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서귀포 바다의 봄 레시피 | 윤상훈 (파란 전문위원)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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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바다의 봄 레시피


윤상훈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


연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출항하는 어선은, 올해 2월에 단 일주일 조업을 나갔다고 한다. 3월 중순에도 풍랑주의보와 강풍 경보가 연이어 내렸고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장면처럼 눈 폭풍이 앞을 가렸다. 소설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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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주의보가 내린 모슬포 바다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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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 한라산 눈 폭풍 ©파란 


문섬 바다숲, ‘몰망’

바다의 시간은 육지와 정반대로 흐른다. 봄 바다는 수확의 시기이다.

제주 농부들은 영등 할망이 돌아가는 봄에 파종과 모내기를 하고 날카로운 북풍이 오기 전에 수확을 한다. 미역, 감태와 같은 바닷풀은 가을에 포자를 퍼트리고 겨울 북풍에 쑥쑥 자라나 봄이 되면 고개를 숙인다. 바다 농사의 농번기는 봄이다. 해녀 삼촌은 고사리 꺾듯이 미역을 품에 안는다. 톳과 감태를 걷고, 모자반과 우뭇가사리를 수확한다. 톳밥을 짓고 몸국을 끓이고 시원한 우무냉국을 들이킨다. 바다의 봄은 육지의 가을이다.

서귀포 문섬의 본섬과 새끼섬 사이에 ‘몰망’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모자반 밭’이란 뜻이다. 봄이 되면, 모자반은 수심 15미터의 바닥에서 수면까지 서로 부대끼며 빽빽하게 뻗어 자란다. 공기통에 걸린 모자반을 걷어내면서, 다이버들은 ‘몰망’을 두 손으로 헤치며 오리발을 조심히 찼다.

그런데, 몰망이 사라졌다. ‘그때 그 몰망’이 ‘민둥바당’이 되어 있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오면서 문섬의 8월 평균수온은 25도를 넘었고, 바닷풀이 녹기 시작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2019년에 ‘기후변화’ 대신에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급기야 작년 2024년 8월 평균수온은 30도를 기록했다. 연산호가 녹아내리고, 돌산호와 말미잘이 하얗게 변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파란’ 바다의 봄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러니,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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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섬 바닷속에서 만난 바다풀 친구들 ©파란 


비목어(比目魚)

류시화 시인의 집이 서귀포 법환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살고 싶다.”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눈을 나란히 두는 까닭에 두 마리가 붙어야 비로소 온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비목’은 누굴까?

 “동방에 비목어가 있는데 두 짝이 나란히 합쳐지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그 이름을 접(鰈)이라 한다.” 

며칠 전, 범섬 바닷속 ‘꽃동산’에서 비목어를 만났다. 눈알만 살살 굴리며 자리에 없는 척했던. 겨울 산란을 마친 비목의 몸집이 봄날에 제대로 오르기 시작한다. 비목 있던 자리의 향기가 10리에 미친다고. 바다의 봄은 둘이 합쳐야 나아가는 사랑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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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문섬에서 만난 ‘비목어’, 넙치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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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 고맙다

앞에 펼쳐진 풍경이 태평양의 너른 품이어서 고맙다. 

어릴 적, 부산 영도의 집 앞엔 머리가 하얗게 센 갈매기섬이 있었다. 서귀포 월평 바다의 석양처럼 저녁이 뉘엿뉘엿 질 무렵, ‘밥 식는다. 밥 먹자’며 어머니의 안달 난 목소리가 하필이면 바닷가에 퍼졌다. 그곳이 바다여서 고맙다, 생각했다. 태풍이 몰려오면 주먹만 한 개조개도 함께 쓸려왔고 앞다퉈 주워 담았다. 바위게 몇 마리를 데려와 학교 책상에 넣어두고 꺼내보았다.

봄, 밤 바다. 보름달 환한 윤슬은 오로지 나를 향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바닷길을 바다 친구와 뛰었다. 바다 벗이 있어 고마웠다.

제주에서 시인 이생진, 화가 변시지, 한라산을 향해 기울어진 소나무를 만나고, 한라산을 들이킬 방파제 몇 곳을 숨겨두었다. 섶섬, 문섬, 범섬이 서귀포 앞바다에 있어 천만다행이다, 생각했다. 나는 제주 바다에, 태평양의 맨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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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 너머 태평양의 너른 품을 만난다 ©파란 


서귀포의 봄 레시피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에는 수심 130미터의 거대한 협곡에 거센 물길이 흐른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 물때와 바람이 엇갈려 만나면, 목숨을 걸어야 건널 수 있는 큰 너울이 생긴다. 생과 사의 경계가 나와 바다 사이에 있다.

며칠 사이, 목련이 어느새 피었고, 풍랑과 강풍경보가 지나간 바다는 그야말로 풍요의 바다, 산란의 바다로 열렸다. 음력 2월 제주도 영등할망의 눈물이 끝나면 비바람이 멈추고 비로소 바다의 봄이 솟구친다. 참돔의 산란 행렬이 시작된다. 봄 바다가 요란스럽다. 북서풍이 한풀 꺾이고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 물질하는 할망 해녀의 굽은 허리는 바다에서 곧게 펴진다. 벚꽃 향 가득한 어린 참돔은 세대를 이어 어미와 똑같은 모습으로 가파도 협곡을 유영할 것이다. ‘차이 나는 반복’이라고 했다. 같은 듯 전혀 다른, 생명들.

서귀포, 봄 바다를 담은 레시피를 떠올려보자. 가파도 청보리와 마라도 미역은 어떨까. 곶자왈 고사리와 동백동산 백서향도 말리고 우려보자. 산란 참돔의 황금 비늘 한 조각도.

서귀포에 봄이 온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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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제주 개오지(좌)와 금빛나팔돌산호(우)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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