는다. 3년쯤 전부터는 그마저도 두꺼워서 답답한지, 상의는 3mm, 하의는 5mm로 맞추며 해녀들의 물옷이 얇아졌다.
겨우 5년째 물질을 하는 나는 겨울 바다에 익숙해진 줄로만 알았는데, 겨울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짧아졌고, 여름 바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런 바다가 다시 추워진 거다.
오락가락하는 바다 날씨에 해녀들이 물옷을 손보느라 ‘소라잠수복’ 사장님의 손에 검은 고무풀이 질(마를) 새가 없다고 했다.
평생 한 바다에서만 물질을 하는 해녀들에게는 흘러가는 바람과 물때에 대한 기억이 몸으로 남아, 최소 50~70년의 바당 데이터가 쌓여 있다. 물질 들어가기 전, 바다 지식이 많은 대상군을 중심으로 다이빙 계획을 짜고 들어가는데, 물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많이 빠져버려 테왁을 끌고 오기가 힘들어 애먹은 날이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에 물건이 없어 헤매는 날이 많아졌다는 거다.
아무리 바깥바당으로 나가 봐도 구쟁기가 보이지 않던 날, 갯녹음을 알지 못하는 해녀 할망은 “여기에 소라가 이렇게 싹 없어질리 없는데! 분명 ‘스쿠버’들이 밤에 와서 소라를 다 잡아간 거라!”라고 욕을 했다.
모자반에 목이 걸려 죽을 뻔할 만큼 길게 뻗었던 모자반 포인트에는 두 뼘만 한 새 모자반이 간신히 나 있었고, 못 보던 말미잘은 세 덩어리나 보였다.
“바당이 옛날허고 틀려졈서”
달라진 게 아니라 틀리다는 삼춘의 말,
우리 바다는 이제 진짜 틀려버린 걸까.
[사진4] 고명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